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간 중미 여행기 9: 온두라스에서 엘살바도르로
"온두라스의 그라시아스 그리고 산살바도르"
<A(과테말라 시티)로 갈까, 아니면 B(산살바도르)로 갈까, 많은 생각을 한 후, B 코스를 택했다.>
온두라스의 꼬빤에서 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위 지도 참조). 하나는 과테말라시티로 가는 것이고(A), 또 하나는 산살바도르로 가는 것(B)이었다. 우선 과테말라 코스를 택한다면 길이 잘 나 있어서 편리하게 정규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엘살바도르를 가지 않는다면 몰라도, 엘살바도르를 가야한다면, 과테말라에서 산살바도르를 갔다가 다시 과테말라 시티로 와야 하는 중복된 여정이다.
그러면 B 코스를 택하면 어떨까? 문제는 B코스를 통해 산살바도르로 가는 정규버스는 꼬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 반 정도 가야 나타나는 "라 엔트리다"라는 도시에 있었다. "라 엔트리다"까지 전세 버스를 타고 간 후, 언제 올지도 모를 정규 버스를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설령 라 엔트리다에 가서 버스를 기다린다고 치자. 만약 텅빈 버스가 온다면 몰라도, 손님이 반 정도만 타고 있어도, 엄청난 짐을 갖고 있는 우리 10명이 버스를 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엘살바도르를 생략할까하다가, 중미 국가 중 한 나라를 빼먹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뿐만 아니라,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는 말이 있듯이, 그곳이 가장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으면 어쩌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보면 결국은 차를 빌려, 엘살바도르 국경을 넘어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45만원에 차를 빌려 꼬빤에서 산살바도르까지 가기로 했다. 그리고 기왕에 가는 김에, 로운리 플래닛에서 추천하는 그라시아스라는 작은 도시에 들르기로 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우리와 비슷한 코스로 여행할 사람들에게 중요한 정보이다. 즉, 이 주위를 여행하는 방법은 3가지라고 볼 수 있다. (1) 우리처럼 "테구시갈파 → 꼬빤 → 산살바도르 → 과테말라"로 가는 방법(B코스 선택)과, (2) "테구시갈파 → 꼬빤 → 과테말라 → 산살바도르 →과테말라"를 택하는 방법(A코스 선택), 마지막으로 생각을 달리하여 (3)"멕시코 → 과테말라 →꼬빤 → 과테말라 → (비행기를 타고) 파나마"로 이동하는 방법(중간 국가를 생략하고 핵심 국가만 방문하는 방법)이 있다. 현지에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모든 나라를 다 가지 않고 (3)의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위의 세 가지 방법은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으므로 신중히 생각하여 결정해야 할 것이다. |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듬성듬성 구멍가게가 보인다. 스페인어에 능통한 K님에 따르면 여기에서는 구멍가게를 "뿔뽀리아"라고 한다고 한다. 뿔뽀리아는 본래 "문어"라는 뜻인데, 왜 구멍가게가 문어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문어발처럼 여기저기 생겨서 그럴까? 아니면 구멍가게가 문어를 닮아서일까? 천만에, 구멍가게는 전혀 문어를 닮지 않았다! 그 어떤 경우든 적절한 설명은 되지 않는 듯 하다. 그렇다면 구멍가게는 왜 구멍가게인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사람이 어디 그리 많을까? 구멍이라는 것은 본래 쥐구멍이나 개구멍처럼 좁게 뚫려서 작은 가게를 말하기 때문이라고 할줄 모른다. 그러나 구멍이란 "뚫어지거나 파낸 자리"라는 뜻이지, 작다는 뜻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구멍 가게는 작은 가게란 말은 맞지만, 이유를 대라면 말하기는 쉽지는 않다. 본래 말이라는 것이 이렇다. |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본 길거리 화약 판매상. 이 근처에는 이처럼 화약을 판매하는 가게가 늘어서 있었다.>
<달리는 자동차에서 본 또 다른 자동차: 맨 왼쪽 여자는 계속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고, 가운데 아이는 계속 노래를 불렀고, 오른쪽 여자는 우리를 보더니 갑자기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나무에 걸려있는 것이 새집이다.>
중간에 잠깐 차 한잔 마시기로 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찻집은 사방에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온두라스의 유명한 농장에서 운영한다는 게시물이 사방에 붙어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물고기 어망처럼 생긴 물건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는데, 이것은 새집(bird's nest)이라고 한다.
