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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간 중미 여행기 4:코스타리가 아레날 화산. "붉은 용암 어디 가고, 흰구름만 오락가락"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5. 1. 3. 08:32



 

 

47일간 중미 여행기 4: 코스타리카 아레날 국립공원

 

"붉은 용암 어디가고, 흰구름만 오락가락"

 

 



 

 



 

 

11월 10일, 오후 4시가 좀 넘어서 산호세에 도착했으나, 호텔을 정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 시내 구경은 엄두도 못내고 저녁 먹기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저녁 먹을 식당도 찾을 겸, 시내도 구경할 겸, 시내 중심부를 걸었다. 몇 시간 전 북적거리던 시내는 순식간에 적막강산으로 변했고, 외로운 가로등과 휑하니 부는 바람만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가끔 가다 가로등 아래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사람만이 눈에 띄었다. 그때 한 곳에서 밝은 불이 켜져있고,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떠드는 것이 보였다. 큰 대문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손님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다. 여기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검은 신사복을 입은 한 남자가 능숙하게 영어로 말했다. "The president is inside(대통령이 안에 있다.)" 대통령이 있기에는 경비가 좀 허술한 것 같아, president가 대통령인지 회사의 사장인지 물었다. 왜냐하면 president에는 대통령 이외에도 "총장"이나 "사장"의 뜻도 있기 때문이다. (본래 "preside"에는 "의장이 되다" 등의 뜻이 있어서 의장 노릇을 하면 president이다.) 나의 물음에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President of Costa Rica, sir." 사전을 찾아보면 "Costa=해안, Rica=부유한"으로 나와 있다. 영어의 Coast Rich로 보였다. 즉 "부유한 땅덩어리"란 뜻일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눈을 비비고 보니, 건물에 선명히 "TEATRO NACIONAL"이라고 써 있었다. 즉 그곳이 바로 산호세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 "부유한 나라"의 국립 극장이었던 것이다.

 

 



<국립 극장>

 



 

 

조금 더 걸어니 중국가(中國街)라는 간판이 보였다. BARRIO CHINO(구역, 중국인)라고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세계 어디를 가나 대도시라면 거의 다 있는 차이나 타운으로 보였다. 이미 시간이 늦어 불이 꺼진 집에 많았지만, 여기 중국가 중 몇 집은 불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집에 들어가, 전에 중국 여행 중 배운대로, 사람 숫자대로 음식의 가지수를 시켰다. 그러나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저녁까지 늦은 판국이라 음식은 순식간에 동이났다. 어디 더 얻어 먹을 데가 없나하고 걸신들린 듯 사방을 둘러보는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자갈밭 수레바퀴 굴러가듯한 소리처럼 요란했다. 음식값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더 시킬가 하다가 맥주나 몇병 마시기로 했다. Bavaria라는 상표의 맥주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맥주밖에 없다. 정말 입에 쩍쩍 들어붙었다. "거, 참, 음식값 꽤 비싸네." 한 사람이 말했다. "중국 음식을 여기서 먹으니까 그렇지, 이 사람아.  한국 음식을 다른 나라에 가서 먹어봐요. 그것 비싼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음식을 먹어라." 그날 새롭게 새겨둔 한 마디였다.  

 

 



 

 



 

 

다음 날 새벽 근처 촬영을 나갔다. 여행을 할 때, 같이 간 멤버 중에 사진사가 많으면 노상 들이미는 카메라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만, 이번 여행처럼 사진사가 하나도 없으면, 혼자 다녀야 하니 그것도 좀 뻘쭘한 일이다.

 

 

날이 밝아가는 철로를 따라 혼자서 한참을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 뚱뚱한 아줌마가 철로 옆에서 실례를 하다가 내가 다가가니 기겁을 했다. 설마 이른 새벽에 웬 잡놈이 철로를 따라 걸어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듯 했다. 그 아주머니는 "설마가 사람잡는다"라는 한국 속담을 몰랐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을 보고 나도 기겁을 했다. 그러나 어디 피할 수도 없는 평행선 철로처럼, 우리는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 하는 운명이었다. 우리는 운명처럼 마주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그렇게 서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갔다. 그 순간, 이제는 멀어졌을 그녀의 뒷모습이라도 찍어볼까 하다가 꾹 참고 그냥 걸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아니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서로가 어색하고 민망해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렇게 헤어진다면 낭만이라도 있겠지만.  나는 "추억이 나를 울릴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송대관 노래 참조>

 

 



 

 

동네 길가에 연이어 있는 벽에는 누군가가 벽화를 많이도 그려 놓았다. 이런 벽화는 한참을 걷는 동안 계속되었다. 출근 때가 되었는지, 사람들이 골목에서 쏟아져 나왔다. 열대의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복장도 반팔에서, 쉐터까지 다양했다.

