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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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여행기 3 "마닐라 시내"(Philippines 2: Manila)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8. 10:29

 

 

<필리핀 여행기 3-마닐라 시내 이야기>

 

 

필리핀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 맨 위에 있는 것을 루존, 중간에 있는 것을  
비사야, 맨 아래에 있는 것을 민다나오라고 부른다.

 

 

 

 

나의 여행기를 하루하루 일기처럼 써서 30회를 채울 생각은 없다. 날짜와 관계없이,
마닐라와 그 주변 이야기를 2회, 비사야 여행기를 2회, 그리고 북 Luzon 지역
이야기를 2회에 걸쳐서 써 볼까한다. 쓰다가 좀 더 늘어날 수도, 좀 더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Episode I

마닐라 시내에서 겪은 이야기다.

미국에서 노예 해방이 있었을 때, "당신들은 해방되었소. 이제 마음대로 행동하
시오."라고 노예에게 말했더니, "아니오, 우리는 자유가 싫소. 그냥 지금대로 노예로
있게 해주시오."라고 말하는 노예들이 있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패키지 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니까 무슨 일을 먼저 해야할지를 몰랐다. 패키지 여행이
그리웠다. 한국에서 생각할 때, 1) 북 루손의 바나우에 계단식 논을 가본다. 2)필리
핀의 뒷골목을 가본다, 3)보라카이를 가본다. 4)마닐라와 그 주변 유명 관관지를
가본다는 좀 막연한 계획을 세웠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
았다. 물론 폭염으로 머리가 좀 마비가 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묵고 있는 지역 주위를 걸어 보기로 했다. 외부에서
BF Homes 지역에 있는 나의 하숙집으로 오려면, security guard(수위)가 서 있는
곳을 두 번 통과해야 올 수 있다. 실제 이 guard가 썬글라스에 총을 차고 근엄하게
서 있으면, 그 자체로 무슨 영화 배우처럼 폼이 나기도하고, 근접하기 싫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처음 필리핀에 오는 사람들이 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 어디를 가나 총을 휴대한
guard가 그리도 많다는 것이다.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가게에도 총을 찬
guard가 지키고 있다. guard가 없는 구명 가게는 철조망을 쳐 놓고, 사람 얼굴
하나만한 구명을 내 놓고, 그리로 돈을 받고 물건을 내 준다. 백화점에서도 경비가
작은 북채만한 꼬챙이로 손님의 가방을 뒤져본다. 심지어는 전철을 탈 때마다,
그 모든 손님의 가방을 경비원이 체크한다. 모두 가방을 열어야 한다. 이 안전
요원에 대해 보름 정도가 지났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실제로 필리핀이 그렇게
위험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려는 의도가 더 진실에
가깝지 않나 한다. 그 많은 안전요원을 해고 한다면 엄청나게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침 산책을 나가는데, 경비소에서 한 필리핀 여자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울고 있었다. 경비들은 외국인이 들어가면 그냥 들어가라고 하지만,
필리핀인이 들어가려고 하면 어디가는지 물어서 그 집주인과 통화를 한다.
집주인이 들어와도 좋다는 말이 있어야 필리핀인들을 통과시켜준다.
같은 민족을 봐주기는커녕, 냉대를 한 것에 대해 그녀는 비통함을 느꼈으리라.

 

 

<대단히 아름답다고 하는 정원-폐허가 맞을 것이다>

 

 

<아침 식사인듯>

 

 

<아름답다는 개-발이 벌레에 물리고 뭔가 고민이 많은 개인듯>

 

 

