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레 길에 서다
작년, 그러니까 정확하게 2009년 6월에 올레 길을 걷고 1년만에 다시 올레 길에 갈 생각을 했다. 3월1일부터 6월 말일까지 중국어 공부한답시고 학원에 다니느라 아무런 여행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다시 제주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영 부영 계획을 미루는 사이 7월이 되고도 일주일이 지나고 말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평일인데도 이미 대부분의 제주행 비행기표가 매진되었거나, 내가 가기를 원하는 아침 8시-10시 사이의 표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주말을 피해 7월 8일 오전 11시 45분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5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었겠지만, 김포에서 제주까지 편도로 거금 7만원을 썼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1시, 제주공항 2층으로 올라가 점심을 먹고 나니 2시가 가까워졌다. 시외 버스터미널로 가야하는데, 전번에 시내버스를 타보니 아주 가까웠기에 이번에는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왜 그런지 가도가도 시외버스 터미널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한 참을 기다려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서도 한참을 갔다. 내가 이렇게 먼 길을 겁도 없이 걸어가려고 하다니, 나도 쓸데없는 배짱이 너무 센가보다.
시외버스를 타고 서부 일주 도로를 달렸다. 버스 안에는 나를 포함해 노인들만이 20명 정도 타고 있었다. 잘 알다시피 젊은이는 도시로 가야 구경할 수 있지, 시골에 가면 어디든지 노인들뿐이다. 노인들은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데 1분은 걸리는 듯 했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천천히 타고 천천히 내렸다.
얼마 정도를 가니 오른 쪽으로 시원한 바다와 더불어 선인장 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키가 작은 선인장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여기저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용수포구에 가까이 오니 버스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놀랍게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올레 13코스를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제주도에서 올레 길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내렸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 보았다.
버스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향해 걸었다. 날씨는 생각 이상으로 더웠고, 어깨에 진 짐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다. 여행을 갔다 오면서 다시는 이런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지 않을 거라고 명심을 하지만, 막상 다음 번에 여행을 떠날 때는, 이것 저것 넣다 보면, 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하여튼 60리터 배낭에 뭔지도 모를 것을 가득 채우고 호랑이라도 때려 잡을 기세로 하늘을 바라보고 심호흡을 한 뒤, 뚜벅뚜벅 바닷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13코스의 시작점인 용수포구에 도착하니 3시 반이다. 오늘 걸을 거리는 15.3키로, 4시간 내지 5시간 걸린다고 지도에 나와 있는 코스다. 더운 날씨와 무거운 짐 그리고 나이 등을 감안하면 6시간은 걸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9시 반에나 목적지인 저지 마을 회관에 도착할텐데, 이미 어두움이 앞길을 가로막을 시간인 것이다. 용수포구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일찍 출발하면 별 문제 없이 다녀 올 것인데, 그렇게 되면 오늘 무엇을 해야할지 그 또한 막막하기만 했다.
나는 마침 해변에서 오징어와 한치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13코스 중간에 잠잘 곳과 식사할 곳이 있는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약 8키로 지점에 있는 낙천리에 민박집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잠시 더 생각하던 아주머니는 "그러지 말고, 내가 샛길을 알려 줄터이니 돌아가지 말고 그 길로 가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이야기한 샛길로 발을 옮기는 순간, "아니, 내가 올레길 걸으러 왔지 지름길 걸으러 왔나? 그러면 차라리 걷지를 말지!" 나는 배낭을 다시 내려 놓고 고민에 잠겼다. 가만히 옆에 듣고 있던 아저씨가 나를 오토바이로 태워주겠다고 했다. 고맙지만 나는 사양을 하고, 죽든 말든 그냥 가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는 아주머니에게 한치 한 마리에 구워달라고 했다. 3000원을 받은 아주머니는 쩝쩝거리며 "힘들텐데"라는 말을 연발했다.
아름다운 해변을 휘돌아가는 해변도로를 멀리하고, 저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차귀도에 작별을 고한 것이 거의 4시쯤 되었을 때다. 마을 길로 들어섰다. 여기저기 마늘이 널려져 있었고, 집에서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마늘을 다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오늘따라 그 흔한 동네 개 한 마리 짖지 않았다.
