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귀신이 하품할 일이다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9. 16. 12:15

 

 

"귀신이 하품할 일이다 "

 

 

이야기는 2011년 10월 네팔의 치트완 국립공원에 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양은 따갑고 공기는 칙칙해서 입고 있던 옷이 땀에 젖어 몸에 척척 감기는 상황이었다. 멀리 강을 바라보니 몇 마리의 코끼리가 자신들도 더위를 참지 못했는지 허우적거리며 자신의 몸에 물을 "찌끄리고" 있었다.

 

 

 

 

 

 

문제는 코끼리를 타보는 객기 넘치는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본래 나는 말이나, 당나귀나, 코끼리나 뭐 이런 것을 타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동물 위에 앉을 때, 내 엉덩이 뼈와 동물의 등뼈가 부딪쳐서 참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아프면 동물도 얼마나 아플까, 하는 동물에 대한 얄팍한 동정심이 작용한 탓이리라.

 

 

그러나 여기 와서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코끼리 타보는 일을 제외하고는 뾰죽하게 할 일도 별로 없었다. 하여튼 그날은 코끼리를 타보기로 했다. 코끼리를 타고 숲속을 다니면서 혹시 벌레에 물리거나 쐐기에 쏘일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말을 건성건성 듣고, 코끼리를 타본답시고 다른 사람을 따라서 건둥건둥 따라 나섰다.

 

 

코끼리 한 마리에 몇 사람씩 타고 가는데, 얼마나 출렁거리는지, 폭풍 속의 돛단배처럼 내 몸이 흔들렸다. 벌레에 물리지 않을 노력이나 걱정을 할 겨를이 어디 있는가? 그저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코끼리 등 위에 놓여진 안장을 팔이 빠지도록 잡고 있었을 뿐이다.

 

 

 

 

 

 

코끼리를 타고 내리니 몸이 좀 근질거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육안으로 보아 별 문제는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다. 그래서 벌레에도 많이 물려보았고, 쐐기나 벌에 쏘여보았고, 심지어는 뱀에도 물려보았었다.  나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 몸은 산전수전 다 겪어 웬만한 "자연자해"는 다 물리칠 수 있는 면역력을 이미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까짓 벌레 물린 것 가지고 걱정을 한다는 것이 전혀 나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콧방귀를 뀌면서 웃어 넘기고 말았다.

 

 

 

 

 

 

그 후에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강변에 있는 동물을 관찰할 시간이 있었다. 좁은 배를 타고 강을 따라서 내려가자니, 아름다운 풍광에 감동되기는커녕 웬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내 오른쪽 발목에서 뚝 소리가 나며 따가움과 근질거림과 통증이 순식간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양말을 벗고 벌레에 물리지 않았는지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곤충도 발견하지 못했고, 피부도 별 이상이 없는 듯 하였다.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헛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머리가 돌지는 않았는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일을 잊고자 노력했다.

 

 

 

 

 

 

그 후 별 문제 없이 계속 트레킹을 하면서 코뿔소를 관찰하고, 코끼리를 관찰하였다. 그리고 코끼리가 헤엄치는 강을 건너 숙소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 모두 별 문제가 없는 듯 했다. 물론 나도 별 문제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밤이 되자, 온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복부에는 지름 약 15센티의 붉은 반점이 보였고, 온 몸에 좁쌀같은 것이 톡톡 튀어나와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벌레에 물렸거나 쐐기에 쏘였기 때문일 것이다. 벌레에 물릴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KC의 말이 떠오른 것도 바로 그때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활 떠난 화살 아니더냐? 지난 과거는 잊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이 나의 신조가 아니더냐?

 

 

 

 

 

 

처음에는 마땅한 약이 없어서 그냥 놓아두다가, 나중에는 누군가가 안티프라민을 주어서 그것을 바르다가, 과산화 수소를 발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증상은 쉽게 없어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증상이 하루 이틀 간 것이 아니라,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보아 보통 벌레에 물리면 2-3일 가다가 낫는다. 길어보아야 일 주일 되면 웬만한 벌레 물린 흔적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를 문 이 벌레는 얼마나 독한지 내가 귀국하는 날인 10월 26일까지도 변함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벌레에 물린지 보름이 지나서도 전혀 나의 피부병은 차도가 없었던 것이다. 정말 지독한 네팔의 벌레였던 것이다.

