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의성 군위 여행기”
내가 의성을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좀 역사가 깊어, 4년전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부 컬링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던, 의성 "영미"팀의 기막힌 시합을 보면서, 그들이 은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의성 마늘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언젠가 의성에 가서 기필코 의성 마늘 밭을 보리라!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영미팀"이 그런 빛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의성 마늘 덕분이라했고, 그렇다면 의성에 가서 의성 마늘을 먹든, 보든, 좌우지간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계 올림픽이 끝나니, 그런 결심도 점점 사그라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미련만은 계속 남아서, "왜 가본다고 해 놓고 안가지?"라는 생각이 늘 나를 따라 다녔다.
그러던 중, 회룡포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쓰린 가슴을 찬 비에 적시는 듯한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의성과 예천의 회룡포를 가 보기로 확정했던 것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멀리 찾아서
휘돌아감은 그 세월이 얼마이더냐
물 설고 낯 설은 어느 하늘 아래 빈 배로 나 서 있구나
채워라 그 욕심 더해가는 곳 이 세상이 싫어 싫더라
나 이제 그 곳으로 돌아가련다
내 마음 받아주는 곳
아~ 어머니 품 속 같은 그 곳 회룡포로 돌아가련다
노래를 들어볼 사람은 여기를 클릭하면 된다. 유튜브와 연결된다.
2021년 12월 3일, 새벽 5시반에 일어났다. 전날 밤에 준비한다고 했지만, 막상 떠나려니 이런 저런 문제가 생겨 6시 반에 집을 나섰다. 6시 반, 사방이 캄캄했다. 조금 있으면 출퇴근 시간이므로, 자주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두 곳, 즉 구리암사대교와, 거기서부터 중부고속도로 하남 인터 체인지를 빨리 통과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찍 나온 덕분인지, 큰 지체없이 서울을 빠져나왔다. 한참을 가니 왼쪽 산에서부터 서서히 여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날이 어떻게 밝아오는지를 시시각각 지켜보려고 했으나, 어느새 날이 밝아와 내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수면 내시경할 때마다, 내가 어떻게 수면 상태에 진입하는지 온 신경을 써도,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듯이, 날이 밝는 것도 이와 비슷했다. 아마, 내가 죽을 때도, 내가 어떻게 죽는지 잘 살펴봐야지 하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황천강을 건너가고 있을 것이다.
<아침 식사 식당: 아무데나>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읍부리에 도착한 것은 아침 9시 정각, 서울에서 2시간 30분이 걸렸다. 예천 용궁면에서 유명한 것은 순대국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순대국 먹는 것이 좀 껄적지근해서, 여기저기 살펴보았으나 마땅한 음식점이 나타나지 않았다. 에라 "아무데나" 들어가자 생각하고 눈을 들어보니, 그 집이 바로 한식전문 "아무데나"라는 집이었다!
방금 가게 문을 연듯, 손님은 없었으며, 남자 주인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부지런히 실내에 걸레질을 하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아줌마 두 사람이 딸그락 거리며 하루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내 앞에 놓여진 선지 해장국에서 옅은 김이 올라오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깔끔한 반찬 몇 가지가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맛은 중상 정도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나이를 먹다보니, 뭐, 그렇게 맛있는 것도 별로 없고, 또 그렇게 맛이 없는 것도 없다. 그렇다고 배가 고파서 먹는 것도 아니다. 때가 되니까 먹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먹으니까 먹는 것이고,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먹으니까 먹는 것이다.
예천 비룡사에 도착하니 아침 10시였다. 비룡산 장안사는 작은 산속에 위치한 조그만 절이다. 아스팔트 바닥은 얼어 있었으며, 산속이라 그런지 내 몸을 싸고 도는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마치 내가 수천년전 폐허로 변한 유적지 탐험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가파른 아스팔트 길을 따라 약 10분 올라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능선 등산로가 나타나고, 수많은 시를 써 놓은 팻말이 나타난다. 그 중에서 유안진의 "작정"이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작정 ------ 유안진
모르며 살기로 했다.
