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간 중미 여행기 14: 과테말라 4 "코반과 세묵 참페이"
<과테말라 시티에서 코반을 거쳐 란킨으로>
2014년 11월 26일 아직도 어두운데, 누군가가 곤히 잠든 사람들을 깨우고 다녔다. 모두들 눈을 비비면서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보통 나이를 먹으면 새벽 일찍 눈을 뜨게 되고 다시 잠이 오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만, 계속되는 강행군에 몸이 지쳤는지, 몇 시에 잠자리에 들건, 날이 밝아야 눈이 떠지는 체질로 바뀌어 버렸다.
그날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다. 코반으로 가는 길은 안개가 짙게 끼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버스 기사 안토니오도 피곤하고 지쳐 있어서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털보 기사는 성격이 원만해서 침착하게 전방을 응시하며 능숙하게 차를 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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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잠깐 쉰 어느 마을>
코반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경, 큰 쇼핑센터에 들어갔다. 별로 크지도 않은 도시에 이렇게 큰 쇼핑 몰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처음에는 같이 식사를 하다가, 이제 세월이 흐르니 점점 각자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 스스로 알아서 음식을 시켜 먹는다.
이런 곳에서 가장 안전한 음식 주문 방법은 메뉴판에 그려진 음식을 보거나,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저것"이라고 그냥 한국말로 하면 된다. 사실 우리가 돌아다니는 나라가 생활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좋은 음식, 비싼 음식을 먹어보았자 한국에 비하면 비싸지도 않지만, 그래도 여행을 다니다 보면 습관상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자꾸만 싼 음식을 찾게 된다. 이런 버릇은
한국에 오면 모두 없어지는데, 해외에 나갈 때마다 비싼 음식을 먹는다고 결심을 해도 왜 그런지 실행하기는 어려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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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반의 칼바리오 성당>
코반은 해발 1320미터에 위치한 도시로 독일의 영향을 받은 도시다. 19세기에 독일인들이 이곳에 이민 와서 정착한 도시로 이들은 이곳에서 카더몬(cardemon: 향료의 일종)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망하자, 미국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치를 지지했던 독일인들은 패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과테말라 시티를 떠날 때 오던 비는, 칼바리오 성당에 들어갈 때까지도 간헐적으로 내리고 있었다. 이 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한 없이 길다는 데 있다. 등산을 하듯이 올라가야 하는데, 막상 올라가면 세월과 역사에 부대낀 흰 성당 건물이 하나가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이 건물을 잘 돌보지 않는 듯 했다. 건물은 검은 때가 여기저기 묻어 있고, 교회당
건물 밖에 있는 여러 시설도 측은하고 초라하게 사람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여기에서 보면 코반 시내가 훤히 보이고 그 너머 안개 낀 산이 아스라히 보인다. 로운리 플래닛 필자의 말을 빌면, 이곳 코반을 방문할 때마다 몰라보게 달라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본다고 하였으나, 내가 보기에는 코반이 발전하려면 아직도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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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킨은 코반에서 약 60키로 떨어진 곳으로 박쥐가 나오는 동굴과 수영을 할 수 있는 강이 있다고 하나,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란킨에서 약 11키로 떨어진 세묵 참페이를 보기 위해서 란킨에 온다. 우리가 비포장 도로를 통과하여 란킨까지 왔을 때, 어디서인지 모르게 두 명의 젊은이가 나타나 영어로 세묵 참페이로 가는 트럭을 무료로 제공해 준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대신 자신들이 소개하는
집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1) 란킨에서 자고 다음날 세묵 참페이로 가서 구경만 하고 올 것인지, 아니면 2)이들이 제공하는 무료 차를 타고 가서 좀 비싸도 그곳 숙소를 이용하며 먹고 즐기다 올 것인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생돈으로 차비를 물기보다는 이들의 권유대로 무료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날 저녁 먹을 음식과 술 등을 란킨에서 구입한 후,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목적지인 세묵 참페이로 향하는 둔탁한 트럭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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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킨에서 세묵 참페이까지는 약 11km, 차는 겨우 자동차 한 대의 바퀴만 굴러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보수를 하지 않아, 시멘트 바닥은 거북 등처럼 깨지고 갈라졌고, 이것마저도 어떤 곳은 비에 씻겨 내려가, 그야말로 6.25때 폭격을 맞은 듯 엉망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돈 들이지 않고 비행기 타보는, 불행인지 행운인지를 얻게 되었다. 운전수 옆에 탄 사람은 어떻게라도 몸을 사려가면서
