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간 중미 여행기 12: 과테말라 2 "아띠뜰란 호수 (Atitlan Lake)"
<과테말라의 "안티구아"에서 "아띠뜰란 호수"로>
<안티구아에서 아띠뜰란으로 가는 버스에서 촬영>
2014년 11월 24일 오전 6시 안티구아의 호텔을 출발하여 아띠뜰란 호수로 향했다. 달리는 버스에서 밖을 내다보니 멀리 듬성듬성 마을이 보이기도 하고, 푸른 농작물로 가득한 밭이 보이기도 했다. 가끔 가다 보이는 가게에서는 옥수수 잎으로 만든 기념품 양(羊)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집안에 장식물로 판매될 것이라고 했다. 또 한 가지, 과테말라로 가는 버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서, 차 문이 닫히지 않았다. 차 문을 열어 놓은 채, 조수가 자신의 팔로 사람들을 껴 안고 가는 것이 목격되었다. 옛날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시골 풍경을 회상하면서 한 동안 눈을 감고 추억에 잠겼다. |
<승객이 너무 많아 차 문을 열고, 조수가 사람들을 끌어 안고 가고 있다.>
<휴게소 식당 앞에 있는 호떡 장사>
<휴게소 앞에 있는 과일 가게>
<각종 토산품이 역광을 받아 선명하게 빛난다.>
<옥수수 잎으로 만든 각종 동물: 크리스마스 장식용이라고 한다.>
<아띠뜰란 호수 근처에 있는 기념품 판매상. 아이가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
<아띠뜰란 호수를 묘사한 그림을 판매하고 있다.>
아띠뜰란 호수에 도착하자 나모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과연 말로만 듣던 아띠뜰란 호수가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짙푸른 호숫물과 멀리 그림처럼 우뚝 솟은, 우산을 공손하게 반쯤 펼쳐놓은 듯한 화산 봉우리가 단아한 여인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위를 둘러싼 검푸른 산을 배경으로 잔잔한 호숫물이 바람에 찰랑거리면서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과 어울려 한 바탕 춤을 추고 있었다.
세계의 3대 호수는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 그리고 이 아띠뜰란 호수다.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아띠뜰란 호수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했고, 혁명가 체 게바라는 혁명 운동을 하다가 가끔 이곳에 들러, 혁명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표현을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로운리 플래닛의 작가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호수 중의 하나라고 스스로 밝히는 호수가, 바로 저기에 그 자태를 뽐내고 있지 않는가!
본래 우리는 잠깐 차에서 내려 구경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장을 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룻밤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었다. 서둘러 항구 근처에 숙박소를 정하고 배를 빌려 호수 근처에 있는 마을로 유람을 떠났다.
*아띠뜰란 호수: 면적은 127.7㎢이다. 해발고도는 1,562m, 둘레는 120km, 깊이는 320m, 길이는 19km, 너비는 9.6km, 수심은 평균 300m이다. 화산이 붕괴해서 형성된 칼데라(caldera) 호수로서, 과테말라시티에서 서쪽으로 80km 지점, 화산성(火山性)의 중앙고원에 있다. 아티틀란 화산, 산페드로(San Pedro) 화산, 톨리만(Toliman) 화산 등 화산군에 둘러싸여 있으며, 호반에는 파나하첼(Panajacel)을 중심으로 호수를 따라 고기잡이와 사냥을 하는 마야 인디오의 조그만 전통 마을들이 흩어져 있다.<인터넷에서 인용> |
<화가가 그린 아띠뜰란 호수와 화산>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지도에, 그날 다녀온 네 마을을 표시하였다. >
배가 출발하자, 사람들은 실성을 한 듯 소리를 지르고 만세를 불렀다. 여기 흰 포말을 내뱉으며 굉음을 내는 이 배를 탄 사람이라야 비로소 인간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듯,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흥분하여 어쩔 줄 몰라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참, 놀고 있네. 기고만장한 꼴을 더 이상 못 봐주겠네"라는 말 한 마디 틀림없이 했을 것이다. |
산티아고 마을에 가까이 오자 고기를 잡는 어부가 여기 저기 눈에 띄었고, 사이사이에 대형 선박을 타고 느긋하게 바다 위를 유람하는 서양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른 쪽과 왼쪽으로 거대한 화산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마을 근처에서는 집단으로 빨래하는 주민들이 한가로운 과테말라 어촌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
<주민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가끔 보였다.>
<원주민이 짠 옷감과 각종 목각을 파는 가게가 많이 보였다.>
<점심 식사를 하는 중, 옆에 있는 고양이가 극도의 경계심을 보인다. 옆에 있는 그릇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한 장 찍었다.>
<산티아고 사람들이 길가에 앉아 있다.>
