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오후 "
작성일: 2018년 9월 9일
■ 이 여행기는 스마트폰에서 읽도록 작성되었습니다.
대관령 IC 근처 "미가촌"이라는 식당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둘레길이라는 표지판만을 보고 산책 겸 등산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안내판에 보면 "미가촌"부터 "켄터키 목장"까지 약 4키로의 둘레길을 조성해 놓았다는 것이다. 켄터키 목장은 이미 가본 적이 있으므로, 거기에서 하산하면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짙은 초록의 당근 잎을 배경으로 무섭게 솟아 오르고 있었다. 흰 구름은 희망이나, 아름다움의 표현 대상이지, 흰 구름을 무섭다고 표현한 것은 내 평생 처음이다.
산 중턱에 오르자 멀리 발왕산이 기와집처럼 앉아 있고, 그 위에 역시 흰 구름이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있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스스로 놀라며 스스로 만족했다.
2키로 정도 걸었을까? 산에 나 있는 길은 점점 희미해져서 풀밭과 길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길이 있다고 했는데 왜 길이 없어? 나는 군청 직원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순간,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라는 루쉰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본래 여기에 길이 있었는데, 걸어다니는 사람이 적어지자 길이 없어진 것이다"라는 자연스런 결론에 이르렀고, 군청 직원에 대한 원망이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앗, 하는 사이에 어디선지 검은 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온 길을 되돌아 오려고 하는 그 짧은 순에간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로 인해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배낭 속에 있는 깔개를 꺼내서 뒤집어 썼다. 그러나 폭탄처럼 퍼붓는 소나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소나무 밑에서 잠깐 비를 피하다가, 소나무가 더 이상 비를 막아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여기서 멍하니 있다가, 아에 산을 내려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는 수 없이 걷기 시작했다. 바람은 태풍처럼 불고, 풀과 나뭇가지가 뒤 엉켜서 앞길을 가로 막았다. 이러다가 조난당하는 것이 아닌가 겁이 났다. 여름이니까 다행이지 이것이 눈이라면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이다. 뉴스에서 흔히 봐왔던, 높지도 않은 산에서 사람들이 왜 눈 때문에 얼어 죽는지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어느 정도 내려오자, 진흙 길에 신발이 푹푹 빠지기 시작했다. 진흙 길은 왜 그리 미끄러운지, 둬 번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다치지 않는 것에 대해, 조물주에게 감사했다.
배추를 싣고서 멀리 가던 트럭을 순식간에 따라 잡았다. 진흙에 트럭의 바퀴가 빠져 헛 바퀴만 돌아갔다. 트럭 운전수의 옆 모습이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잠깐 보였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해골처럼 멍하니 운전석에 앉아 있는 운전수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영화의 비내리는 한 장면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부터 살기 위해 연속 길을 재촉했다.
마침내 아스팔트 길에 도착했을 때, 순식간에 비가 멈췄다. 또 순식간에 햇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이상한 꿈이라도 꾼 듯이, 몇 분 아니 몇 초만에 악몽같은 비와의 전투가 마치 싱거운 연속극처럼 그렇게 끝이 났다.
아스팔트 위로 흐르는 물에, 진흙으로 범벅이 된 신발과 바지 가랑이를 대충 씻었다. 하늘이 괘씸하기도 하고, 산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런 곳을 둘레길이라고 붙여 놓은 군청 직원들이 또 다시 야속하게 느껴졌다.
산이건, 하늘이건, 진흙길이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욕을 해주려고 뒤로 돌아섰다. 바로 그때 내가 걸어온 길과 산을 배경으로 무지개가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욕을 하려는 입을 두 손으로 막고, 무지개의 장엄함에 숨죽이고 서 있었다.
나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자연에 고마워해야 했다. 인간의 삶이 경험의 집합체라면, 이런 날이 없었다면 내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할 이 새로운 도전을 두 손들고 고마워해야 했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10분 내내, 무지개는 더욱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 또렷한 일곱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순간 무지개는 또 다른 무지개를 동반해 쌍무지개로 변하고 있었다. 아, 자연의 위대함에, 자연의 따뜻함에, 자연의 장엄함에 스스로 고개가 숙여졌다.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뛴다, 는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를 떠 올리며, 나는 맥주 캔을 열었다. 사라질 줄 모르는 무지개가 맥주 거품과 함께 하늘에서 너울너울 연기처럼 춤을 추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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