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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 중미여행기 24: 쿠바4 "시엔푸에고스 그리고 트리니다드"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5. 5. 23. 16:22



 

 

47일간 중미 여행기 24(쿠바 4)

 

"시엔푸에고스(Cienfuegos)와 트리니다드(Trinidad)"

 

 



 

 

 

 

 



<본 여행기에 나오는 지명 (A): 시엔푸에고스 그리고 트리니다드>

 

 

2014년 12월 10일 새벽 쿠바의 아바나, 우리는 1박2일 일정으로 시엔푸에고스, 트리니다드, 그리고 산타 클라라를 둘러보는 일정이 잡혀있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층에 흩어져서 숙박을 하고 있었으므로, 일단 한군데에 모여서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동안에 다른 여행객이 우리 방을 사용할 수도 있으므로 짐을 모두 꾸려서 일정한 곳에 맡겨 놓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의 숙박비와 식대를 깔끔하게 지불하여,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 후로는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전날 저녁에 그때까지의 모든 비용을 지불했고, 그날 아침 식사 비를 지불하려는 순간이었다. "어제까지 모든 비용은 지불했고, 오늘 아침 식사비이니 이 돈을 받으시오."라고 말을 하니, 여관 주인은 "어제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1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는데, 받은 적이 없다니, 영수증을 받아 놓은 것도 아니고,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K님: 분명히 바로 이 자리에서 어제 돈을 주었잖아요.
주인: No.
K님: 아니, 내가 여기 앉고, 당신이 저기 앉아 있었잖아요.
주인: No.
K님: 아니, 이 사람도 돈 주는 것을 보았고, 저 사람도 주는 것을 보았잖아요.
주인: No.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집 주인은 그가 알고 있는 단어는 오로지 No뿐이 없는 듯,  No, No, No를 말을 할 때마다 몇 음계씩 올려가며 소리 질렀다.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어제는 같이 술 먹고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딱 잡아 떼는 꼴좀 봐. 10만원 날렸군. 불쌍해서 술 대접을 했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치네. 저렇게 죽기 살기로 잡아떼는데 무슨 수가 있겠어. 야, 쿠바 사람들 정말, 이거 뭐 노상강도도 아니고, 날강도야? 불강도야?"

 

 

마침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 중에는 주인의 동생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제 현장에 없었으므로, 형의 편을 들 수도 없는 일이요, 우리 편을 들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끔 가다 창밖을 내다보며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한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K님: 아니, 당신은 무늬있는 T셔츠를 입고 있었고, 우리가 돈을 주자,
       그 돈을 받아 그 옷속에 집어 넣었잖아요.
주인: No.
K님: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러면 어제 입은 옷을 한번 조사해 봅시다.

 

 

"숙박비 잡아떼기 사건"은 K님의 현장 검증을 하자는 제의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현장 검증 제의에 집주인은 별꼴 다 본다는 얼굴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릇에 담긴 물에 반사된 햇빛이 오후의 벽에 아른거리듯, K님의 얼굴에 뭔가 심상치 않은 빛이 순식간에 선을 긋고 지나갔다. 집주인과 K님이 어제 입었던 옷을 찾아 방으로 들어간 사이, 밥을 먹다만 사람들은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서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좁은 문을 통해 거실에 있는 식당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K님: 어제 입었던 T셔츠가 이거네. 뒤져봐.
집주인: No.
,K님: 잘 찾아봐. 주머니는 다 찾아 보라구.
집주인: No.
K님: 바지는 어디 있어. 내봐.

 

 

방 안에서는 국무총리 청문회보다도 더 칼날같은 실물 검증이 실시되고 있었다. 바깥에 있는 우리는 그 방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방에 있는 두 사람보다도 더욱 현장감 있게 검증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었다.

 

 

K님: 그 옷 이리 내봐. 내가 한번 조사해 보게.

 

1-2분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K님: 이거봐. 여기 있잖아. 바로 여기에. 그 사람, 참, 할 말이 없네.

 

 


집주인은 거실로 나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마치 자식의 전사 편지를 읽다만 사람처럼 한 동안 멍하니 창밖만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다시 방 바닥을 향했다. 배추에 소금 뿌려 놓은 듯, 하얀 침묵만이 흘렀다. 말 없이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갑자기 반전된 분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벙뜬 상태로 자신의 손톱을 뜯어가며 어색한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때 갑자기 집주인의 어깨가 두어 번 아래 위로 춤을 추더니 그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눈에서는 한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받지 않았다고 빡빡 우겼는데,  돈이 자기 주머니에 나왔으니 무슨 할 말이 있었겠는가? 한 마디로 "허벌나게"  쪽 팔렸을 것이다!

