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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100일간 고립기 1 (100-day Isolated life 1)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5. 12:41

 

 

 

 

곽영을의 100일간 고립기 -1-

 

 

2010년 3월 1일부터 6월 8일까지 100일간, 나는 나 자신을 고립시키려 노력해왔다. 100일 동안 나는, 2010년 3월 1일 이전에 알았던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100일간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으려고 결심했다. 오로지 중국어 공부에만 몰두 하리라.

 

 

지내놓고 보니 중국어 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대로 중국어 공부도 할만큼 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100일간의 생활이 예전의 생활에 비해 힘든 생활인 것은 틀림없었으나, 그렇다고 나의 이런 삶이 불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100일간 고립생활을 해보겠다는 나의 이런 이런 졸렬한 발상은, 중국어 공부 좀 열심히 해볼까라는 한 순간의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무슨 공부든지 공부를 하려면 술을 먹지 말아야하고, 술을 먹지 않으려면 외부세계와 단절해야한다는 겉보기에 당연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너무 쉽게 결정한 나의 이런 결심으로 나는 여러 차례 한숨을 쉬기도 하고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100일간 내가 의도했던 일을 해내고 보니, 지금 이 순간 내가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2010년 1월 한 달간 중국 칭다오에서 중국어 공부를 해 본 나는, 외국어를 배울 때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를 몸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3월이 되면 다시 북경이나 칭다오에 가서 중국어 공부를 해볼까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집 식구를 한국에 두고 혼자 훌쩍 떠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차선책으로 한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던 중 이와 같은 결심에 도달했던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나 자신을 고립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또 친척 몇 사람과 친구 몇 사람에게 알렸다. 연락이 없다해도 내가 죽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두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놓고 하루하루를 지냈다.

 

 

 

 

 

 

학원이 많다는 서울 강남역에 내려보니 여기저기 중국어 학원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학원이든지 간에 교재는 대체로 "신공략 중국어"라는 책을 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유명한 학원은 아니지만 학생이 많지 않을 것같은 한 학원에 등록했다. 오전 9시에 시작하여 4시간 수업을 하면 12시 50분에 수업이 끝이 난다. 수업료는 한 달에 약 40만원 정도되었다.

 

 

신공략 중국어는 "기초편, 초급편, 실력향상편, 프리토킹편, 고급편, 완성편"으로 이어지는 다락원출판사의 책인데, 실력 향상편은 두 권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한 권으로 되어 있는 책이다. 나는 "초급편" 반에 등록했다.

 

 

나는 내가 학생이었을 때도 학원에 다닌 적이 없어서 학원 생활이 어떤 것인가하는 호기심이 평소에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아이들이 학원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학교 공부는 좀 등한시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다른 학원은 어떤지 잘 모르겠자만, 아마도 맨손 수업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원이 아닌지 모르겠다. 100일간 학원에 다니면서 카세트 CD를 들어본 것이 약 5회 정도 통틀어서 20분이 전부였을 것이다. 나머지는 오로지 선생님의 말과 칠판 수업에 의존하는 수업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위 말하는 이 맨손 수업이 그리 나쁘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얼마나 준비를 잘해서 요령있게 학생의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수업을 잘 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으나, 온갖 멀티미디어를 갖다 놓고 무엇하는지도 모르게 한 시간 보낸다면 차라리 맨손 수업을 잘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교시에 한국선생님이 들어와서 1과에 나오는 문법을 가르치면, 2교시에 이것을 중심으로 본문이나 연습문제를 중국선생님이 들어와서 가르친다. 3교시에는 다른 한국선생님이 들어와서 2과의 문법을 가르치면 4교시에 또 다른 중국선생님이 들어와서 역시 3교시에 한국 선생님이 가르친 부분을 연습하는 그런 식이었다. 따라서 1, 2교시가 한 세트이고, 3, 4교시가 한세트로 한중 합동 강의라고 불리운다. 어떻든 1, 2교시는 홀수과만 맡아서 나아가고, 3, 4교시는 짝수과만 맡아서 가르친다.

 

 

오랫 동안 교직에 몸담어서인지 몰라도, 나도 모르게 내 머리 속에는 두 명의 곽영을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공부하는 나"이고, 또 하나의 나는 "선생님이 공부를 잘 가르치는지 지켜보는 나"였다. 한국어를 사용하여 중국어를 가르치는 한국 선생님이 두 분이 계셨는데, 그 중의 한 분은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잘 가르친다는 것이 저런 것을 두고 이야기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다시 학교에 간다면 저 선생님처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기피하는 선생님이 계시고 선호하는 선생님이 계신데, 그런 학생들에게 "배우는 내용은 같으니 그냥 아무 선생님에게서나 배워라"라고 말하는 것이 헛된 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은 흐르고 학원에서의 공부도 어렵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따라갈 수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사실 중국어의 문법은 영어 문법의 몇 십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어 같으면 관계부사나 관계대명사를 제대로 배우려면 일 주일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중국어는 이 두가지를 배우는데 합쳐서 5분이면 끝난다. 그 정도로 간단하다는 이야기다.

 

 

좀 복잡한 것이 있다면 소위 말하는 보어가 좀 복잡하다. 정도보어, 가능보어, 결과보어, 방향보어, 수량보어 등이 복잡하다면 복잡하다. 그리고나면 수 많은 구문이 기다리고 있는데, 예컨대 영어의 either A or B(不是 A 就是 B), not only A but also B(不但  A 而且 B) 등의 구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외국어를 배울 때 한국 사람에게 배우다가 갑자기 원어민을 만나면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칭다오에서 원어민으로부터 한 달간 배운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몰라도, 긴장은 좀 되어도 주눅이 들지는 않았다. 외국어는 확실히 듣기가 먼저이고 말하기는 나중이라는 것이 체험적으로 느껴졌다. 중국 선생님이 하는 말을 상당히 많이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말은 좀처럼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답답한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4월이 되자 나는 내 몸에서 알콜 성분이 거의 다 빠져 나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술이 그리웠던 것이다. 알콜 중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 몸에서는 지금쯤 술을 먹어줘야 정상이라는 신호가 도처에서 감지되었다. 나는 술이 저장되어 있는 부엌을, 동물원 호랑이 어슬렁거리듯 수색을 하다가 주제 파악을 하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런 날이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아내가 친구 몇 명과 함께 4박 5일로 제주도에 놀러 갔다. 전 같았으면 지금이 기회다 하고 아마 여기저기 술집 몇 곳을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나는 밖에 나가서 동네 술집 몇 군데 앞을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지난 한 달 동안 술먹지 않고 지낸 것이 아까워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결심이 깨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집에 있자하니 나도 모르게 내 발이 또 나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수퍼에 가서 소주 한 병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땅콩과 멸치 몇 마리 식탁에 놓고 병따개를 가져왔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발발 떨리는 손으로 병따개를 잡았다. 그러다가 다시 병따개를 식탁에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면서 내 방으로 왔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 짓을 자기가 자기에게 시켜놓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인간인 것을 몸소 느꼈다.

 

 

지금 내가 하는 짓이 무엇인가? 나에게 무슨 휘황찬란한 미래가 있다는 것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 해낸다면 나의 앞날이 훨씬 더 나아진다는 말인가? 나아진다는 것이 무엇이며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과거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미래의 행복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지금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인생일진대, 그까짓 먹고 싶은 술 한 잔을 내가 먹지 못한다는 말인가? 나는 내 방에서 나가 다시 식탁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소주와 땅콩을 바라보았다.

 

 

(계속)

 

(2010년 6월 1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