동네를 빠져 나오니 거기가 바로 아까 버스에서 내린 지점이었다. 길을 건너 한라산을 향해서 걸어간다. 내 눈을 사로 잡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들판을 나 혼자 걷는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내 등을 비추고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벌써부터 등에 땀이 고이기 시작했다. 500미리 광천수 3개를 준비했는데, 2키로도 채 가지 못하고 한 병을 벌써 다 비우고 말았다.
들판에 평소에 보기 어려운 곡식이 이미 다 익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일까? 전에 이런 곡식을 본 적이 없다. 밀, 보리, 조 등은 내가 이전에 보았기에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마도 "기장"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장"일 것이라고 짐작되는 이 곡식은, 바람에 쓰러져 있기도 했고, 또 어떤 곳에서는 미친년 머리 다발처럼 얼키고 설켜, 쑥대밭처럼 된 곳도 있었다.
얼마를 갔을까 나타난 곳이 바로 용수저수지다. 저수지 뚝방에서 잠깐 배낭을 내려놓고, 배낭 속에 남겨진 초코파이 하나 먹었다. 다른 올레꾼이 있는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개미새끼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디서 개짓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런데 이 개짓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몽둥이로 얻어맞는 개어서 나는 듯한 소리였다. 소리로 보아 족히 100마리는 되는 듯했다. 나는 오늘 걷기를 그만두고 개소리의 발원지나 찾아갈까하다가 그냥 발걸음을 옮겨 내가 본래 가려고 했던 곳으로 향했다. 물론 그 뒤 약 30분 동안 깨갱거리는 개소리는 나를 반쯤 미치게 했다.
문득 얼마 전에 끝난 연속극 "수상한 삼형제"의 개소리(계소리?)라는 배우가 생각났다. 머리를 뽀글뽀글 볶은 "계소리"는 맨날 집안일만 하는 딸 "도우미"의 어머니다. 삼형제의 아버지는 "김순경"이고, 어머니는 "전과자"이다. 도우미의 남편은 돈을 좋아하는 "김현찰"이다. 몸이 허약했던, 큰 아들 이름은 "김건강", 그의 부인의 이름은 엄청나게 거짓말을 잘하는 "엄청난"이다. 마지막으로 태연히 친구의 남편을 유혹하는 여자는 "태연희"다. 그 이외에 등장 인물 중에는 "어영, 부영, 혼수, 상태" 뭐 이런 이름도 등장한다. "정신 차려 이 사람아, 갈 길이 구만리야." 내 등을 치며 말하는 소리가 있어 뒤들 돌아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개소리가 또 시작되고 있었다.
특전사 숲길을 지나고, 고목 숲길을 지나, 고사라 숲길까지 왔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뭐가 뭔지 잘 보이지 않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다. 인적이 뜸한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반갑지만, 그 다음은 무섭다. 그가 나를 죽여서 길에서 3미터만 집어 쳐 넣으면 나는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는 그런 장소인 것이다. 오른 손에 막대기를 들고, 검은 빵모자를 쓴 그는, 얼굴의 반은 수염으로 뒤덮여있었다. "저지 마을까지 멀었습니까?" 나는 어색함과 두려움을 피해보고자 물었다. 그는 아무 말없이 막대기를 땅에 한 번 내치고는 그냥 가 버렸다.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길로 내뺐다.
낙천리에 도착하니 무슨 농장이 있었는데, 그럴 듯 하게 여러 시설물이 갖추어져 있었다. 팻말에 "체험 농장"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니, 단체 손님을 받아 숙식을 제공하고 체험을 해보게 하는 시설인 듯 했다. 벤치에는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가 시간이 많으면 음료수라도 사 먹으며 같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는 해와 씨름을 해야하는 나는 나 홀로 아리랑 길을 걸어야만 했다.
