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China

운남성 3 "따리" (Yunnan 3 Dari)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31. 10:17

 

 

<따리 관광도: 여관에서 약 1000원주고 산 지도: 따리 시내 중 "따리 고성" 안에 있는 "Tibetan Lodge"에서 머물렀다.>

 

 

*중국 여행을 다녀온 뒤,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기침도 나고 미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쉬었습니다. 혹시 H1N1 신종 독감에 걸리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 오늘 건국대학교 병원에 갔었습니다. 신종 독감은 병원건물 밖에 있는 가건물에서 접수를 받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신종 독감으로 의심되는 사람으로 들끓었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가는 오히려 더 일찍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죽더라도 집에서 죽는다고 생각하고 평상시대로 행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선 "티엔미미"라는 중국 노래 중  "비단장사 왕서방 리믹스 버전"을 크게 틀어 놓고 마음을 밝게 한 후 평상시의 생활자세로 돌아와 이 글을 씁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는 내일 두고 봐야겠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했으므로.

 

 

<Please click here. 첨밀밀(티엔미미) 비단장사 왕서방 버전>

 

 

운남성 이야기 3

 

 

2009년 10월 14일 따리

 

 

"10분 있으면 따리에 도착합니다. 내릴 준비하세요." 열차 칸마다 돌아다니는 안내자의 말에 눈을 뜨니 10월 14일 아침 6시 경이다. 부랴부랴 떠날 준비를 해서, 기차 밖으로 나오니 사방이 캄캄했다. 육교를 건널 때 동쪽이 조금 밝아오는 것이 보였다. 공사가 한창인 따리역은 사방에 박힌 공사용 기둥부터 눈에 띄였다. 그 기둥을 뚫고 그리고 어둠을 뚫고 승객들의 물결이 바가지에 담겨 있는 미꾸라지 떼처럼 우굴거렸다.

 

 

쿤밍에서 따리까지는 약 400키로, 걸린 시간은 약 9시간, 시속 약 45키로로 달렸으니 기차가 얼마나 거북이 걸음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산세가 험해서 빨리 달릴 수가 없다고 한다. 따리의 해발 평균은 2100미터, 10월의 평균기온은 16도이다.

 

 

따리는 얼해라는 큰 호수를 중심으로 사면을 산이 병풍처럼 첩첩 둘러싸고 있다. 상관과 하관을 제외하면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없는 천하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따리국도 결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현재 따리는 여행자들의 휴식처이자 중국인들의 관광지로 남아 있을 뿐이다.

 

 

 

 

<따리 역 광장: 사람들이 도착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

 

 

일단 따리 기차역에서 내리면 따리 고성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약 30분 정도 가야한다. 기차역 바로 옆에 따리고성으로 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것은 시내버스인데, 수시로 정차하면서 가기 때문에 실제는 40-5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잘 알겠지만 그 넓은 영토인 중국이 하나의 시간대로 통일 되어 있어서 120도를 기준으로 하는 북경 시간과는 거의 한 시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거기 시간이 7시라면, 사실은 보통 6시인 셈이다.

 

 

겨우 날이 밝아오는 데, 사람들이 버스로 버스로 몰려든다. 직장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초등학생이 그렇게 일찍 학교가는 것을 처음 본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담아 넣은 채로 버스를 탔다. 나는 버스에서 컵라면을 먹는 초등생을 처음 본다. 그래도 한 팔로 버스 안의 기둥을 감싼 채, 그 손으로 컵라면을 들고, 다른 손으로 젓가락을 사용하여 잘도 먹는 것을 보고, 오랫동안 훈련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공부가 뭐길래 저리해야만할까?

 

 

 

 

 

<따리 고성으로 가는 버스 만원버스 안>

 

 

 

 

<따리 서문>

 

 

따리 시내에 있는 고성 안의 따리 청년회관(Tibetan Lodge)에 짐을 풀고 당장 구경에 나섰다. 자전거로 구경간다는 사람, 버스로 간다는 사람, 택시로 간다는 사람의 말 소리가 들린다. 누가 말해 주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2~6명 정도의 구성된 몇 개의 그룹으로 갈라졌다. 나는 여자 두 명, 남자 한 명과 같이 네 명이 한 팀으로 여행하게 되었다.  