시린 눈빛 하나로
흘러만 가는 가을 강처럼
사랑은 무엇이며
삶은
왜 사는 건지
물어서 얻은 해답이
무슨 쓸모 있었던가
모를 줄도 알며 사는
어리석음이여
기막힌 평안함이여
가을 하늘빛 같은
시린 눈빛 하나로
무작정 무작정 살기로 했다.
이 시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삶은 왜 사는 건지, 물어서 얻은 해답이 무슨 쓸모 있었던가" "시린 눈빛 하나로 무작정 살기로 했다"일 것이다. 그래, 묻지 말고 그냥 사는거야! 그러나,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는 말도 있었는데? 생각없이 살면 인생이 덧 없이 흘러간다고 했는데! 그러면 생각을 하고 살면 무엇이 달라지는데? 생각은 또 뭔데? 달라지면 어떻고 안 달라지면 또 어떤데?
드디어 내 앞에 펼쳐진, 회룡포! 아, 저것이 바로 회룡포구나! 어떻게 강물이 저렇게 휘돌아 나갈까? 강물은 오른쪽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러와 회룡포를 둘러싸며 시계 방향으로 흘러 돌아가고 있었다. 강물이 흘러오는 오른 쪽으로 햇빛이 반사되어 마치 흰눈에 햇빛이 반사되는 듯 했고, 그 위로 길고 좁은 다리 하나가 외롭게 지나가는 강물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흘러 돌아가는 강물은 내 앞을 지나 왼쪽 멀리 놓여있는 또 다른 다리 밑을 통과하여 사라진다.
우리네 인생도 어디서 흘러와서, 다리 밑을 지나고 돌고돌아,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저 세상이 있다고 하나, 저 세상에 간 사람은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는다. 그 사람을 보려면 사진이나 보든지, 꿈속에서나 볼 도리밖에 없다. 내 앞에 살다가 간 사람들도 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한 장소에서 몇 사람에게 기억되다가 완전히 무로 돌아간다. 나 또한 그러할진대 무슨 미련이나 희망이나 회한을 품고 살 것인가?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또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바람처럼, 회룡포를 돌아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리라!
회룡포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차를 타고 회룡포 마을을 지나 회룡포로 가는 다리를 만난다. 다리 이름은 뿅뿅 다리. 철판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어서, 비가 내려 구멍으로 물이 올라오면 "퐁퐁" 소리를 내며 강물이 올라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방송에서 퐁퐁 다리를 뿅뿅 다리로 소개하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뿅뿅 다리로 알려져, 이제 뿅뿅 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삼강 주막이다. 삼강이란 낙동강, 내성천, 금천 등 세 물줄기가 합쳐지는 나루이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음식이나 숙박을 제공하기 위해 세워진 주막이라고 했다. 2006년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방치되었다가, 그 뒤 예천군에서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초가 집 몇 채가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초가집의 문은 닫혀 있어서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초가집 밖에 신발 몇 켤레가 여기저기 놓여있어,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넓은 삼강주막 단지에는 사진 찍는 몇 사람과 매서운 바람과 흘러가는 구름이 전부였다. 보부상, 주화 모양으로 만든 탑 등 몇몇 기념물이 인상적이다.
<삼강주막: 보부상 동상>
세상은 주막이고 인생은 주객(酒客)이라고 했던가? 그저 빈손으로 왔다가 술 한잔 먹고 어칠비칠 하다가 이 세상 뜨는 게 인생이리고 했던가? 일체 술을 입에 대지도 않고 몸에 좋다는 음식만 먹고, 매일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또렷한 정신으로 일생을 사는 사람은 그 나름의 기쁨과 만족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어차피 짧은 세상, 술이나 먹으면서 여자도 가까이 해보고 노름도 해보면서 거기에서 만족을 얻다가 세상을 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운 사람이란, 위 두 가지를 적절히 섞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선에서 마음이 가는대로 흘러가는 것이 나름의 잘 사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이고, 그 선택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오래 산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일찍 죽는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너무 오래 살면, 자식이 피곤하다.
