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코스: 정릉에서 출발하여 백운대를 거쳐 경기도에 있는 밤골로 내려왔다.>
북한산 백운대 등산기
내가 백운대에 가 본 적이 있나?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면서도 그곳에 가본 기억이 없다. 만약 가 보았다면 20대일 때 가보았겠지만 지금 그 기억은 전혀 없다. 적어도 30년 동안은 그곳에 가 본적이 없다.
9월 15일 아침에 갑자기 백운대에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백운대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후, 내가 배낭을 메고 집을 출발한 시간 차가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때가 8시 30분이다.
정릉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9시 20분이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몇 사람이 체조를 하거나 안내표지판을 관찰하고 있었다. 지도를 꺼내 안내판과 대조해보면서 오늘 걸어갈 길을 마음 속에 새겼다.
약 10분쯤 올라가니 길 안내판이 없어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영추사를 거쳐 대성문을 지나갈 참이었다. 마침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올라오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여인이 영추사를 가니 거기까지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매일 영추사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다시 내려와서 가게를 운영한다고 했다. 왜 이렇게 이 높은 절을 하루도 걸르지 않고 찾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럴 만하니 그런다고 했다.
그녀는 본래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세례를 받지는 않고, 계속 교회만 다녔다고 한다. 세례를 받는 날은 일부러 교회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있었다고 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교회에 다니면서도 께름칙한 것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결혼하여 살던 중, 한 언니를 만났는데, 그 언니의 인도로 그 영추사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추사에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아, 자기를 인도했던 언니가 우울증으로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그녀는 말을 멈추고 큰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녀는 한 참 말이 없더니, 다시 말을 시작했다. 언니가 세상을 뜬 후, 일년 뒤 우연한 기회에 다시 영추사에 와봤더니 주지 스님이 자신을 몰라보았다는 것이다. 당연시 여기고 기도를 하고 나오려는 데, 그 때서야 비로소 주지 스님이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하여, 오늘 날까지 계속 그 절에 다닌다고 했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남편도 아프다고 했다. 내가 시시콜콜 물어 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 중병인 듯 했다. 이런저런 복잡한 사연 때문에 그녀가 그 절에서 매일 기도를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녀와 이야기하는 덕분에 한 시간 걸리는 영추사까지의 등산은 올라오는 줄 모르고 올라왔다. 영추사에서 그녀는 검은 등산복을 벗고 승복으로 갈아 입었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를 따라 간 방에서 그녀는 냉수 한 사발 내 놓았다. 그리고 국수 공양 시간 때까지 기다렸다 먹고 가라고 권유했다. 나는 그 말 자체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다시 등산을 시작하려는데, 그녀가 말했다. "언제 다시 오셔서 국수 들고 가세요." "예, 그러죠." 아마 자신의 치부라면 치부인 가정사와 인생사를 이야기 해 놓고 나니, 내가 비록 낯선 사람이지만, 웬지 좀 가깝게 느껴졌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여튼 서로간에 좀 섭섭한 듯 어쩐 듯 하면서 헤어졌다.
<보왕삼매론: 몸이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그리고 내 말 하나 더 첨가하면 "술을 먹으면서 건강하기를 바라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첨가하면, 자꾸 "말라, 말라"라는 말 하지 말라.>
대성문에 도착한 것은 11시였다. 햇살을 받아 대성문 아래에 있는 돌이 흰돌처럼 보였다. 잠시 쉬면서 물을 마시는데, 정말로 무지무지하게 뚱뚱한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땀으로 범벅이 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한 바가지나 되는 참외, 복숭아, 포도를 먹어치우더니, 또 고구마를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하나 주었는데, 목구멍에서 끼억끼억 소리가 나서 간신히 다 먹었다.
그가 젊었을 때는 북한산을 날라다녔다고 했다. 그런데 삼겹살에 소주를 좋아하다가 이 모양 이꼴이 되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본 북한산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나열하기 시작했다. 시간 상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을 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저 급한 볼 일이 있어서 ---"하면서 젖달라는 어린애 떼어 놓듯, 허겁지겁 배낭을 메고 자리를 떴다.
