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여행기 어제 가보려다 날이 어두워 갈 수 없었던 김수로왕릉에 들렀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입장료를 받았으나, 시민에게 봉사한다는 차원에서 무료로 전환했다고 한다. 경내에 들어가 보니, 입장객은 우리를 제외하고는 단 2 명뿐이 없었다. 이런 추세라면, 입장료 수입으로 매표원 봉급주는 비용도 댈 수 없을 것이니, 차라리 인심이나 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내는 깨끗하고 정결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관리원들이 아침부터 나무에 물을 주고, 바닥을 비로 쓸고 있었다. 금관가야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김수로왕의 묘지는 8월의 초록을 간직하고 있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199년 수로왕이 158세로 돌아가자 현재의 묘지에 수로왕을 모셨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정말 158세까지 살았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과장일 것이다. 그 당시 여러 여건으로 보아 아마 58세까지 살았어도 많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김수로왕릉>
<김수로왕릉>
<김수로왕릉 옆에서 참외를 팔고 있다.>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가보니 참외 장사가 있었다. 한 보따리에 5,000원에 팔았는데, 고맙다면서 몇 개를 더 얹어 주어서 들고오지 못할 정도로 많은 참외를 차에 실었다. 요즈음 장사가 잘 되는지 묻자, 주인은 "그렇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래 돈은 많이 벌었습니까?"라는 나의 말에, "예, 좀 벌었습니다."라고 또 간단히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참외 장수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할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리어커를 밀고 오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폐지를 수집하는 할머니였다. 마침 우리 차가 있는 곳에서 멈추더니, 한숨을 쉬면서 길 옆에 주저 앉았다. "할머니 돈 많이 벌었습니까?"라고 나는 물었다. "아침에 몇 시간 일했는데, 한 2000원어치 벌었는지 모르겠네."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왜그런지 딱한 생각이 들어, 참외 하나 드렸다. 드리고 나니 너무 적게 준 것 같아서, 주고 나서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3,000원을 드렸다. 할머니는 돈이라는 것을 처음 받아보는 듯 깜짝 놀랐다.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자식들도 있습니까?"라는 나의 말에, "있으면 뭐합니까? 찾아 오기를 합니까, 뭐합니까? 나 혼자 그냥 살아요."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길가에 앉아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아마도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빨리 차를 타고 자리를 떴다.
한 동안 할머니를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나도 고개를 저어 애써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이런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멀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별별 생각이 다 들기도 한다.
<성흥사 계곡>
진해에 오자 처음 눈에 띈 것이 성흥사라는 절이다. 절에 들어가기 직전에 용추폭포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갔다. 내비게이션과 안내판에 의지하여 가니 목적지라고 하는 곳이 길가 한 가운데였다. 하는 수 없이 차를 돌려, 성흥사 쪽으로 다시 갔다. 입장료를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절 주위가 "대장동 계곡 자연발생 유원지"라고 했다. 여름철 피크는 지났으나 그래도 사람들이 계곡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서서 굽고, 지지고, 볶는 등 마치 시골 장터를 방불케 했다. 대부분이 술판을 벌리고 있었고, 화투판을 벌린 것도 눈에 띄었다. 술판 옆에는 노래판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다행스러운지 불행스러운지 모르지만 그래도 싸움판이나 난장판이 벌어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리라. 자꾸 "판"소리만 나오니 어제 먹은 술이 지금 취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군대에서 개머리판으로 얻어 맞을 때에는 이판사판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전에 어떤 글에서 이 "판" 이야기를 한 번 한 것 같은데, 이런 허접한 이야기 그만두어야지 이러다가 내 글이 개판되게 생겼다. 쓰던 글 그만두고 내일 입을 옷이나 다려야 겠다, 다리미판에 대고.
성흥사에는 백일홍 나무로 보이는 꽃이 한창이었다. 절 입구에도 절 뒷편에도 활짝핀 꽃이 눈물나도록 눈부시다. 마침 한 스님이 절에 대한 이런 저런 말씀을 해 주셨다. 하지만 절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별 관심도 없는 나는, 겉으로는 열심히 듣는 척 했지만, 건성건성 듣고 사진 찍는 일에 몰두했다. 나는 스님을 만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왜 스님이 되었나?"라는 글을 모아 책 한 권을 내면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신부님이나 수녀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대체 짧은 인생을 왜 저렇게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흥사>
웅천왜성이라는 안내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내비게이션에 "웅천왜성"을 입력하고 찾아가보니 어떤 공장 뒷 마당이었다. 차에서 내려 잡초가 우거진 산 언저리를 헤매다가 쐐기에 몇 방 쏘였다. 벌에 쏘일 번 하다가 36계 줄행랑을 쳐서 다시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 미련없이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로 가기로 했다.