내 나름으로 방향을 정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걸었다. 얼마를 걸으니,
두 사람이 나를 보고 반갑게 맞이한다. Koreano? 한다. Yes. 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폐허같은 곳에서 무엇을 끓이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This is a very beautiful
garden이라고 했다. 아무리 보아도 아름답다는 생각은 도저히 안 들었다.
내 생각에 이것은 정원이 아니라 폐허인데.
이사람들은 ugly(못생긴)와 beautiful(아름다운)의 의미를 반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개도 양쪽 눈 주위의 색깔이 통일되지 않아 ugly하게 보였지만,
그들은 계속 beautiful dog이라고 말했다. 하기야 Beauty is in the eyes of the
beholder(아름다움이란 보는 사람 마음대로다)라는 말도 있으니, 뭐 내가 시비를
걸 것은 못된다. Yes, this is a very, very beautiful garden. 나는 한술 더 떠서
very를 두 번 넣어 강조해 주었다. 세 번 very를 넣어주고 싶었으나 그것만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만면의 미소를 띄우며, 자기들이 끓이고 있는 무엇인가를
먹어보라고 했다. 약간 겁을 먹은 나는 No, but thank you라고 말하며 그들 사진을
몇 방 찍었다. 그들은 나의 카메라로 나를 찍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I don't
want to be taken a photo of me(저는 제 사진이 찍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 잠시 뒤 내가 한 말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과, 말이 맞는지 어쩐지
헷갈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be taken이 수동태이니 그 뒤에 목적어가 있어서는
안 되는데라고 순식간에 느꼈다. 아직도 영어교사를 벗어나지 못한 나를 보니 챙피했다.  
하여튼 내가 사진 찍히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필리핀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명 중 한 명이 나를 찍어주는 척 하면서
카메라를 가지고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겁이 나서 No라고 말했을
것이다. 인간은 편견으로 휩싸인 가련한 존재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런가보다.

  

 

<약 200페이지의 마닐라 상세 지도>

 

 

<장판 모양의 큰 지도: 위 두 개의 지도가 필요하여 구입했다.>

 

 

한 참을 가다 기분이 이상해 위치를 물으니 엉뚱한 곳에 내가 있었다. 원하는 곳에서
약 3키로 떨어져 있었다. 나는 트라이시클을 타고 곧장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날
당장 책방에 가서 마닐라를 안내하는 장판지처럼 큰 지도 한 장과, 200 여페이지
되는 마닐라 상세 지도를 샀다.  그리고 마닐라를 활보해 보기로 했다.

 

 

Episode II

Manila Bay에 근처에 있는 리잘 파크에 갔다. 34-35도 되는 뙤약볕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두 명의 군인이 장하다기 보다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분만
뙤약볕에 서 있어도 숨이차고 땀이 나기 시작하며, 눈을 뜨기 조차 싫다. 그런 더위
속에서 차렷 자세로 서 있는 그들을 보니, 나의 군대 시절이 생각났다. 나도 5 시간을
꿈쩍도 않고 차렷 자세로 서 있어 본 적이 있다. 5 시간 후에 "앞으로 갓"하는 구령에,
발이 쥐가 나서, 마치 치질환자 걷듯이 발을 질질 끌고 간 적이 있었다.

 

 

<리잘 파크: 뜨거운 태양 아래 군인 두 명이 서 있다-관광객은 전혀 없다.>

 

 

우리는 주마간산 격으로 구경을하고 그 옆에 있는 intramuros라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옛 스페인 유적지 중의 하나로 옛날 건물 특히 성당이 몇 군데 있었다. 
참고로 intramuros라는 말은 벽의 내부란 뜻일게다. 영어에 intramural이란 단어를
추론하여 짐작해본 뜻이다 (intra=내부, muro=벽, 담장). 즉 성벽 안에 있는 마을을
구경하는 것이다. 말을 타고 한 바퀴 돌라는 마부의 권유를 뿌리치고,  한 참을 걸어
들어갔다. 성당에서는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좀더 있다가 필리핀 결혼식을
구경할까했으나, 더위 때문에 빨리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면 골프장이 보인다. 그 옆에 내가 처음 보는 아름다우면서도, 아주 큰
꽃 나무가 보인다. 길을 건너니, 오토바이를 가진 수많은 군중들이 무슨 운동장에서
마이크로 떠들며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으니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됐다. 그의 영어가 서툰지, 나의 이해력이 서툰지는 지금도 판단이
서지 않으나, 아마 오토바이 동호회인 대회를 하는 것 같았다.