아마도 산티아고에서 가장 특이한 것 중의 하나가 막시몽이라는 신전인데 과테말라의 전통 신전 중의 하나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이 신이 담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시골에 가면 산, 강, 나무, 심지어는 돌멩이에도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어렸을 때 어머니가 고목이나 큰 바위에 손을 비비면서 기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왔다. 그런데 이 신은 담배뿐만 아니라, 럼주를 포함한 각 종 술도 좋아한다고 하니 너무나도 인간적인지 너무나도 신성(神性)이 투철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작은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일단은 컴컴하여 눈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 다음 서서히 보이는 것은 담배 안개 자욱한, 뿌연 공간 뿐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드디어 담배의 신 입에 물려진 갈색의 두툼한 담배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옆에 예수의 모습도 보이고, 예수 제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분위기는 엄숙하다 못해 칼 바람이라도 부는 듯 으스스하다. 담배의 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경비원인지 아니면 신을 모시는 무당인지 알 수 없지만, 내 눈에는 그저 무시무시한 조폭처럼 보였다. 사진을 찍으려면 입장료 이외에 또 돈을 내야해서, 일행을 대표해서 나만이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카메를 내동이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곳에 머문 단 몇 분간은, 한 마디로 내 돈 주고 쫄아 꼼짝 못하고 벌벌 떨면서 긴 공포의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
근처에 산티아고 교회(Iglesia Parroquial Santiago Apostol)가 있다. 넓은 광장을 지나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가 바로 예배당이다. 마침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무슨 행사가 있는 듯 했다. 바닥을 꽃으로 장식하고 있었고, 한 사람이 분무기로 바닥에 깔린 꽃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설교단은 화려한 꽃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그것으로 모자란지 꽃다발이 계속 반입되고 있었다.
이 교회의 특이한 점은 가장자리에 성인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 놓은 조형물인데, 이 사람 모양의 조형물이 입고 있는 복장의 색이 위치에 따라 다르다. 주민들이 스스로 옷을 만들어 이 성자들에게 옷을 자주 갈아 입힌다고 한다. |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산 페드로 마을이다. 부두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언덕에 듬성듬성 고급 주택이 있었고, 고급 식당이나 상가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여기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벽화였다. 원색을 이용하여 천연색으로 그려진 여기저기 널려있는 벽화는 금방이라도 벽에서 사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이 생생했다. |
세 번 째 목적지는 산타 클라라 마을이다. 작은 동네이지만, 동네 앞에 놓여있는 잔잔한 호수에는 수초가 있어서 고기가 많이 모이는 듯 했다. 동네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낚시를 하거나 그물로 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 비둘기처럼 평화로웠다. |
아이들은 자신들이 잡은 피라미를 닮은 물고기를 손으로 들어 보여주기도 하고, 천연색 천으로 엮은 바구니에 담긴 물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고기를 잡다가 그만두고 무슨 생각에 잠겨 하염없이 물속을 응시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물 속에 있는 단 한 마리의 고기도 놓치지 않으려고 고기의 동선을 추적하는 아이도 있었다. |
붉은 해는 점점 서산에 기울고, 호수 위에는 소형 목선을 탄 어부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어부들은 수초 사이를 다니면서 쳐 놓았던 그물을 건져내고 있었고, 어떤 이는 어망을 물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어떤 때는 고기가, 어떤 때는 수초가 어망에 걸려 나왔다. 가끔 가다 날아가던 해오라기가 어부에 바짝 붙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모습이 신기로워서일까? 아니면 한심해서일까? 아니면 어망에 걸린 피라미를 자기에게 던져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날 잡아 먹을 테면 어디 한번 해봐라"라는 배짱일까? |
가끔 물속에는 전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건축물이 눈에 띄었다. 이 호숫물은 25년간 물이 차오르고, 그 다음 25년간은 수면이 내려간다고 한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수 많은 학자가 연구를 했어도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저 물 속에 있는 건축물은 아마도 수면이 내려갔을 때 건설된 것이리라. |