바닷가를 따라서 해안도로가 잘 나 있으나, 경남 남해군이나 전라남도의 해남군의 해안에 비하면 그 아름다움이란 하잘 것 없다고 해야겠다. 같은 해안도로지만 품격이 다르다고 해야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해안을 따라가면서 보는 경치가 그리 썩 좋지 못했다. 준설 매립토지가 많았고, 왜 그런지 느낌이 칙칙했다.
흰돌매 공원이라는 곳이 인상적이었다. 산 중턱에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 뒤돌아 보니, 거대한 시커먼 땅이 보였다. 부두를 만들기 위해 흙으로 바다를 메운 곳이었다. 약간 안개가 끼어서인지 날씨도 마치 80먹은 노인네 흐리멍텅한 눈동자처럼 온통 그렇게 보였다.
<흰돌메 공원>
한 참을 가니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가 나왔다. 나는 이 노래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삼포라는 곳이 강원도 송지해수욕장 근처의 삼포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때까지 속고 살아온 것이 한심했지만, 원통하거나 통탄스럽지는 않았다. 그저 바다에서 수영하다 짠 소금물 들이마신 기분 바로 그것이었다.
안내 표지판에 따르면, "이혜민씨가 고등학교 시절 여행길에 머물렀던 삼포 마을의 추억을 담아 작사 작곡하고, 가수 강은철씨가 부른 노래"라고 한다. 전면에는 노래 가사가 있고, 뒷면에는 창작 유래가 새겨져 있다. 나는 이혜민이 누구인지, 강은철이 누구인지 사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다. 나는 "노고지리"나 " 사월과 오월" "유익종" 또는 이와 비슷한 사람이 노래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흥미있는 것은 대리석에 있는 스위치를 손으로 누르면, 바로 이 노래가 나온다는 것이다.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삼포로 가는 길 바람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
삼포 안내 표지판을 따라 실제 삼포로 가보았다. 조그만 항구에 횟집이 즐비했으나 손님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할 일 없는 횟집 주인들이 쓰린 속을 달래가며 마을 앞 정자에 나와 한담이나 하고 있었고, 이런 것을 알 까닭이 없는 갈매기 몇 마리가 휙 날아왔다 휙 돌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진해 해양 공원은 음지도라는 작은 섬에 다리를 놓아 육지와 연결하고 530억원을 들여 2006년에 개관한 해양생물 테마 파크다. 전시실 내부에는 여러 바다 생물을 구경할 수 있는 시설과 자료 및 영상 장치가 있었다. 건성건성, 대충대충 보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해전사 체험관이라는 곳으로 가서 실제 전함에 승선해 보았다. 1944년에 만들어져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미제 군함에 들어가 내부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알게 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배 이름을 지을 때, 어떤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구축함은 국민으로부터 영웅으로 추대받는 인물을 따라 짓는데, 그 예로 광개토대왕함이 있다. 초계함은 중소 도시의 명칭을 따르는데, 예로 "강릉함"이 있다.
<진해 해양공원>
차를 타고 휙 날아, 장복산 조각 공원에 갔다. 조각 공원 앞에 개 한 마리가 버티고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쫓아내면 다시 오고, 또 갈려고 하면 또 다시 온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돌진하니 쏜살같이 피한다. 아마 그 개가 살 기간이 많지 않은 듯 했다.
장복산 조각공원은 그 말에 걸맞게 여러 조각이 있었는데, 단연코 눈길을 끄는 것은 어떤 남자의 나체 조각이다. 남자인 나도 눈길이 자꾸 그 쪽으로 향하는데, 여자야 오죽하랴. 눈을 들어보니 한 놈이 아니라 여러 놈이다. 이것들이 발가벗고 두 손들고 왜 야단들이야. 죽을 죄를 지었나? 윗통은 번쩍거리는 쇠로 만들어 놓은 걸 보니, 아놀드슈왈츠제네거가 주연한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무자비한 공격자인듯한 느낌이 든다. 하여튼 웃기는 여석들이야. 팔도 아픈데 좀 내려, 너무 자랑만 하지 말고.
<장복산 조각공원>
<장복산 조각공원>
장복산에서 다시 바다로 왔다. 해군사관학교가 보이는 곳이다. 배가 한가로이 떠 있고, 저 멀리 웅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바닷가를 따라서 길을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는데, 한 쌍의 남녀가 포옹하고 있었다. 그들은 웅산의 시루봉과 천자봉을 가보라고 적극 권장했다. 몇 시간이면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아, 우리는 지금 오늘 밤 잘 걱정을 해야하네."라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멀리 보이는 웅산이 정말 멋있게 보였다. 옅은 안개로 휩싸인 웅산은 영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도를 닦을 산처럼 보였다.