단지 내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박물관이 있다. 삼강의 역사와 지리를 설명하는 영화를 상영하는데, 나를 중심으로 3면에서 화면이 흘러가는 그림을 보는 것이 특이하다. 또한 나의 사진을 찍으면 내 사진이 회룡포를 돌아 여기저기 표류하기도 한다.
예천군 용궁면에서 유명한 것이 순대라고 한다. 회룡포를 보고 이 집에 가서 먹어보지 않으면, "회룡포를 보지 않은 것과 같다", 라는 말을 듣고 용궁면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 "단골 식당"에 찾아갔다. 몇 개의 방에 허름한 테이블이 놓여있고, 몇 사람이 순대를 먹고 있었다.
벽에는 수 많은 연예인들의 사진과 싸인이 붙어 있는데, 그 중에는 백종원이나 박항서 사진도 있었다. 순대 한 접시와 오징어 볶음 한 접시를 시켰다. 밥은 따로 주문한다. 과연 맛 있기는 맛있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 정도는 아니라 해도, 다른 곳에서 따라오기 힘든 그집 특징의 맛이 느껴진다. 그나저나 삼강주막 동네에 왔으면 주모가 따라주는 막걸리 한잔은 곁들여야 할텐데, 자동차를 운전해야 하는 팔자는 괴로움 그 자체였다. 내 죽기 전에 운전수 데리고 다니면서 "나 술먹고 있을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나!"라고 말 할 수 있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단 며칠이라도!
예천 금당실 전통마을은 지금도 옛날 기와집이 몇 채가 남아 있다. 용문면사무소 바로 뒤에 있는 건물들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으니까 하는 수 없이 구경다니는 것이지, 날은 춥지 바람은 불지, 해는 지지, 동네 개는 짖어대지, 뭐 하나 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없다. 역시 구경은 내 몸이 편할 때 욕구가 생기는 것이지, 당장 춥고 내가 먹고 살기 힘들면 만사가 귀찮을 뿐이다.
<예천 용궁면사무소 앞에 있는 금당실 마을 안내석>
예천 시내로 들어와 숙박소를 찾았다. 일단 인터넷에서 적절한 모텔을 발견하고 차를 몰아, 그 근처에 주차했다. 그런데 겉보기에 너무 허름한 듯 해서 다른 집을 찾아보고자 했다. 바로 앞에 호텔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아무래도 비싸겠지, 하면서 값이나 물어보자고 들어갔다.
종업원 아가씨가 나를 2층으로 인도했다. 말이 어눌한 것으로 보아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로 보였다. 그 안에는 또 다른 젊은 아가씨가 있었는데, 두 여자는 자기 나라말로 한참 동안 이야기 하더니, 나보고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호텔 여주인을 모시고 왔다. 1박에 얼마냐고 물으니, 4만원이라고 했다. 이건 뭐 모텔 값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이다. 말이 어눌한 외국인을 따라 방을 보러 들어갔다. 보통 모텔과 똑 같았다. 난방이 잘 되는지 물으니, 따뜻한 것은 염려말라고 했다. 그 방에서 1박 하겠다고 했더니, 주인은 경상도 말로 무엇인가를 아가씨에게 지시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킁캥대는 소리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런 경상도 말을 듣더니, 그 외국인 노동자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잠시 후, 말이 더 어눌한 아가씨가 와서 뭐라고 씨부렁댔다. 얘기하다가 무슨 말인지 몰라, " 그냥 알아서 하셔요. 알아서!" 그랬더니, 벽장에서 이불 하나를 더 꺼내주고 나갔다.
