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China

운남성 4 "창산 트레킹" (Yunnan Changsan)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31. 10:42

 

 

<따리 관광도>

 

 

<따리 고성 내부>

 

 

운남성 4부

 

10월 15일 창산트레킹과 고성

 

 

눈을 뜨니 새벽 6시였다. 아침 노을을 사진 찍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문이 잠겨 있었다.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계속 잠을 잘 수가 없어서 호텔 2층 모퉁이를 서성거렸다. 어느 한 곳에 마침 동쪽 하늘이 밝아왔다. 사방은 고요하고 불빛 하나 없는데 멀리 달 하나가 떠 있었다. ISO를 올려서 그 분위기를 찍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진을 보니, 좀더 어둡게 찍었어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 내가 본 것은 겨우 여명이 밝아 오는 모습이었으나, 사진은 거의 대낮처럼 그렇게 밝게 나왔다. 발밑 바로 오른 쪽에 집 한 채가 있었는데, 벽에 켜 놓은 전깃불에 기와지붕의 풀이 교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한 참을 더 기다려서 종업원이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에 찍은 동쪽 하늘: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어둬웠다.>

 

 

<학교 앞에 여러 장사꾼이 있었다.>

 

 

새벽에 리어커에 물건을 싣고 가는 사람도 있고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은 아마 학생들인 듯 했다. 골목골목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멀리 창산에 햇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1층 내지 2층으로만 되어 있는 고대 도시 따리는 고색창연한 제 모습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잔잔한 기와집이요, 그 다음에는 지붕 위의 풀이었다.

 

 

한참을 가니 동문(東門)이 나타난다. 동문은 얼해문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얼해 호수가 나타난다. 나는 거기에서 성문 밖을 내다보았다. 길가에 화물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질주한다. 그 너머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새가 둥지를 틀고 들녘에 앉아있는듯, 작은 마을이 먼 산 밑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 호텔로 향했다.

 

 

<동문: 얼해문이라고되어 있다.>

 

 

<얼해문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 멀리 보이는 것이 창산이다.>

 

 

<내가 묵었던 청년여관(Tibetan Lodge). 하루 숙박비가 우리돈 7,000원-18,000원이라고 적혀있다.>

 

 

창산 트레킹

 

 

 

 

오늘 할 일은 창산 트레킹을 하는 것이다. 따리가 평균 2100미터에 위치하고 있고, 창산의 높이는 해발 4000미터이다. 창산의 길이는 무려 45km나 된다고 하니 어마어마하다고 해야겠다. 케이블카로 어느 정도 올라간 후, 내려서 약 30분간 가파른 길을 가면 그 다음부터는 그저 한가롭고 편한 길이 계속된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큰 장기판이 나타난다. 돌덩어리로 된 장기판의 말 하나의 크기가 사람만하다. 내가 어렸을 때 두었던 장기판이나 장기와 똑 같다. 장기는 이기거나 지더라도 다시 두면 되지만, 우리네 인생은 그러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고 묘미라면 묘미다.

 

 

<케이블 카에 내리니 바로 아래에 장기판이 보인다.>

 

 

<약 50미터 올라가면 맑은 계곡물이 나타난다.>

 

 

중국의 명산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산의 특징은 깎아지른 듯이 거의 70-80도의 경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올라가는데도 숨이차다. 저 멀리 창산 꼭대기가 바로 눈 앞에 보이지만, 내가 서 있는 트레킹 코스에서 1000미터는 더 올라가야 정상이 나온다.

 

 

 

 

드디어 넓은 길에 접어 들어 오른 쪽으로 큰 길이 나 있다. 바닥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리석으로 깔려있다. 본래 따리는 대리석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리석이라는 말도 바로 이 따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바닥은 평평하고 자동차 한 대 지나다니기에는 좀 좁고, 리어카가 다니기에는 좀 넓은 그런 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 있다. 물론 마티즈는 충분히 다닐 수 있다.

 

 

일단의 학생들이 보였는데, 말은 안 통하지만 깃발에 위생학교라고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의 보건대학 쯤으로 보이는데, 그들의 모습은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영어로 말을 걸어보니, 아무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아이가 없었다.

 

 

<중국 위생학교 학생들이 자연보호 활동을 하고있다.>

 

 

처음 쉬는 곳에 도착한 것이 12시 반이다. 10시 반에 출발했으니 약 2 시간 걸렸다. 가이드가 주먹밥을 준비한다. 내가 6.25를 겪은 것이 아니어서 사실 나도 주먹밥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본다.옆에서 빵조가리를 먹던 중국인들이 주먹밥 만드는 것을 유심히 살펴본다.  나는 주먹밥 만드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는 중국인을 유심히 바라본다.

