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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간 중미 여행기 7:니카라과 3 "마사야와 마따갈파"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5. 1. 14. 21:52



<마따갈파 시내 전경: 광각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

 

 

47일간 중미 여행기 7: 니카라과 3 "마사야 및 마따갈파"

 

 



 

 



<11월 15일 오전 여정>

 

 



 

 

2014년 11월 15일, 아침 10시에 마사야 시장에 들렀다. 어떤 젊은이 두 명이 난데없이 달라붙어 밀착 경호 및 안내를 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장과 뒷장 다 서서, 거들먹 거리면서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밀쳐 길을 낸다. 이런 것을 호가호위(狐假虎威)라고 하는지, 아니면 '사또 덕분에 나팔분다'고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 나름으로 우쭐대는 것 같았다.  

 

 

둘레가 4키로가 된다고 하는 마사야 시장, 그야말로 미로중의 미로다. 조그만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사람이 다니는 통로는 한 사람만 다질 수 있어,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한 사람이 피하든지 아니면 부딪치며 가야한다. 가게 주인이나 손님이나 소리지르고, 부딪치고, 마주치고, 뒷걸음치고, 뭉치고, 헤어진다.

 

 



 

 



 

 



 

 



 

 



<버섯인지 거북이 알인지 알 수 없는 물건>

 

 

수 많은 물건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거북이 알로 보이는 희고 둥근 모양의 물건이 양푼에 담겨있는 것이었다. 검으틱틱한 둥근 공이, 시골 냄새가 나는 용기 속에 담겨져 손님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조금은 다가가기에 겁이나는 물건이다. 말도 못 하고 한참 동안 그 물건을 바라보니, 주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미소를 보낸다. 그 물건을 사라는 것인지, 빨리 꺼지라는 것인지, 별놈 다본다는 뜻인지 알 수 없는 희한한 미소다.

 

 

또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살아 있는 돼지를 어깨에 메고 가는 광경이다. 돼지를 걸려서 끌고가든지, 죽여서 메고 가든지 하면 좋으련만, 무슨 이유인지 산 돼지를 어깨에 메고 가니, 평생 이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는 돼지가 어디 가만히 있겠는가? 하필이면 돼지의 등부분이 운반자의 딱딱한 어깨 부분에 닿으니 돼지 허리가  부러질 듯이 아픈 것은 물어보나 마나일 것이다. 한 마디로 돼지 멱따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그러면 그렇지. 젊은이들이 괜히 폼을 잡고 우리를 안내한 것이 아니었다. 이 젊은이 두 명은 헤어질 때 우리에게  안내비를 요구했고, 그의 추천으로 사먹은 과일집은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웠다. 우리는 알고 당하기도 하고, 모르고 당하기도 했다.  결국 그들은 그 시장 바닥에서 닳고 닳은 뺀질이였던 것이다. 여기에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은, 다른 사람이 여기에 가서 이런 일을 당하지 말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수 많은 직업 중 어쩌다가 저런 일을 직업으로 택하여 인생을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야하는지, 그들이 측은해서 해본 이야기다.  

 


 



<Apoyo 호수>

 



 

 

그라나다에서 마지막으로 간 곳은 아뽀요 호수다. 화산이 식고 호수가 되어 버린 곳이다. 23,000년전 강력한 화산 폭발이 있은 후, 세월이 흘러 만들어진 호수다. 호수의 직경은 약 6킬로미터, 맑은 호수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주위에 무성한 나무와 풀 때문에 근처에 갈 수가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물 속에서 수영을 하거나 배를 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 또 주위에서 기타를 치고 춤을 추며 동전 한푼 받는 젊은이, 말의 고삐를 잡고 말탈 사람을 기다리는 마부, 그리고 자기 식당에서 식사하라고 소리치는 종업원만이 한 낮의 적막을 깨고 있다.

 

 



 

 



 


 



<11월 15일, 마타갈파로 가서 1박 후, 16일 다시 마나과로 돌아왔다.>

 

 

니키라과에 와서 처음 마나구아 시내를 구경했고, 역사 도시 "레온"과 "그라나다"를 가 본 우리는, 커피 농장이 있다는 산악지역의 대표적인 도시 마따갈파에 가보기로 했다.

