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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운남성 8 "샹그릴라 그리고 다시 리장으로"(Yunnan 8: Shangrilla to Lijiang)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31. 14:21

 

 

 

 

윈난성 여행기  8

(11월 20일 샹그릴라, 리지앙)

 

 

<10월 20일 일정: 샹그릴라 고성과 송찬린스를 구경하고 다시 리지앙으로 왔다. 샹그릴라에서 리지앙까지는 약 4시간 정도 걸린다.>

 

 

<샹그릴라 고성>

 

샹그릴라의 아침이다. 10월 20일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잠이 잘 오지도 않았다. 한국을 떠난 지 열흘이 된 나는 이제 입술이 부르트고, 피부는 거칠어졌으며, 얼굴은 햇빛에 검게 그을려가고 있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 프론트로 나와보니 장작 난로가 피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그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 리지앙에 있을 때만 해도 더워서 난리를 피웠었는데, 갑자기 한 겨울을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하나, 뭐, 도깨비 장난 같기도 하다.  

 

 

<샹그릴라 고성의 일 부분: 바닥과 건물이 고성이었음을 말해준다.>

  

리장에 있는 사방가(四方街: 광장)는 이곳에도 있었다. 영어로 말하면 square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녹두전 비슷한 것을 구워서 파는 아줌마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바람은 차고, 하늘은 맑다.

 

 

좁은 거리를 따라 계속 걸었다. 오른쪽으로 야트막한 산이 나오는데, 눈을 들어보니 절이다. 대구산(大龜山) 대불사(大佛寺)라고 되어 있다. 티벳에 가까이 와서 그런지 절 자체가 벌써 티벳 라마교 사원임을 알 수 있다. 깃발이 나부끼는 것이나, 빗자루 같은 것이 항아리에 꽂혀 있는 것이나 모두 라마교 사원의 상징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소위 말하는 마니차라는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불경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경통을 한 번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 약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거대한 마니차를 돌리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할머니와 아줌마가 많고, 외국인이 더러 섞여 있었다.

 

 

거기에서 내려다보면 샹그릴라 시내가 훤히 보인다. 한 쪽으로는 소나무로 보이는 작은 상록수가 듬성듬성 박혀있는 산이 있고, 또 한 쪽은 한국의 가을들판과 다름없는 낮은 들녁이 보인다. 그러나 저러나 샹그릴라의 추위는 혹독해서 모든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대불사: 조그만 언덕에 있는 라마교 사원. 이곳에서 보면 샹그릴라 시내가 훤히 보인다.>

 

  

<대불사에서 본 샹그릴라 시내 전경>

 

 

 

<사람들이 마니차를 돌린다. 마니차는 이처럼 큰 것부터 손으로 들 수 있는 아주 작은 것까지 다양하다. 이것을 돌리는 것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곳을 내려오면 바로 박물관이 있다. 이른 새벽인데도 직원과 구경꾼이 더러 보인다. 티벳 불교의 그림과 사진들이 1-3층에 걸쳐서 전시되어 있다. 한 쪽 방에는 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있었는데, 이 사원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추측하기 힘들었다.

 

  

사방가로 다시 내려와 아침 식사로 무엇을 먹을까하다가 아까 본 감자전 비슷한 것을 시켜 먹었다. 노란 부침개 위에다 무슨 쌈장 같은 것을 발라서 먹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나는 그 향이 어떨지 몰라, 그냥 부침개만을 먹었다. 아주 담백한 그런 음식이었다.

 

 


<아! 송찬린스!>

 

택시로 약 20분 가면 송찬린스라는 절이 나온다. 현재 티벳의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300년 전통의 티벳트 사원이다. 1679년에 창건되었고 문화혁명기에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가 후에 복구 되었다고한다. 운남성 최대의 라마교 사원으로 현재 약 700명 정도의 승려가 살고 있다고 한다.

 

 

송찬림사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성처럼 보인다. 높은 곳에 몇 채의 노란 기와 건물이 있고, 그 아래로 수 많은 흙으로 지어진 집들이 보이다. 이 절 뒤에는 역시 아름다운 산이 나즈막하게 자리잡고 있어 전체적으로 대단히 아름다운 사찰이다.  

