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Korea

울릉도 성인봉(Wooleung Island)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1. 12:33

 

 

 

 

울릉도 성인봉 등산기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유치환 "울릉도">



 

그래, 울릉도로 가야해. 울렁울렁 울렁대는 울릉도로 가야해. 하얀 갈매기 작은 섬 주위 날고, 만길 낭떠러지 굽이쳐 파도 치는 울릉도로 가야 해. 연 가슴 바닷바람 맞으며, 나리 분지 가을 냄새 맡아야 해. 성인봉 바라보며 야호 소리 질러야 해. 도동, 저동 뱃소리 들으며 밤을 새워야 해. 지는 해 바라보며 회 한 접시 소주 한 잔 먹어야 해. 그래, 그래야 해.  

 

 

2010년 11월 19일 새벽 4시, 여태 단 한 번도 일어나 본 적이 없는 이른 새벽이다. 핸드폰 알람 소리에 가슴이 덜컹 한다. 내가 왜 잠을 깼는지 한 참 생각하는데, 잠실역에 5시까지 오라는 여행사 아가씨 말 내 가슴 덜컹 친다. 한쪽 눈은 떠 있으되, 한쪽 눈은 감겨있다. 아내가 깰까 조심하며,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배낭 걸쳐 메고, 모자 뒤집어 쓰고 집을 나섰다.

 

 

새벽 5시다. 잠실 역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여 이리저리 살폈다. 가끔 시내버스가 다니는 것을 보니, 시내버스는 5시 이전부터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개 속에서 그냥 아무 일도 없이 서 있는 사람을 보니, 집이 없는 사람인지, 그들도 나처럼 어떤 약속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도 가장 많이  보이는 사람들은 택시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이었다.  
 

 

묵호행 관광버스는 5시 20분에 출발했다. 약 50명 정원인 버스에 빈 자리가 없었다. 버스는 올림픽 대로로 들어서더니 곧 중부고속 도로로 진입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연기 자욱한 전선을 뚫고 달리는 탱크처럼, 그렇게 무자비하게 버스는 달렸다. 승객 중 누구하나 말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칡 넝쿨 얽히고 설키듯, 이리 저리 뒤엉켜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다.   

 

 

 

 

 

 

버스는 8시 반에 묵호항에 도착했다. 주차장으로 다른 자가용과 버스가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묵호항은 몇 년 전 금강산 갈 때 사용했던 동해항과는 다른 항구였다. 좁고 꾀죄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구 옆에서 어부들이 어망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옆에 몇 사람이 낚시질을 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새끼 고기가 물리면 잡았다가 다시 풀어 놓아 주었다. 그 옆에 한 아줌마가 일을 하다가 무슨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어디나 잘 끼어드는 내 친구는 때를 놓칠세라 반쯤 익은 생선을 늑대 뼉다구 뜯듯 온갖 인상 써가며 입 안에 휘몰아 쑤셔 넣는다. 아줌마와 내 친구 먹기 내기 시합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10시에 묵호항을 출발한 "오션 플라워 호"는 12시 40분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울릉 씨 투어 독도 클럽이라는 팻말을 든 사람이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사실 나와 내 친구는 굿모닝 여행사에 신청을 했는데, 어쩌다가 홍익 여행사 명찰을 달게 되었고, 이제는 울릉 씨투어 독도 글럽에 넘겨지는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늙은 호박 같은 신세가 되었다. 마치 아프리카 흑인이 이리저리 팔아 넘겨지다가 마침내 미국으로 최종 목적지가 결정되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릉도라. 저것이 오징어 밭이구나. 여기가 도동항이야. 갈매기, 그대 오랜만이네. 눈을 잠깐 들어보니 우뚝 솟은 산이 가을 단풍으로 물들여져 있다. 오른 쪽, 쭉쭉  뻗어 올라간 바위 금방 무너질 듯 나를 위협하고, 앞에 떡 버티고 있는 저 산은 "내가 성인봉이요"라고 말한다.