 

 

<대단히 아름다운 꽃-느티나무처럼 키가 크다.>

 

 

바다 쪽으로 오려면 미국 대사관을 지나야 한다. 여기서도 경찰들이 여러 명이
서있고,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미국인들은 어디가나 공격의 대상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깨끗한 대사관을 지나자마자, 그 불결함이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마닐라 베이가 있다. 바로 그 곳 썩어가는, 그래서 코를 찌르는, 쓰레기 더미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플라스틱 병을 줍고 있었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차이 점은,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고생하면서 사느냐가 결정짓는
것 같다. 아무리 못사는 나라도 잘 사는 사람은 잘 산다. 나라가 못살다 보니까
저런 고생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것은 코를 찌르는 쓰레기 더미에서
아버지나 다섯 살 정도의 꼬마나 모두 노래를 부르면서 쓰레기를 뒤적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못말리는 필리피노들의 낙천성에 혀를 내 둘렀다.

 

 

<마닐라 베이(마닐라 만)의 쓰레기 더미에서 플라스틱을 줍고 있다-아버지와 아들로 보인다.>

 

 

<바로 그 옆에 좀 맑은 곳에 아이들이 수영을 하기도 하고, 수영하는 것을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선 살고 보는 것이었다.  더위로부터 살기 위해 우리는 들어갈 곳을
찾았고, 그곳이 바로 식당이었다. 마침 점심 시간이라 사람들로 붐볐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메뉴를 보아도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메뉴에 있는 그림을 보고
각자 한 사람이 하나씩 3 개를 주문했다. 그랬더니 그가 돌아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한 참 있다가 그는 Are you that hungry? This food is good for three people.
(그렇게 배가 고파요? 이것 3인분인데요)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탕수육
하나를 시키면 서너 명이 먹듯이, 그 음식은 여러 명이 같이 나누어 먹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 세 사람이 9 인분 음식을 시켰으니 그가 놀랄 도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실수를 즐기면서, 필리핀의 물정을 하나씩 배워가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윗 영어에서 알 수 있듯이, good이라는 단어를 이런 곳에 써먹는다는
것을 재인식하는 것도 나에게는 더운 날씨에 쏟아지는 단비와 같은 즐거움이었다.  

 

 

<처음 타보는 지프니>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지프니를 타봤다. 필리핀인들이 주로 타는 값싼 차인지라,
우리 세 명이 타니 차 속에 있는 그들도 놀라고 우리도 놀랐다. 다른 사람을 안 보는
척하면서 다른 승객을 보니, 그들도 안 보는 척 하면서 우리를 보았다. 역시
한국인들은 그들에 비해 등치가 크고 피부색이 하얗다는 것을 알았다. 앞 쪽에 앉은
우리는 요금을 물어 동전을 건네 주었다. 운전수는 다시 주면서 요금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다시 세서 주었다. 또 그랬다. 나중에 알고보니 동전이 비슷한 것이 있어서
우리가 혼동했던 것이다. 우리는 필리핀 승객들이 하는대로 나중에 탄 사람이
건네주는 돈을 운전수에게 전달하고, 운전수가 거슬러 주는 돈을 또 뒷 승객에게
전달하며, 재미있어서인지 뭐인지는 모르지만, 웃고 또 웃었다. 날은 덥지, 차는
막히지, 머리는 천장에 닿지, 매연은 코를 찌르지, 마치 지옥이 이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수는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눈이 100 미터는 들어가 있고, 광대뼈가 남산만큼
튀어나오고, 눈동자가 곧 죽을 사람처럼 풀어져 있었다. 병든 시골 닭처럼 졸면서
운전하는 듯한 그는 놀랍게도 별 이상없이 그런대로 운전을 계속해나갔다. 나라가
가난하니 백성이 고생한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하기야 대부분의 행복과 불행이
비교에서 오는 것이어서, 너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하면 고생인지 뭔지 모르고
사는 것이 인생사인지도 모른다.

 

 

Episode III.

 

중국인들이 상권을 잡고 있는 곳이 세계에 여러 곳이 있다. 마닐라에도 중국인들이
상권을 쥐고 있는 China Town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에 가면 거의 백발 백중
소매치기를 당하든지, 속든지 할테니 가지 말라고 누가 말해 주었다.  같이 간
L형도 나보고 가지 말라고했다. 하지만 나는 가보기로 했다. 대낮에 누가 코를
베어가겠나 뭐하겠나 싶기도 했고, 중국인들의 고함 소리를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아니, 꼭 그런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때문이다. L형은
나에게 몇 번이고 소매치기 당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그리고 일찍
돌아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주인의 친척도 거기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술을 먹다가 죽을 고비를 맞은 적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거기도 사람사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그냥가보기로 했다.