 

 

아침 식사로 어떤 음식점에서 국수를 시켰다. 니끼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천만에, 한국의 장터국수보다도 더 맛있었다. 국수를 먹고 있는데, 한 아가씨가 자기차로 여행하라고 와서 졸라댄다. 말을 알아 들어서가 아니라, 안내 책자를 들고와서 말하는 투로 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싫다고 했더니 가벼렸다. 잠시 뒤에 50대 정도의 아주머니가 또 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까 온 아가씨의 어머니가 바로 이 아줌마였다. 빵차라는 것이 있는데, 조그만 봉고차로 자가용 영업하는 것을 말한다. 아주머니에게 요금을 물으니 하루 종일 대절하고 약 7000원이라고 했다. 우리는 깎아서 약 5500원에 하루를 빌렸다. 5500원에 하루라. 휘발유값 빼고 도대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아무리 계산해도 셈이 나오지 않는다.  

 

 

 

 

<삼타사 주탑>

 

 

처음 간 곳이 삼타사라는 절이다. 숭성사라고도 한다. 높은 탑은 16층으로 69미터이고, 양쪽으로 작은 탑이 또 있는데 10층 42미터이다. 눈으로 보아도 기울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지진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절이 다 그런지는 몰라도, 한참을 올라가면 절이 하나가 나오고, 그 절을 통과하여 한 참을 가면 또 절이 있고 해서, 결국 한 시간 반 정도를 올라가야 끝의 절에 도착한다. 각각의 절의 건물 앞에는 무슨 글짜가 써 있는데, 결국 맨 끝에 위치한 산 밑에 있는 절은 "대웅보전"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절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 대웅보전인가보다.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으며, 그 관광객 중 대부분은 중국 사람들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이 곳이 중국의 고대 도시로 관광명소인지라, 중국의 다른 곳에서 온 관광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체 관광이 많았는데, 마치 일본인들이 관광할 때 깃발을 따라다니듯, 이들도 인솔자의 깃발을 졸졸 따라 다녔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광객은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삼타사: 한 곳을 지나면 멀리 건물이 보이고, 그 곳을 지나면 먼 곳에 또 건물이 있어서 바로 산 밑까지 건물이 이어진다.>

 

 

 

 

 

<삼타사>

 

 

 

 

<삼타사: 양쪽의 탑은 기울어져 있다. 지진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 목적지인 백족 마을로 가는 길에서 보면 오른 쪽으로는 논이요, 왼쪽으로는 창산이다. 논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트랙터 등은 보이지 않고 우리 60-70년대처럼 손으로 그리고 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었다.

 

 

백족 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좀 늦게 도착해서인지 공연자와 구경꾼이 하나가 되어 음악에 맞추어 마치 캉캉 춤을 추듯이 발을 들었다가 땅에 놓고, 그리고 어깨 동무를 하면서 손을 잡고 좌로 돌다가 우로 돌았다.

 

 

잠시 뒤에 자리를 옮겨, 다른 실내 공연장으로 안내되어 들어 갔다. 공연이라야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저 여자 몇 명이 나와서 빙그르 돌고, 박수치고 다시 빙그레 돌고 박수치는 그런 것이었다. 단지 여행책에 관광코스로 나와 있다는 것만으로 돈을 긁어 모은는 듯 했다. 단지 다른 곳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중국차(中國茶)를 그 많은 사람들에게 한 사람 당 석 잔씩 준다는 점이다. 입장료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차 값으로 대신했다고 생각했다.

 

 

 

 

<공연자와 구경꾼이 춤을 추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동원인가"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몇 가지 음식을 시켰다. 한국인에게 딱 맞는 음식이 나왔다. 옛날에 북경에 갔을 때나 또는 대만에 갔을 때, 음식을 잘못시켜 그 냄새나 향 때문에 음식을 통채로 남기고 나왔던 기억이 났다. 사실 중국 음식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음식이다. 시킬 줄을 몰라서 그렇지 잘만 시키면 저렴한 가격에 진수성찬을 즐길 수 있다. 이번에 우리 가이드는 이런 중국 음식에 해박한 사람이어서 저녁마다 입맛에 쩍쩍맞는 음식을 먹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저나 불평하는 사람은 맨날 불평하게 되어 있다. 음식이 좋지 않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의 혀는 나와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지 모르지만, 이유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런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묵자흑(近墨自黑)이요, 근주자적(近朱自赤)이라. "먹에 가까우면 검어지게 마련이고, 붉은데 가까우면 붉어지게 마련이다." 이 나이에 누가 누구의 생각을 고칠 수 있단 말인가?

