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틀 바위 등산기
이름도 생소한 베틀바위!
2021년 10월 19일 아침 9시 30분, 대관령의 날씨는 흐리고, 공기는 차갑다.
어젯밤을 함께 보낸 서울에서 온 친구는, 아직도 술 기운이 남아 있는 듯 조금은 비몽사몽인 듯 하다. 같이 술을 먹었으니, 몸의 상태는 친구나, 나나 비슷한 상황이다. 원인은 한산 소곡주를 주량 이상으로 마셨기 때문이다. 이 술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마셔도 마신 것 같지 않고, 그냥 목구멍을 간지리며, 정든 임 찾아 아리랑 고개 넘는 목동처럼 목구멍을 통해 술술 넘어갔다.
빵 몇 개와 감자 떡 몇 개, 물 2병을 배낭에 넣고, 심호흡을 한 후,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대관령을 출발한지 한 시간이 좀 지나서 목적지인 동해시 두타산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시계를 보니 10시 40분이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누며 걸어간다. 나도 친구와 함께 보무 당당하게 두타산을 향해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보무 당당하다"는 말은 많이 들어서 그냥 사용했지만, 실제 이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분명하지 않아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보무(步: 걸음 "보", 武: 굳셀 "무"), 즉 씩씩하게 걷는 것을 말한다.
사실, 두타산은 지금부터 13년 전인 2008년 7월 4일에 올라간 적이 있다. 그때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지금도 이 날짜를 잊지 않고 있다. 친구와 함께 두타산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숙박한 후, 아침 일찍 출발하여 비몽사몽간에 올라갔던 두타산이다. 그날 성이 "심"씨인 어떤 젊은 아가씨 자매를 만나 같이 이야기를 하며 걷던 일, 음식 준비가 부족하여 허기져서 일어서지도 못 하던 일, 간신히 내려와서 찌개에 술 한잔 걸친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그렇게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베틀 바위 코스는, 입구에 있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왼쪽으로 꺾어 시작된다. 지대가 낮고, 동해안이라 따뜻해서 그런지, 초입에 있는 나무들은 마침 여름인 듯 초록색을 듬뿍 담고 있었다. 바닥에는 돌이 많이 있었고, 잘 다듬어지지 않아, 마치 소가 마른 지푸라기 여물을 먹는 듯, 걸을 때에는 신발에서 뽀드득 소리가 났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숲 터널을 지나 좀 더 올라가니, 계곡 건너편에 거대한 바위가 보였다. 학소대로 보이는 이 병풍같은 바위를 타고 위에서 한 줄기 물이 흘러 내려, 힘들고 지친 등산객에게 즐거움, 희망, 그리고 계속 걸을 용기를 준다.
여기서부터 경사도는 더욱 심해지고 바닥은 온통 돌로 뒤덮여, 눈에 보이는 것은 앞 사람의 궁둥이 뿐이요, 들리는 것은 "아이구, 죽겠네"라는 신음 소리 뿐이다. 좀 앉아서 쉴 만한 공간도 없고, 그렇다고 서 있자니, 뒷 사람의 방해가 되고, 한 마디로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죽어라 죽어라" 해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은 누구의 머리 위에나 비치는 법이다. 길은 다시 평평해지고 넓어지며, 교묘하게 생긴 키 작은 소나무들이 마치 분재 그릇에서 방금 밖으로 튀어 나온 듯 하다. 소나무가 여기저기 자태를 뽐내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대 고생이 많소이다. 뭐 나를 문안하러 여기까지 오시나이까? 잠시 쉬었다 가시오." 나는 말한다. "소나무, 그대도 고생이 많소이다. 척박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춘하추동을 지내려면 그대 고생하는 것, 척 하면 비디오요!"