 

 



 

 

12시반쯤 아뽀요 호수를 출발하여 중간에 점심 식사를 하고, 마따갈파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몇 군데 돌아다니다가 마르티나스 플레이스라는 호스텔에 여장을 풀었다. 파나마 시티에서 도미토리에 자고, 이번이 두 번째 도미토리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셈이다.

 

 



 

 

그날 밤 시내에서 닭 3마리와 돼지 고기를 사와 우리가 직접 굽고 끓였다.  집을 떠난 지 처음 해보는 요리라 그런지 모두들 옛 초등생 시절 소꿉장난하듯 즐거워했다. 전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니카라과의 첩첩 산중에서 이런 기회를 갖다니 이게 꿈이 아닌가 여겨졌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그리고 자신을 위해, 여행의 노고에 대해 위로의 술잔을 들었다. 우리는 잠깐 추억에 빠졌다. 한국을 떠나 거쳐온 여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밤이 이슥하도록 잠자리에 들기를 아쉬워했다.

 

 



<주인집 딸과 그의 친구의 딸>

 

 

이 호스텔의 주인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어떻게 하다가 이곳에 와서 호스텔을 운영하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그의 친구 부부와 딸이 와 있었고, 이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 어울어져 적막한 마따갈판의 밤이 야시장을 방불케하는 왁지지껄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스페인어와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가 절제없이 난무하는 밤이 되고 말았다. 결국 한국어가 장중을 압도한 것은 물으나마나다.

 

 



 

 

다음 날 새벽에 여느 때와 마찬 가지로 동네 한 바퀴 돌며 사진 촬영을 하는 중이었다. 전에 보지 못 하던 이상한 풀인지 장식인지가 전깃줄에 듬성듬성 매달려있었다. 어떻게 보면 풀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누가 일부러 옷감으로 만들어 놓은 장식 같기도 했다. 이 도시의 지도자들이, 이 도시의 특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이곳에 올 줄 알고 환영한다는 뜻으로 매달아 놓은 "마따갈파의 노란 손수건"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풀씨가 날아와서 전깃줄에 터를 잡고 싹을 틔워 자라는 것인가? 그러러면 씨앗이 전깃줄에 붙어 있어야 하고, 습기가 있어야 하고, 유기물이 있어야할 것이 아닌가? 말이 그렇지 어떻게 해서 씨앗이 날아와 전깃줄에 붙어 자란단 말인가?

 

 

그 당시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이런 장면을 계속 마음 속에 두고 또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훗날 이야기지만, 이런 장면은 멕시코의 칸쿤에서 멕시코 시티로 가면서 한 마을의 전깃줄에서 떼거리로 몰려있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이것이 자생식물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즉 씨앗이 바람에 날려와 전깃줄에 자기 집을 지었던 것이다.

 

 



 

 



 

 



<필자가 찍은 사진>

 

 

다음 날 아침 그곳을 떠날 때, 주인은 함께 단체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한국에서 자기 호텔에 손님이 온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이것을 자기 호텔의 facebook에 올려 놓겠다는 것이었다. 몇 사람이 사진을 찍었는데 그중 나도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 한 할머니가 주위를 맴돌며 화면에서 사라지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것이 기회다 싶어 왔다리 갔다리 하는 할머니를 포함한 사진이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이다.