하여튼 그날 밤, 방바닥이 하도 뜨거워서 껍질 벗겨지는 줄 알았다. 방 온도를 낮추는 법을 몰라, 있는 그대로 내 버려 두었다. 문을 열자니, 주인 입장으로 보면 속이 터질일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그날 밤,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 몇 번이나 깼다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니, 술 늑신하게 마신 다음 날, 화장실 거울에서 보이는 내 모습, 다시 말하면 내 해골을 보는 듯 했다.
삼강 주막에 있는 박물관에 갔을 때, 종업원에게 물었었다. "예천에만 있는 독특한 음식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그 젊은이는 태평추를 먹어보라고 했다. 태평추라! 그 이름이 특이했다. 이 말을 듣고 처음 생각난 것은 "태평천국의 난"이었다. 1850년에 발생한 중국의 내전에서 죽은 사람만 2천만명에서 7천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는 어마어마한 내전이었다. 혹시 그 전쟁에서 싸우던 사람들이 먹던 음식인가?
사람에 따라서는 1) 맛이 있건 없건, 될 수 있으면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려는 사람, 2)새로운 음식을 모험해 보기 보다는 항상 안전하게 맛 있었던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 3)이것 저것 안 따지고, 되는대로 먹는 사람 등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번에 속한 사람이다. 먹는 것이건, 보는 것이건, 짧은 세상 될 수 있으면 많은 경험을 해보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전 9시에 묵집에 도착하니, 오전 10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1시간을 기다린다? 아마 이집의 음식이 정말 맛있는 집이라하더라도, 내가 먹어 본 음식이었다면, 나는 1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에 들어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이니, 10시가 아니라 오전 내내라도 나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근처에 있는 정탁선생을 모신 정충사에 들렀다가, 다시 통명 묵집에 온 것은 정확하게 10시였다. 음식을 주문하고 약 10분 후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태평추가 나왔다. 나온 음식을 국자로 대강 휘저어 보니, 김치, 돼지고기, 묵, 김이 가지런하게 나왔다. 정말 내가 살아서 이런 희한한 음식을 먹어보다니, 마른 침이 꿀꺽꿀꺽 넘어갔다.
그러나, 막상 먹어보니, 맛은 그다지 빼어나지 못했다. 술 안주라면 몰라도, 밥과 함께 먹는 식사로서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 했다. 김치 찌개를 먼저 먹고, 나중에 동치미 국에 묵을 말아 먹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술 취한 맛에 먹는 술 안주라면 상관이 없겠지만서도.
그러면 정탁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압송되어 임금 앞에 왔을 때, 이순신 장군을 살리려고 상소를 올렸던 인물이 바로 정탁 선생이다. 이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선조의 분노가 하도 커서 유성룡조차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탁은 상소를 올린다.
"우의정 정탁은 엎드려 아뢰옵니다. 이순신은 몸소 큰 죄를 지어 죄명조차 무거우나, 성상께서는 얼른 극형을 내리지 않으시고 두둔하여 문초하시다가, 그 뒤에야 엄격히 추궁하도록 허라하시니, 이는 다만 . . .. " 어떻든, 정탁 선생의 상소로 인하여 이순신 장군은 목숨을 구했다. <인터넷에서 인용>
예천에서 의성으로 가면서 처음에 들린 곳이 고운사라는 절이다. 고운사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절인가? 나는 한자 이름이 아닌 순 한글로 지은 스님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고운사가 한글의 "곱다"라는 뜻일까 의심도 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고운(孤雲)이라는 말은 최치원의 호였다. 뜻은 "외로운 구름"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유명한 벽화 한 점이 있다. 바로 호랑이 벽화인데, 이 벽화의 특징은 "이 호랑이를 바라보는 사람을, 이 호랑이가 바라본다"는 것이다. 즉, 내가 왼쪽에서 호랑이를 보면, 호랑이가 왼쪽을 본다. 내가 오른쪽에서 호랑이를 보면, 호랑이가 눈동자를 돌려 또 나를 본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 나는 어디로 가든 절대 호랑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고운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의성 사촌 마을이 있다. 사촌 마을은, 이웃 사촌이란 말이 있듯이,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는 마을이다! 정말? 고운사에서 속았듯이, 여기에서도 또 한 번 이름이 나를 속였다. 사촌마을은 한자로 사촌(沙村))이라고 쓴다. 즉,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따서 만든 마을이다. 한자가 있으면 물어볼 필요도 없이 간단한 걸, 한글로만 써 놓으니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어떻든 김광수, 유성룡, 김종덕 등 많은 유현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수 많은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의 어떤 집에 들어갔을 때, 수석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 모든 돌은 카나다에서 지인이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 돌 하나하나가 모양과 질감이 특히했고, 또한 독특한 빛을 띄고 있었다.