마침 비가 온 뒤라 그런지, 골짜기마다 물이 "수와악" 소리 내며 흐른다. 이쪽을 보면 바위에서 바위로 이어지는 흰 물줄기 백발 삼천장이요, 저쪽을 보면 숲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흐르는 물이 낭랑 18세 소녀 속살이다. 지난 날 생각하며 눈을 감고 앉아 있으니, 한 줄기 바람 불어와 머리 헝클어 놓고 사라진다. 이제는 가야지 생각하니, 정든 임 두고 떠나는 나그네처럼,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약 한 시간 걸려 도착한 베틀 바위! 과연 명품 중의 명품 바위로다. 저 아래 왼쪽에서부터 시작된 뾰죽한 바위가 손에 손을 잡고 떡 버티고 서 있다. 수많은 장군들이 삼지창을 가지고 시위하는 듯,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준다. 연속된 뾰죽 바위는 오른 쪽으로 치 솟아 올라, 달리고 또 달려 정상의 미륵 바위에서 그 장엄함을 멈춘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이 바위가 베틀 바위냐? 내가 어렸을 때, 자다가 눈을 뜨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짜는 것을 보았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서 마치 어제의 일인 듯 하다.
그 당시 어머니가 앉아 있는 베틀에는 수 많은 실이 세로로 놓여있었다. "바디"인지 뭔지를 손으로 잡고 각도를 조금 돌리면, 어머니 앞에 놓여있는 무수한 실이 짝수 실과 홀수 실로 나누어져 그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그러면, 실이 들어 있는 "북"이라는 조그만 나무 배같은 것을 그 사이로 통과시킨다. 그런 다음 바디를 앞으로 세계 당겨서, 실 하나가 옷감의 일부가 된다. 이 "북"은 밤새도록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베가 만들어지는데, 하룻밤에 짜여진 옷 감의 길이가 채 1 미터도 안 된 듯 했었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그 당시 여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는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어 사전에서 shuttle(셔틀)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북"이라고 되어 있는데, 바로 베틀의 "북"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셔틀 버스는 "북"이 좌우로 왕복하듯이, 일정한 구간을 왕복하는 버스를 말한다. 배드민턴에서 사용되는 공도 "셔틀 콕"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이 코트와 저 코트를 왕복하는 날개 달린 공이다. "내가 동네 북이냐"라고 할 때의 북은 타악기의 북이므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베틀 바위 이야기로 돌아가서, 베틀과 이 바위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내가 한 달간 식음을 전폐하고 두문 불출, 심사숙고 관찰 또 관찰한 결과, 베틀을 옆에서 보면 이 산의 모양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위 그림을 보라!
베틀 바위 전망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초조한 듯 발을 구르기도 하고 동료와 이야기를 하면서, 사진 촬영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체 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온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한 장씩 찍으려니, 순서를 기다리는 줄은 줄지 않고, 시간은 촉박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아무 데서나 몇장 찍고 더 이상 촬영을 멈추었다. 그러자 남의 속도 모르고, 자기들 찍어달라고 나에게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내심이라는 것은 이럴 때 발휘해야 멋 있는가 보다.
배낭을 여기저기 뒤져서 싸가지고 온 안흥 찐빵과 감자떡을 꺼냈다. 그런데 우연한 일이지만 ,이 음식의 조합은 놀랍도록 흥미로운 맛으로 나타났다. 이 세상의 많은 발명품이 우연한 사건의 결과로 나타나듯이, 안흥 찐빵의 달코롬한 맛과 감자떡의 쫄깃한 질감의 만남은, 희한한 맛과 향으로 다가와, 마치 맛의 교향곡을 듣는 듯 했다.
베틀 바위 꼭대기가 바로 미륵바위다. 그런데 베틀 바위에서는 미륵바위가 보이지 않고, 약 20분간 가파르게 올라가야만이 바로소 미륵바위가 보인다. 미륵 바위는 내가 보는 각도에 따라, 미륵 바위, 돌부처 바위, 녹두장군 바위, 망치 바위 등으로 불리울 정도로 다양하게 보인다.