 

 

<지프니 운전수: 돈을 왼손에 접어 준비하고 있다가 운전하면서 거슬러 준다>

 

 

집에서 큰 길로 나와 17페소를 주고 트라이시클을 잡아탔다. 큰 길이 있는데 이름이
Sucat이다. 다른 이름은 곧잘 잊었으나 이것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길이다.
우리말의 쑥갓과 이름이 똑 같기 때문이다. 쑥갓 길에서 바클라란이라고 써 있는
지프니를 탔다. 항상 그렇듯, 외국인은 나뿐이다. 목적지라고 생각되는 곳에 점점
다가가자, 나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여기가 바클라란 역인지 물었다. 나의 앞 사람도,
옆 사람도 서로 먼저 가르쳐 주려고 노력했다. 급기야 예쁘장한 얼굴의 여자가 자기도
그 역을 가니 같이 가자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표정을 관리해 가면서, 내심 웬떡이냐고
생각했다. 바클라란은 필리핀 전통시장이어서 싸구려 물건이 골목 골목에, 길옆 좌판에
빼곡히 놓여 있다. 길 옆에 있는 사람들이 take a picture 하면서 포즈를 취하여 그들을
몇 방 찍었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그러는 사이 나를 안내하겠다던 여자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하기야 내가 여기서 여자를 사귀어봤자 뭘하겠나? 하지만
놓친 물고기가 더 커보인다고, 내가 나를 아무리 위로해도, 아쉬움은 구름처럼 가슴에
남았다.

 

 

<바클라란의 상인들>

 

 

차이나타운이 있는 카레도 역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타려고 올라갔다. 2층에 있는 역 위에서
내려다 보니 시장이 멋있었다. 두 방을 찍었을까? 갑자기 총을 찬 사람이 나타나더니, Why
are you taking pictures?(왜 사진을 찍소?) 하면서 째려보았다.
가만히 보니 키는 내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고,
몸무게는 약 50키로도 되지 않을 듯한 사람인데, 제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보안 요원임에
틀림없다. 나는 무조건 I'm sorry라고 말했다. 그는 Let me show the photos
that you took.(당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오)라고 말했다.
재생하여 보여주니 Erase the picture(지우시오)라고 말했다. 두 장을 모두 지우니 눈을
흘기면서 어디로 갔다. 기분은 되게 나빴지만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라는 말을
되새겼다. 역전에서 시장 사진 찍는 것이 무슨 보안에 해당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됐다.

 

 

<차이나 타운-시끌 벅적하다>

 

 

전철 표를 사러 갔다. 목적지를 말하고 100페소 돈을 냈다. 거스름 돈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100페소는 우리 돈으로 약 2500원 정도된다. 그 정도를 거슬러 줄 돈이 없다는
것이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어디를 가나 물건을 사도 거스름 돈이 없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휘발유를 넣어도 조금 넣고
간신히 가다가 또 조금 사서 넣는다. 나중에 알아보니 본래 돈이 없어서 그런다는 것이다.
왜 이리 필리핀 사람들은 돈이 없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내가 어렸을 때, "돈을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다."는 말을 어머니가 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를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가방을 뒤져 동전을 꺼내 기차표를 샀다.