다음으로 의성 마늘 테마파크를 찾아갔다. 컬링 "영미"의 추억을 찾아갔던 것이다. 4년 전에는 어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없는, 썰렁하고 텅빈 공원에 불과했다.
단지 마늘 모양을 한, 공연무대는 석양을 배경으로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나를 향해 웅장하게 다가오는 듯 했고, 하늘을 나는 거대한 독수리와도 같은 위압감을 주었다.
따라서, "영미"에 대한 추억으로 찾아갔던 역사의 의성 마늘 현장은 한 바탕의 봄의 꿈과도 비슷하게 그렇게 시시하게 끝났다.
의성 조문국이라! 이 말을 듣고, 처음 드는 생각은 왜그런지 "낯설다"라는 느낌이었다.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리 생각해도 낯설고, 저리 생각해도 낯설었다.
두 번째는 도대체 의성 조문국이 뭐길래, 이 다지도 박물관이 크냐, 는 것이었다. 거대한 배를 연상시키는 이 박물관은 아마 그 규모로 볼 때, 한국에서 몇 번째 안에 드는 박물관이리라.
나중에 들어가서 알게된 것이지만,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조문국(召文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얼마 동안 존재하다가 나중에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신라국, 백제국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데, 여기서 국자를 빼서, 조문이라고만 해도 이상한 것은 마찬가지다.
박물관에서 가까운 곳에 거대한 조문국 무덤이 나오는데, 경주에 있는 왕의 무덤보다는 작지만, 일반 무덤보다는 훨씬 크고 위압적이다. 멀리 지는 해가 구름 사이로 내보내는 햇빛 줄기를 배경으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어디서 숙박하면 좋을지 몰라,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군위군 팔공산 근처에 적절한 펜션이 있었다. 20키로를 달려, 근처에 도착하여 전화를 해보니, 거기서는 먹을 것이 없으니 필요한 것을 모두 사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에서 간단한 준비를 하여 현장에 도착해보니, 펜션이 아니라, 무인 모텔이었다.
무인 모텔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일단은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주인이 직접 모텔로 나오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고려 무인 같은 우람한 주인이 차를 끌고 현장에 도착했다. 주인은 우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창구에 있는 많은 열쇠중 하나를 가지고 위층으로 올라가 이것, 저것 사용법을 말해 주었다.
느낌 상으로 알게 된 것은, 무인 무텔에 숙박하는 방법은, "현장에 도착하여 안내 창구에 기록되어 있는 주인에게 전화를 한 후, 무통장으로 돈을 입금하면, 주인이 몇 번 방 열쇠를 가지고 들어가라"라는 것이 전부인 듯 했다.
하여튼 그날 마침 형편없는 시설로 인해, 개고생했다고 하여야 할까보다. 이 그릇 저 그릇 딸그락 거리는 소리에 마치 내가 굿을 하는 무당처럼 느껴졌다. 한 마디로, "무인(無因)으로, 무인(無人) 펜션에서, 무인(武人)같은 주인을 만나, 무인(巫人)" 처럼 지내다 왔다!
다음 날 군위의 금오산에 있는 하늘 정원으로 향했다. 눈은 오지 않았으나, 역시 아스팔트는 얼어서 미끄러웠다.
