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고래~~~?"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10. 2. 19:55

 

 

"고래~~~"

 

 

김준현은 현재 KBS 개그콘서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개그맨이다. 지금은 "네 가지"라는 코너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상대책 위원회"라는 코너에서 "고래~~~"라는 말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었다.  지금도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면 갑자기 "고래~~~"라고 말하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말 끝마다 "고래~~~"를 연발하여 어떤 때는 듣는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기도 한다.

 

 

 

 

<개그 콘서트의 비상대책 위원회>

 

 

나의 이야기는 올 초 어느 추운 겨울날로 돌아간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혹독하게 추운 날이었다. 마침 금산에서 친구가 서울로 올라와 한 잔 하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얇은 파카를 하나 걸치고, 두꺼운 파카를 또 걸쳐서 추위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친구를 만나, 집에서 가까운 횟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반갑기도 하거니와 술도 최근에 마신 적이 없어서, 술을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바로 그때였다. 생선회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주는 짜릿한 맛을 넘어,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로 내 몸을 타고 내려갔다. 그때처럼 맛있는 술은 그 이전 기억에 없었다.   

 

 

술집을 나와 우리는 한강을 따라 걸었다. 차가운 바람이 코와 입에 부딪쳐 알콜 냄새를 한강가에 뿌리고 있었다. 적당한 알콜 도수에 담가진 내 몸은 기운이 솟구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두손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고, 맨땅을 쾅쾅 밟는 발소리가 청천벽력처럼 내 심장과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 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 먹으며, 달리는 마을버스 2-1에서 뛰어내린 육봉달"을 능가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뚝섬 근처의 아리랑 카페>

 

 

뚝섬역에 있는 아리랑이라는 한강에 떠 있는 선상 까페에서 근사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창밖을 내다보며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기분을 둘만이 즐길 수 없으니 다른 친구와 공유하는 것이 인자(仁者)의 기본 양심이라고 생했다. 또 다른 친구를 불러 한 잔을 해야겠다는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인간 본성에 회귀하게 되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또 다른 친구는, 건국대학교 근처의 먹자 골목에 바람처럼 나타났다.  셋이 하나가 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하여튼 기억이 없을 정도로 많이 부어라 마셔라 했다. 그때부터는 나는 온데 간데 없고, 내 발이 알아서 갈 곳을 찾아가고 있었다. 내 발은 쿵쿵 거리는 든든한 심장의 후원을 받으며 훈련된 쥐가 먹이를 찾아 나서듯, 근처의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양꼬치 집을 찾아 들어갔다.  

 

 

 

 

<매화반점 양꼬치>

 

 

그 뒤, 양꼬치를 얼마나 먹었는지,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술이 술을 먹었는지, 술이 나를 먹었는지, 내가 집에 어떻게 왔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누군가가 깨워서 눈을 뜨니 우리 집이었고, 친구는 일찍 금산에 갈 일이 있어서 가야겠다고 했다. 나는 잘 가라는 말을 하고 또 쓰러져 잠을 잤다.

 

 

 

 

 

 

얼마나 잤을까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양말과 바지가 거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파카가 없었다. 10분 이상을 찾아도 어제 입고 나갔던 파카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날이 너무 춥다고 파카를 두 개 입고 간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안에 입었던 얇은 파카는 눈에 띄었으나, 겉에 걸쳤던 두툼한 파카가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이 파카는 아내가 결혼 기념으로 사준 것이었는데, 하필이면 다른 것도 아니고 그것을 잃어 버렸으니 참으로 난감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아내가 사준 손수건을 잃어 버렸고, 또 얼마 전에는 아내가 사준 버버리 머플러를 잃어 버렸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아내가 사준 것만 잃어 버리니 무슨 팔자가 이런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마누라한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왜 병신같이 항상 아내가 사준 물건만을 잃어 버린단 말인가?

 

 

 

 

 

 

나는 아내에게 파카를 잃어 버렸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일단은 찾는 데까지 찾아보고 그래도 못 찾으면 그 때가서 이실직고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내는 일본어 배우러 학원에 간다고 말하면서, 밥은 보온 밥통에 있고 반찬은 어디에 있으니 술이 깨면 먹으라고 당부하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세수를 한 다음, 심호흡을 하고 방안구석구석을 다시 찾아보았으나 그렇게도 애타게 찾던 파카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쯤 금산으로 가고 있을 친구에게 핸드폰 전화를 걸어서 내가 지난 밤에 파카를 입고 집에 왔는지 물었다. 친구는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 전화를 받고서는, 자기도 술이 많이 취해서 내가 파카를 입고 집에 왔는지 기억이 없다고 했다. 하기야 본인인 나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의 파카의 행방을 알 것인가?  

