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여행기 4 "시기리야/담불라" 2
2014년 1월 19일 새벽, 어제와는 다른 농촌길을 무조건 걸어가보기로 했다. 큰 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걷다보면 마을이 나오든지, 길이 막히든지 할 것이고 그러면 다시 돌아오면 될 것이다.
골목 길을 따라 가면서 양쪽으로 농가가 듬성듬성 보였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약 30분을 걸어가자 벼가 한창 자라고 있는 들판이 나타났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수로를 통해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한 남자가 수로를 통해 흐르고 있는 물로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근처 나무에 왜가리가 먹잇감을 노리고 있었고 독수리로 보이는 회색빛의 큰 새가 그 위를 날고 있었다. 나무 위에는 공작새로 보이는 이상한 새가 외국인의 접근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띵거리고 있었다. |
사진을 찍다가 새벽 농촌의 신비로움에 빠져 넋놓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들이 내 곁에 모여들고 있었다. 보통 새벽잠이 없는 것은 노인들인데, 여기에서는 아이들이 새벽잠도 없나보다. 아이들은 "River, river"라고 말했다. 근처에 강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이들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느라 멈칫거리는 사이, 아이들은 보여줄 것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나 연신 손짓을 해 보였다. 잠시 후, 아이들이 서 있는 곳에 아름다운 호수가 아침 안개에 싸여 희미하게 보였다. 강에서의 낚시가 떠올라, 나는 아이들에게 이 호수에 물고기가 많은지 물었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아름다운 논으로 물을 공급하는 젖줄과도 같은 강의 고마움이나, 아직도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이 호수의 아름다움이 먼저 머리에 떠올라야 할텐데, 낚시질을 해서 고기나 잡아먹을 생각을 한 내가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라댔다. 마침 프린터를 가져갔기 때문에, 사진을 찍고 빼주다 보니 시간이 강물처럼 빨리 흘러갔다. 그날 나를 따라온 아이 중에 좀 키가 큰 여자 아이기 있었다. 자기는 19살인데 상점에서 물건을 판다고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관인데 그 남자친구와 결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 결혼하냐고 물으니, 무조건 24살 이전에 결혼하겠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나라 처녀들도 24살이 시집갈 최후의 나이였다. |
그날 아침 담불라로 가야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총총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짚어 걸었다. 아이들은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호숫가를 지나고 논길을 지나 다시 민가가 나타나는 지점에 오자, 한 아이가 자기 집에 가자고 졸랐다. 내가 머뭇거리자 내 손을 잡고 자기 마당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니 어머니와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집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아기를 안고 나왔는데 생후 20일 되었다고 했다. 아기는 고개를 갸누지 못하고 하품만 해댔다. 어머니는 아기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지만 고개에 힘이 없어서 어떻게 해도 제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흡족해 하며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거기에서도 사진을 빼주고, P님이 준 머리 끈 맻 개를 건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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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나오자, 19살 먹은 소녀도 자기 집에 가자고 또 졸랐다. 담불라로 갈 시간이 되어서 마음은 조급했지만, 시골 마을 집은 어떤지 들어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9세된 소녀를 따라서 지붕이 평평한 벽돌 집에 들어갔다. 문으로 들어가자 전등불이 켜 있되 너무 어두웠다. 바로 거기가 거실이요, 방이요, 부엌이었는데 이들을 구분하는데 시간이 흘러야 했다.
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어머니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나를 자기 부모님에게 소개하면서, 그 소녀는 자기가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은근히 부모님께 자랑하는 듯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외국인에게 무엇인가를 해야할텐데 할 수 없어 안절부절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차를 끓일테니 마시고 가라고 했지만, 벽이며 바닥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 밖으로 나왔다.
스리랑카 농촌 사람들은 1960년대 내가 살던 시골의 모습과 흡사했고, 그곳 사람들처럼 순박하고 친절했다. 무엇인가를 자꾸 주려고 하고, 무엇인가를 먹이려고 애썼다. 그곳을 떠나 호텔로 오면서 그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따뜻한 인간애에 머리가 숙여졌다. |
시기리야에서 버스로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도착한 곳이 바로 담불라 시내다. 버스에서 내리니 우선 눈에 띄는 것이 거대한 황금사원이다. 산과 하늘을 배경으로 황금 부처님이 인자하게 앉아 계신다. 일본의 도움으로 세워진 거대한 부처상 옆에는, 스님들의 작은 상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그러나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황금상은 크기만 컸지 조금 조잡했다. 무엇이든 큰 것이 눈을 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흡족함을 주는 것은 아니다. |
거기에서 동굴 사원으로 가려면 약 150미터 걸어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중 몇몇의 장사꾼이 그림엽서나 책을 사라고 권유한다. 날은 서서히 더워지고 올라가는 길은 점점 힘들어진다. 동굴 사원 근처에서 뒤를 돌아보면 멀리 시기리야 바위가 희미하게 보인다. 시기리야 바위와 이 동굴 사원 사이에 바로 담불라 시내가 있다. |
Lonely Planet에 따르면 이 동굴의 역사는 기원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누라다푸라에서 쫒겨난 발라감바 왕은 바로 여기로 피신한다. 왕위를 되찾은 그는 동굴을 거대한 사원으로 만든다. 훗날 다른 왕들이 내부를 장식하고 부처상을 첨가하여 오늘날의 동굴 사원이 되었는데, 많은 부처상이 19세기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
동굴 사원에 들어가면 더위와 습기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5개의 방으로 된 동굴 사원에는 누워있고, 앉아 있고, 서 있는 수많은 상이 교인이나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내부는 컴컴하고 위에서 물이 떨어지기도 한다. 동굴 사원이라 관리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몰라도 안에 있는 부처상은 본래의 모습에서 많이 퇴색하고 탈색되었다.
