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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여행기 7 "캔디에서 누와라 엘리야"로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4. 4. 19. 07:09


 

 

 

스리랑카 여행기 7 "캔디에서 누와라 엘리야"로

 

 



 

 


 

 

 

 

2014년 1월 21일 새벽, 다시는 이곳에 못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텔 아래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보기로 했다. 겨우 어두움이 가신 새벽인데도, 일터로 가는 어른이나, 학교로 가는 아이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한참을 내려가니 어떤 집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를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지난번 시기리야에서도 아주머니가 들어오라고 하여 들어가면서,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고 망설였었는데, 여기서도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스리랑카 벽촌에 있는 가정의 모습이 궁금했기에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 같으면 창피하다고 생각하여 집구경 시키는 것을 꺼려할 판도 하다. 그런데 아줌마는 여기는 부엌이요, 여기는 잠자는 곳이요, 여기는 거실이요, 라고 말하면서 마음대로 사진도 찍게하고 이것 저것 만져보게도 한다.

 

 


 

 

 

 

잠시 뒤에 이웃집에 사는 다른 아줌마가 와서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이웃집 아줌마는 오자마자 부엌으로 가더니 우유와 차를 섞은 음료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입에 쩍쩍 달라붙는 차를 내온 아줌마는 마당을 왔다갔다 서성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차를 마시는 나를 바라보게 했다. 내 옆에 서 있던 젊은 아줌마는 내가 차를 어떻게 마시는지 힐끗힐끗 바라보며 부엌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빨리 마시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였으나, 차가 너무 뜨거워 빨리 마셨다가는 입천장이 다 벗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마시면서 벽을 보니 아줌마의 옛날 결혼식 사진이 붙어있었다. Your marry? 했더니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 거렸다.  그 아래 책상 위에는 자명종을 비롯한 각종 책이며 화분이며 안경이 난잡하게 놓여 있었다.  

 

 

 


 

 

 


 

 

 

 

 

아주머니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했으나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었다. 이런 곳에 가려면 꼭 선물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한국에 있을 때는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난감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머리 묶는 끈 몇 개를 주고 자리를 떴다. 싸리문까지 나오다가 뒤를 보니, 그들은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아주머니 다리 아래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 식시를 하고 다시 캔디 시내로 향했다. 중간중간에 가게나 민가가 있었고, 가끔가다 학교가 보였다. 학교에서는 운동회인지 뭔지 흰옷을 입은 학생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학생들이 길로 나와 일렬로 어디로 가고 있었다.  

 

 


 

 

 

 

캔디 시내로 와서 전날 구경하지 못한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좁은 골목에 식당이며 각종 가게가 길 양쪽으로 나란히 놓여있었다. 우리가 걸어간 곳은 특히 옷을 만드는 집이 많았는데, 비좁은 3-4평 되는 실내에 재봉사들이 몇대의 재봉침을 놓고 연신 옷을 만들고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젊은이. 자꾸 우리를 따라다녔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정육점이 있는 골목이었다. 중국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양이나 소의 발, 내장, 골, 머리 등이 여기서도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조금은 으시시 하기도 하고 조금은 징그럽기도 한 이런 동물의 신체부위를 본 날밤에는, 가끔 이런 동물이 꿈에 나타나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동물을 보는 것도 이러한데, 이런 동물을 죽이고 분해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으니, 그저 세상은 묘하다고 표현할 도리밖에 없다.  하기야 나도 처음에 이런 일에 발을 디뎌놓았으면 그까짓거 아무 것도 아닌 일인지도 모른다. 역시 처음에 직업을 잘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때가 채 되기 전에 누와라 엘리야로 출발했다. 캔디가 해발 500미터로 인구 11만의 도시라면, 누와라 엘리야는 해발 1900미터로 인구 25000의 도시다. 따라서 몇 시간에 걸쳐 가면서 자동차는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길은 좁아지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점점 산길로 접어들자, 마침내 거대한 차밭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대자루에 끈을 매달아 그 끈을 머리에 걸쳐 마대 자루를 등에 내려오도록 메고, 찻잎을 따서 등뒤에 있는 자루에 담는다. 차밭에 있는 일꾼들은 대부분 아줌마로 보였고, 가끔가다 모자를 쓰고 서 있는 남자는 감독으로 보였다.