창문 밖에는 아름다운 농장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먼데 아련히 희미하게 보이는 산을 배경으로 각종 과일 나무와 이름 모를 나무들이 4월의 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꽃과 과일과 풀, 그 사이로 흐르는 개울, 하늘을 나는 새, 그 위를 덥고 있는 희미한 안개,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였다. |
<찻집에 있는 그림: 사탕수수에서 즙을 짜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그곳에서 꿀을 샀다. 온두라스 꿀이 자연산인데, 가짜가 없고, 향도 좋고, 맛도 좋고 더군다나 값도 싸니, 사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큰병 하나에 5,000원, 한국에서 사려면 가짜인지 진짜인지 의심하면서 거금 50,000원은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 나도 꿀, 너도 꿀, 사방에서 사람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꿀꿀거리며 모여들었다. 나도 피터지는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꿀꿀거리며 달려들었다. 순간 조용한 시골 찻집은 꿀꿀 거리며 아우성치는 시골 돼지막을 방불케 했다.
공교롭게도 우리팀 중에 꽃돼지라는 ID를 가진 J님만 꿀을 사지 않았다! 무슨 선견지명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저팔계의 원조인 본인을 무시함에서 오는 무언의 침묵일까, 반항일까? 항변일까? 그것도 아니면 허접한 인간들이 벌이는 무한도전을, TV가 아닌 온두라스의 찻집에서 보게 된 것이 너무 꼴사나워, 꽃돼지의 직위를 내려놓으려고 하심일까? 혹은 삼장법사를 찾아가 밤새 술을 들며 인생무상을 논하려 함일까? 하지만 새벽에 술이 깰 무렵에 쓰린 속을 달래려면 꿀물 한잔 드셔야할 텐데, 꿀을 살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이거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뭐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써 놓고도 "돼지 발톱에 봉숭아 물들이는 것"만큼이나 어색하네. "진짜 돼지도 이 글을 읽고 낯을 붉히겠네." "오잉!"(돼지가 꿀꿀 거리는 소리를 영어로 oink라고 한다) |
그라시아스는 꼬빤에서 약 50키로미터 떨어져 있는, 인구 13,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1526년 "후안 데 차베쓰"라는 스페인 사람에 의해 건설되었다. 조그맣고 나즈막한 붉은 흙으로 지어진 집들이 길 양쪽으로 빽빽히 붙어 있다. 돌이 촘촘히 박힌 길은 격자 모양을 이루며 사방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어떤 길은 깔끔하게 수리되어 있지만, 어떤 길은 돌이 빠져나가고 움푹 패여서 술먹고 가다 무릎 까져서 피나기 십상이다. 자동차를 타고 가도 덜덜 거려서 배가 고픈 사람 허기지게 만든다.