 

 

 

<점심식사: 이 이외에도 몇 가지 음식을 더 시켰다.>

 

 

북쪽 얼하이 호수에서 건너편의 작은 섬을 들렀다가 다시 따리 고성으로 돌아가는 배를 탔다. 약 3시간 계속되는 항해다. 그 큰 선박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배 안에서는 노래방이 있는 듯, 맥주를 마시며 TV 모니터를 보면서 노래를 하는 중국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방에서는 무슨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다른 술을 먹는 중국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 저곳을 돌며 사진 찍기에 바쁜 데, 누가 나의 팔을 잡았다. 이게 웬 일인가? 쿤밍에서 따리로 올 때, 바로 앞에 있던 젊은 두 사람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들의 차림이나 느낌으로 보아 그들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온 듯 했다. 중국말 한 마디도 못했지만 얼굴에 써 있는 반가움만은 서로 알 수 있었다. 나의 명함을 주자 그들은 그들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 건네 주었다. 서로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만.

 

 

 

 

<유람선 위에서>

 

  

 

 

이번에 우리 팀에 거인이 한 명 같이 갔다. 체중 120키로에 몸 전체가 근육으로 뭉쳐진 사람이다. 항상 반바지에 어깨부터 팔이 모두 떨어져 나간 티셔츠만을 입는 그는, 사실 처음 보는 사람은 겁을 먹게 되었다.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랬으니까 말이다. 내가 말 한번 잘못하다가는 바다 한 가운데로 내동이 쳐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마음만은, 그리고 성격만은 대단히 온유한 그런 사람이었다. 하기야 세상은 공평하다고, 이런 사람이 성격마저 포악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사람을 앞 세우고 그 뒤를 따라가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저만치서 아예 행로를 바꾸어 다른 길로 가는 사람도 있다. 아무도 심지어는 귀신도 범접하지 못할 그런 사람처럼 느겨지는 것이다. 그가 안마 받으러 가서 한 이야기는 좀 야해서 여기에 언급하기 곤란하여 생략한다. 그런데 한 아가씨가 안마를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 "어이" 하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니까, 겨울 바람에 낙옆 날아가듯 기겁을 하여 도망갔다는 이야기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섬에 도착했다.>

 

 

 

 

<섬에서 신혼부부들의 촬영이 자주 목격되었다.>

 

 

열대의 작렬하는 태양 속에서 신혼부부 몇 쌍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 섬이 아름다워, 신혼부부들의 선망지인 것으로 보였다. 사실 얼마나 뜨거운지 단 몇 분을 태양 속에서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인내심을 발휘하여 버티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몇 분 못가서 선크림을 발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뜨겁던지, 선크림을 바르고 나서, 챙기지 못하고 땅에 두고 그냥 왔다. 그 후 선크림이 없어서 고생깨나 했다.  

 

 

 

 

 

 

 

 

 

 

 

 

 

어떻게 하다가 한 아가씨와 그럭저럭 영어로 이야기를 하게되었다. 그녀에게 스카프를 바람에 날리고 있으라고 하고 사진을 몇 방 찍었다. 다음에는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서 있으라고 했다. 뭐 서로 간에 관심이 있어 보았자, 무슨 일이 있겠냐만, 그녀는 이런 저런 포즈를 계속 취하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많이 찍어 달라는 뜻이렸다. 그녀는 나에게 이메일 주소를 주었다. 그 뒤에도 계속 내 주위를 맴돌았지만 벙어리들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한국에 와서 그녀에게 사진을 보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역시 한국인은 정이 많아서인지 옛일을 잊지 못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다 그때 뿐인 듯 하다.

 

 

 

 

 

 

 

 

 

 

 

 

배에서 내리니 오전에 우리를 태우고 다녔던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우리를 우리 여관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임무였다. 내 옆에 있는 그녀의 아들인 운전수는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햇빛을 찍으라고 차를 멈춰주었다. 사실 이렇게 태양이 작렬하는 곳에서는 소형 카메라건 대형 카메라건, 아마치오건 프로건 아무나 셔터만 누르면 잘 나오게 되어 있다. 문제는 어두운 곳에서 셔터를 터트리지 않고 상황에 잘 맞게 찍는 것이 기술이라면 기술일 것이다. 셔터를 터트리면 사람만 하얗게 나오고 배경은 시커멓게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린 몇 장의 실내 사진의 사진 정보 특히 ISO를 적어 놓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누구도 ISO 값을 높게 잡고 싶지 않다. 단지 "당신은 이런 빛에서는 삼각대가 없이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단지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노이즈(검은 점)가 많은 상태로는 찍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머니와 헤어지면서 5500원을 주기에는 사실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9000원을 주자고 했더니, 좋다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버릇을 들이면 안된다는 등 이런 저럼 말이 있었지만 결국은 9000원을 주고 헤어졌다. 아주머니는 내일도 자기의 차를 타 달라고 애걸했지만 내일은 창산 트레킹을 하기로 되어 있기에 아줌마를 달래서 보냈다.

