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나는 교주다 (I am a religious leader)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5. 10:36

 

 


<2009년 6월 26일 소래생태공원>

 

 

나는 교주다

 

 

나는 교주다. 나는 "내비둬교"의 교주다. 이 교회의 신자는 두 명이다. 한 사람은 우리 아들이고, 또 한 사람은 우리 마누라다.

 

 

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한 달에 한 번 교당인 거실에 모여, "내비둬 경"을 읽고, 지난 일을 반성하고 앞으로 어떻게 더 이 교주의 뜻에 따라 알찬 삶을 살 것인지 설법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 신자들은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다. 왜냐하면 이 교가 "내비둬 교"가 아니더냐?   

 

 

그러면 "내비둬 경"을 읽어보자. 아들아, 너 한 번 읽어봐라. 예, 교주님, 그러면 제가 읽겠습니다.

 

 

 

 

 

 

태초에 한 사상(思想)이 있었나니, 그 사상이 바로 "내비둬" 사상이니라. 이 사상은 세월이 감에 따라 "내비둬교"로 될 것이니,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잘 기억할지어다. 훗날 이것이 자유니, 평등이니, 박애니, 뭐니 하며 수백개의 분파로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이나, 본래 그 뿌리는 "내비둬" 사상임을 명심할지니라. 그 뒤 뭇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말까 하다가 드디어 한국의 한 가정에서 그 빛을 발하게 되리니, 모든 인간들은 그 찬란한 정신을 이어받아 일상의 삶에 "내비둬" 정신을 철두철미하게 반영할지어다.  

 

 

한 가정의 아버지는 다른 식구가 뭐라 하건  "내비둬" 정신에 투철하여, 잔소리를 많이 해야 하느니라.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저항하면, "내비둬" 한 마디하고 계속 잔소리를 해야 하느니라. 그렇다고 해서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따를 필요는 없느니라. 아버지가 아무리 잔소리를 많이 하건, 신경쓸 필요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 효의 근본이거늘, 아버지의 뜻이 "내비두는" 것 아니더냐?

 

 

 

 

 

 

아들아 됐다. 그만 읽어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느냐? 예, 교주님. 잘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어디 한 번 테스트 해보자. 최근에 사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 말이 많은 데, 사대강이 죽었느냐? 아닙니다. 교주님. 사대부는 죽었사오나, 사대강은 죽지 않고, 지금도 잘 흐르고 있사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냥 "내비두면" 되옵니다. 그렇다. 이제 도가 점점 교리에 밝아지는구나. 오늘따라 이 교주의 마음이 이리 가벼울 수가 있나? 그러면 하나만 더 물어보자. 사대강을 "내비두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사대강은 요강이 되옵니다. 그래 역시 "내비둬교" 교주로서 보람을 느낀다.

 

 

 

 

 

저기, 눈알이 초롱초롱한 여 신도, 여기 사진의 왜가리처럼 눈이 예쁘구나. 그 다음 장을 읽어 보라.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거룩하신 교주님.

 

 

무릇 가정의 아내 된 자는 남편이 하루 종일 잔소리를 하건 말건 "내비둬야" 하느니라. 남편이 늦게 일어나건 말건 내비두면 되느니라. 잔소리를 계속하다가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그러느냐? 이 세상 모든 일은 "내비두면" 물 흐르듯 잘 되게 되어 있느니라. 그 놈의 "하라", "하지 말라"라는 말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워지고 개판이 된 것 아니더냐?

 

 

훗날 중국 땅에 노자와 장자라는 사람들이 태어날 것이니라. 그들이 무위자연 사상이라는 것을 들고 나올 것이니, 그것이 바로 이 "내비둬" 정신의 아류이니라. 노자와 장자 사상의 그 뿌리가 바로 "내비둬" 사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그 사상에 빠질 것이나, 나는 그대들 놀고 있는 꼬락서니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면서 포복절도(抱腹絶倒) 하리라. 포복졸도(抱腹卒倒)가 아니니 한자(漢字)를 배우려면 한 글자라도 "학시리" 알라, 어리석은 자들이여. 하여튼 노자와 장자는 결국은 이 "내비둬교"의 신봉자로서 한 마디 지껄여 본 것이니 그들의 말에 크게 신경쓰지는 말라. 하기야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들의 말이나 내 말이나 실제로 큰 차이는 없느니라. 그래도 이 교주가 원조이니 차이는 "학시리" 있을 것이니라.

 

 

이 교주는 무서운 교주니라. 내 말에 콧방귀를 뀌는 자는 귓방망이 맞을 각오할지어다. 그러면 연자방아도 없는 곳에 엉덩방아 찧을 것이니라. 볼만 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대저 어리석은 자들이란 넘어지는 것이 일이요, 깨지는 것이 무릎이요, 나는 것이 코피니라.     

 

 

그만 읽어라, 여신도. 수고했다. 그 동안 한글 공부 좀 했구나. 지난 번에 더듬거리더니, 많이 좋아졌다. 그래,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느냐? 예, 교주님, 잘 이해했습니다. "내비두니" 글이 술술 읽어지옵니다. 그렇다! 그러니까, 이 "내비둬교"가 신통방통한 교라는 거다! 그대들 "내비둬교"의 신자가 된 것은 오로지 이 교주의 하해와 같은 자비로움 때문임을 명심 또 명심할 지어다. 운 좋은 줄 알라, 불쌍한 신도들이여.

 

 

좌우지간, 어디 학습이 되었는지 테스트 해보자. "남편이 술 먹고 늦게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서 말해보라. "내비두면" 되옵니다. 음, 학습이 되었구나. 기쁘도다. 그러면 하나만 더 물어보자. 남편이 술먹고 들어올 때, "내비둬" 정신을 망각하고, 남편에게 잔소리 하면 어떻게 되느냐? 난데없는 싸대기 올라옵니다, 위대하신 교주님이시여. 그렇다. 이제 드디어 하늘의 이치를 깨달았구나. 과연 하나를 가르쳐주면 하나 반을 아는구나. 거기 충직한 두 신도, 그대들의 앞날에 영광 굴비있으라!

 


(2009년 7월 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