 

 

사실 울릉도는 세 번 째 온다. 처음 왔을 때는 한 겨울에 왔었다. 찬 바람 매운 맛 된통 당하고 돌아갔다. 두 번 째 올 때는 한 여름에 왔다. 더운 맛 회초리 질리도록 맞고 돌아갔다.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울릉도는 그리 인상 깊은 곳이 아니라는 추억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 가을의 울릉도는 전혀 다른 신천지였다. 시원한 바람에, 불타는 산, 깎아지른  바위에 출렁이는 물결, 저녁 놀에 묻어 나는 갈매기, 울릉도 호박엿을 외쳐대는 부처님같은 아줌마, 이국에 온 듯한 기분으로 방방 떠 있는  젊은이들, 무엇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도동항>

 

 

안내자를 따라 우리의 숙소로 들어갔다. 좁고 좁은 철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안내되었다. 안에서는 무슨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바닥을 뜯고 난방 공사를 하는 듯 했다. 먼지가 사방에 날고 아스팔트 굴착기 소리 귀청을 멍멍하게 한다. 바로 옆 방이 바로 우리 방이었다. 밤에만 묵을 방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말 안하고 얌전하게 있기로 했다. 아마 다른 사람에게 이런 방을 주었으면, 가이드와 한 바탕 붙었을 것이다.

 

 

 

 

 

 

처음 간 곳은 해안선을 따라 오른쪽에 있는 내수전 일출 전망대다. 꼬불꼬불 돌아 한 참을 가면 산 중턱에 버스는 멈추게 된다. 거기에서 바다쪽으로 약 30분 올라가면 바로 앞에 죽도와 관음도가 보이고 그리고 저동과 등대가 보이는  내수전 전망대에 이른다. 붉은 산 나를 환영하고 "죽도 밥도 아닌게 아니라 나는 죽도요."라고 바로 눈앞에 있는 죽도 마님 소리없이 아우성친다.   

 

 

버스 기사 말에 따르면 죽도에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아버지가 죽고 지금은 아들 혼자만 산다고 한다. 언젠가 한 번 TV에 이들의 생활에 대한 방송이 있은 후, 엄청난  프로포즈가 그 청년에게 들어온다고 한다. 운전수는 말한다. "그 사람 돈 많아요." "뭐해서 돈이 많아요."누군가가 물었다. "더덕 팔아서 엄청 벌었습니다." 죽도를 한 바퀴 돌고 섬에 올라간 사람들이 더덕을 많이 산다고 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혼자 사는 것이 좋아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게 뭐꼬. 여기 와서 이 손바닥만한 섬에 와서 개미 쳇바퀴 돌듯, 이 운전만하고 있으니. 이제 다리에 힘도 없어서, 마누라 나만 보면 신경질 냅니다." 갑자기 운전기사 신경질 낸다.

 

 

 

 

 

 

다시 내려와서 오른 쪽으로 틀면 봉래폭포로 가는 길이 나온다. 버스에서 내려 한 참을 걸어가면 마치 미국의 메타세콰이어를 연상시키는 쪽쭉 뻗은 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3단 폭포로 이루어진 이 폭포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정말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겨울이라 그런지 물줄기가 작아 산삼뿌리 헤적거리듯, 그렇게 찔끔 찔찌금 물이 떨어진다.  

 

 

벌써 우리  일행 약 20여명은 한 두 시간 서로 다닌 것만 가지고도 친한 사람이 된 듯 했다. 아니 갑자기 일심동체가 된 듯 했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지만 노는데는 여자가 판을 친다. 남자는 왜 이리 적고 여자만 많은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 중에 60대 후반쯤 보이는 여자 5명이 있었는데, 서로 언니 동생 하며 잘 지냈다. 그들은 말이 많고 동작은 굼떴다. 그들은 아까 점심을 먹을 때, 반찬을 네 번이나 더 달래서 먹은 사람들이다. 내 친구는 "노인네가 욕심만 많아가지고, 아이구, 저러니까 ........."라고 말한다. "몇 년 후의 우리의 모습이라네, 이 사람아. 그냥 갑세."