 

 



<마르티나 게스트하우스 facebook에 우리를 찍은 사진과, 필자가 써놓은 댓글(하단 우측)이 달려있다.>

 

 



<마르티나스 호스텔에는 토끼도 한 마리 있다!>

 

 



<셀바네그라 커피 농장의 위치>

 

 



<셀바네그라 커피 농장 경내 위성지도>

 



<커피 농장에 붙어 있는 Youth Hostel 간판 모음. 왜 이런 것을 붙여 놓았는지 알 수 없다.>

 

 



<커피 농장의 벽에 붙어 있는 커피(?) 운반 그림. 서양인이 들어가 있는 동양화 같다는 생각이 들어 촬영해 보았다.>

 

 



 

 

셀바 네그라 커피 농장은 깊고 깊은 산중에 위치해 있었다. 마침 우리가 이 커피 농장에 도착했을 때, 대문에서 장총을 든 사람이 얼씬거렸다. 뭔가 섬뜻했지만, 그의 태도로 보아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지는 않는 듯 했다. 그의 안내가 아니라 지시대로 차를 주차했다. 그리고 안내자도 없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몇백 미터 올라가니 지붕이 풀로 뒤덮인 건물이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어둑어둑한 실내에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예식장이나 교회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였다. 더 이상 길이 없어 내려오니 호수가 보였는데, 호수 근처에 식당과 매점이 있었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말은 커피 농장이지만, 사실은 커피 농장 겸 호텔이나 콘도로 사용되는 거대한 구역으로 보였다.

 

 



 

 



 

 



 

 



 

 

다음으로 우리를 안내한 곳은 커피 공장이었다. 공장은 돌아가지 않고, 전에 커피를 가공했던 기계만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구경시키려고 남겨 놓은 커피가 흰살을 드러낸채 공장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각종 시설이 낡은 것으로 보아, 이곳은 전에 사용했던 구공장이고 새로운 공장은 다른 곳에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이 공장에 들어가 잠깐만 있었는데, 문제는 여기에 터를 잡고 사는 불개미였다. 바닥을 보니 개미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이까짓게 뭐 대수랴 싶어, 좀 어물쩍거리다가 내려온 것이 화근이었다. 자기들의 영토를 침입한 적군을 공격하려했음인지 몇 마리가 몸 속에 들어가 등이며, 다리며, 발까지 물어대는데 그야말로 마치 살을 오려내는 듯 따끔거렸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적절한 피난처를 찾아 옷을 벗고 개미를 제거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하는 빛이 돌기 시작했다.    

 

 



 

 



 

 



 

 

조금 더 내려가면 벗겨진 나무가 붉은 모습으로 차렷자세를 취하며 도열해 있는 도로가 나온다. 그 도로에서 더 내려가면 호수가 나오는데, 호수에는 거위 몇 마리가 자기들의 영토에 온 외부인에 경계심을 보인다. 이들은 도망가지도, 그렇다고 공격하지도 않으면서 고개를 요리조리 흔들며 꽥꽥거린다. 어렸을 때 거위의 공격을 받아본 적이 있었기에, 조금은 무서웠다. 나는 예민한 거위를  피해서, 커피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들어갔다.

 

 



 

 

장작을 머리에 지고가는 몇몇의 남자가 우선 눈에 띄었다. 물에 젖은 수십키로는 될법한 땔감을 머리에 이고 가는 것이 안스럽기도 하다. 조금 더 들어가니 한 아주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빨래를 하면서 열심히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혹시 어렸을 때 들었던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와 같은 곡조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빨래가 끝난 여인들은 긴 장대에 받친 빨래줄에 빨래를 널고 있었다.

 

 

좀더 들어가니 모든 집이 다 비슷하게 지어져 있었다. 밖은 초라했으나 안은 화려해 보였다. 반쯤 열린 문으로 새어나온 전축 소리가 자그만 커피 마을의 분위기를 돋구고 있었다. 도대체 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슬쩍 고개를  들어 보니,  방으로 들어오라는 한 아줌마의 손짓이 보인다. 아줌마가 왜 오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괜히 가서 어물쩡거리다가 따귀라도 한 대 맞지 않을까 지례 겁이 났다.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요,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이라.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

 

 



 

 



 

 



<전망대 위치>

 

 



<마따갈파 전경>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마따갈파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쎄로 아빤떼 전망대이다. 사실 로운리 플래닛에 나와 있는 이곳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중간에 수퍼에서 잠시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차를 세워놓았는데, 근처에 있던 불량배들이  돈을 내라고 차를 에워싸고 위협적인 언사를 하는 바람에 겁을 먹었다.