우리가 처음에 내린 공원에는 할 일 없는 몇 사람이 벤치에 앉아 잡담을 하고 있었고, 그 주위에 유일하게 높은 3층 건물의 커피 숍에는 몇 사람이 앉아서 스마트폰을 죽장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교회는 문이 닫혀 있었고, 과거 유물이라고 생각되는 곳들은 수리 중이었다. |
그라시아스 시내에서 그래도 가장 볼 만한 것은 좁은 길옆에 큰 플라스틱 그릇을 껴 안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들이다. 도대체 그 그릇(흔히 우리가 '다라'라고 부르는 것)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자기로 덮혀 있어 알 수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도 물건 사는 데는 관심이 없이 장사꾼의 눈치만 살피고, 장사 아주머니들도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동물원의 원숭이는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은 원숭이를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라시아스(감사라는 뜻)에게 신이 준 최대의 선물은 그라시아인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세월아 네월아, 네가 가든 말든 나는 그저 이렇게 여태까지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테니, 바람이야 불든, 해가뜨고 달이 지든, 물건이야 팔리건 말건 난 아무 것도 몰라," 라는 식의 삶의 태도가 내 눈에 보였다. |
그라시아스의 서쪽에는 조그만 산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까스티요 산 크리스또발"이라고 불리는 성이다. 약간의 요금을 내고 올라가면 현대식 조각품이 몇 개 나타나는데, 진지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좀 허접한 해학적인 조각물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관리인인지 뭔지 하는 사람은 돌로 엉덩이 받치고 쭈그리고 앉아, 손님이 오건 말건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자기 일만 하고 있다. |
그래도 볼 것이라면 옛날에 사용되었던 길고 시커먼 포신(砲身)일 것이다. 한때는 적과 싸우는데 일조를 했겠지만, 지금은 몸통을 잃고 가련하게 시내를 향하고 있는 것이 외롭고 처량하다. 정상에는 건물이 하나 있으나 속은 텅비어 있다. 그 주위에 흰 담장이 있는데, 성벽이라고 하기 보다는, 늙은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종의 의료 도구처럼 보였다. 그 위를 넘어지지 않고 잘 걸어가면 노인이 아니고, 가다가 휘청거린다든지, 넘어 고꾸라지는 날이면 그날로 노인의 낙인을 찍어도 억울할 것 하나 없는 것이다. |
<성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보이는 시내 장면>
오후 2시에 그라시아스를 출발하여 산살바도르로 향했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길로 자동차는 달렸다. 운전수 옆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운전수의 사촌이라고 했다. 키가 크고 말끔한 얼굴에 검은 가죽 잠바를 입은 그는, 옆에 있는 운전수가 졸지 않게 하려고 조수석에 탄 것으로 보였다. 하여튼 그는 말은 많이 했다. 처음부터 산살바도로 갈 때까지 계속 말을 해댔으나, 그 말이 너무 단조로웠다. 그의 말은 오히려 자장가처럼 들렸다. 그는 혼자 웃고, 혼자 말하고, 혼자 북치고 장구쳤다. 우리 운전수는 계속 하품을 해댔는데, 이런 상황에서 운전수가 졸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
중간에 해발 1,900미터를 넘는 고개가 있다. 여기를 넘을 때,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갈지자(之)를 그리며 계속 올라갔다. 흥미롭게도 한 청년이 그 고갯길을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본 사람은 알지만, 자전거로 오르막길을 간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와 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힘들어 더 이상 갈 수 없는 형국까지 왔다. 그때 바로 옆에 트럭 한 대가 다가 왔다. 순간 그는 한 팔을 뻗어 트럭 뒷부분을 잡고 팔을 당겨 요리조리 1900미터 고지를 넘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의 능숙한 솜씨는 마치 중국 곡예단을 보는 듯 신기했으며, 이런 기술은 특허라도 낼 만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의 사진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
오꼬또뻬끼라는 국경 도시에 와서 운전수는 자동차 안에 숨겨둔 번호판을 꺼내 달았다. 여기 온두라스에서는 보통 번호판을 달고 다니지 않는다. 자동차에 번호판이 없는 것이 위법은 아니라고 한다. 사고가 났을 때, 식별은 어떻게 하는지, 내가 스페인말을 할 수 없어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세상 오래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있는 법이다. |
<국경을 넘기 위해 이민국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날밤 어두워진 뒤 얼마 되지 않아 국경을 넘어 산살바도르에 도착했다. 운전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산살바도르 친구를 만나 그 친구가 소개하는 호텔로 가자고 했다. 호텔에 도착해보니 좀 한적한 변두리에다가 호텔 겉 모습이 좀 허접하게 보였다. 그들이 요구하는 2인 1실 비용은 55,000원이었다. 안에 직접 들어가 보니 겉모습과는 달리, 임금이라도 잘 만한 대단한 방이었다. 널직하고 깔끔하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방이다.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선뜩 들어가 자자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5개의 방이 필요하니 좀 깎아서 들어가자고 했다. 주인은 5,000원 정도는 할인해 주겠지만 더 이상은 할인불가라고 했다. "중국 사람 같았으면 더 할인해서 방을 줄텐데. 텅텅 노는 방 가지고만 있으면 뭐해요."라고 우리 팀 중 한 사람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들 호텔 수준이 있으니 더 이상 깎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다른 집으로 가보라고 말했다.
