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2일 아침 6시에 산호세 호텔을 나섰다. 오늘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까지 가려면 하루 종일 걸릴 것이기 때문에 일찍 출발한 것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중미의 국경을 통과하는 국경 버스 중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티카 버스다.
중미라는 것이 작은 나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어서, 마치 경상도에서 전라도를 갈 때 큰 변화가 없듯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를 가도 큰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이다. 파나마와 코스타리카와는 달리 니카라과는 조금 못 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듬성듬성 보이는 집들이 라오스나 스리랑카에 있는 집들처럼 허름해 보이고
좀 쓸쓸해 보였다.
얼마나 갔을까? 아이스케키 통 비슷한 상자를 둘러맨 허술한 복장의 남자가 버스에 올랐다. 그는 상자에서 각종 음식을 꺼내어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케익을 꺼내어 팔았다. 지간이 좀 지나자 이번에는 각종 음료수를 꺼내어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알 수 없는 음식을 꺼냈다. 마치 입에서 끝없이 종이로 된 줄을 꺼내는 마술사처럼 그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상자에서 꺼냈다. 그 조그만
상자에 도대체 무엇이 그리 많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뿐 아니라 그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컵에 든 뜨거운 커피를 흘리지 않고 운반한다는 데 명수였다. 도대체 이런 생활을 얼마나 오래하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이다지도 능숙하게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컵 가득히 찰랑거리는 뜨거운 커피를 운반할까? 이런 사람을 위한 대회는 왜 없을까?
코스타리카와 니카라과의 국경 도시에 도착한 것은 12시 30분경. 출국을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입국을 하는데도 그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영겁이나 되는 듯한 많은 시간을 죽장 기다렸다.
한국말을 조금 하면서 왔다갔다 하던 한 장사꾼이 나에게 다가와 자기가 빨리 수속을 밟아 줄테니 돈을 달라고 말했다. 나는 한국말로 대답했다. "야, 이 사람아, 나 혼자 간다면 자네 말대로 하겠네. 그러나 여기 버스 승객 중 한 사람이라도 통과하지 못하면 모두 못 가는 판국에 당신이 도와준들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일은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라, 티카 버스 운전수가 신경써야할
일이네." 그의 말에 간혹 현혹되어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우리 버스는 직경 200키로나 됨직한 거대한 니카라과 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달렸다. 넓디 넓은 호수와, 호수 한 가운데 있는 화산이 나무 틈 사이로 간헐적으로 보였다. 이때쯤 사람들도 너무 오랫 동안 버스를 탔는지 엉덩이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이리 앉았다 저리 앉았다, 장시간 승차에서 오는 피곤함과 지루함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에 도착한 것은 오후 5:30분. 10시간 이상을 버스에서 보낸 셈이다. 일부 동행인들은 호텔을 구하러 택시 타고 시내로 갔다. 나머지는 어두워지는 버스 정류장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들을 기다렸다. 정류장 옆에서는 젊은이들이 악기에 맞춰 춤 연습을 하다가 제풀에 기가 꺾였는지 하나둘 자리를 떴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 때, 호텔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7시가 넘었다. 어두운 밤이었다.
근처 쇼핑 센터에 있는 식당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메뉴판에 그려져 있는 음식 중, 값도 저렴하고 맛있어 보이기도 하여 랍스터를 시켰다. 우리가 한국에서 보는 카나다 랍스터와 모양은 달랐으나 맛은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값은 몇 분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들 랍스터 안주에 맥주를 얼큰히 마시고 난 뒤에야 비로소 생기가 돌고 입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음 껏 먹고 마신 후, 왁자지껄하며 호텔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A님이 핸드폰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서둘러서 다시 식당에 가보았으나, 잃어 버린 핸드폰이 그 자리에 있을 까닭이 없었다. 문제는 핸드폰을 언제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밥먹고 이야기를 하다가 핸드폰을 식탁에 놓았는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누군가가 가져갔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지난 번 내가 쇼핑백을 잃어 버린 것도 확실한 기억이 없고, 이 번도 확실한 확증, 물증, 기억이 없이 잠깐 어쩌는 사이에 핸드폰을 잃어 버린 것이다. 그 뒤에 나는 마호병과 핸드폰 커버를 또 잃어 버렸는데, 역시 언제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모른다. 중미에서는 일순간이라도 자기 몸에서 떠난 물건은 "어"하는 사이에 "영원히" 남의 물건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눈감으면 코베어가는 것이 아니라, 눈깜빡이는 사이 코를 그냥 다 뜯어간다.
<우리 호텔>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여기 음식의 특징은 밥에 꼭 팥을 넣어서 팥밥으로 먹는다는 것이다. 이 팥밥은 여기뿐만 아니라, 중미의 여러 나라에서 먹을 수 있었는데, 값은 저렴했고 맛은 한국의 팥밥과 거의 비슷했다. 일년에 특별한 날만 팥밥을 먹는 우리 나라 사람에게, 아니 팥밥은 우리 나라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에게, 니카라과 사람들은 일년 내내 팥밥을 먹는다고
말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 드지 않을 것이다.
