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간 중미 여행기 10: 엘살바도로 산살바도르와 과테말라로 출국
2014년 11월 21일 산살바도르의 아침이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오니 아름다운 꽃병이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꽃병 안에는 아름다운 열대꽃이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꽃병 위에 새겨진 아담한 꽃 무늬에서 엘살바도르 사람들의 섬세한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
밖에 나와보니 열대지방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선선한 가을 날씨였다. 거리는 한산했고, 걸어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으며, 심지어는 어디에나 있는 개 한 마리도 눈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빨간색 자동차 위에 노란 꽃잎이 떨어져 신선하고 선명한 느낌을 주었으며, 자동차 주인이 시동을 걸고 거리를 달릴 때, 노란 꽃이 사방에 휘날려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
아침 해가 떠 올라 비스듬히 대지를 비추니, 대지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현란한 몸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는 길게 그림자의 꼬리를 내려 땅 위에 붓글씨를 썼고, 갈색의 벽에 비친 햇빛은 몽울몽울 꿈틀거리는 연기를 감싸고 있었다. 싱그럽고 심지어는 성스럽기까지 한 아침에, 한 노인이 쓰레기 봉지를 뒤적이며 돈이 될 것을 찾아 다니는 것은, 부조화의 조화라고 여겼다. |
길 한 모퉁이에서 한 아줌마가 호떡을 팔고 있었다. 남편으로 보이는 어떤 남자와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호떡을 굽고 있던 이 아줌마는 밀려드는 손님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 부부가 같이 일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사진 한 장 남기기로 하고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보니 남편은 어디가고 엉뚱한 여자가 입을 쏙 내밀고 있는 사진이 찍혔다. 내가 옆에 서 있는 여자에 정신이 팔렸는지, 아니면 남편이 홍길동이라 순간 어디로 튀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아침부터 미쳤는지 모르겠다. |
그날 시내를 구경할 목적으로 시내를 돌다가 어떤 성당에 들어갔다. 높은 성당 앞에는 노인들이 잡담을 하고 있었고, 성당 안에는 몇 사람이 미사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혼을 뺐어간 것은 바로 창문에 채색된 스테인드 글래스였다. 어느 채색공이 온 정성을 들여 제작했을 것으로 보이는 착색 유리에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모습, 또 다른 여러 종류의 그림이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
그러나 성당의 문을 나서 한발짜욱만 옮기면, 거기에는 또 다른 인간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갈라지고 허물어진 벽 사이로 개조차 고개를 들 힘이 없어 지친 모습으로 땅바닥을 응시할 뿐이다. 천당과 지옥을 갈라 놓는 검고 푸른 강을 건너는 데는 채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또한 우리 인생이 생과 사의 갈림길을 건너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왼쪽으로 고개 돌려 신에게 감사 기도드리고,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는 현실 세계를 본다. |
우리는 현실 세계를 탈피하고 싶었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새로운 양식이 필요했으며, 바로 오늘이 영양가 있는 음식과 충분한 휴식으로 내일의 여행에 대비해야 할 때라고 믿었다. 이심전심으로 모두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태평양으로 가자는 것이 거역할 수 없는 대세였다. |
<2014년 11월 21일 오후 1시 47분에, 스마트폰의 Maps with me Pro라는 프로그램으로 지도를 열어, 나의 위치를 확인한 후, 스크린 캡쳐한 것임> |
<바닷가에 붙어 있는 주의 사항 안내문>
"라 리베르따드"라는 식당가 겸 어시장이 있는 바닷가에 도착한 것은 오후 12시 반경이다. 열대의 더위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쳤다. 멀리 다리 위로 포장을 쳐 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리 위에 바다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상인들이나 어부들이 고기 덩어리를 가끔 던져주는 듯 했다. |
오른 쪽으로는 검은 자갈이 바닷가를 따라서 펼쳐져 있었고, 흰 파도가 그 위에서 자갈을 희롱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는 마치 발가락 사이로 물이 들어왔다 빠져나가듯이, 하나하나의 자갈 사이를 들락거리며 공간의 유희를 즐기는 듯 했다.