 

 

좌우지간, 주먹밥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니, 아주 간단했다. 일단 밥만을 준비해 온다. 그 전에 슈퍼에 가서, 주먹밥을 만드는 재료인 "각종 양념으로 된 라면 스프 같은 것(이름을 잊어 버렸다.)"을 구입한다. 손으로 밥과 양념을 잘 섞은 후, 둥글게 공처럼 밥을 뭉쳐서 김에 싸 주면 끝이다. 맛도 있을 뿐만 아니라, 여름이라고 해서 김밥처럼 상할 일도 없다. 한국에서도 먼 길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음식이다.

 

 

<가이드가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七龍女池 바로 아래서 TV 촬영을 하고 있다. 식당 아주머니와 우리 가이드가 대담을 하고 있다. >

 

 

이번에 우리 여행 팀 중에 울산방송국에서 온 직원 두 명이 있었다. 이들은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중국 윈남성 탐방 13일의 기록"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특명(?)을 받고 온 사람들이었다. 나도 옛날에 비디오에 관심이 있어서 찍어 보기도 하고, 그리고 편집하여 다른 사람에게 보내 준 적도 있다. 지금도 수도여고 홈페이지에 가면 내가 만든 학교 홍보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좌우지간 우리는 한가롭게 놀고 먹고 사진 찍으면 끝나지만, 이 사람들은 놀이가 놀이가 아니라 하나의 임무였다. 그래서 우리보다 더 앞서가기도 하고, 늦게 가기도하며, 때로는 코스를 조금 달리해가면서 자유롭게(?) 행동했다. 솔직히 말하면 상당한 압박을 받아가며 여행했을 것이다.

 

 

 

 

우리가 점심 식사를 한 곳에서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면 정말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른다. 어름장처럼 찬 이 물에 손을 잠시 담가본다. 물 속에 산이 있고, 구름이 있다. 그리고 나의 모습이 물결따라 이그러졌다 다시 펴진다. 손으로 물을 담아 마셨다. 온몸이 시려온다. 정신을 차리고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물을 담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산 전체가 너무 가파라서, 이 난간 밑은 200-400미터의 절벽이다.>

 

 

이런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냥 아무나 걸을 수 있는 그런 길이다. 한 참을 가는데, 한 동양 여자와 서양 부부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간다.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그들 부부는 미국에서 왔고, 여자는 중국 가이드였다. 좀 뚱뚱했고 걸음을 걷는데 문제가 있는 듯, 여자는 다리를 절룩거렸다. 어디에서 왔는지 물으니 시애틀에서 왔다. 물론 그들의 발음은 "시애틀"이 아니라, "시애를"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그는 군 비행기를 타고 많이 돌아다녔다고 했다. 나이 70 이상으로 보이는 이 노부부는 미국에서 모든 여행을 다 맞춰가지고 왔다 한다. 즉, 북경 공항에 내리면 여행사 직원이 데릴러 오고, 계속 가이드가 따라 다니고, 또 따리로 오면 어떤 사람이 맞이한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가이드가 계속 따라다니도록 계획을 세웠기에 문제없이 다니고 있었다. 그 방법이 좋기는 하나, 돈은 상당히 더 들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케이블카로 내려올 때 찍은 사진. 앞에 절의 붉은 지붕이 보이고 멀리 얼해와 따리 시내가 보인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서 그 미국인 노부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바로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 앞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중국인 아가씨도 미국인도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사실은 그날 저녁 남문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이 사람들을 또 만나게 된다. 그리고 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사실 고성 성내가 그렇게 넓지 않기에,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한정되었기에, 며칠만 있으면 웬만한 사람은 서로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오화루: 남문은 조금 더 가야 있다.>

 

  

<우리가 먹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밤에 돌아다녀 보니 여행사가 많았다. 예컨대 위 안내판을 보면 따리와 쿤밍은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매 시간마다 다닌다고 되어 있다.>

 

<어떤 술집>

 

 

밤에 혼자 술집 몇 집을 돌아다녔다. 한 집에 가서 그냥 땅콩을 가져오라고 했으나 그런다고 해 놓고, 부엌으로 갔다가 다시 오고, 또 다시 와서 또 물어보고, 결국은 땅콩에 소금을 잔뜩 넣고 기름을 덜덜 부어서 가져왔다. 몇 알 이상은 더 먹을 수가 없었다. 중국은 본래 그렇다. 중국말 모르면 모르는 놈만 손해다. 아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내가 중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따리 남문이 불빛을 받아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술집 몇 집과 안마소에 갔다 오면서 이런 저런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이글의 첫 부분에 쓴 "윈난성 이야기 1"의 Kitty 이야기로 대신한다.  한 가지 — 안마소에서 본 TV에, 전에 KBS에서 방영한 "칠공주"가 중국어 더빙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한국 배우가 중국어로 말하는 것 자체가 코메디라면 코메디랄까? 모든 한국 배우의 말투가 퉁명스럽고 화난사람 같아서 한참 웃다가 나왔다.

 

(2009년 11월 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