갔다. 그러나 트럭 뒤에 통나무 판자를 걸고 그 위에 걸터앉아서 가는 사람은, 우선 땅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지 않으려고 젖 먹던 힘을 쏟아 트럭 옆을 잡아야 했다. 그들의 엉덩이가 공중에 떴다 내려 앉았다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마치 뜨거운 솥에서 생콩이 볶은 콩으로 변해가면서 더위를 견디지 못해 핑핑 하늘로 솟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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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탄후 약 40분이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하니, 몸도 고개도 하도 떨려서 심한 풍랑에 배멀미를 한 것보다도 더욱 정신이 혼미했다. 그러다가 운명인지 명운인지 알 수 없지만, 그토록 소중히 간직했던 DSLR 카메라를 땅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죽는 놈 더 죽어라는 식으로 하필이면 카메라는 돌 위에 떨어졌고, 카메라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또 한번 뒈져라 뒈져라 하면서 길가에
졸졸 흐르는 물 속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왜 돌 위에 카메라가 떨어지고, 또 그날 따라 내가 가는 날 비가 그리 왔는지 모르겠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번개보다도 더 빨리 카메라를 꺼내, 먼저 건전지를 분리시켰다. 그리고 마른 수건으로 겉에 묻은 물기를 제거했다. 어두운 밤에 모두들 배낭을 메고 봉사 문고리 잡듯이 앞사람을 따라 가는데, 정신이 혼미하여 카메라를 만지작 거릴 만한 여유도 없었다. "사람들로부터
뒤쳐지면 안되지, 카메라 어떡하지, 빨리 가야지, 카메라 고장이면 큰일인데", 이런 생각만 하면서 마음 속으로 울면서 그냥 걸었다. 카메라가 고장나면 큰일 나는 것이, 전에 가지고 다니던 보조 카메라(소니 RX 100 II)도 무슨 귀신이 씌었는지, 이번 여행에서는 집에다 두고 왔기 때문이다.
그날 밤 숙소를 배정 받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밖으로 나와 몇 사람과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도 마음 한 곳에서는 카메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다시 호텔 방으로 돌아와 보니 밤10시 50분경이었다. 카메라의 물이 거의 다 마른 것을 확인하고, 마치 성스런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의 심정으로 두 무릎 꿇고,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건전지를 장착했다.건전지가 "쓰윽" 소리를 내며
들어가는 소리가, 저승사자의 "이리 와라 나와 함께 가자"처럼 무섭게 들렸다. 나는 평소에 해본 적이 없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외우면서 떨리는 손으로 off에서 on으로 살짝 카메라의 스위치를 올렸다. 카메라에서는 아주 작은 소리로 "딸까닥"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 그러나, 카메라에서는 아무런 동작도, 불빛도 없었다. 결국 마지막 "딸까닥" 소리는 카메라가 마침내 운명했다는 "꼴까닥" 소리였던 것이다. 이곳은 너무 오지라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11시가 되자,
발전기에서 나는 굉음도 "파드닥"거리며 꺼지니, 이제 "낯바닥" 들고 살 용기도 없어졌다. 이 어둡고 적막한 과테말라의 산골에서 내가 할 일은 "후다닥" 잠이나 자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런 일로 "혓바닥" 깨물고 죽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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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 이후 여기에 실린 사진은 모두 스마트 폰으로 촬영된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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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밖으로 나와보니 우리가 사용한 Greengo 호텔은 작은 산과 아름다운 강으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붕의 각이 뾰죽하게 세워진 방갈로는 색깔별로 지어져 있었고, 정원에는 여러 시설이 잘 갖춰져 놀며 지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최근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작은 강에는 어망으로 고기를 잡는 사람이 보였고, 먼 산에는 한가롭게
산책을 하는 여행객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에 온 것이 세묵 참페이를 "보러" 온 것인데, 세묵 참페이를 "즐기러" 왔어야 했고, 설령 즐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생각없이 그 속에서 "머물러" 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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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묵 참페이 가는 길에>
<세묵 참페이 입구에 과테말라 관광객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길을 잘 못들었다. 길이라고 생각되는 희미한 곳을 따라가니 도저히 올라가기 힘든 길이 나왔다. 그래도 마땅히 다른 길도 없어서 고집을 부리고 계속 올라갔으나, 또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은 다시 내려와 개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올바른 길임을 알아차렸다. 이곳이 과테말라에서 유명하기도 하고 입장료도 받고 있으니, 좀 안내판이라도