이미 올라올 부분은 다 올라왔으므로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옆으로 한가롭게 걷는 쉬운 길이다. 저 멀리 관음암이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그림처럼 얌전히 앉아 있다. 이곳의 산세가 경사도 높은 바위로 되어 있는 점을 고르하면, 이 두타산 중턱에 저런 넓고 평평한 대지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계곡 입구에서 관음암까지 음식을 나르려면 보통 노력이 아닐텐데, 하여튼 짐꾼이든 스님이든, 이 세상에는 뼈빠지게 일하는 사람이 있고, 그 결과로 편하게 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늘 불공평하고, 아무리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고 해도,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세상이 불공평하다, 누구는 금수저다, 누구는 잘 생겼다, 누구는 돈이 많다" 등, 아무리 불평을 해도 이 험난한 세상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살아갈 방법은 없다. 태어날 때, 이미 불공평하다. 불공평하다고 투덜대는 것은 자유이나, 어떻게 하든, 깔끔한 해결책은 없다. 결국은 자기의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최상의 정책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마음이 고쳐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지 말라. 신은 마침내 모든 인간을 100세 이전에 죽게 함으로써, 드디어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신다! 100세도 더 사는 사람은? 그건 죽은거나 마찬가지다.
베틀바위를 지나면 진짜 비경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저 꼭대기부터 수 많은 작은 폭포를 내리 뛰고 또 뛰어, 바로 내 눈 앞으로 흘러온다. 내 발을 간지리며 잠시 놀던 폭포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이제 갈 때가 되었다는 듯, 다시 아래로 흘러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자신의 몸을 맡겨, 끝내 그 종적을 감춘다.
<석간수>
석간수가 있다는 안내판을 보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병에 담아 마셔보았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실제 석간수는 더 앞으로 가야 나타났고, 현재는 폐쇄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빗물이 모여 흘러내린 물을 마셨던 것이다. 잠시 실망을 했지만, 저 물방울 속에는 수 백만년전부터 존재해온 생물과 광물이 녹아 있어서,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거의 마천루에 다다르기 직전,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잠깐 들어가면, 그야말로 비경 중의 비경이 나타난다. 이 바위에서 건너 쪽을 내려다 보면, 오른 쪽으로 저 멀리 계곡에 손바닥처럼 펼쳐진 병풍 바위가 내려다 보이고, 그 위에 계곡이 이어지고 산등성이로 이어져, 마침내 계곡의 늦가을 짓푸름은 전체 두타산으로 들불처럼 번져간다.
잠시 내 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서 있는, 이리 갈라지고 저리 갈라진 이 바위는, 한 평이나 될지 말지 모를 정도의 작은 바위다. 이런 바위를 징검다리 건너듯 성큼성큼 건너 뛰어야 사방을 살필 수 있는데, 까딱하다가는 황천길로 가는 첩경이니 조심해야 한다. 여기에서 아래 쪽은 무서워서 바라볼 수가 없다. 100미터인지 200미터인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10 여 미터 위쪽에는, 겁없는 염소나 올라가기 딱 알맞은 크기의 바위가 하나 있다. 여기에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등에 찬 땀을 순식간에 식혀주는데, 시원하다고 넋 놓고 있다가는, 바람에 날려 그냥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으므로 명대로 살 생각이 간절한 사람은 아예 올라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마천루>
<마천루에서 바라본 앞쪽 바위>
오늘 하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바로 마천루 전망대이다. 앞쪽이 훤히 트여 시원함을 선사하는 이곳은, 오른쪽으로 고릴라가 팔장을 끼고 하늘을 향해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듯한 "고릴라 바위"가 떡 버티고 서 있다. 바로 앞에는 마치 유럽의 근위대가 보초를 서는 듯 촘촘히 버티고 있는 바위가 장관이다. 바로 왼쪽으로는 두타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따라 검은 바위와 짙은 초록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아래로 내려 꽂는다.