<대성문>
<대성문부터는 성곽이 이어진다.>
대성문부터는 대부분 성곽을 따라가는 길이다. 잘 보존된 성곽 옆으로 길이 잘 나 있어서 걷기에 편했다. 옛날 군인이나 평민들이 이 성곽을 쌓았을 것이다. 어디에서 이 많은 돌을 가져왔으며, 어떻게 이렇게 길게도 쌓았을까? 나라를 지켜려는 그들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양반들은 "에헴"하면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시키기나 하고, 뼈빠지는 것은 평민이었을 것이다. 말없는 그들의 눈물과 한숨과 땀이 내 눈 앞에 어른 거린다.
11시 반에 보국문에 도착했다. 오른 쪽으로 칼바위가 보인다. 언젠가 한 번 올라가 본 듯하다. 한 사람이 정상에 우뚝 서서 심호흡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칼바위라, 누가 이름 참 기가 막히게 지었다. 칼바위라!
<칼 바위 정상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조금 가니 대동문이 나온다. 대동문은 수리 중으로 검은 도포를 뒤집어 쓰고 있다. 대동문 앞에 있는 마당이 넓어, 바로 거기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여기에서 떡 한 덩이와 포도 한 송이를 먹었다.
옆에 한 아저씨가 있었는데, 포도를 먹고 껍질을 아무데나 버렸다. 그 옆에 있는 어떤 처녀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 아저씨는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며 말싸움이 시작되었고, 그 소리는 커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뒤로 하고 서둘러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아이구, 나도 포도 껍질 버렸다가는 큰 일 날 뻔 했네." 이 생각을 하니 머리가 쭈빗 섰다.
그 뒤 계속 평평한 길을 따라 가면 동장대라는 기와집이 나온다. 이곳도 역시 수리 중으로 검은 도포를 뒤집어 쓰고 있다. "동장대에서 바라본 산성 주능선 안내판" 너머로 연무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역시 아름다운 북한산이다. 나는 왜 이 북한산에 오지 않고 항상 도봉산에 다녔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몇 차례 이 북한산을 찾을 것이다.
<동장대에서 본 산성 주 능선>
<용암문>
어느 시점부터 오르막 길이 시작된다. 돌도 많고, 그래서 길을 찾기 힘든 구역도 있었다. 끙끙거리며 노적봉에 도착한 것이 1시다. 산악 구조대원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노적봉 표지판 앞에서 담소를 하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노적봉 아래서는 노적봉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안내 표지판만 노적봉임을 표시하고 있다.
노적봉에서 본격적인 백운대 등반이 시작된다. 바위 틈으로 가야되는 구간도 있고, 철제 난간을 잡고 올라가야 되는 부분도 있다. 노적봉을 아래로 보면서, 위로 시선을 옮기니 저 멀리 백운대 정상에 사람들이 개미 새끼처럼 보인다. 그 밑으로 이어진 봉우리는 봉우리로 이어지고, 나의 진행에 따라 시원한 바위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ㅏ. 정말 대단한 산이다. 서울에 저런 산이 있다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 바로 북한산이라고 하는데, 그러고도 남을 명산이다. 무학대사의 선견지명이 엿보인다.
<백운대를 촬영하고 있다.>
위문에 도착하면 거기서부터는 200미터를 완전히 바위만 타고 올라가야 한다. 최고로 힘든 길이지만, 백운대에서 보는 경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절경이라는 생각을 하니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내려오는 사람과 올라가는 사람이 많아 좀 기다려야 한다. 평일이어도 이런데 하물며 휴일날은 아마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내려가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위문" 위의 바위가 위압적이다. 이 짧은 문장에 "위"자가 네 번 들어갔네, 원!>
<용암봉과 만경대>
<인수봉에 산악인들이 자일을 타고 있다.>
<정상 바로 아래>
정상 바로 아래 넓은 마당 바위에 사람들이 앉아서 쉬거나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 갑자기 어디서 "안녕하세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노적봉 근처에서 나에게 인사하며 지나쳤던 한 여인이다. 그녀는 고구마와 몇몇 과일을 꺼내 놓고 먹고 있었는데, 자기도 혼자 왔으니 같이 먹자고 했다. "오늘은 재수가 좋군. 여복도 많네."라고 하면서 그녀가 건네 준 음식을 함께 먹었다. 그녀도 등산을 좋아해서 산에 자주 오고, 카페에 산악동호회도 운영한다고 했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그녀가 말해준 카페에 들어가 보았더니, 회원은 많지 않지만 깔끔한 홈페이지였다.