주차장에 주차하는데, 안내판에 아무래도 이상한 표현이 눈에 띈다. "하늘 정원 주차장이 없느니,"까지 읽었을 때, 그 다음은 "그대들은 모두 걸어서 올라갈 지어다"라는 말이 나오길 기대했다. 그런데, "좌측 주차장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가 나왔다. 역시 문체가 중요한가 보다. 일관성 있는 문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것이리라.
약 1 시간 정도 등산 후, 오도암에 도착한다. 오도암이라! 설마 오도방정을 떠는 절은 아니겠지! 오도암은 한자로 悟道庵이리고 쓴다. 즉, "도를 깨닫는 암자"라는 뜻이다. 조그만 암자에서 스님의 염불 소리 처량하다. 마치 행여나갈 때 행여꾼 소리같기도 하고, 그냥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같기도 하다.
그런데 기둥에 있는 한자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맨 왼쪽에 있는 "방뇨해탈"이라는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오줌을 싸서 해탈을 한다!" 앞 뒤를 빼어 버리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글귀이다.
후에 한학자에서 여쭈어 보니, 그 뜻은 다음과 같다.
青白歌舞相祝日
청백이 서로 어울려 기도하니
天地同根绝是非
천지는 한 뿌리라 시비가 없네
形色头物本来空
형색은 모두 본래 빈 것이라
玉佛放尿解脱娑
옥부처는 방뇨로 사바세상을 해탈시키네
<한학자: 박종규 옮김>
옥부처가 방뇨로 사바세상을 해탈 시키면, 나도 술 한잔 먹고, 고성 방가(放歌)로 식당에서 식사하는 사람을 현장에서 이탈(離脫)시킬 수는 있을 것인데. . .. .해탈은 못 시켜도
오도암에서 하늘 정원을 바라보니, 거리는 멀지 않지만, 경사도가 만만치 않다. 전에는 이런 경우 죽기살기로 올라갔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런 경우 쉽게 포기하기로 했다. 될지 말지 모르는 상황에서 포기한다는 것,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의미있는 일이다!
다음은 군위군 한밤 돌담 마을에 도착한다. 이런 마을도 다 있어, 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온다. 행정지명은 대율리이지만 한밤 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거기에 있는 모든 집 울타리는 돌로 되어 있다. 돌에 붙어 있는 이끼가 추위에 말라붙어 있어 고색창연하다는 느낌을 준다. 여기저기 알 수 없는 빨간 열매가 맺혀있는 나무가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가 이 열매로 아침 식사를 한다.
어떤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지, 지푸라기 여기저기 나뒹굴고, 쓰다 버리고 간 연장이며 나무 토막이 나뒹군다. 돌담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지, 듬성듬성 모양이 삐뚤어지고, 무너지기 직전인 것도 보인다.
한쪽에서는 한 아주머니가 군위 사과를 판다. 수북히 쌓아놓고, 양동이 하나에 5만원을 달라고 한다. 그냥 지나쳤지만, 지금 생각하니, 몇만원 어치라도 그 아주머니 사과를 팔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열려있는 부엌문으로 반대쪽의 나뭇잎과 꽃이 살짝 보이는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메주가 가지런히 시렁에 매달려있다. 곤충이 달라들지 못하도록 얇은 망사 주머니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담겨져 있다. 그 옆에는 이상하게 생긴 자전거가 있었다. 아니 자전거가 두 대인가? 사실은 자전거 한 대에 그림자가 생겨서 두 대로 보였던 것이다.
군위에 삼국유사면이 있다. 2021년 1월 1일부터 군위군 고로면을 삼국유사면으로 개칭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가장 볼 만한 곳은 삼국유사 테마파크이다.
본래 삼국유사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만든 대단지이지만,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그런지, "별 볼일 없는 곳"이라는 인상만을 준다.
대표적인 향가 비가 눈에 띈다. 백제 무왕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서동요이다. 백제 무왕이 소년 시절에 신라 서울에 들어가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지어 불렀다는 노래다.