 

 

 

 

<봉래폭포>

 

 

봉래폭포에서 저동으로 내려와 세 파(三派)로 마치 쪽파처럼 갈라진다. 1)저동에서 생선회에 술 한잔 할 사람, 2)저동에서 지는 해를 보며 도동까지 해안선을 따라 걸어갈 사람, 3)그냥 도동항에 가서 저녁 식사 할 사람. 우리가 제 1 부류에 속할 것은 당연, 아까 말한 언니들 버스 타고 도동 갈 것도 당연, 나머지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나는 모른다.  

 

 

항구에 들어서자마자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잡는다. 아주머니는 방어라는 고기만 가지고 있었는데, 팔뚝만한 방어 두 마리를 1만원에 주겠다고 했다. 더 이상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눌러 앉았다. 썩썩 썰어서 가져온 회가 바구니로 하나 가득 찼다. 이것을 언제나 다 먹을지 걱정이 태산같다. 그러나 입에 대니 고기는 고기를 부르고 술은 술을 부른다. 바로 옆에 있는 수퍼에서 아주머니 오토바이타고 소주와 야채를 득달같이 가져온다.

 

 

날은 어두워지고 바람은 찬데 술발이 받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술기운과 찬 바람이 내 몸에서 상쇄되어 술 먹기 딱 좋은 온도와 분위기였던 것이다. 혀가 점점 꼬부라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미루다가는 영원히 못한다는 생각을 서로 갖고 있었다. 술을 더 먹으면 내일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못 먹으면 더 좋은 미래가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의기투합하는 친구를 갖고 있는 것도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동 항구>

 

 

어렴풋이 앞에 보였다. "엄마, 아빠, 동생이 필요해요." 동생이 필요하다는 말을 왜 택시 뒤에다 붙이고 다니나? 택시 안에서 일이라도 벌이란 말인가? 그러면 택시 기사가 잠깐 자리를 피해주나? 아, 어떤 사람은 잠깐도 아니겠군. 비디오에서 보니 몇 시간도 걸리던데. 술 먹은 놈이 알게 뭐야. 아저씨 도동까지 얼마예요." 아저씨 대답한다. "한 잔 하셨구려. 4000원입니다."

 

 

 

 

<동생이 필요해요>

 

 

도동항에 도착한 우리는 실성한 놈들처럼, 아니 머리도 없이 몸둥이만 있는 닭처럼 그렇게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맸다. 몇 군데 술집을 들르고, 먹고 다시 나오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웃고 그리고 걸었다. 그리고 기억이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남아 있을 때, 여관집 묵직한 사다리를  쿵쿵 오르고 있었다.  

 

 


다음 날, 도동항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관광이 시작되었다. 처음 도착한 곳이 거북바위다. 우뚝 솟은 바위 중 일부분을 가리키며 저 부분을 보면 거북이가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라고 안내자는 강조한다. 저 놈의 거북이가  아래로 향하건, 위로 향하건, 뭐 그리 대단한가? 사람들은 어디 여행만 가면 꼭 어떤 모양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 듯하다. 홍도나 흑산도에 갔을 때도 저것이 무엇을 닮았으며, 이것은 무엇을 닮았다고 침을 튀기며 해설하던 안내자가 생각났다. 닮건 말건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바위 그 자체가 멋있게 서 있으면 그뿐, 뭘 더 바라랴. 아니 바위가 멋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바위가 없어도 상관이 없다. 그냥 좋을 뿐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닮아서 어떤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거기 서 있어서 그것이 좋을 뿐이다. 왜 이렇게 내 말이 요상하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조금 가면 모노 레일 타는 곳이 나온다. 일본인의 기술로 만들어 졌다고 하는 이 철로는 산에 놓아진 한쪽 철로 레일을 타고 올라간다. 그곳에서 반대편 바닷가를 보고 오는 것이다. 그곳에는 텔리비전에 나왔다고 하는 노인 집이 오히려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그 높은 곳에 넓은 들판이 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시대에 출연되었다고 하는 할머니 집>

 

 

 

 

 

 

 

 

 

 


 

저것은 코끼리 바위 저것은 무슨 바위, 하도 많이 들어 이제 바위라면 진절머리가 날 무렵, 심층수 공장에 도착했다. 내가 마셔본 심층수는 미지뜹뜨름한 쌀뜨물 같은 물이었다. 박제품 전시장이나 보석상을 들르더니, 버스는 나리 분지로 향했다. 그러더니 또 섬백리향 향수 파는 집에도 들렸다.  