세워놓으면 좋으련만, 본인이 알아서 가라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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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곳 세묵 참페이는 작은 황룡(중국 구채구에 있는 명소)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조금 걷다가 눈을 들어보니 비가 와서 흑탕물이 강바닥 전체를 덮고 흘러가는데, 어떻게 보면 계단식 논처럼 황룡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설마 저것을 황룡이라고 부를까,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 있었다. 좀 기다렸다가 뒤에 오는 과테말라 사람에게 물으니, 여기가 바로 관광명소인 바로 그 세묵 참페이라는
것이다. 비록 이곳이 훌륭하기는 하나, 중국의 구채구나 황룡을 직접 본 나로서는, 크게 감동을 느끼기에는 아쉬운 면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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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더 위에서 내려다 보기 위해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때 우리 호텔에 있던 갈색 개가 나타나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에이, 좀더 일찍 와서 안내를 했으면 쓸 데 없는 고생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왜 이제 나타난거야,라고 말하면서 그를 바라보니, "아저씨 운동 좀 하셔야지. 내가 일부러 그런거여."라고 말하는 듯, 개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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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따라서 산길을 약 30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마침내 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세묵 참페이는 아래에서 본 것과는 딴판으로 마치 아름다운 계곡에 초코 우유를 쏟아 붇고, 붓으로 모양을 낸듯, 계단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며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작은 황룡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규모와 물빛은 황룡만 못했지만, 그 틀만은 그래도 황룡을 많이 닮아 있었다. 과테말라 사람들이야 이런 광경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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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비가 온 후 세묵 참페이>
<*2012년에 찾아 갔던 중국의 황룡>
<*우리가 묵은 Greengo Hotel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세묵 참페이 사진: 물이 맑았을 때의 모습. 황룡을 많이 닮았다.>
<바람에 넘어진 나무를 원주민이 잘라 운반하고 있다. >
<아이들이 비스켓 비슷한 음식을 팔러 다닌다.>
<호텔로 다시 돌아온다.>
호텔에 돌아오니 이미 점심 때가 되었다. 이스라엘 출신의 호텔 책임자는 우리의 점심 주문을 받고, 요리하는 사람을 거들어 함께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근처에 동굴이며 다른 구경거리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우리는 "즐기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보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볼거리를 찾아 떠나야 한다고 말해주고 빙긋이 웃었다. 그도
그저 빙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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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판으로 사용되는 호텔 나무 벽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아시아 사람으로는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이 이미 이곳을 다녀갔다. 우리 중 몇 사람도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이름 석자 남겼다. 언젠가 먼 훗날 나를 아는 누군가가 와서 "아, 이 사람이 다녀갔네" 하고 말 한마디 해줄까?
호텔 직원들과 함께 마지막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그리고 악수를 하면서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나는 아마도 다시는 못 볼, 나를 둘러싼 나지막한 산과 휘돌아가는 강에게 아쉬움의 작별을 고했다. 떠나는 내 발 옆에는 아까 세묵 참페이를 함께 했던 안내견이 엎드려 머리를 땅에 대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껌벅거리는 그의 눈에 우리와의 이별의 아쉬움이 묻어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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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자동차 1일 대절비: 1인당 약 20,000원
11월 26일 숙박비: Greengo Hotel: 2인 1실 약 35,000원(란킨에서 세묵 참페이까지 왕복 트럭 요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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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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