 

 

마치 자식이라도 죽은 듯 대성통곡하는 형에게로 동생이 다가가 말했다. "형은 항상 술이 말썽이라구. 제발 술 좀 끊으셔. 이 일을 어떻게 할겨!"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국인들이 너도 나도 일어나,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괜찮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여튼 이렇게 해서 "받은 돈 잡아 떼기 사건"은 극적으로 반전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창밖에 가로등이 하나 둘 꺼지며 어두움이 서서히 물러가는 아바나의 새벽에.   

 

 



 

 




버스 안에서


한국의 관광 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태운 버스는 몇 군데 호텔을 더 들려, 빈자리를 가득 채우고서야 비로소 시엔푸에고스를 향해 출발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휴게소는 딱 한 곳이 있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아침 식사를 하지 못했기에 승객들은 여기에서 가벼운 음식으로 허기를 채워야 했다.

 

 

식당 옆에 있는 가게에서는 쿠바 특유의 강렬한 색채의 그림을 팔고 있었다. 쿠바의 음악이나 미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마 가장 적절한 말이 "정열적이다"가 될 것이다.

 

 



 

 



 

 

시엔푸에고스에서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만난 것이 Benny More 동상이다. 널찍한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팔에 낀 Benny More는 이곳에서 태어난 유명한 음악가로 43살에 세상을 뜬 유명한 음악가였다. 그의 전매 특허는 챙이 넓은 모자와 팔 아래 낀 지팡이다.

 

 



 

 



 

 

어쩐지 안내양들이 하는 것이 어설프다 생각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버스에서 먼저 내린 사람과 맨 나중에 내린 사람의 시차가 커서 전체를 잘 통솔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었다. 안내양 두 명은 되는대로 안내하고, 되는대로 아무 데나 돌아다녔다. 관광객은 머리는 꼬리를 놓치고, 꼬리는 몸통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나중에 이것을 참지 못한 어떤 관광객이 안내양에게 큰소리로 똑바로 하라는 말을 지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질서가 잡히게 되었다. 역시 자본주의에서 많은 훈련을 받은 안내양과, 사회주의에서 대충 훈련받고 나온 안내양의  책임감과 능숙도는 크게만 느껴졌다.

 

 



 

 



 

 



 

 



 

 



 

 



 

 



 

 



 

 

첫 번째 본 동상에서 한참을 걸어가면 호세 마르티 광장이 나온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에 늘어서 있는 건물을 보는 것이 주된 이곳 관광이었다. 1819년에 프랑스인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이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잘 정돈된 파스텔 색의 도시라는 점일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묘하게 색의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했을까? 은은한 색채의 향연은 결국은 원색의 화려함보다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이곳은 200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유네스코로부터 많은 지원금을 받는다고 했다. 확실히 수도 아바나와는 대비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질서가 잘 잡힌 도시다.  

 

 



 

 

주변에 있는 여러 건물 중에 토마스 테리라는 극장 한 곳만 들어가 보았다. 950석을 갖춘 이 극장은 1889년에 준공되었는데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의 프레스코가 특히 아름다웠으며, 나무 목재를 적절히 이용하여 장식한 것이 이채롭게 보였다. 이곳에서는 1895년에 베르디의 아이다를 공연했고, 엔리코 카루소 그리고 안나 파블로바와 같은 가수들도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토마스 테리 극장>

 

 

사실은 이 건물에 꼭 가보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그냥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간 곳이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돈을 내야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물론 DSLR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핸드폰으로 찍었는데, 돈을 내라고 아가씨들이 졸졸 따라다녔다. 나 이외에도 찍은 사람이 많은 데, 하필  왜 나만 잡고 늘어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끝까지 돈을 내지 않았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서, 그까짓 것 달라는 돈 줄 것을,  왜 그리 아까워하며 끝까지 버텼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좀 고집이 있고, 맹랑한 구석이 있나 보다.

 

 



<토마스 테리 극장 안의 토마스 테리 상>

 

 



<극장의 내부>

 

 



Catedral de la Purisima Concepcion 1833 - 1869년 건설되었으며 붉은 색의 두 개의 종탑을 가지고 있다

 

 



 

 



 

 



 

 



 

 

광장에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었다. 어쩌면 구경꾼보다 연주자의 수가 더 많이 보일 정도로 큰 악단이었다. 넋 놓고 구경하는 사람, 박수 치는 사람, 팔짱 끼고 바라보는 사람 등 다양했으나, 햇빛이 쨍쨍 내리치는 공원 한 가운데서의 연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보였다.