 

 

 

나리분지에서 점심식사를 한 것은 11시 반경이었다. 어떤 집인지 모르지만 얼마나 음식이 정갈하고 맛이 있는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게다가 종업원의 말씨도 예쁘지, 심부름도 빠르게 하지, 상냥하지, 뭐 하나 나무랄 것이 없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집에서 파는 씨껍데기 막걸리를 먹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성인봉 등산만 아니었다면 아마 거기서 하루 머물며 밤새도록 씨껍데기인지 조껍데기인지 술을 마셨을 것이다. 씨껍데기 조껍데기의 발음이 나에게만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좀 순화시켜 이름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면, 씨껍데기는 '앗싸떼기'로, 조껍데기는 '좋지떼기'로 말이다. 아니, 원래 이름이 백 배는 낫다.

 

 

12시쯤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을 해본 사람은 다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등산을 많이 해본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왜 이리 힘이 드냐?"는 것이다. 젊은이, 늙은이를 구별하지 않고, 경험자 무경험자를 구별하지 않는다. 무조건 등산은 힘들다. 그리고 투덜대며 내 다시는 오나봐라 소리치지만 여편네 출산의 고통 잊고 또 애기 낳듯, 다음에 또 혹독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그것이 등산의 마력인가 보다. 참으로 묘한 일이다.  

 

 

 

 

 

 

조금 올라가면 더운 발 식히는 족욕장이 나타나고, 바로 그 옆에 퀄퀄 솟는 물이 있다. 도동에서 올라왔다가 그곳에서 족욕을 하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걸죽한 농담을 하며 희희낙락거리고 있다. 거기에서 조금 걸으면 넓은 들판에 갈대가 무성하고 멀리 성인봉이 길게 뻗어 있는 것이 보인다.  

 

 

 

 

 

 

성인봉에 오르려면 두 군데 엄청난 길이의 나무 계단을 올라야 한다. 하여튼 한국에서 그만큼 어려운 계단이 없을 정도로 힘드는 그런 계단이다.

 

 

첫 계단을 오르며, 그리고 또 평길을 걸으며 숱한 사람을 만난다. 그중 인천에서 왔다는 한 부부가 있었는데, 여자는 한발자국 걷는데, 쇠뭉치를 달고 걷는 사람 같았고, 남편은 계단을 두 계단씩 걸어 올라가는 사람이다. 무슨 북한의 1. 24 군부대 대원처럼 보이는 가무잡잡한 남편은 내가 보아도 피 눈물 하나 흘리지 않을 사람처럼 보였다. 아내 말에 따르면 그는 한번 등산을 시작하면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걷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의 산을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아내가 하는 말, "세상에 저런 사람하고 사는 내가 너무 신기합니다." "왜요?" 내가 물었다. "저 인간은  그것 말고는 잘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예."  "그것이 무엇인데요?"라는 말이 입술 근처에서 발발 떨렸지만 결국은 물어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성인봉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경이다. 역시 사람이 많아서 차례를 기다려 기념 사진을 촬령해야 했다. 저 멀리 사방으로 바다가 보였다. 대지가 높아서인지 이미 활엽수는  잎이 다 떨어져 있었고, 키 작은 대나무만이 잎을 달고 있었다. 울릉도의 산은 장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성인봉을 정점으로 사방으로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산 줄기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에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이무기의 모습처럼 그렇게 어슬렁거리는 듯 했다.  

 

 

 

 

 

 

 

산 구석구석 바닥에 소철나무 비슷한 풀이 깔려 있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11월에 저런 풀이 널부러져 있다니 저 풀은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 식물인가?  

