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빠진 칼날
추석 연휴가 끝나는 9월 24일 산정호수에서 하루 머물다 오려고 예약을 했다. 아침에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아내가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본 즉, 지난 밤 꿈에 칼이 보였다는 것이다. 큰 부엌칼이 듬성듬성 이빨이 빠졌는데, "이를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드디어 그 칼을 잃어 버리고 울다가 잠이 깼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미신이라하여 쓰잘데기 없는 소리라고 치부했었던 나도, 그 꿈이 이상하여 순간 어찌할까 망설였다. 그러다가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꿈 때문에, 가려고 했던 여행을 떠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나 스럽지 않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가보자고 했다. 대신 평소보다도 훨씬 더 조심해서 운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일기 예보 말대로, 시베리아 고기압이 북 태평양 저기압을 몰아내서 인지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파랗고, 듬성듬성 떠 있는 하얀 뭉게구름을 보니 내가 마치 중국의 신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구리 코스모스 밭을 지나서, 외곽순환도로에 접어들자 탁 트인 고속도로에 펼쳐진 가을 하늘이 마치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영화를 보듯 시원하게 눈과 가슴을 적셨다. 내 앞에 있는 자동차의 뒷 유리도 모두 하늘의 구름을 반사하여 마치 남태평양 푸른 포스터를 붙이고 달리는 것 같았다.
지도상으로 보아 길이 잘 뚫려진 일동, 이동까지 간 후에, 왼쪽으로 빠져 철원 쪽으로 갔으면 좋았을 것을, 차 안에 달아둔 내비게이션의 말만을 믿고, 의정부-포천으로 간 것이 잘 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의정부부터 포천까지 길이 막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연휴가 지난 마당에 뭐가 이리 길이 막히는 줄 모르겠다. 그 순간, 칼날에 이빨이 빠져 잘 들지 않듯, 차가 막히는 것도 그 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송우리를 지나는데 마치 외국의 쇼핑 거리를 지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길 양쪽으로 North Face니 Red Face니 하는 간판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 거리는 것이 백미러에 보였다.
포천을 빠져 나오자 차는 다시 시원스럽게 달렸다. 내 차는 운천을 지나 철원의 동송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여기가 철원 평야인지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철원 오대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그 순간 너무 넋 놓고 있다가 길에 놓여진 과속 방지턱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순간 덜커덩 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자동차가 땅에 닿으면서 내 머리와 아내 머리가 천장에 부딪쳤다. 늦게 밟은 브레이크가 삐익 소리를 내더니 고무타는 냄새가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아내는 정신을 어디에 두고 운전하냐고 소리쳤다. 하지만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속 방지턱의 볼록 올라온 모양이 칼날의 이가 빠진 모양과 너무 비슷해서, "이것으로 두 번째 액땜을 하나보다"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기분이 좋아졌다.
송우리에서 약 15분 지나면 도피안사라는 절이 나온다. 철원군청의 홈페이지에서 보고, 지금 그곳을 가는 중이다. 철로 만든 시커먼 부처님상이 있는데, 그것이 국보라고 했다. 국보63호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이라고 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왜 아프리카 흑인 부처님을 갔다 놨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다음 10미리 렌즈로 절의 구석구석을 촬영하면서, 집이 삐툴어지고, 지붕이 왜곡되면서, 이러다가 또 뭔가 칼날에 이빨 빠진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지 신경이 곤두섰다.
도피안사 절 앞에는 학저수지가 있다.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둔 철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저수지의 반은 이미 풀이 우거져 있었고 한 사람이 9월의 뜨거울대로 뜨거운 태양을 얕잡아 보면서 낚시질에 여념이 없었다. 저수지도 풀 때문에 칼날에 이빨 빠진 것처럼 보였고, 낚시질 하는 사람도 틀림없이 이빨이 빠졌을 거라고 생각하며 걸어 나왔다. "조심해"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보폭을 크게 떼서 뛰었다. 최근에 비가 많이 와서 웅덩이가 바로 내 앞에 있었던 것이다. 보기 좋게 한 쪽 발이 흙탕물 속에 빠져 버렸다. 양말을 벗어 개울가에 빨면서, 몸을 돌려 내가 빠진 웅덩이를 보니, 그 모양이 잇몸에서 빠져 나온 반쯤 썩은 이빨처럼 둥그렇다가 네모져 보였다.
