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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기보배선수의 런던 올림픽 양궁 결승전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10. 22. 15:28

 

 

 

 

기보배 선수의 "2012 런던 올림픽 양궁 결승전"

 

 


2012년 8월 2일 영국의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는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승에 오른 선수는 한국의 기보배 선수와 멕시코의 로만 아이다 선수였다.



기보배와 로만 아이다는 첫 세트부터 손에 땀을 쥐는 진검승부를 펼쳤다. 한 세트에 세 발씩 쏘는 5세트 결승전에서, 첫 세트는 27: 25로 기보배 승리, 2세트는 26:26으로 비겼다. 3세트는 멕시코 선수가 저력을 발휘해 26: 29로 이겼다. 여기까지 1승 1패 1무였다. 4번째 세트에서 기보배는 세 발을 모두 10점에 명중시켜는 괴력을 발휘해서 30점을 획득했고, 반면 멕시코 선수는 기세에 눌렸는지 겨우 22점에 그쳤다. 4세트까지 2:1로 기보배 선수가 앞서 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세트만 이기면 기보배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가슴 뿌듯한 순간이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기보배 선수는 26점을 쏘았고, 이에 힘을 얻은 멕시코의 로만은 27점을 쏘았다. 결국 2:2의 무승부가 되었다.

 

 

이제 마지막 딱 한 발로 우승을 가리는 최후의 원샷 순간이 돌아왔다. 두 선수가 각각 한 발씩 쏘아서 중심부에서 가까운 곳에 화살이 꽂힌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하는 그야말로 절대절명의 순간에 놓이게 되었다.

 

 

처음에 쏜 선수는 대한민국의 기보배 선수였다. 화살을 당기는 손에는 굳건한 힘이 느껴졌고, 과녁을 노려보는 두 눈에는 매의 날카로움이 서려있었다. 햇볕은 따가왔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 양궁장의 팽팽한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지나온 4년간의 피나는 노력이 영화의 장면처럼 머리 속에 돌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 순간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이 났는지 모른다. 아니면 이번만은 기어코 10점을 쏘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기보배 선수는 쉽사리 화살을 놓지 못하고 계속 활줄을 당긴 채로 과녁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 평소에 활을 쏘는 시간보다는 두 배 이상 흘러갔을 것이다. 드디어 손에서 떠난 화살이 물 위의 뱀처럼 꼬리를 흔들고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그녀가 쏜 화살은 10점도 아니고, 9점도 아니고, 8점에 꽂히고 말았다.

 

 

 

 

 

 

사방에서 실망의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잘 싸우다가 마지막 순간에 웬 8점? 같이 TV를 지켜보던 아내는 가슴이 떨려 볼 수 없다고 다리를 덜덜 떨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내 아들은 "저런 멍텅구리가 다 있나? 이 순간에 8점이라니! 저런 것이 무슨 한국 대표 선수라고, 내 참 기가 막혀서. 기보배인지, 기지배인지, 지지배배인지, 내 정말 미치겠네."라고 중얼거려면서 벌떡 일어나더니 쇼파를 발로 차고, 보고 있던 신문지를 쫙쫙 찢어 버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아들의 얼굴은 붉으락 파르락했다.  그는 거실을 몇 바퀴 돌더니 입에 거품을 품고 다시 TV 앞에 앉았다.

 

 

기보배 선수는 자기가 8점을 쏘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애써 태연한 태도로 웃음짓는 것이 그렇게도 부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기보배 선수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실망하는 내면의 모습이, 그녀가 겸연쩍게 내보이는 웃음 속에 묻어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코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려주며, 허탈한 듯 바보같이 이빨을 보이며 웃고 있었다.  

 

 

드디어 멕시코의 로만 선수의 최후의 1발 순서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 있는 듯 당당하게 사선에 들어와 섰다. "이제 금메달은 내 것이다"라는 자신감이 그녀의 두눈에 선명이 드러나고 있었다. 사실 결승전에 올라온 선수는 대부분 9점 아니면 10점이지, 8점을 맞추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기의 상대가 8점을 쏘았으니, 이제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었다.