 

우리와 같이 간 사람들 일부가 정상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같이 먹자는 말을 뿌리치고 그냥 내려왔다. 그들은 처음 올라갈 때부터 무엇인지 배낭 가득히 지고 갔던 사람들이다. 산에 가는 많은 목적 중, 정상에서 멋있게 딱 한 잔 하는 그 맛 때문에 등산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거의 도동에 다 왔을 지점에, 커피를 파는 허름한 집이 있었다. 마침 50 이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와서 커피와 약주를 팔고 있었다. 어떻게 이야기가 나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고향이 어디이며 언제부터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등등의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벼락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아내를 향해서, 그리고 우리를 향해서, "쓸데 없는 소리 그만해!"라고 그릇 깨지는 소리를 냈다. 아까부터 안에서 자기 아내가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아내에게 커피 장사를 시키지 말든지,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도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는 것은 눈감아 줘야지, 별 놈 다 있네."라고 나도 모르게 내 입이 삐뚫어졌다.

 

오래 전에 서울의 개포동에서 근무할 때, 근처 어떤 집에 예쁘장한 아줌마가 운영하는 술집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남자들이 들끓었다. 솔직히 말하면 남자들이 들끓은 이유는 여자가 혼자 산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 아줌마의 얼굴이 반반하다고 하는 점이다. 나도 남자지만 왜 그렇게 남자들은 얼굴 예쁜 여자만 찾는지 내가 봐도 신기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 남자가 그 여자가 운영하는 술집 근처에 어슬렁거렸다. 듣자 하니 그 여자가 재혼을 했는데, 그 사람이 남편이라는 말이 들렸다. 그 뒤로 손님의 발길이 뚝 떨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밥장사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술장사라면 적어도 남편은 데리고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손님들이 수근수근 댔다. 그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그들에게는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쓰잘데기 없이 밤나비처럼 모여드는 남자들이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아니, 모두 다 옳은 사람일 것이다. 단지 죄가 있다만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조물주의 탓일 뿐. 그렇게 생각하니 속이 확 뚫린 것 같다.

 

 

그날 저녁 우리는 울릉도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된다는 홍합밥을 먹어 보기로 했다. 보통 홍합으로 하는 밥이 아니라 주먹덩어리만한 자연산 홍합으로 만든 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렸다. 홍합밥을 잘 못하는 집으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홍합밥은 실망스러웠다. 별 맛도 없고 기름을 너무 많이 넣어서 입안에서 밥알이 미끌거리다가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목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해물찌개를 또 시켰으나 여전히 실망스러웠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호박동동주를 먹어보기로 했다. 그것 또한 그랬다. 이래저래 돈은 돈대로 들고, 맛은 맛대로 없고, 갑자기 왜 오늘은 이렇게 재수가 없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따개비 밥이나 먹어보고 올 걸. 아니 조껍데기 술과 씨껍데기 술을 반씩 섞어 먹었더라면 원이나 없을 걸. 아니, 오알칼국수나 약소 숯불구이나 먹어보고 올 걸. 아니, 문어 두루치기나 오징어 흰내장탕이나 먹어보고 올 걸. 너무 "걸, 걸, 걸" 하지 말아야겠다. 다음에 다시 오면 모두가 해결될 걸.  

 


 

 

 

 

 

21일 일출을 보러 일찍 일어났다. 한국의 아름다운 걷는 길 중 5위 안에 든다는 울릉도 해안 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이미 방파제에는 어제 밤에 술도 먹지 않았는지 말짱한 정신으로 나와 해뜨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해가 뜰까 말까 망설이고 주저할 때, 우리는 바윗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도동에서 출발하여 등대를 거쳐 저동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과연,  굽이굽이 바위 밑에 바짝 나 있는 좁은 해안선 길을 따라, 아침 노을 가슴에 품고 눈으로 음미하며 걸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다. 붉디붉은 아침해는 바위 절벽을 불지르듯 수놓고, 바닷물은 수평선을 따라 길게 늘어진 구름이라도 삼킬듯이 출렁거렸다. 성큼성큼 올라오는 태양 앞에서 갈매기 춤을 추고, 기다렸다는 듯이 때 맞춰 고깃 배 몇 척 휘파람 불며 지나간다. 아희야, 내 뭘 더 바라리. 내 죽으면 저 붉은 울릉도 사진 한 장 내 옷깃 속에 넣어주렴!

