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간 중미 여행기 18: 멕시코 2 "치첸 이사"
2012년 12월 4일 아침 9시경, 여러 호텔을 들러 손님을 태우고 메리다를 출발한 관광버스는 12시경 목적지인 치첸 이사에 도착했다. 치첸 이사는 메리다에서 약 110키로 떨어진 곳이다. 입구에 도착하여 놀란 것은 치첸 이사 유적지는 전날 보았던 우쉬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는 것이다. 모여드는 구경꾼이 마치 데모대를 방불케 했다. 또 한 가지, 왜 그리 모자 장사가 많은지, 어찌 보면 입구에 있는 사람 중 절반은 모자 장사로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얼마나 더운지, 치첸 이사에서 모자 없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방열복 없이 불구덩이 들어가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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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은 비온 뒤 도랑물처럼 무섭게 달려들었다. 멋쟁이 아가씨도, 등이 굽은 노인들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꼬리를 물고 매표소로 몰려들었다. 가끔 가다 한국말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한국인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 것으로 보였다. 그야말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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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한번 놀라게 되는데, 바로 노점상이 많기 때문이다. 이 많은 노점상들이 도대체 하루에 몇 개나 상품을 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사방을 둘러보니, 웬걸 몰려드는 관광객은 그 수를 어림짐작하기도 어렵다. 관광객이 헤일 수 없이 많으니, 노점상도 이에 걸맞게 많을 도리밖에 없는 모양이다.
다른 관광지와 다른 점은 진열된 상품의 종류가 특이할 뿐만 아니라, 색채감이 대단히 화려하다는 것이다.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은 형형색색의 해골, 재질이 다양한 재규어, 정교하게 조각된 마야 달력이었다. 특히 해골하면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기피 대상 제 1호쯤 되는 것인데, 이런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게 된 것은 역시 마야 조상을 잘 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서울의 남대문 시장에서 해골을 팔다가는 옆에 상인들이 달라붙어, 리어커를 내동댕이 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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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첸 이사 약도>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책이나 인터넷 또는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바로 그 건물 Castillo(가스띠요= 성 또는 피라밋)가 첫눈에 들어온다. 앞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고, 뒤에는 열대 여름의 흰 구름을 배경으로 떡 버티고 있는 피라밋, 정말 멋지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저 성을 쌓기 위해 아무런 기계도 없이 손으로 쌓아올린 인디오들의 피와 땀은 시야에서 보이지 않고, 오직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 위의 파노라마만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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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쪽에서 본 피라밋>
나이가 80은 되어 보이는 우리 가이드는 혹독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등에 지고,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마야인들은 특히 천문학과 수학 등에 폭넓은 이해가 있었다. 800년전에 건설된 톨텍 이전의 건물에다가 그 위에 다시 증축하여 현재의 25미터 높이의 피라밋이 완성된 것이다. 이 피라밋은 현재 계단이 91개로 되어 있는데, 네 면에 걸쳐 있으므로 91×4=364가 되며 꼭대기 층을 합하면 일년의 날 수인 365가 된다. 그 옆에 있는 층은 모두 9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층이 다시 반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실제로는 9×2=18 층이 된다. 당시 마야에서는 일년이 18개월이었고 1개월은 20일이었다. 이 탑은 정확하게 45도로 쌓아졌으며, 네 모서리에는 뱀 모양의 석조물이 있다. 또 신기한 것은 춘분과 추분에 모서리에 그림자가 생기는데, 뱀의 형상을 닮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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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나 뱀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고는 마야 문명을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은 피라밋 건설에 사용된 돌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뱀의 허물로 보였다. 네 모서리에 있는 뱀의 머리와, 피라밋 전체가 그저 뱀일 뿐이다. 저 꼭대기에 활짝 열려있는 문 앞에서 신관은,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꺼낸,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심장을 손에 들고 수만의 군중을 향해 몇 발자국 걸어갔을 것이다. 이 심장을 뱀의 신에게 바치면서 그 아래 모인 수만 명의 인디오들에게 일장 연설을 했을 것이다. "인디오들이여, 여기 보라. 아직도 팔팔 뛰는 이 심장을! 깃털달린 뱀이시여, 이 심장을 거둬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내려주소서! 인디오들이여, 이제 우리의 생명은 영원할 것이다! 마음껏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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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안 길버트: 마야의 예언. p.95: 사람 가죽을 벗기는 축제도 있다.>
이 당시 축제는 심장을 바치는 소름끼치는 종교의식, 참수, 가죽을 벗기는 것, 산 제물, 심지어 사람 고기를 먹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가죽을 벗겨서 그 가죽을 몸에 걸치고 그 가죽이 썩을 때까지 벗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종교적 의식에 열광했던 이유는 신들에게 인간의 제물을 바치는 것이 의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인간의 생명력이다. 따라서 이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살아 있는 심장은 자주 연회 테이블 위에 상납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전쟁의 목적은 땅을 빼앗거나, 물건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를 사로잡는 것이었다. 포로를 잡아서 신에게 바치면 신이 얼마나 좋아할까를 생각하며 고국으로 돌아오는 마야인과 아스텍인들의 장면이 머리 속을 스친다.
