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촌 입구에 서 있는 구마가이 수가코>
구마가이 수가코
한 친구의 제안으로 "육사동"이라는 카메라 동호회를 만들어 회원이 "무려 세 명이나" 됐다. 마침 오랜만에 우리 동회회가 민속촌으로 사진 활영을 가기로 되어 있었던 7월 26일의 일을 여기에 기록하려고 한다.
민속촌에 가 본 지도 수 십 년이 된 듯하여 어떻게 가야할지 궁금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강남역에서 민속촌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남역에서 민속촌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의 위치, 요금 등을 메모하여 강남역에 도착한 것이 아침 10시쯤 되었다.
<민속촉에서 촬영>
그곳에 도착하여 두리번거리는데 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과 조금은 젊은 여인이 일본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깨 너머로 들어보니, 나의 일본어 실력으로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침 그 어르신은 나를 보더니 내가 민속촌에 가는지를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대뜸 참 잘 되었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일본 사람인데,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와 있는 사람이니, 같이 좀 데려가 줘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일본말을 연습할 겸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녀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그녀의 이름은 "구마가이 수가코"이고, 소위 말하는 한류 열풍에 휩쓸려 한국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여자인 듯 했다. 한국의 노래, 드라마가 좋아서 한국말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서 혼자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한국을 한 번 방문하여 실제 한국말을 배워보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것이다. 한국에 일주일 일정으로 와서 민박을 하는 중인데, 약 4일간 학원에 다녔고, 며칠 후에는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까 이 일본인과 이야기 했던 남자는 바로, 그녀가 머물던 민박집 주인이었던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 그녀는 될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한국말을 연습하려고 노력했고, 또 나는 나대로 일본말을 연습하려 했더니, 그녀는 한국말로 나는 일본말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서로 웃게 되고, 좀 썰렁하고 어색했던 분위기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래서 어렵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민속촌에서 촬영>
민속촌에 도착하여 나는 나의 명함을 지갑에서 꺼내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그녀는 명함이 없어서, 볼펜으로 주소를 적어 주려고 노력했으나 아무리 찾아도 볼펜이 없었다. 그날따라 나도 볼펜이 없어서, 근처의 가게에 가서 볼펜이 두 개 들어있는 볼펜 세트를 1000원 주고 샀다. 그녀에게 기념으로 하나를 주고, 하나는 내가 가졌다.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500원을 주는 것이었다. 기념으로 가지라고 하였으나, 그녀는 끝까지 나에게 500원을 주어서, 하는 수 없이 500원을 받고 말았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한국인의 집은 어떤지 궁금하다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집으로 핸드폰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수가코를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식사를 함께하면 어떨지 물었다. 아내는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음 날 강변역에서 6시에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는 서둘러 표를 구입하여 민속촌으로 입장을 하고, 나는 민속촌 입구에서 계속 친구를 기다려야만 했다. 정해진 시간에 동호회원들이 모이게 되었고, 우리는 우리대로 민속촌에 입장하여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오후 3시쯤 헤어졌다.
<민속촌에서 촬영>
다음 날 저녁 6시 강변역에 나가니 수가코가 이미 도착하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근처에 꽃집이 있는지를 물었다. 아마도 우리 집에 꽃을 사오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근처에 꽃집에 없어서 그녀는 그냥 나를 따라 우리 집으로 왔다.
일반적으로 해외에 갔을 때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가보는 것이 최대의 대접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가코도 이런 사실을 아는지 우리 집에 초대받은 것에 대해 감동하는 듯 했다. 그녀는 세수 비누 하나를 선물로 내 놓았다. 일제도 아닌 국산 세수비누였다. 아마도 한국의 가정을 방문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한국 가게에서 그 비누를 구입했을 것이다.
<민속촌에서 촬영>
우리가 준비한 것은 아주 간단했다. 평소에 먹는 음식에 간단한 꼬치 요리 하나만 더 준비했다. 그녀는 밥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오랜만에 음식을 먹는 사람처럼, 아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먹으면서 "오이시이데스(맛있습니다.)"를 연발했다. "나니가 이찌방 오이시이 데수까?(무엇이 가장 맛있습니까?)"라는 나의 질문에 "모두다 맛있어요."라고 그녀는 한국말로 대답했다. 며칠간 민박집 음식을 먹다가, 한국 가정식 식사를 하니 밥맛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일본말을 잘 하지 못하고, 그녀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여 마음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일상적으로 하는 말, 즉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되었는지, 한국을 몇 번이나 방문했는지, 어디가 제일 좋은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방문할 교토와 오사카에 대한 질문과 대답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9시가 넘어서 그녀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수가코에게 무슨 선물을 주고 싶었으나 마땅한 것이 없었다. 아내의 그림을 선물로 주고 싶었으나 너무 커서 줄 수도 없었다. 마침 아직 사진틀에 넣어지지 않은 아내의 습작 한 점이 있어서 주었더니, 그녀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수십번이나 반복했다. 뭐 더 갖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었으나 그녀는 모든 것이 고맙다는 말만을 했다.
<아내와 수가코>
한강으로 나왔다.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강을 따라 펼쳐진 강변북로 자전거 도로에는 운동하는 사람과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수가코는 깜짝 놀랐다. 자기가 살고 있는 나가사키에서는 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와서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 30분간 한강변을 걸으며 사진찍고 이야기하다가 강변역에 도착했다.
수가코는 가을에 다시 한국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한국에 온다면 꼭 전화를 하라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수가코는 우리가 나가사키에 올 기회가 있다면 꼭 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전화번호 주소를 다시 적어 주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정이 들었는지,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좀 아쉬웠다. 그녀의 얼굴에도 서운한 모습이 역력했다. "안녕히 계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를 지금도 헷갈려하는 수가코의 모습이 저쪽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수가코는 2 층에 있는 플랫홈에 올라가기 전,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내와 수가코>
그녀를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에 미찌꼬가 우리집을 방문했을 때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일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찌꼬와는 달리 수가코는 주제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상당히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여자였다. 50대의 여자가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시작하여 기왕에 잘 배워보자고 한국에까지 온 것부터가 상당히 적극적인 그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인생은 망망 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와 같다. 의도된 대로 항해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혼자 바람을 이용하여 자기 마음대로 항해할 수 있다. 배 위에 누워 잠을 잘 수도 있고, 낚시질을 하며 푸른 하늘의 구름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가끔 육지에 접근하여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 혼자 지내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항해해야한다.
오늘 나는 돛단배를 타고 항해하다가 지나가는 한 일본인이 타고 있는 배를 만나 그 주인과 대화를 나누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내일 눈을 뜨면 어떤 새로운 경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2009년 9월 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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