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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간 중미 여행기 11: 과테말라 "안티구아"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5. 2. 2. 16:31

 

 

 

 

 

 

47일간 중미 여행기 11: 과테말라 1 "안티구아"

 

 

 

 

 

 

 

<과테말라에서의 여정>

 

 

"안티구아 과테말라 시"를 줄여서 보통 "안티구아"라고 한다. antigua는 "오래된(old)"이란 뜻이다. 따라서 "안티구아 과테말라"는 오래된 과테말라라는 뜻이다. 현재 수도인 과테말라는 신 수도가 된다. 좀 복잡한 것을 정리하면, 1)국가명: "과테말라", 2)현 수도: "과테말라 시티", 3)옛 수도: "안티구아 (과테말라)"가 된다. 오늘 여행기는 안티구아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다.

 

 

안티구아는 16세기 중반에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어 200년 동안 번성했다. 그러나 1773년 두 차례 대지진이 발생하여 이 도시를 완전히 쓸어 버렸다. 놀란 과테말라 사람들은 현재의 과테말라 시티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게 되었고, 안티구아는 언제 또 화산이 터질지 몰라 방치하다시피 내버린 도시이다.  

 

 

바로 머리만 들면 보이는 화산에서 검은 구름이 하늘로 솟는 것이 보였다. 실제로 근처에는 세 개의 화산이 있는데, 그 산의 이름은 Agua(3766m), Fuego(3763m), Acatenago(3976미터)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인 이 도시에  또 언제 화산이 폭발하여 이 도시를 쓸어 버릴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저렇게 뭉게구름 올라가듯이 하늘로 치솟는 화산이나 볼 것을, 잘 보이지도 않는 연기를 보고자 코스타리카에서 1일 투어 한 것이 좀 원망스럽기도 했다.

 

 

 

 

안티구아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바닥이 돌로 덮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도시, 예컨대 온두라스의 꼬반이나 그라시아스도 돌로 덮혀 있지만, 그것은 부분적이지 여기처럼 흙 하나 없이 돌로 덮인 것은 아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이런 돌 위에서 자동차는 절대 빨리 달릴 수가 없다. 모르면 몰라도 교통사고 발생율 세계 최하위가 아닐까 감히 짐작해 본다.  

 

 

집은 모두 낮게 지어져 있으며, 벽은 붉은 색이나 노란색 또는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대부분의 집은 사람이 거주하기 보다는 가게나 식당, 학원, 또는 호텔로 보였다. 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개척 시대의 향기를 찾아온 외부 관광객으로 보였다.

 

 

 

 

 

 

 

 

<손님을 맞이하는 식당 종업원>

 

 

 

 

 

 

조금만 걸으면 발에 채이는 것이 모두 옛 건물이고, 이런 건물은 대부분 닫혀있으며, 안내 책자를 보지 않으면 이런 건물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낡은 건물을 수리할 생각은 아예 없는 듯 했고, 지진이 또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듯이 보였다.

 

 

 

 

 

 

 

 

 

 

 

 

 

 

 

 

 

 

 

 

 

 

마침 우리 일행 중에 이런 곳에 와서 묵으면서 스페인어를 배워볼까 하는 K님이 계셨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 있는 많은 스페인어 학원으로 외국에서 많은 학생들이 와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학원비는 한 달에 약 32만원 정도, 먹고 자면서 공부하려면 10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학생들 중에는 미국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들이 영어를 쓰고 이 사람들이 그 영어를 배워야 사방에서 영어 소리가 들릴텐데, 미국 사람이 모두 스페인어를 하고 있으니 이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배울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세계에서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나라가 중국인데, 중미는 중국보다 오히려 영어가 더 안 통하는 나라처럼 보였다. 그래도 중국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려는 노력을 하고 열풍도 불지만, 이 나라 사람들이야, 뭐, 모두 와서 스페인 말을 하니 무엇하러 어렵게 영어를 배우려고 하겠는가?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영어 한 가지만 알고 중미에 가는 사람들은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필자도 이번 여행처럼 영어가 통하지 않아 답답함을 느낀 적이 없으며 나중에는 비참함을 느꼈고, 끝판에는 분노가 치솟았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사진 촬영을 나갔다. 호텔 앞을 나와 골목을 나서면 큰 나무가 있다. 나무에는 검은 새들이 수백 마리가 앉아 있었는데, 이 새들의 모양은 아름다운데 그 소리는 마치 까마귀를 닮았다. 파나마의 바닷가에서 이와 비슷한 새소리를 들었는데, 아마 같은 족속인지도 모르겠다. 옛 노래에 보면 "아침에 우는 새는 배고 고파서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 운다"라고 했다.  배고프다고 소리 지르다 보면 더 배가 고플 터인데 왜 저렇게 악다구니로 짖어대는지 모르겠다.