나는 흰색과 검은 색으로 순간순간 변하는 태평양의 바닷물을 보면서, 눈앞으로 쭉 나아가면 분명히 한국의 동해안과 연결될 일직선을 응시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마치 내가 한국과 연결된 듯한, 아니 한국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
다리 위에 쳐진 천막 안으로 들어오니 거기에는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확실히 땅덩어리가 다르니 한국에서 보는 고기와는 달랐다. 무슨 메기처럼 생긴 고기가 눈을 부릅뜨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람 몸통만한 물고기를 큰칼로 회를 뜨는 칼잡이의 눈에서 삶에 대한 무서운 집념을 느꼈고, 그의 이마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땀방울에서 현실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를 느꼈다. 사진을 찍으라고 자세를 취해주는 그의 태도에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보였으며, 능숙하게 돌아가는 횟칼에서는 십수년의 그의 경험이 묻어 있었다. |
<한 사람이 새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 하니 할머니가 갑자기 공손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바다를 바라보기 위한 것이 아니요, 회뜨는 모습을 넋놓고 보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는 니카라과의 어떤 식당에서 랍스터를 먹은 것을 회상하며, 각자 본인의 몸이 요구하는 음식을 스스로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새우를, 어떤 사람은 랍스터를, 또 어떤 사람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요상한 음식을 시켰다. 맥주 한 병씩을 시키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왜 이리 맥주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빨리 증발하고, 음식이 나오는데 왜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주위에는 한 사람씩, 또 어떤 때는 여러 명이 떼를 지어 다니면서, 악기를 연주하며 팁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양반들아, 더워 죽겠고 배고파 죽겠는데, 벌건 대낮에 무슨 노래 소리가 우리 귀에 들어오겠는가? 아무리 음악이 생계수단이라 하더라도 앞뒤를 봐가며 띵까당 거려야지, 태양빛이 몰아치는 열대 중의 상 열대, 한낮 1시에 노래를 불러댄단 말인가? 들판의 농부도 아무리 급해도 한낮은 피해 일하고, 하찮은 미물 매미도 낮에 우는 것이 미안하여 밤에 울지 않던가? 우리는 설레설레 손사레치며 대낮의 악사들의 접근을 터지는 뚝방 막듯이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리고 먹고 또 먹었다. 큰 숨 쉬고 먹고, 가슴치고 먹었다. |
<내 여행기에 이렇게 음식 사진을 여러 장 올린 것은 처음이다.>
우리 주위를 맴도는 사람 중에는 악사들 이외에도 두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첫 아이는 비닐 봉지에 녹색의 탱자나 귤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에게 팔아야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보였다. 봉지 안에 든 과일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40개는 될 법 했고, 우리가 먹기에는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다 살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과일의 갯수로 보아 5천원 정도는 넘을 것으로 보였다. 그 아이에게 값을 물으니 단돈 1,000원이었다. 다 팔아보았자 1,000원 되는 것을 이 아이는 하루 종일 여기 기웃, 저기 기웃 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
또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이상한 나무 조각을 팔고다니는 듯 했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자, 그 속에서 달걀 비슷한 것을 꺼냈다. 물어보니 거북이 알이라고 했다. 거북이는 멸종 위기 동물이므로 먹다가 걸리면, 감옥에 간다고 누군가가 말했고, 수백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저 아이 집이 거북이 농장을 하는 집일 수도 있어 그것이 돈벌이 수단이 될지도 모르니,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심정으로 어쨋든 하나씩 먹어보기로 했다. 거북이 알이 더 있는지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바람처럼 아이가 사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20분은 지났을 것이다. 슬그머니 아이가 나타났다. 그 사이에 이 알을 반쯤 삶아서 가져왔는지 만저보니 따끈따끈했다. 그러나 실제로 먹어보니 달걀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이 거북이 알을 먹어서 내 피부가 거북이처럼 갈라지거나 딱딱해지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만 되었다. 12개의 알값으로 9,000원을 지불했다. |
남산만큼 툭 튀어나온 배를 슬슬 만지면서 우리가 간 곳은 "악마의 문"이라고 불려지는 조그만 산의 정상이다. 우뚝 솟은 산에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데, 한 쪽으로는 산살바도르 시내가 보이고 나머지 세 방향으로는 호수나 산이 아련하게 보였다. 운전수의 말에 따르면 내전 기간 중 포로를 잡아, 여기에서 아래로 던져 버렸던 곳이라고 하나, 그것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