<진해만: 이 다리는 바다를 끼고 산 허리를 감아 돌아 간다.>
관광안내원에게 물어 오늘 묵을 곳으로 수치항을 정했다. STX라는 거대한 조선소가 눈에 들어온다. 야적장이 어마어마하고, 일하는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마침 퇴근 시간인지 구름처럼 노동자들이 움직인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STX 경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데, 경비가 찍지 말라고 손짓을 한다. 눈을 똑바로 뜨고 신경을 써야 수치항으로 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수치스러운 일을 당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수치항에 해수욕장이 있다고 나와 있으나 현지에 가보니 해수욕장이 없다.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바닷물이 좋지 않고, 해변을 따라 놓여있는 횟집도 그 규모가 상당히 작다. 손님이나 주민이나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수치심을 느낄 만한 곳이다.
한 횟집이 바다 위에 임시로 앉을 시설을 만들어 그곳에서 손님을 받고 있었다. 손님을 정성으로 모신다는 간판이 눈부신 "파도횟집"이다. 포장으로 쳐진 갈대발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광어를 시켰다. 그런데 옆 사람들은 모두 장어를 시키는 것이 아닌가? 회를 먹는 동안에, 옆에서는 계속 장어 굽는 연기와 냄새가 바람에 날려 솔솔 콧속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맛있던 광어도, 구워진 장어의 맛과 냄새를 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요, 활을 떠난 화살이다. 나는 계속 옆을 두리번 거리다가 회가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결국은 그 회를 다 먹고 말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셔터 속도가 느려 바람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약속이나 한 듯 떠 있는 스티로폴 하나에 갈매기 한 마리씩 앉아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새끼 줄의 그림자가 파도를 이룬다.>
그뭄달을 보면서 바닷가에서 삼겹살을 먹고 있는 두 쌍의 젊은이가 있었다. 날은 어두운데, 사진이 밝게 나온 것은 ISO라는 것을 높여서 표준보다 약간 어둡게 하면서도 셔터 스피드는 적절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들도 어느 정도 취했는지 내가 그들에 접근하니 사진을 찍어 달라고 난리를 피웠다.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억지로 내 입에 쑤셔 넣어 주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내 입을 벌려 소주 한 잔을 부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그들과 어울릴 도리밖에 없었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어울렸다. 술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화해하고, 모든 것을 풀어 버린다. 남자들의 애인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붉은 얼굴이 사진 찍힐가봐 근심이 되면서도 즐거운 듯이 보였다. "성님, 사진 보내주능겨." 갑자기 그들이 반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야, 사진 보내줄거여, 말거여."라고 나올 것이고, 급기야 "사진 안 보내주면 죽는다, 잉"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그들 중 한 사람의 이메일 주소를 받아 들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삼겹살 파티를 벌이는 재미있는 젊은이들. 캄캄한 밤이지만 ISO를 조작하여 낮처럼 밝게 촬영되었다.>
몽 카페와 몽 모텔이 저 멀리 아른 거린다. 밤이 깊어 카페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보니 종업원으로 보이는 아가씨 두 명이 의자에 앉아 졸고 있다. 그들을 깨우기 싫어 조용히 다시 문을 닫고, 건물을 돌아 뒷편 모텔로 갔다.
<몽 카페와 몽 모텔>
아내에게 자동차에 있으라고 말하고서, 나는 모텔 안내로 갔다. 모텔 아줌마는 혼자 왔는지 물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내가 말했다. 미소를 지으면서 아줌마는 다른 모텔과 마찬가지로 잠깐 쉬었다 갈 것인지, 숙박을 할 것인지 등을 물었다. 그러더니 방을 구경 시커 줄터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미 적절히 취할대로 취한 우리가 마음에 들면 어떻게 할 것이고, 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들어가야지.
아줌마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이베이터에서 그 짧은 순간에 아줌마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가 예쁘면 어떻게 할 것이고, 예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나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캄캄한 하늘을 배경으로 저 멀리 STX 건물 상층부가 검게 보였다. 깊을대로 깊은 밤 하늘을 뚫고 그믐달이 갸냘픈 여인네의 속눈섭처럼 희마하게 그려져 있다. 작디작은 그믐달 옆에는 한 점 별이 달과 동무를 해주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저 달이 초승달인지 그 믐달인지 궁금해졌다. 그때 중학교 물상 선생님이 한 말이 퍼뜩 떠 올랐다. "야, 이 자슥들아. 달은 오른 쪽부터 나타나서 오른쪽부터 없어진다, 이잉, 알것나?" 오른쪽이 없어진 것을 보면 그믐달임에 틀림없다. 그건 그렇고, 왜 이 판국에 중학교 물상 선생님 생각인가? 런던 브리지나 파리의 샹제리제를 걷는 속눈섭이 긴 여인이 생각나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영화에서 본 여 주인공의 새하얀 피부와 매끈한 다리 그리고 어깨 너머로 넘실 거리는 머리칼이 생각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 멀리 갈 일이 무어가 있겠는가? 우리의 황진이가 있지 않은가? 황진이 시조로 글을 맺는다.
어져 내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2009년 10월 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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