 

 

차(茶)하면 떠오르는 것이 스리랑카인데, Lonely Plnanet에 따르면, 처음에는 이곳에 커피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커피나무에 병이 걸려 실패를 하게 되었고, 시험삼아 차나무를 심었더니 의외로 차가 무럭무럭 잘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스리랑카가 차의 왕국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지금도 이것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한다. 여기서 일하는 일꾼들은 대부분 인도 남부에서 영국인들이 데려온 타밀 족이라고 한다.

 

 


 

 

 


 

<차를 타고 가다가 만난 폭포>

 

 


 

 

 

 

여기에서 조금 더 지나면 폭포가 나타나고 폭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버스는 또 굉음을 내면서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때 길가에 한 소년이 꽃 다발을 들고 사달라고 애걸하는 장면이 버스 유리창을 통해 언뜻 보인다. 그런데 코너를 돌아 또 올라가면 이 소년이 돌계단을 젖먹던 힘으로 뛰어와 우리 차 앞에 서 있다. 그를 지나치면 다음 코너에 서 있고 또 지나치면 또 서 있고, 도대체가 이 정도면 지쳐 그만둘 법도 한데, 그 소년은 끈질기고 맹렬하게 우리 버스와 달리기 경쟁,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매몰차게 그를 돌려보낼 수가 없어 버스를 세웠다.  

 

 


 

 

 




 

 

 

 

버스 문을 여니, 마치 LA Dodgers의 야구선수 푸이그를 닮은 소년이 빵모자를 쓰고 한손을 허리에 대고 또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빙긋이 웃고 있었다. 숨이 차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소년은 "내가 이렇게 뛰었는데도 꽃을 사주지 않으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지"라고 말이라도 하는 듯, K님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노력이 가상하니 꽃을 사주라고, 사람들이 데모하는 학생들처럼 외친다. 그가 들고 있는 꽃다발에는, 며칠간 꽃을 팔지 못해서인지 듬성듬성 시든 꽃이 보인다. 어쩌면 더 이상 시들면 팔지 못할 것이니 더욱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는지도 모른다. 저 정도 노력을 하면 밥먹고 살겠다, 고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아니면, 과거의 그의 경험이 그에게 가르쳤는지도 모른다. 죽기살기로 뛰어오르면 사람들은 나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꽃을 사주게 되어 있다고.

 

 


 

<결국 이 꽃은 버스 앞에 외롭게 앉아 있는 브라우니 옆에 놓이게 되었다.>

 

 


 

 

 


 

 

 


 

<중간에 차 공장에 들러 무료 시음을 한다.>

 

 


 

 

 


 

 

 


 

<누와라 엘리야의 우체국이 일몰의 역광으로 검게 보인다.>

 

 

 

누와라 엘리야의 싱글 트리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내 구경하러 나갔다. 시내는 생각보다 좁고 막상 구경할 것이 별로 없었다. 곧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우체국 뒤로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우체국이 검게 카메라에 잡혔다.

 

 


 

 

"10분간의 기적----누와라 엘리야의 일출"

 

 


 

 

 

 

2014년 1월 21일 밤, 이곳이 해발 2000미터이고 약간 구름이 끼어 있으니 내일 일출이 좋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싱글트리 호텔 사장에게 연락하여 새벽 자동차를 예약했다. 22일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놓았으나 방이 추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가지고 온 옷을 몇겹 끼어 입어도 추위는 가실 줄 몰랐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알고보니 문을 열어 놓고, 그 위에 커튼을 쳐 놓고 잤던 것이다. 몸이 피곤하여 미처 문이 닫혔는지 확인하지 못한 것이 큰 실수였다.

 

 



 

 

 

새벽 5시 30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자동차는 우리 일행 5명을 싣고 산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반쯤 잠을 깬 사람들은 흔들리는 지프차에 몸을 맡긴채 마치 폭풍우 속에 배를 탄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드디어 방향을 틀어 자동차는 산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자동차의 엔진 소리는 새벽의 정적을 깨고 하늘로 부서져 올라갔다.  