도피안사에서 나와 464번 도로를 타고 가면 제2 땅굴 가는 길이 나온다. 이번에 갈 곳은 토교저수지다. 도피안사에서 약 10키로 떨어져 있고, 사진을 보면 남해의 다도해를 연상시키는 저수지다. 저수지로 들어가려고 하니, 한 군인이 약 4키로 떨어진 곳에 가서 허락을 받아오라고 했다. 기분은 찝찝했지만, 기왕에 왔으니 가보리라 마음 먹고, 그가 이야기 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가니 한 군인이 종이 한 장을 주고, 주소니 직업이니 가는 목적이니 뭐니 하면서 적으라고 했다. 옆에 있는 사람을 따라, 성묘가 목적이라고 적어서 건네 주었다. 군인 두 명이 내 차에 타려고 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나와 같이 가서 내가 하는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고 했다. 나는 감시당하는 것도 싫었고, 성묘한다고 해놓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들의 입장으로 보아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서울에서 성묘하러 왔으면 가야지 여기까지 와서 안 간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그 군인이 나에게 말했다. 그의 말이 옳기도 하지만, 나도 좀 켕기는 대목이 있어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마치 이빨처럼 왜곡돼 보였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명찰을 보니, 그의 이름은 정인발이었다. 이거 뭐 카니발도 아니고, 노루발도 아닌 정인발이냐? 그래도 개나발보다는 낫군. 그나마 그의 이름에서 "이빨 빠진 칼날"이 연상되지 않는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산정호수에 도착하니 해가 거의 다 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산꼭대기를 붉게 물들이고 하늘과 호숫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이 정도의 경치면 우루무치의 천산천지의 경치에 버금간다고 아내가 말했다. 글쎄 지금 이 분위기에 얼마나 심취되었으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정호수를 천산천지에다 비교할 수 있을까? 규모면이나, 첩첩이 둘러싼 산, 그리고 그 너머에 하늘과 구별이 안되는 산꼭대기에, 흰 눈이 쌓여있는 천산과는 차라리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음식점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 라이브 공연이 열리고 있는 지점까지 왔다. 사람들은 감자전이나 파전에 동동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서 있다가 계속 오숫가를 따라 걸어갔다. 호수 위를 걸어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인공 다리를 건너 무슨 영화 촬영지였다는 아로마 향기가 들어 있는 물품 파는 집에 들렸다. 아내는 구경을 한다고 신발을 벗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 상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이미 어두워진 호숫가에 앉았다. 아까부터 내 앞에 앉아 있던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계속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야, 그러니까 전화도 좀 자주하고, 이런 데도 자주 오자."여자가 남자에게 말했다. "그래, 누나, 내가 누나를 멀리한 것이 아니고, 일이 바빴어." 어둠을 틈탔는지, 나를 인간같지도 않게 보았는지, 어슴프레하게 보일 내 앞에서, 그들은 갑자기 격렬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굴러온 돌에 박힌 돌 빠져 나가듯 나는 슬금슬금 그 자리를 떴다.
밤에는 여행객이 없는지, 산정 호수 둘레에 나 있는 길은, 가로등이 아주 듬성듬성 밝혀져 있었다. 그러다가 길을 잘 못 든 것이 두 번, 정신을 바짝차리고 걸었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 옆에는 검은 호수물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말했다. "당신 이제 칼날 이빨 빠진 이야기는 다 잊었지?" 아내가 대답했다. "아니, 거의 다 잊었는데, 왜 다시 그 얘길 꺼내는 거야." 칼날의 저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호수 아래 이동 갈비집이 있었다. 이동갈비가 어떤 갈비인가 궁금했는데, 메뉴판에 "호주/뉴질랜드산 쇠고기"라고 적혀있었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이동 갈비"는 "이동에서 먹는 갈비" 아니면 "이동식으로 숙성시킨 갈비"란 뜻일 게다. 사실 나는 이동에서 기른 소를 잡아서 파는 고기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갈비를 주문하고 벽을 보니 "허무"라는 시가 있다. 중국 신장의 허무(禾木)도 생각이 났고, 허무 개그를 했던 생각도 났다. 그러나 부모님의 입장에서 본 또 다른 허무가 내 가슴을 찌른다. 인터넷에서 어느 주례사가 했다는 말, 즉 "부인을 첫 번째로, 부모님을 두 번째로, 그리고 자식을 세 번째로" 생각하면 일이 잘 풀리게 되어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부모님을 자식보다 우선 순위에서 뒤쪽에 놓기 때문에 가정에 불화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시를 읽어가면서, 내내 "그래 옳아, 옳아 백번 옳아"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나온, "자식 위해 쓰는 돈은 아낌없이 쓰건만은, 부모 위해 쓰는 돈은 하나 둘씩 따져 보네."라는 말에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생각이 들었다. "자식에게는 몇 십만원을 펑펑 주면서도, 단돈 10만원을 부모에게 드리는 것도 자식은 아까워하지. 암, 그래. 이런 자들이 받게 될 벌이 바로 이빨 빠진 칼날의 저주일거야. 이빨 빠진 칼날은 항상 우리를 따라 다니지. 정신 못 차리고 사는 자들에게 위대한 우리의 이빨 빠진 칼날은 정의의 심판을 내려치시는 게야." 이제 이빨 빠진 칼날의 악몽은 재수가 있고 없음에서, 우리를 올바르게 인도하는 정의의 사자로 변신하고 있었다.