 

 

이유는 모르지만 내가 탄 칸은 남자는 3명 나머지70-80명은 모두 여자였다.
필리핀인 중에서 스페인 계통은 키가 크고 잘 생긴 서양사람 같지만,
본래 필리핀인들은 키가 작고 까무잡잡하다. 조그만 여인들이 빽빽히
의자에 달라 붙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강물 속의 돌에 다슬기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 같다. 중간에 자리가 나서 앉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옆 아가씨를 깔아 뭉갤 것 같아서였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다>

 

 

놀라운 것은 가난하건 어쩌건 모두다 핸드폰을 갖고 있는듯이 보였다. 핸드폰을 슬쩍 보니
메뉴가 모두 영어로되어 있다. 영어를 모르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마닐라의
모든 게시문과 광고판은 모두 영어로 되어 있다. 일상적인 대화는 따가로그를 하지만
모든 눈에 보이는 것은 영어로 되어 있기에 영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자기들끼리 따가로그를 사용하다가 외부인을 만나면 영어를 사용한다. 나는 한국
사람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장소가 없는 것이다. 그냥 학교에서 암기하고 집에 와서 다 잊고, 학교가서
또 배우고 그 다음 날 또 잊고, 마치 다람쥐 헛바퀴 돌리는 식이다. 정말 영어를 하려면,
영어를 써 먹을 장소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나중에 집에 있는
도우미 아가씨들에게 TV 드라마를 모두 알아듣느냐고 물어보았다. 모두 이해한다는
것이다. 영어를 전공했던 나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매일 영어
TV를 보니까 그럴 것이다.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매일 영어 영화 한편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필리핀의 개팔자는 유난히 좋다>

 

 

차이나 타운은 정말 대단했다. 사방에서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지르는 소리로 고막이
찢어진다. 골목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그 골목에서 또 위로 연결된다. 온갖 종류의
잡화에서부터 옷, 신발, 제사 용품, 생선, 채소, 과일 등 없는 것이 없는 시장이다. 이것 저것
사라고 붙들어대는 아줌마와 아저씨를 피해 앞으로 나아갔다. 한 마부가 깎아줄테니 제발
말좀 타라고 난리다. 거기를 피해갔더니 한 아저씨가 부코를 제발 사 달라고 한다. 코코넛을
거기서는 부코라고 한다. 코코넛에 구멍을 뚫어 빨대를 끼워주기도 하지만, 양이 너무
많은지라, 한 컵 정도만 원하는 사람은 얼음을 섞어서 컵으로 팔기도한다. 나는 한 컵을
달라고 했다. 지난 번에 한 개를 통채로 먹다가 너무 많아 생고생했기 때문이다.  맛있게
거의 다 먹고 있는데, 내 앞에서 일이 벌어졌다. 어떤 사람이 때가 덕지덕지 묻은 비료푸대
같은 것에 얼음을 가득 가져와서 아스팔트 위에 내려놓자 자루가 터져서 아스팔트 사방에
얼음이 흩어졌다. 부코 아저씨는 그것을 그냥 담아서 믹서기에 갈더니 부코를 부어서 큰
통에 붓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오니까 그것을 퍼서 팔고 있었다. 내가 먹은 부코가  
목까지 다시 넘어오는 것을 참으면서 나는 아무 데나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걸었다.  
토할 것 같아서다. "필리핀에서는 필리핀인들이 하듯이."라는 말을 큰 소리로 외치며.  

 

 

<코코넛은 위에 구멍을 뚫어 빨대를 넣어 먹는 것을 택해야한다.>

 

 

내 발은 Pasig 강가에 닿아 있었다. 누런 물에 잡다한 물건과 잡다한 풀이 둥실둥실 떠
네려가고 있었다. 배도 가끔 지나갔다. 한 젊은이가 나를 보더니 자기 사진 찍어 달라고
포즈를 잡는다. 그를 몇방 찍어주고 눈을 들어보니, 먼 곳에 서있는 건물에 써있는 말이
인상적이다. Look up, Young man(젊은이여, 위를 보게나). 위를 보니 위에는 구름낀
하늘 뿐이 없었다! 덧없는 인생을 구름처럼 멋있게 살라는 말인가? 물론 희망을
가져라라는 말이겠지만...