 

 

 

 

 

 

저녁만 되만 주지육림 먹자판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그렇게 술을 잘 먹을 수가 없다. 저녁마다 술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사람은 낮에도 술에 취해 있었다. 그래도 걸어야 하는 곳은 빠지지 않고 걷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젊은이의 특권이랄까? 하기야 나도 옛날  즉 20대 후반에 술 엄청나게 먹었다. 사당동이 내 손아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동네 술집을 샅샅이 누비고 다니고, 스탠바라는 스탠드바는 들어가 보지 않은 집이 없다. 지금도 그 정도는 안 되지만, 내 또래의 친구들 중 몇 사람은 전혀 술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는 적어도 술면에서는 대단하다면 대단한 사람이다. 이것도 자랑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사실 자랑이라면 자랑이다.

 

 

 

 

 

 

술이 좀 얼큰하게 취하여 길 잃은 호랑이처럼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다가 한 술집에 들어갔다. 마침 옆에 한 서양인이 혼자 식사를 먹고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온 농부였다. 농사를 다 져 놓고, 이곳 먼 이국 땅에서 혼자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곳에 온지 한 달이 되었으며 앞으로 한 달을 더 보낸 후 이스라엘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서양인의 여행 스타일이 본래 그런 것 같다. 어디 뻘뻘거리고 쏟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머물러 허리가 부러지도록 진득함치 머무는 것이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구경해야하고, 또 한국에 가서 어디어디 가봤다고 자랑도 해야하니 어쩔 수 없이 속전속결로 해치워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니 여행갔다와서 며칠씩 않거나 후유증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은 구경은 하는대로 하면 된다는 심정인 것 같다. 쉬고 즐기며 정말 완전히 심신의 피로를 풀고 재충전을 해 귀국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여기는 듯 하다.  

 

 

 

 

 

 

바로 그 다음으로 간 곳이 이 글의 첫 번째 썼던 AS라는 BAR다. 사실 중국 같은 곳에 가면 간판에 BAR라고 적어 놓은 곳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고급 빠는 아니었지만, 천장에 붙어 있는 흰 공모양과 별 모양의 조명기구가 특이한 집이다. 이 집에 들어가는 순간 왜그런지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kitty가 종업원인지 주인인지, 아니면 종업원 겸 주인인지 알 수 없다. 한 쪽 구석에 한 손님이 있었고 또 한 테이블에 한 여자가 노트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키티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듯했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여자는 제법 영어를 잘 하는 듯 했다. Kitty는 자기가 영어를 하면 친구들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웃으면서 푸념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하기야 하는 말이 뭐가 그리 중요하랴.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이 서로 닿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Kitty는 왜 그런지 착하게 보이고, 뭔가 도움이 필요한 여자인 것 같고, 그래서 나는 마치 어린아이를 돌봐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키티를 보고 있었다.  

 

 

하여튼 그녀와 이야기하며 술을 먹고 있는데, 한국 동료 한 명이 찾아 왔다. 이야기를 하다가 구실을 붙여 그를 내보냈다. 그랬더니 조금 있다가 다른 한국 동료가 또 찾아왔다. 알고보니 그 술집에서 가까운 곳에 안마소가 있어서 안마를 받으러 가고 오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어중이 떠중이가 한 번씩 들리는 그런 형국이었다. 결국은 술집 안 쪽으로 들어가서 사람이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술을 마셨다.

 

 

시간이 흘러 여관으로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한 시쯤 되었을 것이다. 비록 술에 취해는 있었지만, "내일 다시 찾아 오겠다" "네가 좋다", 그리고 "행운이 따라 다시 따리에 온다면 꼭 너를 찾아오마"라는 말은 분명히 하고 자리를 떴다.

 

 

먼 이국 땅에서 나와 관계없는 어떤 사람을 만나 마음이 푸근해지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느껴졌다. 더 늙기 전에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현재 자기의 나이를 10년 앞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이다. 내 나이 60이다. 10년 앞서 70의 나이에서 보면 과연 60이라는 나이가 얼마나 금쪽같은 시간인가는 물어보나 마나다. "에이, 이 나이에 곱게 늙어야지. 적당히 살다 죽어야지."이런 말은 내 사전에 없도록 노력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몇 살이든지 거기에 알맞는 새로운 경험이 항상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어떨 것인지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다리면서 산다.

 

 

 


(2009년 11월 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