보호수라는 300년된 나무를 지나고 넓은 밭을 지나니, 정말 "나 홀로 아리랑 길"은 아니지만, "뒷동산 아리랑 길"이 나타났다. 이 때쯤 나는 이미 힘이 다 빠지고 없을 때다. 해는 거의 다 지고 있었고, 먹을 음식도 없었다. "뒷동산 아리랑 길"의 팻말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3.6키로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택시를 불러 타고 돌아서 제주로 갈까, 그냥 아래 마을로 내려갈까, 아니면 끝까지 가볼까" 망서렸다. 대체로 이런 혼란의 시기에 나는 보통 정통의 방법을 써왔다. 나는 무조건 가보기로 했다. 갈 때까지 가보는 거다.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왜냐하면 배낭 속에는 아직도 물 한 병이 남아 있고, 전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후회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리랑 길은 계속 올라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도로 양 옆으로는 내 키와 같은 높이의 풀이 바람에 서걱거렸고, 가끔 가다 그 놈의 갑작스런 꿩이 날아가는 소리가 내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저지 오름 입구에서 마지막 남은 모든 물을 다 마시고, 심호흡을 한 번하고,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본격적인 저지 오름으로 향했다. 이미 땅은 어두웠으며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숲은 더욱 무성했고, 앞길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전등을 꺼내서 한 손에 들었다. 얼마만에 불을 밝히며 길을 걷는지 모르겠다. 2년전 천관산에서 내려왔을 때 생각이 났다. 그때는 논두렁에 붙여져 타고 있는 붉을 불을 보면서 내려왔다. 그때 생각난 것이 인디아나 존스였다. 오늘 나는 내 손에서 빛을 내고 있는 전등을 보면서 팔자라는 생각을 해봤다. 내 팔자가 이런 팔자인가 보다. 그냥 시원한 방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영화나 보면 좀 좋겠냐만, 무슨 이런 개 고생을 한다는 말인가? 그때 문득 또 개소리가 들렸다. 거의 목적지에 다 왔다는 뜻이다. "개 고생"과 "개 팔자"가 머리 속을 맴돌면서 오늘은 저녁으로 "개 고기"나 먹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이구 "개 수작"부리지 말고 빨리 내려가야지라고 생각했다(이 짦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개 소리"를 생각해 내다니 내가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천재라! "개 천재"겠지. 이러다가 "개 망신" 당하기 전에 빨리 이 글을 끝내야겠다. "개 죽음"이 무섭다.)
저지 마을 입구에 오니 몇 명의 마을 주민이 상점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한 사람이 "이 쪽으로 가면 고산이고, 저쪽으로 가면 한림인데 한림으로 가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지금 한림으로 가는 차는 없을테니, 고산으로 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그냥 이 근처에서 민박집을 구해서 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내 손을 잡고, 나를 정거장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또 어떤 사람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왜 그 손님을 데려가냐?"라고 내 손을 잡은 사람을 나무랐다. 내 손을 잡은 사람은 침을 질질 흘리며 기어이 나를 정거장으로 데려다 주고 "히히" 웃으면서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 그의 윗 앞 이빨 하나가 빠져 시커멓게 보였다. "여기서 기다려! 차는 오니깨!"
막차를 타고 한림에 도착한 것은 9시가 좀 넘었다. 모텔을 정하고 샤워를 하니 9시 반이 넘었다. 한림항에 가서 횟집을 찾으니 두 개가 있었는데, 안에 손님은 있었으나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9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 같은 날은 꼭 생선회에 소주를 먹어야 하는데. 섭섭함이 서러움으로 변하더니 눈물이 날똥말똥 했다.
한림항은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박해 있는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살기 위해 먹을 집을 찾았다. 약 20분을 돌아다닌 끝에 투다리라는 술집을 만났다. 주인은 내가 왜 왔는지 물었다. 나는 살기 위해 먹으러 왔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 앉으라고 했다. 나는 앉았다. 나 이외에 두 명의 젊은이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 사람은 계속 바닥에 침을 뱉고 있었고, 한 사람은 20초에 한 번씩 입에서 "씨발"이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그냥 나올까 하다가 살기 위해 그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11000원짜리 꼬치구이와 생맥주를 시켰다. 생맥주 맛이 이상했다. 반쯤 먹다가 한라산 소주와 콜라를 시켰다. 배속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아서 인지, 순식간에 술기운이 올라왔다.
올레길이고 뭐고 내일은 서울로 올라갈 것이다. 여행하기 좋은 봄은 어데다 쓰고 이 뜨거운 칠월에 생고생이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젊은이인가? 그래 돌아가야해. 인생은 물 흐르듯 살아야지 고집을 부리면 안돼. 모텔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고 몸이 흔들거렸다. 마치 한림항의 바닷물에 비치는 배의 그림자가 흔들리듯 내 몸이 비틀거렸다. 그리고 바람 한 줌이 내 목을 스쳐 저 멀리 사라졌다. 나는 모텔이라는 블랙 홀로 서서히 빨려들고 있었다.
(2010년 7월 15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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