 

 




 

 



 

 



<우리가 묵은 "포사다" 호텔: 겉은 좀 초라하나 내부는 화려하다.>

 

 



<이렇게 창을 통해 사선으로 들어오는 아침 빛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갈색 바닥에 갈색의 개. 순하디 순한 순뎅이가 카메라를 바라본다.>

 

 

호텔로 돌아왔다. 마침 아침 햇살이 사각으로 들어와 비스듬히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이 찬란한 빛은 아침 햇살 특유의 매력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벽이며 바닥이며 강아지가 앉아 있는 의자 밑까지 파고 들어 나의 심금을 흔들었다. 심지어 벽에 걸어둔 사진틀의 먼지까지 선명하게 노출시키는 아침 햇살이었다. 반사되어 비치는 빛은 식탁 위에도 그리고 그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과일에게도 유감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아 과일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쥬스를 건네 주는 팔이,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모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으로 느껴졌다.

 

 



<먼지까지 보인다>

 

 



 

 


 



 

 



 

 

호텔 벽에는 화산 사진이 있었다. 용가리처럼 불을 뿜어내는 아레날 화산이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나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뛴다, 는 윌리엄 워즈워드를 생각했다. 인간은, 아니 나는, 왜 화산에 열광할까? 그것은 아마도, 저 깊고 깊은 땅속에서 수백 미터나 쌓인 흙과 돌을 뚫고 뛰쳐나오는 어마어마한 불기둥의 "힘" 때문이리라. 또 한 가지: 본래 불은 흙을 덮으면 꺼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화산은 덮건 말건 훨훨 탄다.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훨훨 타기 때문에 화산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산호세 시내를 빠져나가는 길은 참으로 어려웠다. 아직 출근 시간이 아닐텐데도 길은 자동차로 엉키고 설켜, 몇 미터 전진하기 힘들었다. 길 옆에는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힘차게 걷는 사람과 어슬렁거리는 사람, 그 사이에 간간이 거지가 깡통을 앞에 놓고 앉아 있기도 했다.  

 

 



 

 



 

 

일단 시내를 빠져나가자 자동차는 시원스럽게 달렸다. 숨가쁘게 달리던 자동차가 한숨을 놓을 때쯤에는 대지는 사탕수수 밭으로 변해있었고, 어어, 하는 사이 자동차는 끝없이 펼쳐진 밭과 잔디를 보면서 쏜살같이 내빼고 있었다.

 

 



 

 



 

 

우리 렌트카의 운전수는 말이 많고, 유모어가 풍부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그가 아무리 말을 해봤자, 그의 스페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이었지만, 그는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해댔다. 우리는 그를 "박보약 2"라고 당당하게 명명했다. 박보약2는 운전을 하면서도 온갖 손짓 발짓을 자유자재로 했으며, 웃다가 코를 씰룩거리기도 하고,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혼자 웃었다. 그의 이런 동작이 우리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즐겁자고 하는 일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를 "주책이라 할 수 없는 귀여움"으로 표현한다.  

 

 



 

 



 

 



<길을 가다보면 자주 보이는 안내표시 중의 하나>

 

 

아레날 화산 근처에 오자,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수 많은 펜션과 리조트와 같은 숙박소였다.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런 비수기에는 10%도 손님이 차지 않았을 것이다. 넓은 들에 아름답게 지어진 휴양시설을 보면서 저런 곳에서 하루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그냥 하루 지내자고 마음 먹으면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야, 뭐, 우리가 묵으려고 생각하면 바로 그곳이 우리의 숙박소가 되는 것이다. 죽장에 삿갓쓰고 떠도는 김삿갓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단지 김삿갓이 갖고 있는 두루마기와, 지팡이, 그리고 삿갓만 없을 뿐이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니, 문제는 무거운 짐이었다. 보통 큰 배낭과 작은 배낭 또 어떤 사람은 제 3의 배낭을 가지고 다니는데, 등 뒤에 하나, 앞에 하나, 옆에 하나, 뭐 이것은 6.25때 피난 나오면서 등에 짐을 지고, 머리에 이고,  손에 아이잡고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 짐을 지고 로버트처럼 걸어다니는 것이 우리였다. "좀더 자유로우려면 짐을 줄여라, 그것이 너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니라", 이것이 그날 새삼그럽게 되씹어 본 교훈이었다.