<정상에서 만난 여인>
<인수봉>
정상에 와 보니 온 천하가 내 것이요, 내가 온 천하다. 내가 장수요, 천하가 내 발 아래다. 내가 신선이요, 저 아래가 구름이다.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나다.
내가 올라온 대성문 쪽으로 만경대와 용암봉이 위압적이다. 경기도 쪽을 보니, 수천길 낭떠러지가 보이고 그 아래 염초봉과 원효봉이 보인다. 그 이외에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수 많은 기암괴석이 눈 아래 펼쳐져 있다. 바위 위에 바위가 있고, 바위 아래 바위가 있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 시원함을 더 한다. 거기 정상 바로 태극기 아래에 앉거나 서서 있는 모든 이의 입에서 웃음과 탄성이 절로 나온다.
희미한 안개 위로 우뚝 솟은 인수봉에 자일을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헬기가 저 아래를 맴돌다가 떠난다. 무슨 사고가 난 것일까?
마침 한 외국인이 있었는데, 독일 사람이었다. 혼자 여행다니는 그는 서울에 이런 산이 있는 줄 몰랐다고 했다. 서울에서만 일 주일 있으면서 세 번째 이 곳에 올라온다고 했다. 그도 그곳을 떠날 줄을 모르고 눈을 가볍게 뜨고 이곳저곳 계속 바라본다.
<어떤 독일인>
<백운대에서 본 경치>
<백운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걸어가거나, 이미 그런 곳으로 가서 식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산악 전문가일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모든 사람들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하는 가파른 바위를,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니 말이다. 본인보다도 보는 사람의 애간장이 더 탄다. 하지만 "수영 잘 하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평범한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쓸 데 없는 객기는 개 죽음을 불러오는 첩경이라는 것을 그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가파른 바위를 스파이더맨처럼 내려온다.>
30분간을 정상에서 머물렀다. 그녀가 가져온 음식도 다 먹고, 구경도 할만큼 했다. 고마움을 표시하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내가 내려가려는 밤골을 자세히 안내해 주었다.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로 나 있는 밤골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는 미로 같았다. 대부분이 가파르고 큰 돌이 길을 가로 막고 있어서 등산하기에 아주 힘든 코스였다. 계곡 옆으로 깎아놓은 듯한 바위가 조금씩 보였지만, 숲속으로 가는 길이므로 그 전모는 볼 수 없었다.
밤골로 내려오면서 나는 단지 네 명의 등산객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 골짜기는 겨울이 가장 좋다고 한다. 특히 흰 눈이 내린 날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낙엽이 다 지고나면 간간히 보이는 소나무 위로 거대한 바위에 휩싸인 백색 계곡을 걷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고 긴 계곡이었다. 장장 4키로나 되는 계곡을 2시간 반 걸려서 내려왔다. 입구에는 국사당이라는 굿당이 있었다. 꽹과리와 북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방울 소리를 동반한 무당의 귀신 쫒는 소리가 오늘따라 무섭게 들린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붉은 혀를 보이며 "이놈"하는 듯이 보인다. 지은 죄도 없는데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다.
<밤골 등산로 입구에 있는 굿집인 국사당>
조금 더 내려가서 개울가의 바위에 앉았다. 양말을 벗고, 발을 맑은 물에 담궜다. 찬 기운이 다리를 타고 심장으로 전해진다. 잠시 누웠다. 이제 하늘은 파랄대로 파랗다. 아무도 없는 이 산 중에 나 혼자 덩그러니 하늘을 본다.
큰 길에서 의정부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 하루가 마치 먼 옛날 일처럼 그렇게 생각되었다. 눈부신 백운대와 끝없는 밤골 계곡에 오늘 만난 두 여인의 얼굴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겹쳐보였다가 사라진다. 피로와 나른함으로 잠깐 졸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아자씨, 안 타능겨!" "의정부"라고 크게 써 붙인 버스가 이미 내 앞에 멈춰서서 문을 열고 내가 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걸은 거리: 약12키로. 걸린 시간 약 7시간 30분)
(2009년 9월 2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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