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나는 가수다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10. 27. 16:18

 

 

 

 

 

나는 가수다

 

 

나는 KBS의 "개그 콘서트", SBS의 "개그 투나잇", 그리고 MBN의 "개그 공화국"을 거의 빠지지 않고 본다. 또한 위성방송인 Asia N과 중화 TV도 종종 본다. 또 한 가지 내가 거의 빠뜨리지 않고 보는 프로가 바로 MBC의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다.

 

 

"나는 가수다(나가수)"라는 프로는 청중의 반응에 따라 가수의 운명이 결정되는 프로다. 전에는 청중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가수가 떨어져 나갔었다. 지금은 형태를 조금 바꾸어 노래를 제일 못하는 사람은 완전히 탈락하고, 노래를 제일 잘 하는 사람은 명예 탈락을 시킨다. 즉 노래를 제일 잘 하는 사람과 제일 못 하는 사람을 동시에 무대에서 서지 못 하게 한다. 단, 명예 탈락한 사람, 즉 1등을 차지했던 사람끼리 연말에 모여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피를 흘리며 싸우는 왕중왕전을 치른다고 한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첫 번째로, 이런 발상을 한 사람 자체가 너무 신기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래 자랑이라고 하는 것은, 가수보다는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심판관 앞에서 노래를 불러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KBS의 "전국 노래 자랑"이며, 이런  종류의  노래 자랑, 또는 가수 선발 대회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류 가수를 모아 놓고 일반인이 심판을 한다는 것은 거의 생각하기 힘든 발상이다. 내가 설령 가수라해도 이런 프로에 선뜻 나서기 힘들 것이다. 한 순간에 내가 쌓아 놓았던 명성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순이"를 비롯한 수많은 내로라하는 가수가 담에서 호박 덩어리 굴러 떨어지듯 떨어져, 짐 보따리 싸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학교의 상황에서 이런 경우를 상상해보자. 영어 말하기 대회를, 학생이 아니라, "교사 말하기 대회"를 한다고 해 보자. 영어 선생님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말을 하고, 학생들이 박수로 순위를 정한다면 어떨까? 물론 아이들은 그보다 재미있는 일이 없겠지만, 학생들 앞에 서는 영어 교사야말로 죽지 못해 단에 오를 것이다. 아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일지도 모르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선생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사퇴할 영어 교사가 나올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 "나는 가수다"에 나와 노래하는 가수들이 내가 보기에 정말로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 노래한다는 것이다. 일류 가수는 "내가 소위 말하는 일류 가수인데, 떨어지면 무슨 창피인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보다 못한 가수는 "내가 운이 없거나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가창 실력은 내가 대한민국의 최고야."라고 생각하면서 노래하는 듯 하다. 노래를 다시 편곡하고, 연습하고, 무대를 새롭게 꾸미는 일까지 모든 것을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하는 듯 하다. 이들의 살아남으려는 피나는 노력은 지옥에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중생의 몸부림임에 비길만 하다.  

 

 

 

 

 

 

세 번째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부른 노래는, 얼마나 잘 불렀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운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상당히 주관적이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일등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한 번도 일등을 한 적이 없으며, 내가 꼴찌라고 생각한 사람이 꼴찌를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뒤죽박죽이며, 그날의 운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전국 고3 수험생 중 모의 고사 성적에서 1위에서 10위까지 모아 놓고 실제 수능고사를 치루었을 경우, 10 명중  누가 1등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날의 운이나 신체 조건에 따라 결정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운이 작용하는 면이 이 프로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야구 경기에서도 훌륭한 선수가 많이 모인 팀이 항상 승리한다면, 누가 야구 경기를 보겠는가? 의외의 변수와 운에 따라 그날의 성적이 결정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닐까?  

 

 

 

 

 

 

네 번째로,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것이다. 잘난 사람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산다고 하지만, 잘난 사람은 언제 추월당할지 몰라 불안하고, 못난 사람은 영원히 쫓아만 다니는 것에 신물이 난다. 물론 스스로 세뇌하여 "나는 못났어도, 가난해도, 못배웠어도 인생이 너무 즐겁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삶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세상살이는 어렵고 하루하루의 삶이 서러운 사람이 많다. 뜻대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우리 나라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왜 그리도 많겠는가? 솔직히 말하면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언젠가 동해안 어딘가로 혼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이었다. 바닷가에 있는 허름한 횟집이었는데, 동네 청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쓴 소주 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던 두 사람은 전에도 자주 그곳에 왔었는지, 스스로 노래 연주기를 틀어 노래를 했다. 40이 가까워 보이는 그들의 노래 소리가 얼마나 가슴을 후벼 파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노래를 하고, 한 사람은 고개를 숙이며 힘없는 박수를 쳤다. 비틀거리며 부르는 그들의 모습에서, 노래 가사처럼 고향도 잃고 정말로 결혼도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낙오자의 모습이 보였다. 나 또한 그들과 공명이 되어 마음이 서글퍼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술을 먹을 때부터 노래가 끝날 때까지 말이 없던 두 젊은이는, 꼬깃꼬깃 구겨진 천원짜리 몇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주인에게 건네 주고는 말 없이 술집을 나갔다. 고개를 숙이며 비틀비틀 걷는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나도 알 수 없는 서러움에 모래 사장을 한참 걷다가 숙소로 향했다. 여기 그들이 부른 노래가 있다.

 

 

어메 어메 우리 우리 어메
뭣 할라고 날 낳았던가
날 낳거든 잘 낳거나 못 날려면 못 낳거나
살자 하니 고생이요 죽자 하니 청춘이라
요놈 신세 말이 아니네
어메 어메 우리 우리 어메
뭣 할라고 날 낳았던가

 

님아 님아 우리 우리 님아
소갈머리 없는 님아
어찌해 님이 알제 속만 타면 누가 아나
어떤 친구 팔자 좋아 장가 한번 잘도 가는데
몹쓸 놈의 요내 팔자
어메 어메 우리 우리 어메
뭣 할라고 날 낳았던가

어메 어메 우리 우리 어메
뭣 할라고 날 낳았던가

 

 

 

 

 

 

 

 

오늘 내가  쓰려고 했던 것은, "나는 가수다"를 통하여, "인간은 다른 사람 앞에서 최선을 다한다"라는 내용을 다루고자 했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글이 서글프게 흘러가고 말았다. 아마 밖에 부슬부슬 비가 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집을 나서서 어둑어둑한 길을 두어 번 돌면 나타나는 골목집으로 가야겠다. 거기에는 아주머니 한 사람과 장수 막걸리가 있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분 좋아할 것이다. 비록 나나 아주머니 모두, 아주머니의 말이 거짓말인 줄 뻔히 알고 있는 일이지만 말해서 즐겁고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이다.  

 

 

*여기에 사용된 사진은 2007년 2월 동해안에서 촬영되었습니다.

 

(2012년 10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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