 

 

 

 

먼 산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것으로 보아 아침 해가 뜨나 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자동차도 별로 없었다. 남쪽에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화산만이 바로 이 땅 저 밑에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아침 햇살은 산에서 내려와 시내에 있는 나무 위를 비추다가, 지붕을 비추고, 십자가를 비추고 있었다. 마침내 햇빛은 땅으로 내려와 하나하나의 돌에 자신의 흔적을 뿌리고 있었다. 아침 햇살 특유의 연한 황갈색의 빛 사이로 몇 사람이 아스라한 추억처럼 이야기를 하며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때 내 앞에 개 한 마리가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고 아침 햇볕을 즐기면서 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개의 잠자는 모습을 찍는 나의 그림자가 또 내 앞에 길쭉하게 뻗어 있었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신비로운 안티구아의 아침이었다.

 

 

 

 

 

 

 

 

 

 

 

 

 

 

 

 

 

 

 

가끔 가다 보이는 케케 묵은 자동차는 안티구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을 성 싶다. 지붕 기와 위에 자라고 있는 이름 없는 붉은 풀은 자신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만천하에 고하고 있다. 색이 바랜 벽이 있는가 하면, 그 위에 다시 황토색을 칠해서 거칠어진 벽도 눈에 띈다.  

 

 

 

 

 

 

 

 

 

 


 

 

 

 

 

 

아침 식사 후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샌프란시스코 성당이다. 이곳은 1667년에 죽은 뻬드로 신부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교황 바오로 2세가 방문했던 성당이라고 한다. 너무 낡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인데, 안에서는 신자들이 걱정을 붙들어 매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많이 수리를 한 것이고 좀더 안으로 또는 뒤쪽으로 돌아들어가면 거의 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만이 지진의 무서움이랄까, 아니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부서지고, 무너지고, 수리하고, 다시 흙으로 발라 놓은 것이 오히려 사진 찍기에는 훨씬 더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다. 이런 곳에 여자를 세워두면 모두 모델이 되고, 남자를 세워두면 영화배우가 되는 그런 세트장이다. 하늘은 푸를 대로 푸르고, 그 위에 몇 조각 구름이 떠 있고, 가끔 가다 심심한 새들이 날아와 한 바퀴 휘 돌고 다시 어디로 사라진다. 어디 그뿐이랴. 멀리에서 바람이라도 한바탕 불어대면  가까이 있는 화산의 연기가 검게 머리를 틀고 용처럼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가? 이 모든 것이 안티구아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성당에서 기도하여 치료 효과를 본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인상적인 것이 또 하나있다. 수 많은 사람의 사진이 붙어있는 벽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수 많은 목발과 다리 받침대, 의족이 진열되어 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해서 몸의 치유를 받고, 돌아갈 때는 그들이 짚고 왔던 목발을 여기에 남겨두고 떠났다는 것이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통성 기도를 하고, 몸의 치유를 바란다.

 

 

 

 

 

 

 

 

 

 

 

샌프란시스코 성당 바로 옆에 클라라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도 수 많은 지진을 견디지 못하여 사방이 부서지고 무너졌다.  일부는 수리했고 일부는 상처를 안고 앓고 있다. 뒤로 돌아가면 비교적 지진의 해를 입지 않은 정원이 있다. 여기도 샌프란시스코 성당과 마찬가지로 사진 촬영의 명소로 남아 있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한 쌍의 신부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왜 아름다운 대지에서 신혼부부들은 사진을 찍지 않고, 왜 이런 폐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할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배경이 단순하고 보잘 것이 없으면 이것이 오히려 신혼부부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 한 친구가 보내온 카톡 메시지에, "여자들은 자기보다 못 생긴 사람과 다니기를 좋아한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조금 더 걸어가면 공중 빨래터가 나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동시에 빨래를 하면 그야말로 아나구아에서 최고의 구경거리가 될 듯 하다. 그러나 내가 갔을 때는 빨래를 하는 사람을 단 명도 볼 수가 없었다. 단지 빨래터 기둥 뒤에 숨어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 몇 사람을 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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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 도밍고 호텔은 박물관과 호텔을 겸하고 있다. 아마도 안티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호텔일 것이다. 오성급 호텔인 산토 도밍고는 산토 도밍고 수도원 경내에 세워져 있는데, 수영장 식당 가게 유적 전시장 등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시설을 망라한 호텔이다. 돈 있는 사람들 돈 쓰면서 세월보내기 좋은 호텔이다.

 

 

 

 

<호텔 내부에 있는 예식장>

 

 

<호텔 경내의 유적>

 

 

 

 

 

 

<호텔 전시장에 전시된 미술 작품>

 

 

 

 

 

 

중앙공원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연주를 하고 돈을 받거나, 자신들이 만든 CD를 파는 경우가 많다. 주위에 구경꾼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특히 날이 더워서 우리는 이 더위를 참아가며 음악을 들을 형편이 못 됐다.