약 150개의 부처상이 있어서 부처 하나당 1분을 할당하면 구경하는데 2시간 반이 걸린다. 그러나 특별히 이런 곳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니라면 죽죽 훑어보고 사진 몇방 찍고 나오는 것이 보통인 듯 싶었다. 동굴 안의 온도와 습도가 높아서 사실 몇분 이상 머물기가 힘들다. 조금만 있어도 땀이 비오듯 한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내부를 관찰해 보면, 부처님의 얼굴, 손, 발이 특이해서 하루 종일 구경해도 질리지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한 곳에서 머물러 감탄하며 바라보고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
다시 밖으로 나오면 끝없이 펼쳐진 평원 너머로 멀리 그림같은 산이 솟아 있다. 담 위로 원숭이가 앉아서 싸우기도 하고 달려다니기도 하면서 관광객이 무엇인가를 던져 주길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
원숭이 중에는 이런 것이 바로 모성애다, 라고 말하는 듯 두 마리의 새끼를 가슴에 꼭 앉고 주위를 살피는 어미 원숭이의 모습이 이채롭다. 어미 원숭이는 자식을 꼬옥 품을 수 있어서 행복하고, 어린 새끼는 따뜻하고 안락한 어머니의 품이 있어서 마음 놓고 잠을 청할 수 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따뜻한 어머니의 품만큼 편안한 것은 없나보다. 우리가 아버지보다도 어머니를 더욱 잊지 못하는 것도 따뜻한 어머니의 품 때문이리라. |
내려와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을 처음 보았는지, 어떻게 해야할지 우왕좌왕하는 종업원이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애처롭기도 하다. 주인은 사진을 찍으라고 팔짱을 턱 낀채로 근엄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있다.
한 종업원이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해서 무슨 일인가 싶어 뒷문으로 빠져 나갔다. 무슨 일인지 이처럼 더운 날에 장작불을 때고 있었고, 어두운 방에는 모기장이 쳐져 있었다. 모기장 안에는 입다 벗어 놓은 옷가지 있는 것으로 보아 종업원들의 거처로 보였는데, 여기에 불을 때는 것은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이런 곳에서 콩으로 메주를 쑤는 것도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새우젓을 담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궁금증만 더해갔다. |
점심을 먹고 캔디로 향했다. 캔디에 도착하기 약 30분전 버스는 좌회전 하여 산으로 치닫아 굉음을 내면서 달렸다. 좁고 구불텅거리는 길을 어느 정도 올라가자 호텔의 정문이 나타났다. 입구에서 호텔까지는 알 수 없는 원시의 나무가 서 있었고, 그 위로 이상한 꽃이 피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호텔에서 보는 전망이다. 호텔 아래 펼쳐진 계곡을 내려다 본 후, 눈을 들어 점점 시선을 높여가면, 끝없이 숲이 펼쳐져 있다. 그 너머에 다시 병풍처럼 산이 드리워져 있고 그 위에 뭉게구름이 하늘을 장식하고 있으니, 눈이 시원하고 가슴이 뻥 뚫린 듯 하다. 어디 그뿐이랴. 바로 발밑 약 50미터 아래에 "브루크 사이드"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풀장에 푸른 빛의 물이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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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동안 덥고 힘들고 고생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렸다. 소위 말하는 힐링이니, 웰빙이니 하는 것들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로다. 오늘 밤에는 싱그러운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풀벌레 소리 들어가며 술좀 마셔야지.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 별유천지비인간이렸다.
무슨 까닭에 푸른 산에 사느냐 묻는다면 말없이 웃겠지만 마음은 스스로 한가롭기만 하네. 복숭아꽃 물 따라 멀리 흘러가는 곳 다른 세상이로되 인간 사는 곳은 아니네(別有天地非人間)
<이백의 시 중에서> |
(2014년 4월 7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