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아, 의장대 (Honor Guard)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5. 11:10

 

 

 

<경기도 벽초지>

 

 

"아, 의장대!"

 

 

"번쩍이는 백철모에, 명예를 걸고요.
붐빠붐빠 행진 속에, 청춘은 갑니다.
처녀 열아홉 살 아름다운 꿈 속에는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오늘은 어느 곳에 행사를 가고
내일은 어느 곳에 파티를 가나
우리는 의장대, 의장대
우리는 의장대, 의장대
ROK Honor Guard
ROK Honor Guard"

 

 

 

 

<여의도 국군의 날 행사 때 찍은 사진>

 


이제는 가사도 생각이 나지 않는 의장대 곤조가의 일부다. 노래의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듯, 이제 의장대 시절의 추억도, 많은 부분이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도 단지 한 줌의 재가 되어서 말이다.

 

 

20대 초반의 그야말로 혈기 왕성할 나이에,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논산 훈련소에서 의장대에 끌려간 것은 1971년 여름이었다. 지금 서울의 삼각지에 육군본부가 있었는데, 그 맞은 편 쪽에 국방부가 있었고, 그 옆에 육군본부 사령실이 있었다. 바로 그곳이 내가 3년 동안 의장병 생활을 한 곳이다.  

 

 

처음 본부에 대기 상태로 있으면서 의장병들이 연병장에서 훈련받는 것을 보니, 세상에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행진하는 의장병이 과연 될 수 있을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과 절박감으로 눈이 캄캄하고 숨이 막혔다.  

 

 

며칠 뒤부터 의장병 훈련이 실시되었다. 신병 17명이 같이 훈련을 받았는데, 우리는 모두 바늘 떨어지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할 정도의 긴장과 초조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열중 쉬어, 차려, 앞으로 갓, 뒤로 돌아" 등등의 훈련을 받는데, 17명의 구뒤 뒤축 부딪치는 소리가 일시에 맞아 떨어지는 것을 경이로움과 두려움으로 느꼈다. 그 뒤에 총을 돌리고 하늘에 내던졌다가 다시 잡는 것과 같은 고등 훈련을 받을 때는 노상 매 타작을 당했다. 하루에 연병장을 백 바퀴는 돌았다. 매를 맞고 선착순을 백번은 해야, 80명의 군인의 행동이 0.001초의 차이도 없이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훈련을 시키는 사람이나 훈련을 받는 사람이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인간이 정신을 통일하면 무슨 짓도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마치 껍데기는 잘 사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속은 문드러진 부부처럼, 의장병의 생활은 겉은 화려한 백철모에 번쩍거리고 다녔지만, 그 속은 아오지 탄광 생활의 연속이었다.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하루에 20-50대의 "빳다"를 맞아가며 훈련을 받았다. 나는 내가 훈련을 받으면서 어떻게 돼도 좋으니, 제발 병신만은 되지 않기를 바랬다. 천우신조인지 모르지만 결국 나는 병신이 되지 않고 의장대 생활을 마쳤다. 지금도 내가 가진 인생의 최대의 행운이 바로 병신이 되지 않고 제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 제대를 하고 나서 몇 년은, 구타를 당한 결과로, 허리가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낫기는 했지만, 그 당시 의장병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그런 생활이었다.  

 

 

한 번은 고참이 "나뭇잎을 먹으라"고 했다. 나는 장난인줄 알고 먹지 않았다. 그랬더니, 넋 놓고 있는 사이에 이단 옆차기로 내 등을 차서, 나는 앞으로 세 바퀴를 굴렀다. 넘어졌다가 일어나면서 총부터 줍지 않는다고, 또 이단 옆차기를 당해서, 나는 다시 세 바퀴를 또 굴렀다. 입안이 온통 피로 가득 찼었다.  

 

 

한 번은 무슨 일로 30분간을 맞았다. 맨 처음 "빳다"로 엉덩이를 맞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아구창"(얼굴)을 맞고, 그 다음 "훅꾸"(배)를 맞았다. 그 다음 날 거울을 보니, 곽영을은 없고, 엉뚱하게 얼굴이 팅팅 부은 엉뚱한 놈이 거울에 보였다.