 

 

 

 

저녁에 이곳에 나와보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나와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다니는 장사꾼, 구두 닦이, 할 일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 우리와 같은 여행객,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을 자신도 바라본다. 1936년에 건설된 분수에서는 졸졸 거리며 흘러내리는 물이 사람들의 말 소리와 노래 소리를 자신의 품에 쓸어 담는다.  

 

 


 

 

 

 

실제로 폭발하는 화산과 용암을 볼 수 있는 곳을 추천해 달라고 여행사에 문의했을 때, 그들은 주저없이 빠까야 화산을 추천해 주었다. 지금도 용암이 분출되고 있고, 저녁에 간다면 붉은 용암을 볼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산으로 올라갈 때는 헬멧이나 장갑 등, 화산 불덩어리가 주변에 떨어졌을 경우 몸을 보호할 장비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니 정말 대단한 화산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화산하면 텅 빈 분화구나 연기가 자욱한 것만 보다가 이제 정말로 볼 것을 보나 싶어 기꺼이 예약을 했다.

 

 

인터넷에 따르면, 빠까야 화산이 폭발하면 종종 북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과테말라 시티에서도 보일 정도이며, 23차례 이상 폭발하다가 1860년부터 계속 휴화산 상태였다. 그런데 1961년 3월의 어느 날 느닷없이 폭발을 일으키더니 1962년에는 정상이 붕괴하면서 분화구가 만들어졌다. 1965년부터 파카야 화산은 계속 활동하면서 가스나 증기를 뿜어 올리는 경미한 폭발은 물론, 12킬로미터까지 암석을 분출하는 등 대형 폭발까지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구글 지도에 나와 있는 빠까야 화산 사진>

 

 

 

 

빠까야 화산으로 가던 중, 운전수는 차를 길가에 멈추고 우리를 향해 말했다. "빠까야 산 정상은 항상 일기 변화가 심하여 용암을 본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만약 일기 탓으로 용암을 볼 수 없다고 해도 불만을 하면 안된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취소하고 과테말라로 돌아가면 되니 상의해서 갈지 말지를 결정해 주기 바란다." 이 말은 약간 위압적으로도 들리고 협박조로도 들렸다. 이 말을 듣고, 썩 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다시 돌아가는 것도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기왕에 활에서 떠난 화살을 돌이킬 수는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빠까야 화산을 이 나라 사람들은 공원으로 지정하여 돈을 버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총을 든 사람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화산을 훔쳐갈 일도 없는데, 무슨 경비가 그리 심한지 고개가 갸우뚱 해졌다.

 

 

빠까야 마을에 도착하니 우리를 태울 마부들이 마치 의장병이 지휘관을 기다리듯, 부동자세로 우리를 응시하면서 침을 꼴깍 삼키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제발로 찾아온 먹잇감을 기다리는 사자의 위용으로 우리를 날카롭게 응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분화구까지 길이 멀기도 할 뿐만 아니라, 시간상으로 제 시간에 분화구에 도착할 수 없으니 모두 말을 타야 한다고 말했다.

 

 

<도보 등산 시작 점>

 

 

막상 말을 타고 올라가니, 말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만약에 걸어 올라왔다가는 녹초가 아니라 거의 시체가 될 정도로 힘든 코스였다. 고초 당초보다 더 매서운 이 코스는 대마초나 먹어야 감히 올라간다는 말이 나올 법했다. 나를 태우고 가는 말이 더 이상 가려고 하지 않자, 마부는 인정사정 없이 말의 엉덩이를 회초리로 갈겼다. 입에 거품을 물고 끙끙 대는 말은 신음 소리를 냈으며, 말의 몸에서 나온 진한 땀 냄새가 빠까야 산을 적셨다.

 

 

<그날 유일하게 본 곤충 한 마리>

 

 

 

 

 

 

말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지점부터 우리는 걸어야 했다. 우리는 이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사방에서 밤안개가 몰려왔고, 마지막 남은 반쪽의 태양이 인당수에 심청이 뛰어들듯, 깊고 검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상하다! 사람들은 거기에 올라가서 무엇을 보겠다고 이런 밤중에 무장공비 산속을 헤매듯 올라가고 있는 것일까? 용암을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인생이 뭐가 그리 다를까? 내가 오늘 용암을 본다고 해서 내 인생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

 

 

