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봉화 청량사>
청춘을 돌려다오
어제, 아니, 밤 12시가 넘었으니까 그저께, 2009년도 7월 6일자 코리아 타임스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USA Today에 게재된 내용을 옮긴 것이다.
사람들에게 몇 살을 늙은 나이로 보느냐고 물었다. 평균을 내보니, 68세부터 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설문에 답한 사람의 나이에 따라 노인에 대한 나이가 달랐다. 30세가 안 된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은, 사람은 60세가 되기 전에 노인이 된다고 응답했다. 중년의 응답자들은 70 가까이 되어야 노인이라고 응답했고, 65세 이상의 응답자는 75세가 되어야 노인이 된다고 말했다. 즉 나이를 먹을수록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50세 이상의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은, 자신이 실제 나이보다 10살은 더 젊은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고 응답했다. 65세 이상 74세까지의 응답자의 1/3은 자신들의 나이보다 10-19년 더 젊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응답했다.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은 자기가 몇 살이든지 간에 자신은 늙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를 먹을수록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이 점점 늦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 당시 연세가 50세 정도 되는 국어 선생님이 계셨는데, 얼굴이 좀 쭈굴쭈굴하고 반백이 넘었었다. "내가 2000년이 되면 80이 넘는데, 그때까지 살면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선생님도 80이 가까워 오면 "나는 아직 노인은 아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 당시 계산해 보니까 서기 2000년이 되면 내 나이가 50 살이 조금 넘은 나이가 되었다. 나는 내 나이 50이 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아마도 지구가 멸망할 날쯤 올 것 같았다. "내가 어떤 대학을 가서, 어떤 직장을 얻고,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해서,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이 마치 멀고도 먼 곳의 전설처럼 아지랑이가 되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갔다.
하여튼 그 당시에 가장 심금을 울리는 말 중의 하나는 "인생은 짧고 굵게 산다."였다. 그렇게 멋있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 말은 "짧지 않고도 굵게 살 수 있다"로 변하더니, 결국은 "길게 굵게 산다"로 되고, 이제는 "가늘건 굵건 따지지 말고, 무조건 길게 산다"로 바뀌어 가고 있다.
젊었을 때 우리 동네에 노상 운동하고, 새벽에 개울가에 가서 냉수마찰하고, 이 산 저 산 다니면서 소리치는 노인이 있었다. 나는 아주 그 노인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뭐, 때가 되면 죽어야지 얼마나 더 살겠다고 저런 추태를 부릴까"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게 볼라고 해도 그 노인이 추잡스럽워 보였다. "늙으면 곱게 늙어야지 뭐 몇 년 더 살겠다고 저러는가? 에이, 나는 죽으면 죽었지 저런 일 없으리라." 나를 포함해 많은 젊은이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물에 침 뱉고 그 우물 자기가 마시게 된다.
지금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남자는 70세 후반, 여성은 80세 중반 정도 된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평균적으로 나도 80대 후반이나 90대 초반까지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참 무섭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늘게 살건, 굵게 살건 간에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 터인데, 과연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이다. 과연 나에게 가장 의미있는 일이 무엇일까? 지금하고 있는 일이 몇 년 뒤에도 같은 의미를 가질까? 몇 년 뒤에는 동네 정자 나무 아래서 부채나 부치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까?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아침에 운동 두 시간, 오후에 운동 두 시간, 그리고 저녁에는 피곤하니까 TV 좀 보다가 바로 잠을 잔다. 그 사람의 삶의 목적은 오로지 건강만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여 무엇을 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사람 머리 속에는 오래 산다는 것뿐이 없다. 단순히 오래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얼마 전에 TV에 이런 내용이 방송되었다. 20년 전에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된 사람이 지금까지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사는 사람 이야기다. 그의 부인은 남편의 소변 대변을 다 받아내고 전신을 마사지 해 주면서 20년을 살아왔다. 리포터가 병상에 누워있는 그 남자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평생 누워있건 말건, 80살까지 살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그 남자의 부인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도대체 목숨에 대한 집착의 종점은 어디인가?
여행을 좀 하다가 요즈음 이런 저런 일로 집에서 독서를 했다.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까 "대부분의 책이 결국은 다 같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이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고정관념을 버려라, 오늘이 중요하다, 보이는 것 이면의 세계도 중요하다, 이분법을 버려라, 물욕을 버려라, 의미있는 일을 하라" 등이다.
책에 따라서는 그 한 권이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책만 많이 읽으면 "글 멍청이"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명상없이 책만 읽는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단순히 오래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와 무엇이 다른가? 차라리 아무런 책도 읽지 않고 강가를 걷는 것이 더 의미있는 삶의 방법을 찾아내는 비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곰팡이 난 책에서가 아니라, 명상에서 진리를 찾으라. 달을 보기 위해, 연못이 아니라 하늘을 쳐다보라"라는 페르시아 속담에 있듯이 말이다. 책만 읽는다는 것은, 달을 보기 위해 매일 연못만 쳐다보는 격이다.
나훈아의 노래에 "청춘을 돌려다오"가 있다. 나훈아는 아주 젊은 나이에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청춘을 돌려다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기는 늙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춘을 돌려다오"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딱 한 군데 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욕 얻어먹을까봐 차마 말을 안 했을 것이다. 바로 "젊고 예쁜 여자를 볼 때"다. 주제 파악을 하고 입 다물고 살아왔지만, 말이 난 김에 욕을 먹건 말건, 속에 있는 말 한 번 해봤다, 그냥. 남자들은 박수치고, 여자들은 야유를 보내라.
그러나 젊고 잘 생긴 남자를 보면 여자도 그런 생각 가질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것을 인지상정이라고 부른다. 오죽했으면 나이가 지긋한 공자까지도 이런 말을 했을까? "나는 덕을 사랑하기를, 색을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참고> <2009년 7월 6일 코리아 타임스>
(2009년 7월 8일 작성)
|
'Essay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마가이 수가코 2 (A Japanese woman called Sugako 2) (0) | 2012.08.05 |
---|---|
구마가이 수가코 1 (A Japanese woman called Sugako) (0) | 2012.08.05 |
아, 의장대 (Honor Guard) (0) | 2012.08.05 |
이제 모든 것을 이루었도다 (I have achieved all) (0) | 2012.08.05 |
나는 교주다 (I am a religious leader) (0) | 2012.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