<마천루에서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 저 멀리 고릴라 바위가 보인다.>
마천루에서 길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 오면서, 뒤를 바라다 본다. 정말 설악산 비경 속을 걷는 듯, 꿈 속의 선경을 걷는 듯 하다.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아쉬움과 그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또 다시 비는 오다 말다를 반복한다. 가파른 길을 난간을 잡고 천천히 내려온다. 이제 내려가면 다시는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없을 것 같아, 차마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고, 길 옆에 앉아 잠시 멍하니 나무와 바위와 그리고 하늘을 또 본다.
어떤 등산객은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헉헉대며 올라오는 사람도 있다. 지금 올라가도 베틀바위를 볼 수 있는지 묻기도 한다. 그들에게 희망을 준다. "갈 수 있슈! 가보슈!" 잠시 후, 그들에게 헛 희망을 준 나를 질책한다.
<고릴라 바위의 확대 사진: 골릴라라기 보다, 마귀가 염라대왕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듯하다>
아, 수 많은 돌바위 길을 더듬더듬 장님처럼 걸어오기도 하고, 짙은 초록의 숲을 구름에 달 가듯이 지나기도 하고, 지뢰밭을 걷듯이 조심 또 조심 걷기도 하고, 수 많은 이정표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가끔가다 들려오는 이름 모를 산새와의 속삭임이 있었고, 등산 내내 끊임없이 들었던 계곡의 물소리와 이심전심의 대화도 나누었는데, 이제 정말 작별이란 말인가?
<쌍폭포>
비온 뒤 우렁찬 소리를 내뿜으며 힘차게 아래를 향해 내려 꽂는 쌍폭포와 용추 폭포를 뒤로 하고, 계곡을 따라 처벅처벅 걸었다. 궐궐 소리를 내던 물소리는 이제 평평한 바위 계곡을 타고 소리 없이 아래로 흘러흘러 간다.
그런데, 터덜터덜 걷다가 아무 생각 없이 어떤 돌을 밟았는가 싶었는데, 내가 뒤로 넘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넘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 넘어지고 있다! 얼른 무슨 수를 쓰면 될텐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넘어지고 있는데, 무슨 수를 써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일단 뒤로 넘어지고 있으니, 팔의 피부가 벗겨지건 팔뚝이 두 동강이 나건, 머리는 다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로 넘어지면서 두 팔꿈치를 힘 주어 뾰죽한 돌 위에 위치시키면서, 피부를 돌에 갈면서 내려갔다. 오른쪽 팔이 돌에 갈리면서 껍질이 무주륵하게 갈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입었던 얇은 옷의 소매를 걷어 올리니, 팔뚝을 따라 길고 얇게 상처가 나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이 영광의 상처를 촬영해달라고 부탁했다. 왜? 나도 모른다. 바로 여기 여행기에 올리기 위해서 일 것이다, 아마!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취할 태도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조금 조심해야 했을텐데, 왜 병신같이 조심도 못 하고 이런 일을 당하는가? 또 하나는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뇌를 다쳐서 반신불수가 된다든지, 평생 병원 신세를 진다면 어쩔 것인가? 역시 긍정의 생각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감사의 마음을 준다.
내려와서 약국에서 몇 가지 약을 사서 발랐다.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약으로는 안 될 것 같아, 동해시에 있는 병원에 들렀다. 의사 선생님은 한 동안 고생은 하겠지만, 별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칠흑처럼 어두운 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차를 몰아, 동해시의 해변으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 손님도 없는 어떤 횟집에 들렀다. 거기서 매운탕 거리를 사서 차에 실었다.
집에 오는 길, 오늘 걸었던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하며 한 잔 해야지! 아니, 술을 마시면 상처가 곪을텐데! 두 가지 생각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적군과 아군의 전장처럼, 계속 내 머리 속을 점령하고 후퇴하였다. 이런 생각은 목적지의 불빛이 멀리 보이는 그 지점에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 결국 한 가지 생각이 다른 한 생각을 압도하였고, 그때 나는 바로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내려다 보니 나의 한 손에는 약봉지, 다른 손에는 축 쳐진 매운탕 거리 봉지가 들려있었다.
2008년 두타산 등산기를 읽어 볼 사람은 여기를 클릭하면 된다.
<2021년 12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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