 

 

 

 

 

 

귀국을 하자 맨 처음 찾은 곳이 역시 피부과 병원이었다. 나는 그 동안의 사정을 의사에게 설명하고,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의사는 나의 몸 전체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도대체 이게 무슨 병인지 물었다. 의사는 "이런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치료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서,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러나 3일 동안 약을 먹고 발라도 별 진전이 없었다. 3일 뒤 나는 다시 병원에 갔다. "이런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치료해야 합니다." 의사는 지난 번과 똑 같은 표정과 똑 같은 어조로 똑 같은 말을 허공에 뿌렸다. 나는 의사가 같은 말을 녹음해 놓고 나에게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또 3일분 먹을 약과 바를 약을 건네 주었다. 그러나 그 약을 다 먹은 후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피부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한국의 피부과 의사의 치료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자, 아마도 큰 병에 걸렸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러다가 온몸이 곪아터져서 괴물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가려움을 참고 될 수 있으면 긁지 않으려고 이빨을 꽉 다물고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인내하며 약을 먹고 바르고, 또 인내하면서 지냈다.

 

 

 

 

 

 

나는 세 번째 다시 그 병원에 찾았다. 그러나 의사는 별 말 없이 그냥 같은 처방만 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내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 송어회를 먹고 거기에서 나온 기생충이 뇌로 침입하여 죽었다는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이러다가 나도 이 병균인지, 병해충인지가 결국은 내 뇌를 침입하여 졸지에 개죽음을 맞는 것이 아닌가 두렵기도 하였다.

 

 

또 하나는 내가 피부병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나를 슬슬 피한다는 인상을 받기 시작했다. 입장을 바꾸어 내가 그들이라 하더라도, 피부병 걸린 사람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피부병은 전염성이 있으며 괜히 걸렸다가 똑 같은 일을 치루어야 할텐데, 그런 사람하고는 접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매일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니 내 팔자가 참 한심스러웠다. 암이나 중풍이나 심장병처럼 죽을 병도 아니면서, 별 것도 아닌 것이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다니, 전생에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갑자기 한하운 시인이 지었다는 시도 떠 올랐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올시다."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그러다가  혹시 모르니 다른 피부과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의사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더니, 커다란 확대기를 가져와 내 온몸을 살펴보고는 채 20초도 되지 않아, "아, 이거 피부 건조증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짧고, 명쾌하고, 단정적이었다. 그의 말은 화살이 되어 내 심장을 뚫고 등을 지나 하늘 높이 사라지고 있었다.

     

    나  : 아니, 네팔에서 걸린 피부병인데 피부 건조증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다시 한 번 봐주세요. 이 병에 걸린 것이 한 달이

          넘습니다. 벌레에 물려서 이렇게 된 겁니다.

    의사: 나는 증상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피부 건조증이에요.

          벌레에 물려서 이렇게 오래가는 일은 의학 역사상 전례가

          없습니다. 자꾸 옛날 일과 결부시켜서는 안됩니다.

    나:    그래도 그렇지. 이것은 분명히 벌레에 물려서 그런 것인데 ----

    의사: 별 걱정 마세요. 대로만 금방 낫습니다.

 

 

의사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 종이에는 피부 건조증 환자가 지켜야 할 사항이 적혀있었다. 의사는 연필로 동그라미를 쳐 가면서 주의 사항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리고 먹는 약과 바를 약도 처방해 주었다.

 

 

 

 

 

 

 

놀랍게도,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먹고, 바르니 3일만에 피부병이 말끔하게 낫고 말았다. 나는 참으로 너무나 허망했다. 세상에 뭐 이런 일이 있나 싶었다. 내가 잠자다가 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니 전의 의사가 그런 것도 모르다니 돌팔이 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여 원망스럽기도 했다. 

 

 

결국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의사의 처방대로 치료를 받은 후에 병이 나았으니 내가 걸린 병은 피부 건조증임에 틀림없다.

2.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코끼리를 타고 숲을 헤치면서 돌아다닌 날 밤에 이런 병이 걸렸다는 것인가? 피부건조증이 순식간에 온몸에 시뻘겋게 그리고 오돌도돌 좁쌀같은 혹을 동반한 병이란 말인가?

3. 그것이 아니라면, 처음에는 벌레에 물렸거나 쏘여서 피부병에 걸렸다가, 어느날 순식간에 피부건조증으로 변했을 것이다. 증상은 똑 같은 상태로 벌레의 독성이 사라지고 건조증으로 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이나 나에게 확신을 심어 줄 설명은 아닌 듯 싶다.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책이나 TV를 통해서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내가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정말 뭐가 뭔지 모르는 일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갖게 되었다. 세상에는 귀신이 곡할 노릇도 많고, 귀신이 탄복할 일도 많다. 그러나 내가 겪은 이 일은 귀신이 하품할 일이 아닐까 싶다.  

 

(2012년 9월 1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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