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고립기 -3-(최종편)
어느덧 5월이 되었다. "퉁소는 불어도 세월은 간다." 고립이건 난립이건 간에 세월은 흘러갔다. 3월 "기초반"에서, 4월 "실력 향상반"으로, 이제 5월이 되어 "프리 토킹반"으로 올라갔다. 프리토킹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냥 세월이 가니 올라가는 것이었다. 마치 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초등생이 세월따라 1학년에서 2학년으로, 그리고 다시 3학년으로 진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내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좌우지간 이해는 하되, 암기는 되지 않은 상태로 세월이 흘러갔다.
5월 초 주말을 맞아 아내와 속초에 갔다. 속초에 가면 당연히 생선회를 먹는 것이 빼 놓을 수 없는 일이다. 동명항에 도착하여 회를 시켰다. 그런데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생선회를 먹으려니 미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차선책으로 콜라를 시켜서 생선회와 같이 먹어보았으나, 콜라와 소주를 먹는 맛은, 소주와 생선회를 먹는 맛과는 전혀 달랐다. 콜라와 생선회를 같이 먹느니 차라리 맹물과 생선회를 먹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물과 생선회를 먹어 보았다. 그냥 맹물은 맹물 맛이고, 회는 그냥 회 맛이었다. 그야말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런 맛이었다. 떨떠름한 맛과 기분과 표정을 지으면서, "내 평생에 이제 두 번 다시 맹세나 결심 같은 어리석은 짓은 안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 세상에 결심을 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가장 미련한 짓이다. 물 흐르듯 살아라. 세월 가는대로 살아라.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가라. 네 발길이 가는대로 그냥 가게 내 버려 두어라. 더구나 그대, 그대는 '내비둬교'의 교주가 아니더냐? 어찌하여 네가 네 무덤을 파느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어둡고 칙칙한 무덤에서 햇빛이 찬란한 밖으로 나가라. 다른 사람의 비판이 두려우냐? 쓰잘데기 없는 생각말고 그저 나가면 된다. 쾌도난마(快刀亂麻)랄 것도 없다. 그냥 나가라." 하지만 나는 뜨뜨미지건한 생선회를 벌레 씹는 심정으로 먹고는 한숨을 쉬면서 자리를 떴다.
이런 생활을 하다보니 나의 취미인 사진을 찍는 생활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사진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달려들던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가 지나가는 닭 바라보듯이 그런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사진에 미쳤던 것이 먼 추억으로만 여겨졌다.
전에 대학교 다닐 때, 종교에 심취된 어떤 학생이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예수를 믿으라"고 버스에 탄 승객을 향해 입에 거품을 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교회에 다니지도 않고 성경도 읽지 않고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되돌아 왔다고 했다. 모든 것은 그것을 열심히 할 때, 그리고 그것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정성스럽게 가꿀 때, 그것에 대한 정열과 관심이 살아 있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금방 평범한 생활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
중국어와 한문은 다르다. 중국어는 일반 중국인이 하는 말이고, 한문은 한자를 사용하여 뜻을 나타내는 문어체 글이다. 어떻든 중국어든 한문이든 한자를 사용하여 내가 의도하는 바를 글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다. 내가 중국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아마 한자를 사용하여 편지를 쓰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잘 쓰지는 못하지만 한자를 사용하여 아마도 간단한 편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극(史劇)에서 옛날 사람들이 창호지 위에 글을 쓰고 이해하는 것을 보면서 저런 정도를 할 수 있으려면, 수 십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중국어를 공부해보니, 그런 것도 아마 몇 년 공부하면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한문을 공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 중국어를 공부할 것이다.