소주 한 병이면 된다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두 병을 마시는 것은 내 인생에 흔히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 후회는 하지만, 후회하면서도 "기회가 오면 또 그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상화된 버릇이다. 기분이 좋아져 콘도로 돌아와 다시 한 잔 하려고 하는데, 실내 방송이 들렸다. 행운권 추첨이 있으니 모두 로비로 나오라는 것이다. 만약 추첨 당시 본인이 없으면 무효로 하고 다른 사람을 뽑는다고 했다.
로비 근처에는 각 방에서 나온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맨 정신이라면 몰라도, 이미 술이 한 잔 들어간 마당에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도, 이빨 빠진 칼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술을 팔고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 두 병을 시켰다. 이미 다른 좌석도 삼분의 이는 차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가수가 블루스 리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소주에다 맥주가 섞이니 술발은 술발대로 받고, 기분 또한 천장 뚫고 하이킥하고 있었다.
내가 내가 아닌, 하늘에 떠 도는 갈매기인 그런 기분일 때, 어디선가 "503호 3등 당첨되었습니다."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503호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린데." 갑자기 "여보, 빨리 열쇠 꺼내봐."라고 소리쳤다. 야, 이게 어찐된 일인가? 503호라는 글짜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날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무슨 팔자에 없는 행운이란 말이냐?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더냐? 너무나 크게 대답을 하고, 너무나 크게 웃고, 너무나 큰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나는 술집에 앉아 있던 사람이나, 로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바탕 웃음거리가 되었다. 남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던가? 웃음거리라. 개그의 원천이란 말이 아니던가? 우리가 일류 제품은 많이 만들어 내도, 원천 기술이 없어서 버는 돈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일본이나 미국에 바쳐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원천이라.
받아든 종이 쪽지에는 두 사람이 무료로 목욕할 수 있다는 말이 써 있었다. 오늘 밤 그냥 자려고 했는데, 팔자에 없는 목욕을 하는구나. 내가 이런데 와서 무료 목욕을 다 하네.
그 뒤 2등이 불려졌다. 그에게는 목욕권과 포천 막걸리가 주어졌다. 드디어 1등이 호명되었다. 그에게는 목욕권과 막걸리와 일일 무료 숙박권이 전달되었다.
2등과 1등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상품권만 받아들고 콘도 방으로 들어갔다. 이 술집에서 상을 탄 사람은 오로지 나 한 사람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앞으로 나가 춤을 추었다. 나도 잘은 못하지만, 디스코나 지루박이나 블루스는 출 줄 안다. 옛날에 30대에 몇 달 동안 남의 눈을 피해가며 밤마다 학원에 나가 배웠었다. 또한 개다리 춤도 조금은 출 줄 안다. 그것을 지금 써 먹는다.
노래를 하던 가수 조태복씨가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는 나에게 "눈물 때문에"라는 씨디를 한 장 주었다. 그러더니 나만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한 장씩 주었다. 그러다가 떨어지니 노래를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밖으로 나가 자동차에서 씨디를 갖다가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다 주었다. "내가 상을 받아서 그대들도 씨디를 받는 줄 아시오. 모두들 고마운줄 아시오." 나는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싸여, 일장 연설을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이 모든 것이 이빨 빠진 칼 때문이라는 것만 아시오." 모든 사람이 별 미친 놈 다 있다는 듯이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빨 빠진 칼 만세."라고 외치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에 전에 유명한 가수였다는 어떤 여자가 나왔다. 미국에서 16년간 살다가 다시 와서 가수 활동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40대 후반이나 50대는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에 저런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칭찬하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날 그 기분에 누군들 예쁘지 않으리오만, 그날 따라 그녀의 풍성한 육체가 내 눈을, 내 마음을, 한 바퀴 후려치고 지나갔다. 한 차례 얻어 맞은 내 눈은 다시 원위치로 와 그녀의 풍성한 가슴에 고정되었다. 그녀의 "의도적인 시각 고정" 작전에, 나는 나의 "비의도적인 시각 고정"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하며,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는 내 자신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저런 노래를 폼생폼사로 부르던 그녀는 결국 남행열차를 끝으로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으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뒤 우리도 자리를 떴다. 본래 뜨고 싶지 않은 자리가 술자리다. 더군다나 분위기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아쉬운 마음 어쩔 수가 없지만,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자리이건, 설령 인생이라는 마당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보, 다음에 이빨 빠진 칼 꿈 꾸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말해. 또 다시 이 자리로 와야겠어." 아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이빨 빠진 칼을 꿈 속에서 잃어 버렸는데, 어떻게 하나?" 내가 말했다. "걱정하지마, 당신은 그 칼을 잃어버렸지, 잊어버린 것이 아니야. 만일을 위해, 오늘 집에 가서 부엌 칼의 이빨을 뽑아 당신 머리 맡에 걸어 두겠어. 이빨 없는 칼 만세!"
(2010년 9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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