 

 

 

 

 

 

나는 일단 건국대학교 근처의 어제 술 먹었던 집을 찾아갔다. 아직 술은 덜 깼지만, 지난 밤에 간 술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제 밤에 그곳에 남겨진 파카는 없다,는 식당 종업원의 말만이 내 귀에 들어왔다.

 

 

나는 문을 박차고 나와 아직도 술이 덜 깬 상태에서 근처에 있는 양꼬치 집을 찾아 나섰다. 근처에는 여러 양꼬치 집이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어제 간 집은 "매화반점"이라는  양꼬치 집이었다. 순간 그런 생각을 해 내다니 나는 참 술머리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말을 듣더니 주인은 "아, 어제 여기에서 술을 드셨어요. 하지만 파카는 없는데요."라고 말하면서 나를 보고 헤보처럼 "헤헤" 웃었다.  

 

 

안되겠다. 그냥 집으로 가는 도리밖에는 없구나. 그때 마침 어떤 노래방에 들리었다는 생각이 떠 올랐다. 노래방에 찾아가니, 낮이라 그런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닫혀진 문에 써 있는 주인의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주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까하다가, 집에간다 해도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주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속절없이 세월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 앞에 나타난 노래방 주인은, "유감스럽지만, 파카는 없었는데요."라는 말을 하고 황야에 부는 찬 바람처럼 쌩하니 노래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왕에 이렇게 된 바에야 이제 깨끗이 아내에게 고백하고 '다시는 물건을 잃어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다시는 술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전에 같았으면, "물건 그까짓 것 잃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지 뭐, 사람이 살다보면 그런 일은 당연히 있는 것여" 라고 뻔뻔스러움을 보일 수도 있지만, 왜 그런지 나이가 들면서 그런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나만의 일인지 혹은 내 나이 또래의 모든 남자가 그런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옅은 잠에 들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내가 발걸음을 문으로 띄어 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문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삐삐삐삐 누르는 소리가 지옥의 저승사자의 부름소리처럼 귀에 크게 들렸다. 문이 철커덕 열리고 아내의 신 벗는 소리가 고막을 찡 울리더니 내 심장에 꽂혔다.

 

 

 

 

 

 

 

:

당신에게 미안한 일 하나 고백할 것이 있는데.

아내

:

무슨 일인데, 그렇게  미안해하지. 살다가 별 꼴을 다 보네. 빨리 말해봐.

:

사실은 어제 술 먹다가, 작년에 당신이 사 준 그 파카를 잃어 버렸어.
지난 번에 머플러를 잃어 버리더니 또 이것을 잃어 버렸으니 면목이 없군. 나는 왜 당신이 사준 것만 잃어 버리는지 모르겠어.

아내

:

무슨 파카?

:

그 초록색 파카 말이야?

아내

:

아니, 내가 장롱 깊이 넣어놓았는데.

:

"고래~~~?" 하지만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러지. 그냥 눈에 띄는
곳에 놔둬야지. 그것 찾느라고 죽는 줄 알았구먼.

아내

:

그 놈의 "고래?" 소리 좀 그만 하시게. 이 술고래 양반아.
내가 사준 파카를 너무 함부로 하는 것 같아 그렇게 했구만시리.

 

 

 

 

 

 

방고래가 꺼지도록 한숨을 쉴 줄 알았던 아내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고, 나는 푸른 바다물 위로 뛰어오르는 한 마리의 "돌고래"처럼, 허공에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고래~~~. 나는 파카를 잃어 버린 것이 아니었어." 주인의 단칼에 목이 달아날 뻔한 털 빠진 닭이, 도망쳐 이리 뛰고 저리 날뛰 듯, 나는 날개짓을 하면서  방 주위를 맴돌고 또 한 번 크게 외쳐댔다. "고래~~~~~~~?"

 

 

*언급이 없는 사진은 여수 엑스포 사진입니다.

 

(2012년 10월 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