<악마의 문으로 개를 몰고 오는 사람도 있다.>
<악마의 문 아래서 장사꾼이 상품을 진열해 놓고 있다.>
<조금 더 내려오면 산살바도르 시내가 더 잘 보이고, 젊은이들이 춤을 추고 묘기를 부린다.>
<차를 타고 오다가 보이는 장면: 특럭 위에서 전화를 걸고 있다.>
시내에 들어와 중앙 대 성당에 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어둑어둑했다. 광장에 한 사람이 연설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날은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우리 주위로 모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여기에서 머물기보다는 모두들 호텔로 돌아가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꾸역꾸역 모여드는데, 전기불이 별로 없어서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고, 그 순간에 가장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위험"이라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어둡건, 위험하건, 낮이건 밤이건, 어디를 가나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있었다. 젊은이들의 애정표현이었다. 둘이 꼭 껴 안고 키스하고 애무하는 장면이 도처에 목격되었다. 아마 사상이나 이념 종교 집회 뭐든지 다 막을 수는 있어도, 절대로 막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젊은이들의 사랑일 것이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사상이나 종교 등은 배워서 습득하는 것이지만, 젊은이의 사랑은 본능이요 본래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오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누구누구와는 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하는 것을 부모들은 빨리 깨달을수록 좋을 것이다. |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에서 과테말라의 안티구아까지"
11월 22일 새벽 4시 30분에 플로리다 호텔을 떠나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너무 일러서인지 거리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다. 터미널에서는 장총을 든 사람이 일일이 사람을 감시하는 것이 그저 이상하기만 하다. 전날 사두었던 버스표와 여권을 제시하고 짐표를 받는다.
버스에 타보니 모든 사람의 좌석이 모두 따로 국밥이었다. 한국 사람들의 좌석 옆에는 모두 현지인들이 앉게 되었다.
6:10분에 버스는 출발했다. 모두들 수면제를 먹은 듯 잠에 골아 떨어졌다. 사방을 돌아보니 한 젊은만이 헤드폰을 끼고 열심히 노래를 하고 있었다. |
<중간에 사먹은 떡>
과테말라 시티에 도착한 것은 12시 20분이었다. 우리의 목적지인 안티구아까지는 여기에서 한 시간 더 가야한다. 티카버스 회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안티구아로 향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과테말라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주와도 같은 옛도시 안티구아가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 한 젊은이가 있었다. 영어 소설을 읽는 것으로 보아, 영어 실력이 보통이 아닐 것으로 생각되었다. 얘기를 해보니 미국 사는 젊은이었다. "안녕하세요?"라고 능숙한 한국어로 말하여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한국 인천에서 영어 강사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는 한국말은 못 하지만, 스페인말은 할 수 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가 여기에 온 것은 스페인말을 연습하는 것이 주목적이요, 구경이 부목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다 왔습니다, 라고 누군가가 소리쳤을 때는 이미 점심 때가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미국 젊은이는 자기 혼자 묵을 곳을 알아보겠다고 사라졌다.
안티구아 길거리의 바닥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도시보다도 특이했다. 흙하나 보이지 않는 모두 옛날의 돌로 덮혀있었다. 자동자가 지나갈 때 바퀴굴러가는 소리가 마치 여름에 뚝이 터져 큰 물이 콸콸 흘러나오는 듯한 소리를 냈다.
여기가 바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 안티구아다. 꼬반에서 비를 맞고 서 있을 때, 한 온두라스 청년이 다가와 다른 데는 못 가더라도 과테말라의 안티구아는 꼭 가보라는 말이 떠 올랐다. 이제 정말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정한 구경거리가 나타날까?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을 억누르며 식당을 찾아 호텔문을 나섰다. |
<안티구아에 있는 우리가 묵은 호텔 앞 거리>
2014년 11월 21일: 산살바도르 1일 버스 렌트비 95,000원(1인당 9,500원. 유류비 별도) 2014년 11월 21일 산살바도르 숙박비: 2인 1실. 35,000원. 2014년 11월 22일: 산살바도르에서 과테말라시티까지 버스비: 1인당 20,000원 2014년 11월 22일: 과테말라시티에서 안티구아까지 승합차 버스비: 1인당 10,000원 2014년 11월 22일: 안티구아 숙박비: 2인 1실: 25,000원
(2015년 1월 2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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