 

 



 

 



<호세 마르티 상>

 

 




 

 



 

 



<한 모델의 촬영이 있었다. 좀 무시무시한 여인이었다.>

 

 



<바닷가 한 호텔의 라운지: 여기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트리니다드

 

 

트리니다드는 1514년에 건설된 도시다. 금을 찾아 이곳에 왔던 스페인 정복자들은 금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본래 사탕수수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원주민에게 강제 노동과 개종을 시도하였으나 어느 것도 스페인 사람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스페인 사람들은 말을 잘 듣지 않고 일을 잘 못 하는 원주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노예를 수입하였다.

 

 

사탕수수 산업은 독립 운동의 과정에서 순식간에 쇠퇴하고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사탕수수 산업은 근처의 시엔푸에고스와 마탄사스 지역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1950년대에 당시 대통령 바티스타는 이곳을 여행 중심지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8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 되었다. 어쩌면 유네스코 세계 유산을 찾아 다니는 것이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트리니다드에 도착하자 가이드는 우리를 어떤 도자기 공장으로 안내했다. 한국에서 관광객을 상점에 데려가면 얼마 정도의 커미션을 받는 것처럼, 여기도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안에서 도자기 만드는 것은 시늉만 낼 뿐, 안에 있는 물건을 팔기에 정신이 없었다. 물건 값도 이 나라 물가 수준에 비해 비싸 보였다. 마침 그 상점 앞에서 길거리 판매원이 팔찌나 목걸이를 판매하고 돌아다녔는데, 상점 안의 물가의 1/5 - 1/10의 수준이었다.

 

 



 

 



 

 



 

 



 

 



 

 



 

 



<DSLR 카메라는 12월 10일과 11일 오전까지 거의 찍을 수 없을 정도로 고장 상태가 심했다. 여러 사진이 빛이 너무 들어가거나, 너무 어둡게 나오다가, 또 잘 나오다가, 하여튼 완전 "자동"이었다. 초점도 잘 맞지 않아, 핸드폰으로 찍다가 다시 DSLR 카메라로 찍다가, 찍다 말다 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날 오후, 산타 클라라의 체 게바라 기념관을 찍을 때, 제 "정신"이 다시 들어서 그럭저럭 찍을 수 있었다.>

 

 



 

 



 

 



 

 

트리니다드는 건물이 높지 않고, 규모도 크지 않았다. 도시 자체도 시엔푸에고스에 비해 작아 보였다. 성냥갑처럼 놓인 건물이 동화 속의 나라처럼 아기자기했다. 상점과 성당의 색조가 밝으면서도 튀어나지 않게 잘 조화되어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실내는 신혼부부의 집처럼 단정하고 깨끗하게 정돈되고 배열되어 있었다.

 

 


 

우리가 트리니다드의 골목을 누비며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는 태양이 막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사진이라는 것이 본래 그렇듯, 새벽과 해질녘은 어지간한 풍경이면 환상적인 모습을 나타나게 되어있다. 길바닥에는 곰보 얼굴처럼 자갈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길 위에는 건물의 그림자와, 길 위를 걷는 보행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이국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하교하는 아이들이 보호자와 함께 무리를 지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시설이 많지 않아 2-3 부제 수업을 하는지, 아니면 어디서 과외를 받고 가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아이들의 표정은 밝고 이들을 데려가는 어른들의 얼굴에서는 마음 좋은 동네 잔칫집에서 국수를 말아주는 아줌마의 푸근한 모습이 보였다.  

 

 



 

 



 

 



 

 



 

 



 

 



 

 



 

 

한쪽에서는 금발을 길게 뒤로 늘어뜨린 여인이 흰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 말고 물끄러미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한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지는 해만 바라보았다. "그녀는 읽던 책 위로 무엇인가 아롱거리며 눈이 흐려짐을 느꼈다. 이게 무얼까? 그녀는 읽던 책을 내려 놓고 눈을 들어, 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붉은 태양을 배경으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덩그러니 머물고 있었다. 그녀의 선글라스 화면에는 지난 사랑의 추억이 한 편의 영화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오우버랩 되고 있었다. 바람도 없는 이곳에 왜 이리 마음 속 찬 바람은 거세게 불까? 이 열대의 동화 속 마을에 흰 눈이라도 내리려나? 밑도 끝도 없는 그녀의 추억이 기적을 울리며 깊은 산 속 철로를 따라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를 본 내 생각이 그러했다.