본격적으로 자갈과 모래로 된 가파른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죽죽 미끄러지는 바람에 전진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3보 전진 2보 후퇴, 무슨 군인들 총검술 연습하는 듯 앞뒤로 오가며 미끄러졌다. 여기서 펑, 저기서 펑, 오뉴월 호박 덩어리 떨어지듯 넘어지더니, 여기서 "아이구" 저기서 "내 팔자야" 소리가 나왔다. 문제는 넘어져서 굴러 떨어지면 거기가 지옥인지 천당인지 아무 것도 모르는 형국이다. 그저 운이 좋기만 바랄 뿐 아무런 대책 없이 허리를 90도 굽혀서 걷고 또 걸을 뿐이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갔을 때, 이제 다 왔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가시 거리는 채 3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다 온 것과 다 오지 않은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바로 이 아래가 분화구 낭떠러지입니다. 1미터 더 앞으로 가면 바로 죽음입니다." 가이드의 말은 안내가 아니라  조폭의 협박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까 운전수가 안 가도 된다고 할 때, 오지 말아야 했었는데"부터, "내 팔자는 항상 어디를 가든 왜 이리 재수가 없나?"라는 생각까지 프리즘을 통과한 무지개 색만큼이나 잡다한 생각이 떠 올랐다. 그 와중에 또 배는 왜 이리도 고프며, 콧속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는 유황 냄새는 왜 이다지도 골을 때리는지 모르겠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저 아래서 부글거리며 끓는 용암의 소리가 들리니 잘 들어보라"고, 가이드는 나즈막 하게 말했다. 그러나 내 귀가 소머즈 귀가 아닌 이상 들리기는 뭐가 들려, 개미 새끼 걸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속되는 유황 냄새만이 피를 토할 만큼 나의 기침을 유발할 뿐이었다.  

 

 

정상에 도착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가이드는 이제 내려가자고 말했다. 나는 순간 이놈의 가이드를 패 죽이고 저 아래 분화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 속에 집어 넣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고생하면서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나? 그러나 오늘의 일은 여기 있는 사람 아무도 책임이 없는 일, "지가 좋아서 지가 한 일"이었을 뿐이다.

 

 

문제는 어떻게 내려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산에 눈이 왔을 때도 올라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내려갈 때는 고생을 많이 하면서 내려간다. 나는 한 손에는 손전등, 또 한 손에는 스마트폰의 전등을 켜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그래도 그 순간만은 쌍권총을 차고 걷는 황야의 무법자나 된 듯한 우쭐함에 빠져 버렸다. 미끄러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내려가니 등에서 땀이 났다. 그러나 조심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순간 앞으로 미끄러 지며 손에 들은 것이 모두 튕겨져 나갔고, 등산 배낭은 데굴데굴 굴러갔다. 혹시 손바닥이 땅과 마찰하면서 피가 나지 않을까 살펴보니 화산재가 묻어 시커멓게 되었을 뿐, 다행히 피부는 멀쩡했다. 정신을 차려 땅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보니, 손전등은 고장이 났고, 스마트폰은 멀쩡했다. 이 정도로 세계 돌에 부딪쳐도 문제가 없는 것이 스마트폰인 것을 처음 알았다.

 

 

거의 다 내려오니 멀리 과테말라 시내 일부가 희미하게 보였다. 마치 지옥을 다녀온 듯한 느낌에 몸서리 쳐지기보다는 오히려 안심이 되면서 온 몸이 봄눈 녹듯 녹아 내렸다. 철인의 별명을 가진 K님이 말했다. "저도 웬만하면 걱정을 안하는 사람인데, 내려올 때 어떻게 내려올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모두 잘들 내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걱정을 해서 앞이 캄캄한 것이 아니라, 밤이어서 앞이 캄캄했겠지!." 누군가의 응답이 허공을 향해 몇 발자국 가더니 힘 없이 땅 바닥에 팩 고꾸라지고 말았다.    

 

 

 

 

버스를 탈 지점에 내려와 시커먼 손바닥을 보니 손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너무 섭섭했다. 그렇게도 힘든 곳을 다녀와서 사진 한 장 손에 남은 것이 없었다. 순간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머리에 떠올랐다. 디카프리오가 바다에서 죽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로즈가 할머니가 되어서 옛 애인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예전에 그렇게 사랑했던 디카프리오에 대한 추억은 남아있는데,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고 말하는 로즈의 대사가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디카프리오와 추억이 서린 목걸이를 바다에 던진다. 목걸이는 물속을 왔다갔다 하면서 서서히 바닷속으로 가라 앉는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억과 추억이 사라진다.

 

 

이제 나도 화산을 보고자 했던 용암처럼 분출했던 희망을 조용히 접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다시는 용암을 분출하는 화산을 보겠다는 무모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화산을 볼 기회가 온다고 해도, 가슴 속에 새겨진 오늘 이 기억을 들여다보며, 회상에 젖는 것만으로 만족할 것이다. 내 인생에서 이런 기회가 다시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런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인생은 충분히 즐거울 수가 있을 것이다.

 

11월 23일 화산 1일 투어비: 1인당 약 30,000원(교통비 및 승마비 포함)

11월 23일 숙박비: 2인 1실 25,000원

 

 

(2015년 2월 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