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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청춘을 돌려다오 (Oh, youth)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5. 11:26

 

 

 

<2009년 2월 봉화 청량사>

 

 

청춘을 돌려다오

 

 

어제, 아니, 밤 12시가 넘었으니까 그저께, 2009년도 7월 6일자 코리아 타임스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USA Today에 게재된 내용을 옮긴 것이다.  

 

 

사람들에게 몇 살을 늙은 나이로 보느냐고 물었다. 평균을 내보니, 68세부터 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설문에 답한 사람의 나이에 따라 노인에 대한 나이가 달랐다. 30세가 안 된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은, 사람은 60세가 되기 전에 노인이 된다고 응답했다.  중년의 응답자들은 70 가까이 되어야 노인이라고 응답했고, 65세 이상의 응답자는 75세가 되어야 노인이 된다고 말했다. 즉 나이를 먹을수록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50세 이상의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은, 자신이 실제 나이보다 10살은 더 젊은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고 응답했다. 65세 이상 74세까지의 응답자의 1/3은 자신들의 나이보다 10-19년 더 젊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응답했다.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은 자기가 몇 살이든지 간에 자신은 늙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를 먹을수록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이 점점 늦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 당시 연세가 50세 정도 되는 국어 선생님이 계셨는데, 얼굴이 좀 쭈굴쭈굴하고 반백이 넘었었다. "내가 2000년이 되면 80이 넘는데, 그때까지 살면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선생님도 80이 가까워 오면 "나는 아직 노인은 아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 당시 계산해 보니까 서기 2000년이 되면 내 나이가 50 살이 조금 넘은 나이가 되었다. 나는 내 나이 50이 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아마도 지구가 멸망할 날쯤 올 것 같았다. "내가 어떤 대학을 가서, 어떤 직장을 얻고,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해서,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이 마치 멀고도 먼 곳의 전설처럼 아지랑이가 되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갔다.  

 

 

하여튼 그 당시에 가장 심금을 울리는 말 중의 하나는 "인생은 짧고 굵게 산다."였다. 그렇게 멋있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 말은 "짧지 않고도 굵게 살 수 있다"로 변하더니, 결국은 "길게 굵게 산다"로 되고, 이제는 "가늘건 굵건 따지지 말고, 무조건 길게 산다"로 바뀌어 가고 있다.

 

 

젊었을 때 우리 동네에 노상 운동하고, 새벽에 개울가에 가서 냉수마찰하고, 이 산 저 산 다니면서 소리치는 노인이 있었다. 나는 아주 그 노인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뭐, 때가 되면 죽어야지 얼마나 더 살겠다고 저런 추태를 부릴까"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게 볼라고 해도 그 노인이 추잡스럽워 보였다. "늙으면 곱게 늙어야지 뭐 몇 년 더 살겠다고 저러는가? 에이, 나는 죽으면 죽었지 저런 일 없으리라." 나를 포함해 많은 젊은이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물에 침 뱉고 그 우물 자기가 마시게 된다.  

 

 

 


<2009년 2월 해운대>

 

 

지금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남자는 70세 후반, 여성은 80세 중반 정도 된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평균적으로 나도 80대 후반이나 90대 초반까지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참 무섭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늘게 살건, 굵게 살건 간에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 터인데, 과연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이다. 과연 나에게 가장 의미있는 일이 무엇일까? 지금하고 있는 일이 몇 년 뒤에도 같은 의미를 가질까? 몇 년 뒤에는 동네 정자 나무 아래서 부채나 부치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까?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아침에 운동 두 시간,  오후에 운동 두 시간, 그리고 저녁에는 피곤하니까 TV 좀 보다가 바로 잠을 잔다. 그 사람의 삶의 목적은 오로지 건강만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여 무엇을 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사람 머리 속에는 오래 산다는 것뿐이 없다. 단순히 오래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얼마 전에 TV에 이런 내용이 방송되었다. 20년 전에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된 사람이 지금까지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사는 사람 이야기다. 그의 부인은 남편의 소변 대변을 다 받아내고 전신을 마사지 해 주면서 20년을 살아왔다. 리포터가 병상에 누워있는 그 남자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평생 누워있건 말건, 80살까지 살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그 남자의 부인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도대체 목숨에 대한 집착의 종점은 어디인가?

 

 

여행을 좀 하다가 요즈음 이런 저런 일로 집에서 독서를 했다.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까 "대부분의 책이 결국은 다 같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이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고정관념을 버려라, 오늘이 중요하다, 보이는 것 이면의 세계도 중요하다, 이분법을 버려라, 물욕을 버려라, 의미있는 일을 하라" 등이다.

 

 

책에 따라서는 그 한 권이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책만 많이 읽으면 "글 멍청이"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명상없이 책만 읽는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단순히 오래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와 무엇이 다른가? 차라리 아무런 책도 읽지 않고 강가를 걷는 것이 더 의미있는 삶의 방법을 찾아내는 비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곰팡이 난 책에서가 아니라, 명상에서 진리를 찾으라. 달을 보기 위해, 연못이 아니라 하늘을 쳐다보라"라는 페르시아 속담에 있듯이 말이다. 책만 읽는다는 것은, 달을 보기 위해 매일 연못만 쳐다보는 격이다.

 

 

 


<2009년 2월 어떤 술집>

 

 

나훈아의 노래에 "청춘을 돌려다오"가 있다.  나훈아는 아주 젊은 나이에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청춘을 돌려다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기는 늙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춘을 돌려다오"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딱 한 군데 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욕 얻어먹을까봐 차마 말을 안 했을 것이다. 바로 "젊고 예쁜 여자를 볼 때"다. 주제 파악을 하고 입 다물고 살아왔지만, 말이 난 김에 욕을 먹건 말건, 속에 있는 말 한 번 해봤다, 그냥.  남자들은 박수치고, 여자들은 야유를 보내라.   

 

 

그러나 젊고 잘 생긴 남자를 보면 여자도 그런 생각 가질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것을 인지상정이라고 부른다. 오죽했으면 나이가 지긋한 공자까지도 이런 말을 했을까?  "나는 덕을 사랑하기를, 색을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인생에 애원이란다
못다한 그사랑도 태산같은데
가는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청춘아 어딜가느냐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인생에 애원이란다
지나간 그 옛날이 어제같은데
가는세월 막을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청춘아 어딜 가느냐

 

<참고>

<2009년 7월 6일 코리아 타임스>


 

 


(2009년 7월 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