 

 

다음으로 전망대를 찾아간다는 것이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자동차 밑이 산길에 놓여진 돌과 턱턱 부딪쳤다. 운전수가 좁은 산길로 계속 올라갈 때, 저 양반이 저 죽을 줄 모르면서 어디로 가는가 불안감이 앞섰다. 그러나 운전수는 길도 아니고, 길이 또 아닌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길을 오기로 가는 듯 했다. 순간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마라."는 속담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그는 계속 갔다. 다음 순간 "재는 넘을수록 높고, 내는 건널수록 깊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건 해결책이 없이 무작정 달리는 기차와 같았다. 어떤 사람은 내려서 걸어가자고 했고, 어떤 사람은 차를 돌리자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마침 그 때, 윗통을 벗고 여자친구와 함께 오는 젊은이의 말을 듣고, 회항한 것은 천우신조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땅콩 회항 사건이 아니라, 베트콩과의 전쟁만큼이나 어려운 난항(難航) 사건이었던 것이다.   

 

 



 

 



 

 

한 시간 이상 땀을 흘리며 올라간 산의 정상에는 거대한 마리아 상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탁트인 아래쪽으로 마따갈파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얕은 집들이 빨간 지붕을 뒤집어 쓰고 알콩달콩 살고 있는 부부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한쪽에는 넘실거리는 언던이 꿈틀거리며 멀리 퍼져가다가 구름과 뒤섞여 하늘에 닿아 있었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을 가슴에 품고 자신이 이런 정상에 올라온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목달아난 닭처럼 썰썰거리며 어찌 할 줄 몰라했다. 정신을 차리고 음식을 입에 넣는  사람들 사이로 아이들이 분주히 뛰어다녔다. 들개인지 산개인지, 누렁개인지 검은개인지 알 수 없는 개가 있었다.  허리에 이상한  줄무늬가 있는, 장작처럼 마른 개는 땅위에 그려진 요상한 검은 무늬와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순간, 멀고도 먼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니카라과의 이런 오지까지 와서 바람을 맞아가며 청승스럽게 빵조각을 먹고 있는지 생각해보니,  우습기도 하고, 장하기도 하고, 바보같이도 느껴졌다. 귀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귀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귀신보다도 훨씬 요술을 잘 부리는 불가사의한 존재다. 어떤 환경에서도 견뎌내며 살아왔고, 상상만 하면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래 열심히 살자. 뜻하는 대로 살자. 이대로 계속 사는 거다.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에 명랑하게 살아라. 언젠가는 끝날 것이기에 온 힘을 다해 맞서자.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기회는 늘 지금이다. 울부짖는 일 따윈 오페라 가수에게나 맡겨라."(니체의 "권력에의 의지" 인용)

 

 



 

 



 

 

 


<전망대 동영상: 100그램도 안 되는 소형 비디오로 촬영한 것이어서, 화면이 아주 많이 움직입니다. 너무 떨려 어지러울 수도 있습니다.>

 

 



 

 

다시 니라카과로 돌아오는 길은 낯설음에서 낯익음으로, 타향에서 고향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돌아오는 길처럼 느껴졌다. 날이 저물고 어두워진 거리로 자동차는 소리 없이 달렸다. 소나기가 내리더니 서쪽 하늘로부터 한 줄기 서광(瑞光)이 찬란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도시에 가로등도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멀리 나무 모양을 한 인공 조형물이 노랗게 빛을 내면서 내 곁에 다가왔다 쏜살같이 사라졌다. 니카라과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황홀한 빛처럼 소리없이 왔다가 연기처럼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11월 15일 숙박소: Matagalpa "Martina's Hostel": 침상 1인 1개당 10,000원
11월 15일 자동차 1일 렌트비: 120,000원(1인 당 12,000원. 연료 승객 부담 조건)

11월 16일 숙박: 마나구아 시내.  2인 1실 35,000원
11월 16일 자동차 1일 렌트비: 90,000원(1인당 9,000원. 연료 승객부담 조건)


 

(2015년 1월 1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