 

 

 

 

 

 

한참을 가다보면 해안선 길은 끊어지고 다시 산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접어든다. 등대로 가는 길이다. 여기에도 아침해가  사광으로 들어온다. 이슬 맺힌 나뭇잎이 바지가랑이 적시고, 키 작은 대나무 숲에서 푸더덕 거리는 짐승 소리 들린다. 비탈에서 풀을 뜯는 아기 염소 엄마 찾고, 천길낭떠러지 두려워하지 않고 엄마 염소 달려온다.

 

 

 

 

 

등대에서 저동을 바라본다. 낭떠러지 좁은 길은 절벽 아래 휘감아 돌고, 그 위에 걸쳐있는 아침 그림자 등을 친다. 아, 누가 저런 곳에 저런 길을 만들었을까? 인간의 상상력에는 과연 끝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눈을 들어보니, 저 멀리 온 산이 붉고 노란 빛으로 아스라이 물들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밤이 새도록 광란의 파티를 벌리며 불놀이를 하던 소년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자신의 광기에 스스로 놀라며, 여기에도 성냥불을 켜대고 저기에도 성냥불을 켜대기 시작했다.  보라, 만산홍엽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산이 불타고 있다는 말로도 만족할 수 없다. 그저 가늘게 눈뜨고 바라보면, 눈에는 눈물이, 손에는 한 줄기 땀이 흐르고 있을 뿐.

 

 

 

 

 

 

 

 

 

 

 

 

 

 

 

그 뒤로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아니 하였고,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았다. 누가 말을 해도 귀에 들리지 않았고, 누가 때려도 아프지 않았다. 걸음을 걸어도 항상 제 자리에 있었고, 하늘을 보면 연분홍 치마 나부끼고 있었고,  땅을 보면 논산 훈련소 황토빛 펼쳐져 있었다. 바다는 붉게 여울져 나에게 다가왔고, 붉은 산을 서걱대며 스쳐온 바람은 나를 한 바탕 감싸고 돌더니 내 머리를, 내 얼굴을, 마침내 내 손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아, 영원히 잊지 못할 11월의 울릉도여!  

 

 

 

 

 

 

 

 

 

그날 오전, 오후 내내 나는 산 위에 있었다. 가부좌하고 눈감은 채로, 울릉도의 찬란함을 마음의 눈에 담았고, 백구 날아드는 푸른 바닷물을 피부로 마셨으며, 소금기 비린내 적셔오는 바닷 바람으로 목욕을 했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항구에 다시 내려와 벅찬 가슴을 어쩔 수 없어, 말 못하는 벙어리인양 벅벅 거리며 좁은 뒷골목을 맴돌았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웃어 보였고, 아무에게나 악수를 청했다. 같이 앉아 소주 한 잔 걸치는 모든 사람이 바로 나의 동무였다. 아니 그들이 나였고 내가 그들이었다. 옆 사람에게 건배를 청했고, 눈이 맞은 사람 아무에게나 포옹을 했다. 그리고 이유없이 웃고 또 웃었다.

 

 

 

 

 

 

 

 

 

 

 

 

 

여기저기 어시장 등불이 하나 둘 붉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날의 마지막을 알리려는 듯 한 줄기 기러기가  줄을 지어 검은 하늘에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 묵호행 배는 더 이상 우리를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길게 한 번 "붕" 소리를 냈다. 우리는 몇 분 더 지체했다. 그러자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듯, 배는 "붕,붕" 두 번 기적을 울렸다.

 

 

그때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춘향모 이도령 나무라듯 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의 가이드였다. 우리는 가지 않겠다고 저항을 해보았으나, 개콘의 "우리 성광이가 달라졌어요."의 성광이와 같은 신세로 힘도 못써보고 배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울릉도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나 없으면 당신 마음 찬비가 내린다 했지
그 이야기 너무나 고와 내 맘속에 감추었지
먼 훗날 그 말을 잊고서 내 곁을 멀리 할 때면
누가 안 듣게 당신께만 그 말 그 말 들려주려고

사랑이란 마음속에 영원한 꽃이라지만
바람결에 덧 없이 지는 그런 꽃도 있으니까
먼 훗날 그 말을 잊고서 내 마음 아프게 하면
아무도 몰래 당신께만 그 말 그 말 들려주려고.

 

<이은하 "당신께만">


(2010년 12월 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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