<여행 안내소에서 여행 정보를 얻는다.>
마나구아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여기 택시의 특징은 합승이 기본이고, 멀고 가깝건 간에 시내를 갈 때는 1인당 1000원씩 받는다. 택시 기사에게 혁명 광장으로 가자고 했는데, 가고 보니 차들이 쌩쌩 달리는 허허 벌판이다. 지도를 보니 승리의 광장이었다.
승리의 광장 로타리에 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서 있는 한 인물상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니카라과 권투의 전설 "알렉시스 아게요"였다. 3회에 걸쳐 세계 복싱 챔피언었던 알렉시스는 권투선수로 이름을 날린 것을 기반으로 마나과 시장까지 하게되더니, 1992년에는 마침내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
<알렉시스 상>
<알렉시스 권투 동영상: 유튜브에서 다운받아 편집했다. 상영시간 약 1분>
얼마 전 KBS 아침 마당에 손봉호 교수가 나와서 한 이야기가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처럼 동상이 없는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느 정도만 잘 해도 그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기보다는 그의 단점을 보고 웬만해서는 칭찬을 잘 하지 않고, 더구나 영웅 대접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 나라 대통령치고 욕을
먹지 않는 대통령이 없고, 여당이건 야당이건 정치인을 싸잡아서 노상 싸움만 하는 집단의 무리라고 비난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다 그놈이 그놈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해댄다. 그 사람의 장점을 보기는커녕, 심지어는 없는 이야기도 지어내서 무지막지한 욕을 해대고 깔아뭉갠다. 인터넷을 통해 조금이라도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라. 인정사정 없이 욕부터 해대는 사람 때문에 하루 기분이 나쁘고, TV고 컴퓨터고 보고 싶지 않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래도 욕을 덜 먹는 것이 연예인과 운동선수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도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가는 사죄를 하고 한 동안 또는 영원히 TV 화면에서 사라져야 한다.
큰 길을따라서 계속 가면 나오는 것이 메트로폴리탄 성당(新聖堂)이다. 우리가 이 성당에 도착했을 때, 20-30명의 사람들이 멀리 성당을 바라보고 침울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우리에게 접근하려고 하자, 어디서인지 모르게 경찰이 나타나 이들을 멀리 쫓아냈다.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뭔가를 달라는 손짓을 했지만, 경찰의 눈치를 살피는 이들의 몸짓이 우리에게 전달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 눈에는 이들이 모두 거지로 보였고, 경찰이 관광객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던 것으로 보였다.
1993년에 완공된 이 성당에서 흥미로운 것은 지붕이 수 많은 돔으로 덮혀있다는 것이다. 이 돔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구조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 둥근 지붕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려고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전국 63개의 성당의 지부를 나타낸다고 하니 63개일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 목적지인 역사 공원으로 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날은 덥지, 몸은 지칠대로 지쳤지, 택시를 타고 가면 좋겠지만, 다수가 걸어가겠다는 표시를 했으니 나 혼자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낮 열대의 태양이 무자비하게 머리 위를 내리치고 있었다. 자동차는 쇳소리를 내며 쌩쌩 달리지, 지열은 얼굴까지 올라와 화끈거리지, 바람 한 점 없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지, 묵묵히
걷는 내 입에서 단내 쓴내가 한 겨울 소 콧구멍에서 나오는 허연 입김처럼 올라왔다.
<"기아 자동차" 제품도 있는 것으로 보아 길에서 팔려고 내 놓은 자동차 의자 커버인 듯 하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호수에서 혹시 발이라도 담글 수 있을지 가졌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호수로 내려가는 길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호수에 시퍼런 녹조가 끼어서 곁에 가기에도 겁이 났다. 이제 절망은 다시 원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때 붉은 교통 신호에 자동차가 멈추어 있는 데, 한 소년이 여러 개의 공을 하늘에 던졌다가 받는 요술을 부리고 있었다. 여기 저기 다니다 보면, 네 거리에 대기하고 있다가 차가 멈추면 차 앞으로 다가와 쇼를 부린다든지, 노래를 한다든지, 또는 몇 명이 집단 체조를 한 후, 자동차에게 다가가 금전을 요구하는 것을 가끔 볼 수가 있다. 이 소년도 그런 종류의 하나인데, 길에서 저글링하는
것은 나는 처음 보았다. 멀리서 사진 한 방 찍었다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어느 순간 그는 내 앞에 나타나 능숙한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과 눈 주위에 하얀 페인트를 바르고, 흰공에 집중하는 그의 눈은, 마치 삶은 달걀에 검은 콩 하나 박아놓은 것처럼 유난히도 흰자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 보였다. 내 주머니에 동전 몇푼이 있었는데, 내가 얼마줄까 망설이는 사이에 그는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어 동전 한푼 남기지 않고 꺼내어 바람처럼 사라졌다.
