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그때는 그랬다 (I was wrong)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5. 13:17

 

 

<2007년 싱가포르>

 

그때는 그랬다   

 

 

7월이 되었으니, 이제 봄은 완전히 가 버린 것 같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그러니까 1960년대 초반일 것이다. 그 때 불렀던 노래 중에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다. 문제는 "제 오시네"에서 "제"가 무슨 뜻이냐는 것이다. "제 오시네"는 "지가 오시네(자기가 온다)", "제 옷이네(자기 옷이네)", "제사 지내러 오시네" "지까짓것이 오시네" 등 온갖 상상을 다해보아도 도통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봄 처녀가 왜 풀 옷을 입고 오느냐?"라는 문제였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봄이라 해도 상당히 춥다. 그렇다면 사람이라면, 더군다나 갸냘픈 처녀라면, 응당 두꺼운 옷을 입고 오든지, 아니면 솜이불이라도 뒤집어 쓰고 와야 할텐데, 왜 하필이면 풀을 엮어서 몸에 걸치고 올까? 풀 옷을 입으면 분명히 추워 죽을텐데, 이상하다. 그러나 속살이 보여서 구경거리는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니, 들의 풀이 아니라면, 옷을 빳빳하게 해주는 풀을 먹인 옷을 입고 온다"는 뜻인가라고도 생각했다. 빨래한 옷에 새로 풀을 먹여 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린 옷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풀을 먹인 옷은 보통 여름에 입는데, 봄에 입다가 속 살이 다 긁혀서 혹시 피가 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개천절 노래는 ,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로 시작한다.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는 부분은 알겠는데, "물이라면 새암이 있다"는 부분은 알 수가 없었다. 가사를 알고 배웠던 것도 아니고 그냥 선생님이 풍금을 치면 따라하던 그런 식으로 공부했던 우리는, "물이라면 새암이 있다"는 말은 아무리 요리조리 생각해보아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알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면 물에 왜 새가 있나? 물새가 알을 낳고 갔나? 아니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무(배추, 무 할 때의 무를 말함)라면 샘 근처에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면 묻은 흙을 씻어내기도 좋고, 씻어서 깎아 먹기도 좋겠군, 뭐,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어렸을 때, 우리 동네 곰말이라는 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곰말 샴"이라고 불렀지, "새암"이라는 말은 예전에 미처 들어보지 못한 기묘한 말이었다.

  

 

"멋있다"라는 단어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전에는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 당시 사람들이 "멋있다"라고 말을 때, 아마도 "맛있다"라는 말을 잘 못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주 "멋있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분명 "멋있다"와 "맛있다"는 다른 단어 같았다. 나중에 "멋있다"라는 말이 "보기나 듣기에 좋다"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별 미친 말이 다 있다"고 생각했었다.

 

 

역시 초등학교 때, 일년 내내 거의 양말을 신지 못하다가 겨울이 되면 면으로된 얇은 양말을 신은 기억이 난다. 이 양말은 신은지 3일도 안되어서 펑크가 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설이 되기 약 열흘 전에 검은 양복과 면으로 된 양말을 어머니로부터 선물받게 된다. 그 설빔을 받아서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고 설이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빨리 양복을 입고, 목양말을 신어보고 싶은데, 그놈의 세월은 왜 그리 가지 않던지! 손가락이 닳아 없어지도록 세고 또 셌다. 몰래 입다가 어머니한테 들키면 혼쭐나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어머니가 바깥에 나가 있는 동안에 몰래 입어보고 다시 장롱 속에 넣어 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문제는 3, 4학년 때 교과서 어딘가에 "양말"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양 발"에 신으니까 "양발"이지 왜 "양말"인가? 모양이 말(馬)처럼 생겨서 양말인가?  그 당시 금산군 남일면 삼태리 사람들은 모두 다 양발이라고 했다. 나는 교과서가 틀림없이 틀렸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달라(dollar)는 미국의 화폐 단위이고, 우리말로는 "불"이다. 1달러(=1불)는 현재 약 1200원 정도 된다. 그 당시 나는 미국의 화폐 단위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을 것 같다. 누군가가 말했다. 1불은 1300달러이고, 1 달러는 1300원 정도 되니 10불이라는 돈은 집 한 채와 맞먹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옳고 그름을 알 수 없던 우리는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옆에 선생님이 계셨는데, 누군가가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은 "아마 그 말이 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얼마나 외국 돈이 귀했으면 선생님조차 "달라(dollar)"와 "불(弗)"을 구분 못하셨을까?

 

 

 

 

<2007년 싱가포르>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대전으로 왔다. 옆집에 살던 어떤 사람이 "교회"에 가보자고 하여 따라갔다. 처음 가보는 "교회"다. 사람들이 마루 바닥에 앉아 있고, 어떤 사람이(목사를 말함) 입에 거품을 품어가며 뭐라고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댔다. 그러더니 기도를 하자고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이상한 말을 하고, "아멘"하고 끝났다. "아멘"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더욱 신기한 것은, 매미채를 든 사람이 여기저기 돌아 다니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돈이 담겨지고 있었다. "매미채에 곤충이 아니라 돈도 담겨질 수 있구나!" 그것은 대단한 충격이요 스릴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 사람이 또 "교외"에 가자고 했다. 이번에는 "교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들판으로 갔다. 내가 "교외(郊外)"와 "교회(敎會)"를 구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일이 있은 후, 1년 뒤의 일이다.

 

 

고등학교 3학년 영어 시간이다. 영어의 가정법에 보면 "명령, 요구, 주장"등이 오면 그 뒤의 that절에서 동사 원형을 쓰게 되어 있다. 예컨대 He insisted that we go home.와 같은 경우다. 그런데 이런 용법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대체로 request, insist, order, move라고 책에 쓰여져 있다. 다른 단어들은 대체로 이해가 가나 문제는 move라는 단어다. move는 "움직이다"는 뜻인데, 선생님은 move의 뜻이 "동의하다"라고 말했다. "움직이다"건 "동의하다"건 "명령, 요구, 주장"과는 동떨어진 말이다. 다른 것들은 "~해야 한다"라고 해석하면 다 들어 맞지만, move만은 이래도 말이 안되고 저래도 말이 안 되었다. 그 뒤 내가 "동의"라는 말에는 "동의(同意)"와 "동의(動議)"가 있으며, 여기에서 말하는 동의는 動議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회의 중에 토의할 안건을 제기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때가 바로 영어 선생을 시작한지 5년 뒤의 일이었다.

 

  

하기야 어디 궁금증이 일고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이것 뿐이랴. 아마 하루 종일 세어봐도 다 셀 수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착각 속에 산다는 말이 맞는 말 같다. 정확하게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착각 속에 대충 알고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맑은 물에 물고기가 살지 못하듯,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 상대방이 나를 기묘하게 보고, 급기야 나로부터 멀어질지도 모른다.

 

 

"적당히 해라, 잉, 적당히" 이 말은 kbs 일요일 밤 "개그 콘서트"의 "변기수"라는 개그맨이 유행시켰던 말이다. "변기수"라? 변기를 수리하는 사람?  변을 깃발에 달고 다니는 사람?  "적당히 해라, 잉, 적당히!"

 

 

*봄 처녀 제 오시네= 봄 처녀 저기 오시네
*네 이놈 게 섰거라=네 이놈 거기 섰거라.

 

 

(2010년 7월 3일,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월드컵 8강전을 기다리며,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