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여행기 5
“스님의 향기”
우리 배낭 여행자가 스리랑카의 캔디에 도착한 것은 2014년 1월 19일 오후였다. 캔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숙박소를 정하고 동네를 돌아보던 중,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오른쪽 산비탈을 바라보니, 한 스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다. “자네들이 오늘 이곳에 올 줄 이미 알고 있었네.”라고 말이라도 하는 듯, 스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오라고 손짓하고 계셨다.
스님을 따라 스님이 거처하시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열대의 숲 사이로 오후의 햇빛이 스며들어, 스님의 얼굴에 나무 그림자가 바람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아 주며, 자리에 앉히고는, 찻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벽장문을 열어 떡을 꺼내더니 손으로 뜯어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물이 끓자 컵에 홍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물을 따르는 스님의 손은 외국인을 맞이하는 설레임으로 잔잔히 떨렸으며, 입가에는 신비로운 미소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스님은 말없이, 손짓과 얼굴 표정으로 당신의 뜻을 전하려 했고, 우리는 그 뜻을 짐작하고 무언의 대답을 하려고 했다. 차를 들다 말고 스님은 벽을 가리켰다. 스님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벽위에 개미 떼가 이사를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스님이 거처하시는 작은 방의 횃대에는 자주색 스님 복이 걸려있었고, 침대 겸 의자로 보이는 작은 소파에는 손때 묻은 스님의 방석과 책이 놓여있었다.
스님은 흰 실을 가져와 우리 손목에 묶어주시며 축원을 해주셨다. 하나 하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시던 스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스님의 손은 유월의 태양처럼 따뜻했다. 스님의 손을 잡고 작은 언덕을 올라 도착한 곳은 작은 법당이었다. 거기에는 흰 벽을 배경으로 조그만 부처상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보통의 절이라면 탱화나, 물그릇, 향을 피우는 그릇이 있다든지, 신자들에게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여기 저기 많은 장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오로지 정신을 집중할 부처상만을 모셔 놓고, 기도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치워버렸던 것이다. “아, 스님은 세상 불가의 관습과 법도를 과감히 버리고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하시는구나. 이런 사찰은 아마 세계에서 유일무이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당을 나와 스님은 다시 우리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신다. 조금 반반한 곳에 스님이 심은 작은 보리수가 있었다. 나무 주위에 매일 물을 준 흔적이 보였으며, 얼마나 쓸었는지 주위 바닥은 모래로 닦은 유기 그릇처럼 반들거렸다.
스님은 보리수 옆에 서서 저 아래 멀리 펼쳐진 대자연을 보고 잠시 무슨 생각에 젖은 듯 했다. 먼 훗날, 이 작은 보리수가 자라 저 아래 큰 보리수처럼 될 때를 머리 속으로 그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님은 다시 우리 손을 꼭 잡고 차를 마셨던 곳으로 내려오셨다. 스님은 벽장문을 열더니 스님이 드시던 찻잎을 꺼내 다섯 뭉치로 나누어 싸고는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 다섯 사람 손에 하나하나 얹어 주셨다. 마치 추석에 제사를 지내고 제사 음식을 자식들에게 정성스럽게 싸 주시는 어머니처럼 그렇게.
그날 우리의 만남은 짧았고 말은 없었지만, 우리는 백 마디 말보다 더욱 많은 대화를 나눈 듯 했다. 우리는 스님의 진심어린 애정과 사랑에 가슴 뭉클한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다.
절에서 내려오다 스님이 궁금하여 다시 고개를 돌렸다.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고 계시는 스님의 눈가에는 옅은 이슬이 맺혀 있었다. 저 멀리 서산에는 붉은 태양이 마지막 애잔한 빛을, 황혼이 지고 있는 대지에 소리 없이 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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