 

 

<파시그 강가의 젊은이>

 

 

<잘난척 한다-사실, 잘났다.>

 

 

<젊은이여 위를 보라라고 되어 있다.>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다가 길을 잃었다. 마침 건널목에 아줌마인지 아가씨인지 모르지만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선글라스에 아주 멋있는 여인이다. Excuse me. I'm lost. How can
I get to Carreedo Station?이라고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던 표현대로 물어보았다. 사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영어를 하면 말이 통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그녀는 Well,
well, it's far from here. Can you go there by my car?라고 했다. 나는 No, thank you.
I like to walk. Please tell me how to get there.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꾸 자기 차로
가자는 것이다. 자기 운전수가 자기를 데릴러 오니 가까운 역으로 태워주겠다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나에게 세 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1)여기가 차이나 타운이니 이 여자가
나를 납치하여 돈을 뜯어내려고 할 것이다. 2)길을 잃었으니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 주려는
인정 많은 여자일 것이다. 3)혹시라도 나를 멋있는 남자로 알아 한 번 데이트라도 해볼
의향이 있을 것이다.  세 가지 생각이 번갈아 가며 그 짧은 순간에 내 머리
속에서 열번은 돌아가는데, 자가용이 그녀 앞에 섰다. 내가 멈칫거리니 뒤차들이
빵빵거려 어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는 그 차에 타고 말았다.

 

 

 

<옥수수-마닐라에서는 Japanese corn이라고 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녀는 나에 대해 물었다. 나는 관광객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원하면 함께 가도 좋다고 했다. 내가 어려움이 있으면 자기가 도울 수 있는 한
어떤 것이든지 도와줄 수 있다고도 했다. 호박이 웬 덩굴채 굴러왔나라는 생각과 불길한
생각이 대화를 하는 중에 계속 내 마음 속에서 왔다갔다했다. 나는 그녀에게 명함을 달라고
했다.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마침 명함이 없다고 했다. 나는 내가 가진 명함을 주었다.
나의 명함은 나의 이름, 나의 핸드폰 번호, 나의 홈페이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전부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찍어도 좋은지 물었다. 잠깐 망설이더니 좋다고 했다.  선글라스를
벗더니 씩 웃었다. 그녀 사진을 찍고, 나는 내려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나에게 이메일을 하든지 전화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Sure, I will. 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내려주고
Have a nice day. See you later라고 말하면서 갔다. See you later가 글자그대로의 뜻인지,
인사치레인지 궁금해 하면서....

 

 

집에와서 컴퓨터로 찍어온 사진을 보니 내가 보았던
여인과는 전혀 딴판의 여인이 보였다. 선글라스를 끼었을 때는 그렇게 멋있었는데....
원 세상에. 멋있게 보이려면 무조건 썬글라스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컴퓨터에 보인 그 여인-플래쉬를 터뜨려 찍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아니 희망이 공포와 전율로 바뀌는 순간이다>

 

 

잠시 뒤, L형이 백화점 쇼핑갔다가 돌아왔다. 한 마디 했다.
"나 오늘 드디어 당했네."
"아니 무슨 말씀이신지?"
"백화점에서 나오다가 핸드폰 소매치기 당했어."
대형 백화점에서 나오는데, 앞에 있는 몇 사람이 가지 않고 길을 막고 있다가, 가방에 있는
핸드폰을 채갔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느낌이 이상하여 뒤를 돌아보니, 그 핸드폰이 벌써
한 사람 건너 뒷 사람에게 전달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 핸드폰 내놔"라고 한국말로
말하면서 소리를 쳤으나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를 잡아 끌고
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이놈이 면도칼로 안면을 긁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집에 왔다는 것이다. 나보고 차이나 타운에 가서 조심하라고 하더니, 나는 멀쩡한데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소매치기를 당하다니 기구한 운명의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돈 남말하나? 누가 누구 걱정을 하나? 
갑자기 아까 자가용의 여인이 생각이 나서 다시 컴퓨터를 보았다. 
"너, 어디 가능겨? 이리와, 너는 이제 내 손안에 있어. 꼼짝마.
이 큰 손 눈에 안 보여?"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침대에서 뒤척였다. 왜 명함을 주어서
생고생을 하나? 혹시 한국으로 전화라도 오면 어쩔 것인가? 혹시 한국에 찾아오지는
않을까도 생각이 되었다. 살다보니 별꼴 다본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미친놈 같았다. 그래,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면 사실은 미친 것이
아니야. 미친 사람은 끝까지 자기는 미치지 않았다고 우기지.
나는 기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닭우는 소리와 개짖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