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간 중미 여행기 13: 과테말라 3 "과테말라 시티"
<아띠뜰란에서 과테말라 시티로>
2014년 11월 25일 아침 8시, 빠나하첼 시내를 빠져나간다. 맑은 하늘에 시원한 공기가 코끝을 스친다. 과테말라로 가는 우리 차 운전수와 이야기 중, 그는 이 지방에서의 안전에 관해 자기의 견해를 밝힌다. 이 지방에서 가끔 외국인을 상대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만, 사실은 대단히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곳에 사는 인디오들의 주 수입원이 관광인데, 만약에 나쁜 소문이 퍼져서 관광객이
오지 않으면 자기들은 굶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을 상대로 불상사가 일어나면, 인디오 자신들이 그 범법자를 끝까지 추적 색출하여, 거의 반신불수로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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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아침 식사를 한 식당: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우리 버스 기사다>
<식당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큰 칼을 차고 일하고 있다.>
<중간에 안티구아 근방에서 화산 연기를 다시 보게된다.>
과테말라 시티에 도착한 것은 12시 경이다. 티카 버스 회사에서 운영하는 콘도 형 호텔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마침 손님이 우리뿐이어서, 3층으로 되어있는 이 콘도의 방을 마음대로 골라서 널찍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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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경 센트럴 파크에 도착하여 우선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센트럴 파크에서 멀지 않은 곳 지하에 재래 시장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광장시장과 비슷하게 각종 가게와 식당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시장 내부가 너무 비좁고 사람이 많아서 완전히 혼이 빠질 상황이었다. 여기에 과테말라 사람들은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우리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정신이 없어 음식을 먹지 못하겠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한번 먹어보자고 하였다. 나도 다른 과테말라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고 대충 시켜서 먹는데, 정신이 없어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연히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그리고 주인에게는 아주 맛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음식이 아주 맛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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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니 거기가 바로 중앙공원이었다. 무슨 축제 기간인지 아니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행사를 하는지, 물밀 듯이 몰려드는 사람들로 중앙공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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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거대한 인형이 우리를 보자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는 돌아오지, 눈은 안 오지, 날은 덥지, 사방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은 들려오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테말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는 즐겁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니 솜인지 스티로폼인지 모르지만 어디서 복슬거리는 하얀 물체를 여기저기 깔아 놓았다. 플라스틱으로 눈사람을 만들어 하얀 색 솜털 위에 세워 놓고, 티셔츠를 입고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지붕은 지붕대로 눈꽃 모양으로 장식을 하고 고드름을 닮은 막대기를 처마 밑에 매달아 놓았다. 한껏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그 하얀 집 안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 집 앞에 붙어있는 간판에는 huawei(중국의 스마트폰 회사)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 내가 직원들에게 화웨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아르바이트 소녀들은 자기가 어떤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지
모르고 춤추기와 사진 찍기를 그저 시키는대로만 하고 있었다. 아니 세상은 어쩌면 아무 것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하고 즐겁기만 하면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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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썰매장은 자동차의 타이어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는 시설이었는데, 아이들도 아니고 어른들이 그것 한번 타보고자 뙤약볕에서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니, 참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보면, 겨울과 여름이 너무 길고, 봄과 가을이 너무 짧기는 하나, 역시 한국이 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에 속하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 하다. 한 가지 더 덧붙이면,
지진까지 없는 나라, 그곳이 바로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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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박물관으로 가는 중이었다. 옆에 트럭이 지나가는데 그 안에 두 사람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였다. 쓰레기 청소부로 보이는 이 노동자들의 삶이 어떤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었다. 이런 곳에 누워 휴식을 취해도 마음만은 편한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삶의 종류도 다양하고,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많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 사람들에게 "먹고만 살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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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다고, 시간은 없고 과테말라 시내에서 본 것은 없고, 허둥대다가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서둘러서 박물관에 갔으나 이미 문이 닫혀있었다. 과테말라 시내에 왔지만, 사실 본 것이라고는 중앙공원 하나 뿐이었다. 어떤 관광객이 서울에 와서 광화문 하나 보고 해가 저문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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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강도가 아니라 한국인 식당촌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과일 파는 소년이다.>
저녁 식사로 한식이나 제대로 먹어보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과테말라의 한 구석에 있는 한국인 촌을 찾아 들어갔다. 입구에 오니 한국어 간판이 눈에 띄는 것이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큰길에 있는 식당의 문이 모두 닫혀서 아무데도 차를 주차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식당 옆 공터에 차를 대고 울타리에 매달린 초인종을 눌렀다. 한국 사람이 나와서 왜 왔는지 물었다. 식당에
식사하러 오지 무엇하러 왔겠는가? 그러면 식당 사장은 뻔 한 것을 왜 묻겠는가? 말을 들어보니 혹시 강도라도 들어올까봐 식당 문을 걸어 잠그고 아는 손님만 받아들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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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에 홍어 찜을 시켰다. 삼겹살에 홍어찜은 랍스터와 곶감을 함께 먹는 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지만, 이국 땅에서 먹어보니 그저 맛있기만 했다.
우리는 식당 사장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산 출신인 사장은 한일합섬에서 19년을 근무한 후, 한국에 돌아가도 마땅히 할 일도 없어서, 처음에 온두라스에서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뒤 과테말라로 옮겨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도대체 과테말라에 사는 것이 위험한지 어떤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실제로 총질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총질이 사실은
한국인과 한국인과의 원한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한국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테말라 사람에게 돈을 주고 보복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살다가 가끔 신문에서 보는 것이, 월남인은 월남인을 공격하고, 중국 사람이 중국 사람에게 위법 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개를 데리고 다니면, 개는 다른 개를 보면 사납게 공격하지만, 다른 동물을 보면 멀뚱멀뚱 지나간다. 모두다 다 동료가 사실은 적인지도 모르겠다.
돈은 얼마나 버는지 물었을 때, 이 사람의 대답도 역시 먹고 살만큼 벌고 있다고 했다. 종업원의 임금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주방장 월급이 60만원, 써빙하는 사람은 30만원, 설거지만 하면 20만원이라고 했다. 6-7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는데, 사장 말대로라면 한달에 종업원 월급으로 200만원이면 족해 보였다. 또한 야채와 음식 재료가 저렴해서 큰 돈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 음식
값이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웬만큼만 하면 먹고 살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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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사장의 소개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수퍼에 들렀다. 각종 식품에서, 용구, 심지어는 CD에 비디오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손님 중에는 더러 과테말라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대부분의 교포들이 그렇듯, 외국에 있는 한국인의 영업 대상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한국인끼리 원한이 생기고 총질이 발생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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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7시 반경 숙소에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따발총 소리가 나는 듯 요란했다. 이크, 드디어 일이 났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알고 보니 소나기가 호텔 앞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지붕을 강타하는 소리였다. 밤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그 소리로
보아, 아마 대추만한 빗방울은 될 듯 했다.
비가 곧 그치고 잠시 지나온 여정이 머리 속을 스쳤다. 한국을 떠나온지 벌써 20일이 지났다. 며칠 지나면 전체 여정의 반이 자나게 되고, 일단 여정의 반이 지나면 나머지 날은 쏜살같이 빨리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 동안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본 것이 없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과테말라 북부 여행은 좀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되길 마음 속으로 바라며
캔맥주의 뚜껑을 힘차게 잡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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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버스 대절비 1인당 약 20,000원
11월 25일 숙박비 1인당(침상 1개당) 약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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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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