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차두리의 눈물 (Tears of Chaduri)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5. 13:10

 

 

차두리의 눈물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전에서 한국은 아쉽게도 우루과이에게 2:1로 패하고 말았다. 놓친 열차가 아름답듯, 누가 뭐라해도 아쉬운 경기임에는 틀림없다. 경기 초반, 박주영의 프리킥이 골대 맞고 나온 장면은 두고두고 아쉽다. 경기 종료 직전, 이동국의 프리킥이 골키퍼의 가랑이로 빠져나가 조금만 속도를 냈어도 골대 안으로 데굴데굴 굴러갔을 터인데, 조금 굴러가다 만 것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날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경기가 끝난 후, 차두리가 우는 장면이었다. 어슴프레한 붉은 관중석을 배경으로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던 그날, 차두리는 울었다. 울고, 울고 그리고 또 울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어머니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울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비통해하며 울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도 슬프게 했단 말인가? 모르면 몰라도 그 순간 그 가슴 속에는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2002년 서울 월드컵에 참가했던 그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에는 선발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렸다. 남아공 월드컵 조 예선에서 순간의 실수로 한 선수를 놓쳐 한 골을 먹게 한 것을 제외한다면, 그는 기차같은 힘으로 상대방의 간담을 여러 차례 서늘하게 했다. 경기가 끝났을 때, 그는 이미 마지막 힘까지 다 쏟아부어 지칠대로 지친 육신과 차오르는 숨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패한 것도 너무나 아쉽게 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 순간 과거의 그의 축구 역사가 영화 필름처럼 순간적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그는 분이 북받쳐 장대비도다도 더한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 중 많은 사람이 그와 같은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나도 마음이 짠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음 순간 나에게는 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32강이 참여하는 이 경기에서 한 팀이 월드컵을 가져가게 되어 있다면,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 한 팀을 제외한 31개국 팀은 언젠가 한 번은 패하게 되고 또한 처절한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6강에 올라가지 못한 팀은 그 나름대로 아쉽고 서러울 것이다. 하지만 8강에서 지거나  4강에서 지면 슬프지 않을까? 모르면 몰라도 그 슬픔은 더하면 더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팀이건 한 번은 처절한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는 경기, 그것이 바로 월드컵이다!
 

 

결국 월드컵이라는 경기는 모든 이이게 한 순간의 기쁨과, 그 기쁨 뒤에 따르는 고통을 함께 주는 경기다. 마치 불나비가 불을 보고 환희에 차 날아와서는 불에 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에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네 인생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은 적든 많든 실패를 경험하게 되어 있고, 언젠가는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다. 내 주위에 있는 가족, 친척, 친구, 동료들도 지금은 나에게 한 순간 기쁨을 줄지 몰라도, 그들은 언젠가 나를 섭섭하게 하고, 나를 슬프게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들이 내 곁을 떠나지 않으면, 내가 그들 곁을 떠나게 되어 있다.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는 나를 슬프게 한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저 저기 놓여있는 강과 산과 바람이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심지어는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강아지가 주인에게 기쁨과 안락과 희망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강아지가 늙어서 이가 빠지고 걷지도 못하는 것을 불쌍해서 어떻게 볼 것이며, 하루하루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끊는 고통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은 그런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살아 있는 것은 언젠가 나를 서글프게 한다."
 

 

어머니는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고, 아내도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다. 자식도 영원히 내 곁에 있으리라는 착각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는 것은 순간적인 일이요, 누구에게나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서글픈 일이기는 하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있을 때는 깨닫지 못하고, 사라진 뒤에 깨닫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인간이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수 많은 사람이 정의를 내리고, 분석하고, 결론을 내렸지만,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조금씩은 알기도 하는 일이다. 위대한 철학자가 내린 결론도, 시시한 개똥철학자가 내린 결론도, 우열을 따진다면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을 보라. 내가 싫어하건 좋아하건, 그 사람은 내 곁을 떠날 사람이다. 언제 떠날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떠난다. 그가 떠나지 않으면 내가 떠나게 되어 있다. 그럴 사람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것보다는 그냥 미소 한 번 보내주면 안될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면 안될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 안 될까? 포옹을 해 주면 안 될까? 말은 쉬워도 행동은 어렵다고 할 지 모른다. 그렇다. 하지만 내일이면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 사람이 내 곁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가 16강 예선에서 사라지느냐, 8강에서 사라지느냐, 아니면 4강에서 사라지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누구나 한 번은 패하고 우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오늘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질문에 반쯤 답은 나온 셈이다. 각자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본 후, 스스로 결정하기 바란다.   

 

 

(2010년 7월 1일, 월드컵 8강 전을 앞두고, 서울에서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