<산타 클라라 마을에 전시된 그림: 마야의 전설에 따르면 사람의 모습은 옥수수 모양을 본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
<산타 클라라의 한 가게의 판매용 그림>
<산타 클라라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농구시합을 하고 있다.>
그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산타 마르코스다. 부두에 배가 닿자 몇 명의 아이들이 가이드를 하겠다고 달라들었는데, 그 중에서 두 아이가 우리를 안내하게 되었다. 모자 챙을 뒤집어 쓴 아이와 긴 머리를 한 여자 아이는 우리 앞을 성큼성큼 걸어가며 여기가 무엇이고, 저기가 무엇이라고 설명을 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감이 이 아이들의 기분을 들뜨게 한 것으로 보였다. 사람은 그 걸음걸이로 보아 그의 마음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패잔병의 걸음 걸이를 상상해보고, 사랑하는 연인이 만날 때의 걸음걸이를 상상해 보라. 이 아이들의 걸음 걸이가 바로 연인들이 오랜만에 만날 때의 그런 걸음걸이였다. |
이제 해는 저물고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산 마르코스가 진정한 아띠뜰란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좁은 길을 따라가면서 길 양쪽에 지어진 집에서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 그리고 잔디가 잘 갖춰져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디밭에 차려진 탁자 위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잔디밭에 누워 독서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도 스페인 학원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기회가 주어진다면, 안티구아가 아닌 바로 이곳에서 한 두 달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사색하고 휴식을 취한다면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되어 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헉슬리나 체 게바라도 바로 이곳에서 며칠을 보냈을 것이다. |
그날 밤 전원이 참석한 조촐한 럼주 및 맥주 파티가 있었다. 여행객에게 있어서 낮에 정신 없이 돌아다니고 저녁에 한 잔의 맥주를 마시면서 그날 겪었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술을 마시며 우리는, 혁명을 구상하며 눈을 지긋이 감고 저 멀리 펼쳐진 호숫가를 바라보았을 체 게바라를 생각했다. 중남미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부조리를 해결하고자 했던 그는 결국 자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볼리비아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동료들과 함께 죽었다. 그날 밤 우리는 술과 혁명과 죽음을 이야기했다. 한잔 술에 밤은 깊어갔고, 호숫가의 출렁거리는 물소리는 밤 새도록 여행객의 심장을 두들겼다. |
다음 날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동쪽 하늘이 뒤에서 열리고, 내 눈 앞에는 멀리 화산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가끔 가다 새벽 잠이 없는 물 오리가 날아와 분주하게 발가락을 움직여 잔잔한 호수에 동심원을 그렸다. 동네 사람 한 두 명이 나와 넋이 나간 듯 먼 산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그들을 따라 나온 동네 개가 심심하다는 듯 주저앉아 턱을 땅에 대고 주위를 살폈다. 시간은 지나고 하늘은 점점 붉고 노란 색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나는 알 수 없는 황홀한 분위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사진을 찍다가 그만두고 넋 나간 아이처럼, 아니 아무 것도 모르는 등신처럼, 붉은 노을에 압도당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 하고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둥처럼 크게 들리는 몇 방의 대포 소리에 눈을 떴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나의 영혼을 훔쳐간 호수, 바로 아띠뜰란이었다! |
*11월 24일 안티구아에서 아띠뜰란까지 교통비: 24일부터 과테말라를 떠날 때까지 버스를 대절하여 과테말라를 돌아다녔는데, 몇 번 계약 조건이 바뀌어서 확실하게 알 수 없음. 1일 1인당 약 20,000원 정도 추산.
*11월 24일 1일 전용 쾌속선 렌트비: 1인당 약 20,000원(정기 노선 배를 타고 다니면 몇 천원에 다닐 수 있다 함. 이럴 경우 하루에 한 두 군데 이외에는 가기 어려울 것임)
*11월 24일 2인 1실 숙박비: 33,000원(바닷가가 아닌 지역에서는 몇천원에 숙박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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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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