"인간은 ~다, 인간이란 ~해야한다"라는 것들이 얼마나 순박한 생각인가를 되돌아 보게 된다. 정확한 표현은 "인간이 어떤 것인지는 신도 절대 모른다!"가 정답일 것이다. 신념, 종교라는 것은 정말 무섭다. 최근에 IS에서 철창 속에 사람을 가두어 놓고 불에 태워 죽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자신들의 신념 또는 종교와 어긋나는 자에게 경종을 울리려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볼 때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듯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신념하에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유럽 역사에서 많은 세월 동안 신을 상상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외친 니체는 분명 사람은 사람이되 보통 사람과 너무 다른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
<마드리안 길버트: 마야의 예언. p. 327>
디자인에서 카나마이테라는 것이 있다. "카나마이테"는 "뱀 사각형"이란 뜻이다. 중미 도처에서 다양하게 변형된 이 무늬를 볼 수 있고, 지금도 마야 여인들이 전통복인 "우이필"에 사용되는 무늬다. 우이필은 멕시코의 토착 원주민이나 멕시코의 농사일을 하는 여자들이 입는 민족 의상으로서, 소매 없는 블라우스이다. 이것만 보아도 깃털달린 뱀의 위력이 어떤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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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전통복 우이필. 뱀의 허물 모양이다. 구글 이미지에서 내려받음>
<공놀이 경기장>
<골대>
<공놀이 경기장 옆의 뱀의 형상>
<경기장 옆에 새겨진 갖가지 형상>
다음은 중미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치첸 이사의 공놀이 경기장으로 들어간다. 저렇게 높은 골대에 어떻게 손을 쓰지 않고 공을 넣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경기가 끝난 후, 승자팀의 대표가 자진해서 인신공양을 했다는 설도 있고, 패배한 자의 심장을 꺼내어 제사를 지냈다는 말도 있다. 어떻든 누군가는 희생이 되어 뜨끈뜨끈한 심장을 신에게 바쳐야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경기장은 크고 사람의 목소리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어서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육성으로 의사를 전달하려면 특수한 경기장 설계가 필요했다. 경기장 벽을 직각보다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하여 음성이 밖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이 결과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를 치면, 울림이 있거나, 박수에서 새소리가 나는 등,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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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Sony Recorder로 녹음되었다.>
<해골 제단의 벽: 수 많은 해골 형상이 보인다.>
해골의 제단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벽에는 수 많은 해골 상이 보인다. 희생당한 해골을 전시하는 데 사용되었던 곳이다. 옆에 있는 다른 제단에는 독수리와 재규어가 발톱으로 인간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조각이 보인다. 이 제단은 적들을 잡아온 대원들에게 헌정하는 사원의 일부라고, 로운리 틀래닛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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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성전>
좀더 걸어가면 거대한 구조물이 나온다. "전사의 성전"이라고 불린다. 그 옆에는 끝 없이 많은 기둥이 서 있는데, "천개 기둥 그룹"이라고 불린다. 이것들도 모두 신에게 지내는 제사와 관련이 있다. 규모는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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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쪽에서 본 피라밋>
<전사의 성전>
<천개 기둥 군>
<전사의 성전>
<전사의 성전>
성스런 세노테(자연 우물)로 가는 길 양쪽으로 또 수많은 노점상이 늘어서 있다. 조각의 종류나 색 형태가 모두 다르고, 실제 현장에서 조각을 하기도 한다. 이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후손이니 정확한 옛날 방식은 모른다 해도, 대충 옛 방식을 이어가는 예술의 맥을 잇는 장인인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여기에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혈관 속에는 인디오의 피와 스페인인들의 피가 반반쯤 섞였을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나무랄지, 누구를 더 존경하고 누구의 피인 것을 부끄럽게 여길지 모르지만, 이렇게 조상의 은덕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만족해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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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런 세노테는 나무에 가려진 푸른 이끼낀 큰 웅덩이다. 본래 cenote는 이 지역에 있는 천연의 지하 저수지이다. 우물은 마치 아이스크림 찍어내는 기계로 폭 파낸 것처럼, 정교하게 원형을 이루고 있다. 본래 치첸이라는 말이 "우물의 입"이라는 뜻인데, 바로 이 우물에서 치첸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셈이다. 직경 60미터 깊이 35미터인 이 호수에서 수 많은 부장품과 해골이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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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콜: 천문대>
카라콜은 본래 달팽이라는 뜻인데, 왜냐하면 이 건물의 내면이 달팽이처럼 나선형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측대 또는 천문대로 쓰였는데, 이곳에서 신관들은 의식을 거행할 시간을 발표하고, 또는 옥수수를 심거나 옥수수를 수확할 시간을 발표했다고 한다.