중국어를 공부하다보니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많이 있었다. 예컨대 "곧, 바로"는 중국어로 "馬上"이다. 왜 "말 위에 있는 것"이 "곧"이란 뜻인가? 알고 보니,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으로 편지를 전할 때,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수원에 가면, 거기에 다른 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그는 말에서 내리지 않고 바로 "말 위에서(馬上) 곧바로 기다리고 있는 말로 바꿔 타고" 대전으로 달리고, 또 대전에서도 땅에 내리지 않고, 말 위에서 말을 바꿔 타고 달려서 부산으로 가기에 이런 뜻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香氣(향기)하면 우리는 흔히 꽃 냄새를 생각하는데, 香의 위쪽에 벼화(禾)가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향기는 본래 꽃의 냄새가 아니라, 밥의 구수한 냄새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어떻든 대부분의 한국어는 그 뿌리가 한자에서 온 말이다. 심지어 "심지어(甚至, 甚至于)"라는 말도 한자말이다. 대부분의 영어 단어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온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것을 보면, 우리 조상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다. 모든 단어를 만들어 쓰려면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는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갖다가 자기 것으로 만들어 쓴 조상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5월 중순쯤 학원 다니는 것을 그만둘까 많이 생각했다. 진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도를 따라가려면 하루에 4-5시간의 예습이 필요했다. 복습은 일종의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예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나를 제외하고 모두 젊은이들만 있는데, 늙은 놈이 하나 나타나서 분위기 흐린다고 하면 어찌할까 싶어 내심 걱정했던 것이다. 늙은이가 천대받을 수도 있는 곳이 비단 성인나이트만은 아닌 것 같다. 인생도처에서 "집에서 있지, 뭐 하러 나돌아다니느냐?"라는 말을 까딱 잘못하다가는 듣게 생겼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젊은이들이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히 수업시간에 읽기를 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어떤 학생은 예습을 해오지 않아서 읽지를 못했다. 어떤 학생은 며칠에 한 번씩 결석을 하더니 점점 결석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급기야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어떤 여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외국에서 공부하다가 일시적으로 한국에 들른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 하는 편이 아니어서, 읽을 차례가 되면 자주 틀리게 읽었다. 그 학생이 공부하는 것을 힐끗힐끗 살펴보았는데, 수업 중 뒤에 앉아서 계속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고 있었다. 한 학생이 한 문장씩 읽어나가면 몇 초뒤에 자기 차례가 온다는 것을 알고, 계속 책과 핸드폰을 번갈아가며 보면서, 기기묘묘하게도 자기의 이름이 불려짐과 동시에 핸드폰의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이런 생활이 며칠 계속되더니 결국 그녀는 따라오지 못하고 스스로 탈락하고 말았다.
어떤 학생은 공부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잘 알다시피 공부라는 것은 일종의 집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둥을 먼저 세우고 지붕을 올린 후, 벽을 흙이나 시멘트로 붙여야 한다. 그런데 어떤 학생은 어떤 것이 기둥이고 어떤 것이 서까래인지 전혀 모르는 학생이 있었다. 학교에 계신 선생님은 "이렇게 하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쓸데 없는 짓을 하는 것이다." 등을 학생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래 3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100일간 자발적인 고립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달력을 보니 100일이 되는 것은 6월 10일이 아니라, 6월 8일이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3월과 5월이 31일까지 있기에 2틀이 단축된 것이다. 제대 말기가 된 병사에게 일 주일 일찍 보내주었을 때 느끼는 기분과 별 차이 없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일되기 하루 전에 나는 마누라와 아들을 집합시켜 놓고, 명령을 내렸다. "내일이 100일 전투가 마감되는 날이다. 성공적으로 마친 이 100일을 기념하기 위해, 아들, 너는 술을 사와라. 마누라, 당신은 1만 2천원짜리 케이크 하나 사오시오."
6월 8일 밤, 우리는 작은 파티를 벌였다. 집 식구들이 기분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홀가분한 이 기분은 어디에 비교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려고 마음 먹은 것을 해 냈기 때문이다. "인내는 쓰나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2010년의 봄은 내가 공부하는 사이에 이미 흘러가 버리고 없었다. "사랑이 저만치 가네"라는 노래가 있듯, 나의 찬란한 이 봄도 저만치 물러가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익도 손실도 없는 이 100일 간을 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여행가면 남는 것이 뭐가 있나, 사진이나 많이 찍어 남기자."라든지 "잔치집에 가면 뭐 남는 것이 있나,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다."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서 의의를 찾기 위해 일을 할 뿐이다. 아니다! 의의를 찾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거기에 있기에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왜 등산을 하느냐고 물으니 "산이 거기 있어서 등산한다."라고 한 등산 전문가가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 것이다. 발길 닿는 대로 갈 것이요, 마음이 미치는 곳에 손을 내밀 것이다. 내 마음이 하자고 하면 할 것이요, 말자고 하면 말 것이다. 현재 나에게 재미있거나 의미있는 일을 할 것이지, 현재를 제물로 삼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에 나의 모든 것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앞날을 알랴.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諸行無常)"라고 했다. 내일 또 무슨 변덕이 일어, 아침에 일어나, 제 2차 100일 전투에 들어가겠다고 호언장담을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낭만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모험을 찾아 헤맬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인간은 본래, 어제와 똑 같은 오늘을 견딜 수 없듯이, 오늘과 똑 같은 내일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끝)
(2010년 6월 18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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