 

 

정상으로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으나 아직도 어두워 어디가 어디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몇 가구 안 되는 마을로 보였다. 운전수는 차에서 내려, 어떤 집의 문을 두드렸다. 아마 그 집을 통해 들어가야만이 일출의 명소에 접근할 수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 지난 밤 주인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듯 했다. 운전수나 우리나 절망감에 한숨을 쉬었다. 하는 수 없이 차선책으로, 차를 돌려 좀 낮은 밭으로 갔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서, "아이구, 내 팔자에 무슨 일출은 일출? 괜히 헛물만 켰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몇초 사이에, 마법사가 쫓아오는 것을 보았는지, 가만히 머물고 있던 구름이 허둥대며 한쪽으로 재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붉은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누군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어두운 밤하늘에 붉은 빛이 서서히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멀리 산과 구름 사이에 있는 작은 하늘에 엷고 밝은 구름이 조금 보였다. 밝은 구름은 그 위에 있는 새털 구름에 강렬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산위는 엷은 오랜지색이었고 그 위에는 싯뻘건 장작불이었다. 구름은 수만개의 어망처럼 이어지고 갈라져 하늘에 뿌려져 있었고, 연붉은 빛에서 검은 빛이 도는 홍시의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연신 "와, 와" 소리를 질렀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색의 기묘한 조합을 보면서 내가 귀신에 홀린 것이 아닌지 내가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였고 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실 속에서 새벽 빛의 파노라마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서쪽을 보았다. 서쪽 하늘에 있던 구름도 이미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붉은 빛은 사방으로 죽죽 퍼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또 "와, 와"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사람들의 얼굴과 옷과,  갈아 놓은 밭과 그 주위의 숲이 옅은 불그레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잠시 뒤,  세상 천지가 술에 취한 듯 붉은 빛으로 흥청거리며 빠르게 신비의 나라로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이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라, 맨눈으로 이 자연의 신비를 관찰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사진기를 내려 놓고 동쪽과 서쪽을 번갈아보았다. 나는 "와, 와" 소리를 지르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었다.  

 

 



<서쪽 하늘>

 

 

 

붉은 빛의 향연은 단 10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의 기적이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듯이", 단 10분간의 기적을 위해 하루 해가 빛나고 그 햇빛이 밤새도록 숙성하여 찬란한 저 붉은 빛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빛은 어느새 서서히 흰빛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붉은 색이 어떻게 하얀색으로 바뀌는지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술에 취했다가 어느 순간 깨듯이,  빛은 내가 "어, 어" 소리지르는 사이에 이미 흰빛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순간 최영미의 "선운사"가 머리 속을 스치고 있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나는 해가 지는 일몰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저렇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출은 처음 보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일몰이 "은은한 빛의 향연"이라면, 일출은 "급박하게 다가오는 적군의 군화발 소리"다. 아,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저런 일출을 본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해가 떠오르자 집 밖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젖은 풀을  태우는 아줌마도 있었고, 꽃다발을 들고 차밭 사이로 걸어가는 청년도 있었다. 저 멀리 아이들을 학교에 실어갈 봉고차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어린 학생들의 얼굴에 비쳐 재미있는 모자이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은 세상에 대한 신기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 관심을 보이듯 그 아이들의 눈동자에도 관심어린 나의 모습이 비춰져 있었다.

 

 



 

 



 

 



 

 


 

 

 

 


 

 

 

차밭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완연한 아침이 왔다. 태양 빛이 산촌 마을에 뿌려져상큼한 맛을 더해주고 있었고, 그 위의 하늘에는 붓으로 그린 듯 흰구름이 엷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차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데 바로 내 머리 위의 전깃줄에 새 한 마리가 아침의 적막을 깨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보세요. 세상은 이렇게 신비롭답니다.  단지 당신이 게으르고, 감각이 무뎌졌을 뿐, 신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 주위에 널려있습니다."

 

 


 

 

 

(2014년 4월 1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