 

 



 

 



 

 

트리니다드는 일 주일 정도 묵으면서 골목 골목을 돌아다녀야 할 곳이다. 찻집이 보이면 차 한잔 마시고, 맥주 집이 보이면 맥주를 마시면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햇빛에 물든 골목을 관찰하는 곳이다. 원주민과 또는 다른 여행객과 대화를 나누는 곳이고, 조용히 쉬면서 새로운 여행을 위해 재 충전하는 곳이다. 골목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노는 곳이고, 지나가는 마차를 얻어 타고 갈 데까지 가보는 곳이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어둠을 뚫고 우리가 묵을 산속 호텔로 달리고 있었다. 지도상으로 보아 금방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버스는 게슈타포가 타고 가는 트럭처럼 굉음을 내면서 산길을 올라가느라 속도가 아주 느렸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산속의 밤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버스에서 나오는 버스의 엔진 소리는 그야말로 산속을 메아리치고 돌아와 다시 내 귀속을 때렸다.

 

 

얼마를 갔을까? 찌그적거리던 버스 엔진이 마침내 꺼지고 말았다. 이런 일은 중국에 가면 가끔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여기 쿠바에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운전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건 후, 몇 분 뒤에 트럭이 왔다. 우선 여자부터 그 차를 타라고 했다. 트럭을 타지 못한 사람이 상당 수 있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도대체 정비를 얼마나 부실하게 해서 이꼴이냐고 삿대질을 하며 따져댔겠지만 아무도 항의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주 당연한 듯이, 트럭을 타지 못한 사람들은 가파른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불평대신 노래를 불렀다. 은하수가 통째로 쏟아져 내려오는 암흑의 밤에 손전등을 밝히며 들어보는 쿠바의 노래는 70년대 초반 유격 훈련을 받으며 불렀던 군가처럼 들렸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컴컴한 어둠 속을 걷던 여인 중에서는 하이힐 구두를 신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녀가 뒤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도와줄지 말지를 묻자, 그녀는 도움을 받길 거절하고 저 멀리 뒤에서 끙끙 거리며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가이드는 어디에 있는지 흔적조차 감춘 밤, 도대체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을 지는가? 계속되는 S자 길에서 뒤에서 갑자기 차가 나타나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자동차 운전수는 어떻게 행동을 취할 것인가? 나는 밤길이 무섭기도 하고 안전도 걱정되었다. 가이드가 해야할 걱정을 나 혼자 하고 있는 듯 했다.  

 

 



 

우리가 목적지인 Los Helechos Hotel에 도착한 것은 몇 시인지 모르지만 배는 고플 대로 고프고 힘은 빠질 대로 빠진 밤중이었다. 호텔에서는 하나 하나 여권을 조사하고 방을 배정하니 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배도 고프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눈이 십리나 쑥 들어간 것 같았다.

 

넓은 호텔 식당에는 우리 이외에는 아무도 식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화장실에 손을 씻으러 가는데, 쿠바인 몇 사람이 우리를 위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돈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는 팁을 주지 않고 그냥 왔다. 팁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팁을 줘야 할 지점에 오면 간이 반은 졸아드는 족속같다.

 

 

마침내 식사를 시작했는데, 한 종업원이 다가와 무슨 음료를 시킬 것인지 물었다. 나는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조금 있다가 다른 종업원이 와서 무슨 음료를 시킬 것인지 또 물었다. "쿠바 사람들 끈질기네.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어떤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에서 음료를 시켜 마시고 있었다. "속도 좋군."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가는 데, T형이 물었다. "무슨 음료 마셨어요?" "마시지 않았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뭐 매상 올려줄 일이 있습니까?" "예?" 갑자기 T형이 놀라는 듯 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오늘 거기서 주는 음료수 공짜였는데요!" "뭐라? 재수 없는 놈은 죽어라 죽어라 하는군. 사진기가 빈사상태가 되지 않나, 버스가 고장이 나지 않나, 그런데 뭐 음료가 공짜였다구?" 나는 할 말을 잃고, 열쇠 꾸러미를 부서질 듯이 거머쥐고 호텔방으로 터덜터덜 걸어 올라갔다.

 

 



 

 

(2015년 5월 2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