 

 



 

 

갑자기, 아,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거대한 아레날 화산이었다. 시커먼 산에 듬성듬서 초록이 자리잡고 있었다. 정상에는 뿌연 물체가 맴돌아서 저것이 연기인지 구름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잠시 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구름을 걷혀내니 실낱같은 한 줄기 연기가 서쪽으로 뻗쳐나갔다. 아, 그래, 저것이 화산 분화구에서 나오는 연기다!

 

1968년 7월 29일, 평화로운 아레날은 힘차게 용암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몇 개의 마을을 삼켰고, 사람들은 기겁을 해 도망쳤다.  순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치솟고 흘러내리는 용암을 보기 위해 수 많은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내용은 전망대에 붙어 있는 타일로 만든 그림에서 알 수 있다.

 

 



<타일로 장식한 벽의 일부>

 

 

수십년이 지난 지금 용암 분출은 멈추었다. 용암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도 여기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주변에 볼 것은 많다. 화산 주위에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있고,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호텔이 있다. 호텔 앞에는 멋진 휴양 풀장이 있으며, 그 주위에는 이름 모를 나무와 열매 그리고 어슬렁 거리는 동물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안내 책자에 따르면 근처에 폭포와 온갖 새가 지저귀는 등산로가 수없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어디를 가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먹는다"는 것이다. 기뻐도, 슬퍼도, 배가, 고파도, 배가 불러도 먹는다. 산책을 한 뒤에 한 잔의 바바리아 맥주와 함께 안주로 먹는 비푸스테이크는 아레날 화산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이라는 것에 먹는 즐거움이 없다면, 여행이 얼마나 삭막할까?

 

 

어찌보면 한국사람처럼 먹는 것을 좋아하고 그 맛을 즐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모임에는 "먹는 것"이 우선이고, 회의니 대담이니 연수니 발표니 뭐니 하는 것은 항상 뒤에 쳐진다. 뭘 하다보면, "밥먹고 합시다"라고 누가 꼭 말하는 법이고, 군대에서는 훈련하기 전에 "밥 많이 먹었나?"라고 말 하지 않으면 군대의 교관이 아니다. 오죽하면 인사말에 "진지 잡수셨습니까?"가 나올까? 나는 세계 여러 나라 말을 모르지만, 아마도 어떤 나라 말도 "식사했냐?"는 말이 인사말인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인사말 Good morning(좋은 아침)을 듣고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날이 좋은 아침이면 모르겠지만,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쳐도 인사는 Good morning이었다. 미국 사람들이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구먼, 좋고 나쁜 것을 구분 못하니.  비가 오는데 무슨 좋은 아침여. 하지만 그때 영어 선생님께 이유를 물어보지 못 하고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기원문을 배우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Good morning은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서술문이 아니고, "좋은 아침이 되기 바란다(I wish you good morning."는 기원문이기 때문에, 날씨가 좋건 나쁘건 언제나 사용되는 말이다!!

 

 



 

 



 

 

아레나 화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레날 호수가 있다.  노를 젓는 사람들이 목을 빼고 우리를 기다렸지만, 정작 우리가 배를 타지 않으니 처진 어깨를 더욱 늘어뜨리고 쓸쓸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타고간 배가 남긴 수 많은 동심원과, 이 동심원이 뻗고 부딪혀서 새로운 동심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 소형 배 하나가 지나간 흔적이 저렇게 멋있는 그림을 호수 위에 펼쳐 그릴 줄이야.   