카라콜이라는 유적지에 왔을 때는 이미 오후 3시가 가까웠고, 날은 덥고 배도 고팠다. 모두들 가이드의 설명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시원한 데서 쉬면서 차거운 음식만 먹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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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첸 이사의 세노테(천연 우물)가 자연으로 방치한 우물이라면, 유적지 치첸 이사 밖에 위치한 Cenote Ik kil 호텔의 세노테는 잘 관리된 우물이다. 위에서 나무 뿌리가 아래로 쭉쭉 뻗어 있어서, 사진상으로 보면 마치 밧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다이빙을 한 후, 물 속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이곳에서 수영을 하려면 벽면에 만들어진 나선형 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아래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다이빙을 하고 수영도 한다. 위에서 보면 수영하는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즐겁게 수영하는 듯 하다. 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어둡고 음침해서 박쥐나 뱀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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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여행을 떠나기 전에 중미에 대해 공부한 것이 별로 없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 목적지에 대한 책을 읽으면 마치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머리 속에 목적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로운리 플래닛을 보면서 대충 이해하고 현장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나의 여행 스타일이다.
중미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기를 쓰면서 이책 저책 읽게 되고, 아 그때 내가 본 것이 그것이었구나, 라고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 그날 호텔의 정원을 산책하면서 그 당시 인디오들의 삶이 어떠했으며, 겪었던 고통이 얼마나 컸겠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병마와 싸워 이겨야 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전쟁터에 나가 죽거나 아니면 포로로 잡혀서 껍질이 벗겨지거나 심장을 내 놓아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지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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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디오들은 스페인으로부터 침략을 당한 후에 또 다른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바야돌리드 논쟁"이라는 책을 읽었다. 역사를 근거로 한 이 소설은 정복자 스페인인들이 인디오들을 어떻게 대우했느냐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중미 여행기가 몇 부에서 끝날지는 나도 잘 모른다. 앞으로 1개월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때를 회상하며 적어볼 생각이다. 어떻든 이 여행기 시리즈의 맨 마지막 부분, 즉 멕시코 시티 근처의 테오테우칸 편에서 "바야돌리드 논쟁"에 대해 좀더 자세히 언급하려고 한다. 그 책의 일 부분을 소개하며 오늘 글을 마친다.
"저는 에스파냐 사람들이 살아 있는 인디오들의 살을 베어 내어 자기들 자신의 상처에 붙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분명 살아 있는 인디오였습니다. 저는 우리 병사들이 그들에게서 코와 귀를 베어 내고, 남자의 음경을 잘라 버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우리 병사들은 마치 나무를 놓고 가지치기를 하듯 인디오의 몸에 칼질을 했습니다. 재미 삼아서, 심심풀이로 말입니다. ‘어디, 칼이 잘 드는지 한번 시험해 볼까?’ 한 병사가 먼저 칼을 빼어 들자 다른 병사들도 따라했습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찌르고 베어 댔지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학살당했습니다. 유혈이 사방에 낭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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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4일 치첸 이사 입장료: 1인당 약 15,000원
호텔 세노테 입장료: 1인당 약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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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6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