 

 

멕시코 선수는 힘차게 화살을 잡아 당겼다. 그녀의 활줄이 서서히 늘어나면서 활을 쏠 찰나에 있었다. 구경꾼들이나 멕시코 선수나 그 긴장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멕시코 선수는 화살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계속 잡고만 있었다.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어야 할 시간에도 활은 여전이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기보배 선수보다도 두 배는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최소한도 9점은 쏘리라고 결심을 하고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영겁의 세월"이라고 생각되는 시간, 하지만 실제로 몇초 뒤에, 드디어 핑 소리를 내면서, 그녀의 화살은 허공을 가르며 과녁을 향해 글자 그대로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기보배선수의 최후의 1발>

<멕시코 선수의 최후의 1발>

 

 

구경꾼들의 박수와 환호, 실망과 절망, 눈물과 웃음이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 모든 사람이 멕시코 선수가 금메달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TV 화면은 멕시코 선수의 화살을 보여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같은 8점이었으나 기보배 선수보다 조금 중심부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 차이는 겨우 0.5센티에 지나지 않는다고 중계방송 아나운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기보배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그야말로 "장엄한 순간"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기보배 선수는 자기가 이겼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높이 들었다. 이제야 실감이 났는지 그녀는 환호성을 울렸고, 코치와 서로 얼싸 안으며 울고 웃는 모습이 한 동안 TV 화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 고개를 이불에 파묻고 결과만을 기다리던 아내는 "이겼어?" 하면서 밖으로 뛰어나와 훌쩍거리는 기보배 선수를 보고, 자신도 코가 찡한 듯 휴지를 끄집어 내어 코를 훔쳤다. 이를 지켜보던 아들은 "아이고, 저런.... 대낮에 런던에서 '개그 콘서트'를 열고 있구먼."이라고 중얼대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서는 붉어졌던 얼굴이 다시 제 자리에 돌아오고 있었다.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전에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목숨을 건 생사기로의 순간에, 사람은 지금까지 해 오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기가 막히는 방법이 그 순간에 생각이 날 것인가? 설령 생각이 났다 하자. 그렇다고 그런 새로운 방법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그 순간에 가능이나 하겠는가?

 

 

기보배 선수나 멕시코 선수가 평소에 연습했던 대로 쏘자고만 마음 먹었다면, 그가 누구든지, 아마도 최후의 일발은 좀더 좋은 점수를 획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멕시코 선수의 경우는 참으로 통탄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그 좋은 기회를 놓쳤으니 말이다. 기보배 선수가 8점을 쏜 것을 보고, 아니 그것과는 관계없이, 평소에 연습해왔던 대로만 했다면, 아마도 금메달을 손에 넣는 것은 어쩌면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눈앞에 닥친 황금을 보고 너무 잘 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 아니겠는가? 누가 말했는가? 장고 끝에 악수 나오는 법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이란 신처럼 완벽하지 못하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눈에 새로운 장면이 보이면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되어있다.

 

 

군대에서는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평소에는 전쟁을 하듯이 열심히 훈련을 하되,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서 당황하지 말고, 평소에 훈련했던대로만 하라는 것이다. 너무 잘 싸우려고 하지 말고 훈련했던 것처럼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수능을 보는 고3 수험생 중에는 평소에 공부를 게을리 하다가 시험 보는 날은 정신일도 하사불성의 심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점수를 얻으려고 하는 학생이 있다. 결과는 보나마나 평소의 점수와 비슷하게 나오게 되어 있다. 만약 평소와는 달리 갑자기 좋은 점수를 얻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면, 무엇 때문에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선생님들이 그렇게 강조를 하겠는가?  
 

 

 

 

 

 

우리는 평소에는 매일 똑같은 생활을 하지 말고 다양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보고 싶은 곳을 가봐야 한다. 다른 사람을 따라 하지 말고, 매일 매일 나만의 독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잘 때까지 매일 똑 같은 생활을 한다는 것은 지겨울 뿐만 아니라, 두뇌 발전에도 좋지 않고, 치매를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매일 등산을 가더라도 조금이라도 다른 길로 가고, 같은 길을 가더라도 오늘은 땅을 보고, 내일은 하늘을 보고, 그 다음 날은 나무를 보면서 가야한다. 즉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매일 매일이 새로워야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평소에 해왔던 대로 행동해야 한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떼돈 벌 기회가 있다고 말하면, 평소에 했던대로만 해야지 "그런 특별한 기회를 믿어서" "특별하게 행동해서는 안된다". 그런 말을 믿지 말고 평소에 살던대로 살아야 한다. 이련 경우 평소에 하지 않던 이상한 짓을 하여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던져서 스스로 나오게 해야 한다. 한 번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본 적이 없는 당신이, 물에 뛰어들어 무슨 수로 그를 구해내겠는가? 이런 경우 물에 빠진 사람이나 그를 구조하러 물속에 뛰어든 사람이나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가?  

 

 

 

 

 

 

평소에는 다양한 삶을 살아라.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평소 하던 방식으로 행동하라. 그것이, 우리보다 앞서간 현명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올림픽 사진을 제외한 나머지 사진은 2012년 10월 17일 변산반도에서 촬영되었습니다.

 

(2012년 10월 2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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