 

 

명령과 복종이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남아 있지 않았던 나는, 철두철미하게 꼭두각시로 살았다. 처음 나가는 외출 때의 일이다. 고참하고 같이 나갔는데, 고참이 지나가는 여자의 유방을 만지라고 했다. 나는 "장난이겠지"하고 만지지 않았다. 그 날 부대에 들어와서 또 30분을 맞았다. 다음 번 그 고참과 나갈 때는 아무런 말이 없어도 걸어가는 여자의 유방을 만졌다.

 

 

실제 여자들은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때문에 잘 만져지지 않는다. 하지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여자들은 보통 3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갑자기 습격을 당한 여자들이 취하는 첫 번째 반응은 "어머머" 하면서 땅에 주저 앉는 유형이다. 그러면서 아무 말도 못한다. 두 번째는 도망가는 유형이다. 별놈 다 본다는 표정을 하고 날쌔게 앞으로 내뺀다. 그리고 세 번째 유형은 담대한 여성인데, 이들은 가지고 있던 핸드백으로 나를 치고 간다. 내가 도망가면 끝까지 따라와 핸드백으로 기어이 나를 치고 가는 여자도 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런 보고서를 쓸 수 있는 인간은 세계 인류 역사상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인지도 모른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이고, 지금 그러다가는 즉시 철창 안으로 직행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나도 살기 위해서, 아니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가 없었던 일이다. 사람은 맞으면 무슨 일이든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또 한 번은 고참하고 외출을 나가서 자장면을 먹게 되었다. 고참이 먹으라고 하는대로 술을 먹었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서 차렷자세로 내 얼굴을 짜장면 그릇에 그대로 박고 넋이 나간 적이 있었다. 그 얼굴 사진이 있었다면 참 볼만 했었을 것이다. 그 날 고참이 나를 업어서 여관에 데려가니라고 고생은 했겠지만, 고참이 쫄병을 업었다는 생각만으로 조금은 복수를 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2009년 7월 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내 후생관>

 

그 당시 같은 내무반에 있었던 친구의 아들이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고, 오늘 국회의사당 내에 있는 결혼식장에 갔었다. 같이 있었던  몇 명의 군대 동기들의 얼굴이 보였다. 우리야 키가 크다는 것과 옛날에 참 많이도 맞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다. 반갑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술과 안주를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그 당시에 몽둥이로, 주먹으로, 그리고 발로 맞은 이야기 뿐이었다. 훈련받다가 맞고, 자다가 밤중에 맞고, 이유가 있어서 맞고, 이유도 없이 맞고, 맞으며 날이 새고, 맞으며 밤이 되었다. 맞아서 후송 갔다 왔다는 이야기와 때려서 감옥에 간 이야기도 빼 놓지 않았다.

 

 

다른 모든 전역 장병들처럼 나도 군대 이야기를 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단지 듣는 사람이 역겹거나 오늘 밤 잠을 잘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참을 뿐이다. 내가 의장대에 이등병으로 들어가서 병장으로 제대하면서 "몽둥이"에 대한 "위대한 발견"을 여기에 적어 만천하에 고한다.   

 

 

  • 인간은 죽을 만큼 맞아도, 죽지 않는다. 이상하다!
  • 인간은 죽을 만큼 맞으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틀림없다!
  • 인간은 매를 맞으면 꼭두각시가 되어, 아무 생각없이 하라는 대로 한다. 정말이다!
  • 인간은 몽둥이에 의해서 무한한 능력이 사장(死藏 )되기도 하고, 자기가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음도 알게 된다. 새로운 발견이다!
  • 인간은 매를 맞고 나서 몇 년 뒤에는 그 무서움을 망각하고, 그것을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착각한다. 그렇다!
  • 그리고, 제대 후 다시 만나면, 술 먹고 웃으며 떠들다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헤어진다.  오늘 일이다!

 


(2009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