 

 



 

 



 

 



<근처에 불개미가 이사를 간다. 풀잎을 뜯어가는 것이 신기하다. >

 


 



 

 



 

 

근처에 있는 Fortuna라는 작은 도시는 아레날 호수에 오며 가는 사람들이 들르는 곳이다. 가운데 공원이 자리잡고 있고, 주위에 상점과 식당이 늘어서 있다. 커피숍에는 사람들이 무성영화 배우처럼 소리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쪽에는 교회가 있었고, 교회 옆에는 조그만 정원이 있었다. 정원에 새 한 마리가 꽃에 앉아서 날아가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 새를 한 동안 쳐다보았다. 나는 그 새가 신기해서 보고 있지만, 그 새는 자기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나를 경계했을 것이다. 더 이상 경계를 할 수 없다는 듯 새는 푸른 하늘로 높이 날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흔들리는 꽃잎만이 한 동안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발디온천>

 

 

"발디"라는 온천탕이 있었다. 기왕에 온김에 온천욕이나 하자고 했다. 먼저 들어가본 사람이 언짢은 인상을 하고 돌아왔다. "온천욕만 하는데 3만 얼마이고, 식사까지 하면 5만 얼마라네요." 무슨 목욕하는데 3만원이 넘나?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그때 누군가가 제안을 했다. "박보약 투에게 말해봅시다. 산호세로 가는 길에 어떤 마을로 가봅시다. 될 수 있으면 외국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오지 마을에 가보자고 합시다. 정말 구석탱이에 쳐박힌 마을에 가서 우리도 그들을 보고 놀라고, 그들도 우리를 보고 놀라는 곳으로 가 봅시다."

 

 



 

 

운전수 박보약 2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가더니 아스팔트를 벗어나 덜덜 거리는 자갈밭길로 돌아 들어갔다. 길 옆에 민가가 있었으나 모두 대문이 닫혀 있었다. 집 옆에 바로 묘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는 집 근처의 빈터에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것으로 보였다.

 

 



 

 

더 이상 차가 들어가지 않아 걸어서 가기로 했다. 알 수 없는 화초가 들판에 가득 자라고 있었다. "저것이 유카(Yucca)다,"라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여기도 유카, 저기도 유카 밭이다. 저 많은 유카가 어디에 사용되는 지가 궁금했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유카는 연근, 우엉, 마처럼 뿌리채소로 당뇨환자에게  좋은 식물이라고 하며, 관절통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고 했다. 또한 혈압이나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 쪽에  동네 아이들이 들판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철조망 아래 파인 구덩이를 통해 아이이들은 누워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치 육군 훈련병 낮은 포복하여 철조망을 통과하듯이, 순식간에 철조망을 통과하여 철조망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 아이들은 달려 도망갔다가 다시 오고, 또 달려 가기를 몇 차례, 눈치를 살피며 우리가 집단으로 작은 마을에 온 것을 신기해했다.  

 

 









 

 



 

 

하루의 수업이 끝났는지, 아니면 어디에 놀다 오는지 또 다른 동네 여자 아이들이 슬금슬금 우리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웃을 듯 말 듯 수줍은 표정이었다.

 

 

여자 아이들이 지나가니 이번에는 남자아이들이 웃으며 다가왔다. 남자 아이들은 영어로 무슨 말을 하려고 하였으나, 말이 되지 않자, 머리를 박박 긁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킬릴 거리며, 밑도 끝도 없이 "Thank you"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가더니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끝내 그들의 입에서 영어는 나오지 않았다. 나도 그들이 왜 이 늦은 시간에 집에 오는지, 이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 물어보려고 하였으나, 끝내 상호 의사는 전달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또 머리를 긁다가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아니, 저, 저"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조금 오다가 그들이 궁금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나에게 웃음을 보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순간 마치 옛 애인을 잃는 듯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날은 점점 저물어 가고, 하늘에는 몇 마리 새가 날고 있었다. 그 새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도 아이들과 눈이 마주칠까? 못 볼 것을 보는 것처럼 숨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저 앞을 보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땅거미가 짙게 드리우는 아레날의 한 농촌 길위로 .......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김소월의 "가는 길">

 

 


 

11월 10-11일: 포사다 호텔: 2인 1실. 1박당 45,000원

11월 11일: 아레날 공원 1일 투어 자동차비: 400,000원 ÷ 10명 = 일인당 40,000원

*코스타리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물가가 비쌈.


 

(2015년 1월 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