역사 공원은 마나구아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에 위치해 있다. 이미 지칠대로 지쳤지만, 힘을 내서 땅을 구르면서 올라갔다. 정상에는 몇쌍의 남녀가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정상에서 호수 위를 통과하여 줄을 타고 내려가는 스포츠 센터가 있었다. 손님이 없어 낮잠을 자던 종업원들이 나보고 한번 타보라고 권유했다.우리 가운데 그 상황에서 밧줄을 타고
활강을 감행할 수 있는 사람은 철인이라고 불려지는 사나이 한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그도 어디에서 휴식을 취하는지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역사 공원 정상에 있는 조형물>
<역사 공원에서 마나구아 호수 쪽을 바라본다.>
<"뛴다는 것"과 "걷는다는 것"의 차이점: 앞의 두 여학생을 보면 두 발이 모두 공중에 있다. 두 발이 모두 공중에 떠 있으면 뛰는 것이고, 적어도 한 발이 땅에 닿으면서 이동하면 걷는 것이다. 뛰는 것과 걷는 것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두 발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다. 내가 여행기에 이런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걷건, 뛰건, 내비두면 되는 것을.>
<토마스 보르헤 마르티네스 무덤 및 묘비: 불이 타오르고 있다.>
문화 유적지가 많이 모여있는 지역에 가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기념비에 타오르는 불이다. 바로 토마스 보르헤 마르티네스 무덤에서 타오르는 불이다. 그는 어떤 사람이길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마나구아를 비추고 있을까? 2012년 5월 2일자 한국일보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니카라과의 반독재 혁명단체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의 창설멤버 중 마지막 생존자인 토마스 보르헤 마르티네스가 지난달 30일 타계했다. 지난달 초 폐렴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아온 보르헤는 수술 후 합병증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81세.
게릴라 전사 출신인 보르헤는 산디니스타 지도자 9명 중 1명으로, FSLN 창설을 주도했으며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독재
정권의 전복을 기도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오르테가 집권 후에는 내무장관과 의원, 페루 및 에콰도르 대사 등을 지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보르헤의 사망에 조의를 표하며 사흘간을 국민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인터넷에서 인용>
<문화 궁전 및 국립 도서관>
<안티구아 성당: 1929년에 지어졌으나 1972년 지진으로 부서진 것을 다시 재조립해 놓은 것이다. 자세히 보면 벽에 금이 가 있다.>
<혁명 광장 근처의 또 다른 상들>
<혁명 광장>
<근처 마을 사람들이 공터에 나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루번 다리오 상>
루번 다리오 로타리가 있고, 루번 다리오 상이 있다는 것은 이 사람이 시인으로서 니카라과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존경을 받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시는 어떤 것일까?
마침 다음 날 새벽에 마나구아의 동녘하늘은 붉고 노란 기운이 보는 이를 압도하고 있었다. "밤새 내 두뇌를 흐르던 폭풍우 때문일까? 적포도주 같은 밤에 나의 슬픔을 잠재우려고 했던 것일까? 새벽이 언제 올까?(이 부분 루벤 다리오 시 이용)." 밤새 가슴 조이고 기다린 아침 놀이 마나구아의 동녘하늘에 그림처럼 펼쳐졌던 것이다.
루벤 다리오 시 한 수 소개하고 오늘 여행기를 끝낸다.
Nocturn
Silence of the night , a sad, nocturnal silence--Why does my soul tremble so? I hear the humming of my blood, and a soft storm passes through my brain. Insomnia! Not to be able to sleep, and yet to dream. I am the autospecimen of spiritual dissection, the auto-Hamlet! To dilute
my sadness in the wine of the night in the marvelous crystal of the dark-- And I ask myself: When will the dawn come? Someone has closed a door-- Someone has walked past-- The clock has rung three--If only it were She!--
저녁기도
밤의 침묵이여, 슬픈 밤의 침묵이여--- 왜 나의 영혼이 이렇게 떨고 있는가?
내 피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부드러운 폭풍이 내 머리를 스친다.
불면증! 나는 잠을 잘 수 없지만, 꿈을 꿀 것이다.
나는 정신적 해체물의 저절로 떨어져 나온 표본, 스스로 되어 버린 햄릿
포도주같은 한밤 중, 놀랄 만한 밤의 결정체 속에, 나의 피를 희석시킨다.
내 자신에게 묻는다.
새벽이 언제 오지?
누군가가 문을 닫았다.
누군가가 지나갔다.
괘종 시계가 3시 종을 울렸다---그것이 그녀라면 얼마나 좋을까?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필자 번역>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슬퍼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시의 특성 중의 하나가 "애매모호성"이기 때문이다. 본래 시인이 애매모호하게 써 놓았으니,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