<부록>
<강력 경고: 미성년은 읽지 마시오>
조문국 전
지금부터 약 1200여년 전, 현재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조문국이라는 사람이 있었나니, 이 사람은 어디가나 간에 사람이 죽으면 조문을 가는 것을 국시로 여기고, 거기서 제공하는 음식 중 국시를 먹는 것을 인생사 최대의 즐거움이라고 여겼더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하고, 어머니는 어매라고 부르며, 형은 셩님, 동생은 동샹이라고 부르니, 뭇 사람으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꿀밤 구박을 받더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어느 날, 임금이 친히 주관하는 국문장에 구경가게 되니, 이 일로 인해 그의 인생이 바꾸어지게 되나니, 세상만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아멘, 인샬라이더라.
임금이 죄인을 불러 놓고 국문을 하다가 이성을 잃고, 저 멀리 구경하는 조문국에게 묻기를, "너 국문 터득했냐?" 물으매, 조문국이 답하기를, "국문장에서 웬 국문 터득이 나옵니까? 실성하셨습니까?" 하더라.
왕이 자기를 까니보는 줄 알고, 가지고 있던 담뱃대로 조문국의 바빡을 힘차게 내러치자, 이마에서 검으티티하고 야리꼬리한 냄새가 나는 피가 한강처럼 흐르니, 보기에 마치 선지국처럼 맛있게 보이더라. 때는 이 때다하여 임금이 조문국의 이마에 흐르는 피를 마치 신내린 무당처럼 춤을 추면서 마시면서, "내가 세상의 모든 국은 다 마셔봤지만, 조문국 마빡의 국이 가장 맛있도다! 그대는 분명 요리 솜씨도 훌륭할테니, 내 그대를 왕실 주방장으로 임명하노니, 오늘 집에 가서 네 에미 애비에게 이르고, 다음주부터 주방장으로 근무하라! 내 말 안 들으면, 이번에는 네 뒤통수의 피도 힘차게 빨아 마실테니, 네 신세 네가 알아서 하라."
조문국이 왕실 주방장이 되어 출세했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더니 급기야는 산골 중의 산골인 조문국의 고향에도 전달되더라. 조문국이 고향인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도착하니, 경북이라는 북소리가 들리면서, 하늘에는 금성이 반짝거리며 춤을 추고, 땅에서는 온갖 동물들이 "사까닥스"를 하며 조문국을 반기니,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가관이더라.
수 많은 처녀들이 조문국의 아내는 고사하고 1004번째 첩이라도 되어보고자, 물밀듯이 조문국에게 죽자사자 달려드니, 조문국이 넋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입에 침만 질질 흘리더라.
이때 어디선가 바람소리 들려 머리를 들어보니, 맙소사, 양귀비보다 3.14159 배나 예쁜 여인이 나타나 조문국의 뺨을 손으로 감싸며, "아이구, 자기야, 아이구, 자기야" 상냥히 외치며 옷을 훨훨 벗기 시작하더라. 조문국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여인의 허리를 감싸며 여인의 왼쪽 다리를 걸어, 뒤로 자빠뜨리니 여인이 넘어져서 조문국을 향해 손가락질 하면서 자기에게 오라고 눈짓을 보내면서, 미쳐 환장한 듯 몸을 비비 꼬더라. 조문국이 옷도 채 벗지 못하고 막 여인에게 달려들 때, 어디서 천둥 번개치며,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니, 조문국 눈에 불이 번쩍이며 정신이 혼미해지더라.
조문국이 정신차리고 눈을 떠보니, 118키로 나가는 조문국 여편네가 조문국 배 위에 올라타고 입에 거품을 물고 식식거리며, "금산군 남일면 삼태리 뒷산에 있는 황서방 바위"만한 주먹으로 조문국을 내려칠 자세를 취하더라.
조문국 마누라 왈, "얀마, 너 또 개꿈 꾸었지! 빨리 밥쳐먹고 설거지햔마!"
(2021. 12. 1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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