다시 차를 타고 다음 호텔로 갔으나 거기는 빈방이 5개가 없었다. 마침 건너편에 하얗게 페인트를 칠한 호텔이 있었다. 4차선 도로에 인정사정 없이 질주하는 자동차들 틈 사이로 협상팀이 곡예를 부리듯이 목숨을 걸고 건너가는 것이 보였다. 나도 합류하려고 생각하다가, 무단횡단을 하다가는 제명에 못살 것 같아서 포기했다. 길 건너편 호텔에 들어간 사람들은 왜 그런지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만 흘렀다"(기다리는 마음). 혹시 납치를 당하지 않았을까, 별 생각이 다 났다. 가격이 맞지 않으면 나오면 되는 것을 그렇게 오래 있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30분이 지나서 협상팀이 나타났다. 그 호텔은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호텔 주인으로부터 다른 호텔을 소개받고, 그가 직접 전화를 걸어 주어서, 이제 그곳을 찾아만 가면 된다고 했다.
또 물어물어 쪽지를 들고 호텔을 찾아갔다. 그런데 또 엉뚱하게 자기들은 그런 방이 없다고 했다. 이거 동네 북도 아니고, 노인네 게이트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이유없이 우리를 당구공처럼 쓰리 쿠션으로 돌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가고 모두들 피곤하고 배는 고프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침묵만이 산사람을 잡고 있었다. 산살바도르의 한 밤중에.
다시 안내를 받아 간 곳이 Florida 호텔이라는 곳이다. 좀 허름한 호텔인데, 2인 1실에 35,000원이었다. 그래도 내집이 좋다고 들어가 짐을 놓고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개인 공간이 있어서 지옥에서 천당에 온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멍하니 앉아서 생각했다. 처음 호텔에 갔다면 1인당 25,000원이었다. 이집은 1인당 17,500이다. 값의 차이는 7,500원이다. 와, 7,500원이 그렇게 많은 시간과 그 많은 노력의 값어치가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물론 이런 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첫집에서 머물렀겠지만, 앞날을 누가알랴. 이것은 배낭여행자만이 겪을 수 있는 쓰디쓴 영광이었다. |
<산살바도르의 밤>
너무 늦어서 식사하러 나갈데도 없었다. 배낭을 뒤적거리니 오전에 샀던 꿀통이 뒹구르르 방바닥에 굴러갔다. 미수가루가 든 컵에 물을 붓고, 꿀을 한 숟갈 넣어서 휘휘 저었다. 미숫가루나 먹고 잘 생각이었다.
꿀을 보니 오전 중에 꿀을 사면서 돼지처럼 꿀꿀거렸던 생각이 났다. 아, 그때 돼지 대가리는 사 놓을 수 없어도, 하다 못해 돼지 머리를 종이에 그린 후, 돼지 콧구멍에 100원짜리 동전이라도 그려 놓고, 조상님께 잘봐달라고 말이라도 했어야하는데. 때늦은 후회로 마음이 착잡했다. 그때 바로 "카톡"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온 카톡이었다. "야, 오늘 꿀꿀한데 아침부터 쇠주 한잔 한다. 너도 한잔 하고 자라. " |
11월 20일: 꼬빤에서 산살바도르까지 버스 렌트비: 450,000원(1인당 45,000원) 11월 20일: 숙박비: 2인 1실: 35,000원.
(2015년 1월 2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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