 

 

<옆에서 찍은 송찬린스 전경>

 

 

<위로 올라가는 계단>

 

 

 

<700명의 스님들이 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절이라기 보다는 마치 하나의 큰 마을을 이루고 있는 듯이 보인다. >

 

  

<티벳트 여인들. 아이가 아픈 모양이다.>

 

 

  

<절의 뒤쪽에 있는 산과 건물. 혹시 새로지은 저 건물에 스님들이 사시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 위에는 산 위에 크게 송찬림사라고 써 있고, 그 위의 글씨는 티벳트 글씨로 송찬림사라는 뜻일 것이다.>

 

  

<절의 내부에도, 그리고 그 옆 동네에도 돼지는 마음대로 활보한다.>

 

 

한 가지 특징이라면 사방에 돼지가 방사되어진채로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무엇인가를 주워 먹는 듯 했다. 이렇게 돼지를 풀어 놓다 보니 어떤 곳은 돼지 똥이 길 바닥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아마 이 사람들은 사람과 동물에 큰 차이를 두지 않는 것 같다. 비록 언젠가는 사람에 의해 잡혀 죽겠지만, 적어도 죽는 그날까지는 개건 소건 돼지건 같이 더불어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돼지와 말 등이 방사되어 있어 아무데나 배설을 하니, 이것을 밟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기야 하도 밟아서 더 이상 밟을 것도 없다.>

  

<절의 약간 왼쪽 앞에서 찍은 사진>

 

 

<전통복을 입은 티벳 아이들>

 

 

나는 절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니지 못했다. 아마 다 돌아다니려면 이틀은 걸려야 가능할 것이다. 몇 군데를 보니 사람이 사는 곳도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도 있는 듯 했다. 전에는 스님들이 이곳에서 살았었지만, 지금은 스님 중 일부만 여기에 살고 나머지는 절 뒤에 있는 산 기슭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에 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 저 집에 스님들이 정말 사는지 확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몇 집을 들어가 보면,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님이 현대식 건물에 산다는 것도 이상하였으나 더 이상 알아 볼 방법이 없기에 의심만 키운채 사원을 빠져 나와 ,사원 앞의 들판으로 향했다.

 

 

들판은 늪지대와 논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보면 절과 그 배경 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몇몇 전문 작가 사진사들이 바로 그 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어디서 말똥 냄새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현대식 건물 바로 앞에 여러 마리 말을 방목하여 사방에 분비물이 흩어져 있었다. 아마 이들의 코에는 이런 것들이 모두 향기로운 냄새로 인식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송찬린스에서 걸어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다가 동네 아저씨와 아이를 보았다.>

 

 

송찬린스에서 다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고, 나는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걸어서 주차장으로 가기로 했다. 약 2km 정도되는 시골길을 걸어 나오면서 동네 사람들과 그리고 점점 멀리 보이는 송찬린스를 구경했다.  

 

 

짚단을 지고 가는 아버지의 지게 위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가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길에는 돼지가 먹이를 찾고 있었고, 닭이 모이를 쪼으며, 지나가는 나에게 개가 짖어댔다.

 

 

옛날 시골을 연상시켜주는 장면이 있었다. 보리인지 밀인지를 베어서 아스팔트 길 위에 깔아 놓았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곡식 알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게 되었고, 그것들을 삼태기에 담아 풀무로 껍데기를 날려보내고 있었다.

 

 

<길 옆에서 탈곡한 곡식 중, 쭉정이를 바람에 날려보낸다.>

 


 

점심을 먹고 다시 리지앙으로 향했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내려가니 점점 더워지기 시작한다. 한 시간을 조금 지나자 더워죽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다시 샹그릴리가 그립다는 말도 나온다. 귀 속에서 뻑뻑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상당히 많이 내려온 듯하다.

 

 

중간에 잠깐 쉰 정류장에 몇 명의 장사꾼이 보인다. 서로 하나라도 더 팔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아낙네들의 그을린 얼굴이 흰 이빨과 대조를 이룬다. 옥수수 하나를 사 먹었다. 옥수수를 중국어로 유미(玉米: 옥미)라고 하는데, 과연 구슬과 같은 쌀임에 틀림없다.

 

 


<다시 리지앙으로>

  

 

리지앙에 도착하여 바로 저녁 식사를 했다. 좀 고급 식당인 듯하다. 보통 패키지 여행을 가면 호텔에서 먹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같은 배낭 여행자들은 잘 먹기는 먹어도 우리가 가는 식당 자체는 중류급 식당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곳에서 먹는 것이 맛도 더 좋고, 그곳의 분위기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값이 훨씬 저렴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가 가서 시키는 것과 여기 가이드가 단체 손님을 데리고 와서 시키는 값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는 중요 단골 고객이고 우리는 뜨내기 손님일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식당에 가면 두 테이블을 차지 한다. 한 테이블에 열 명 정도 앉게 된다. 그런데 사람이 모이다 보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게 되어, 처음에는 서로 섞여 앉다가, 이제는 완전히 고착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이 말다툼이 있었고, 그래서 서로 본체만체 지난다는 말도 들린다. 물론 여성 동무들 이야기다. 남자들이야 뭐 그런 것이 뭐가 있겠는가? 설령 있다해도 술 한 잔 먹으면 다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

  

 

<리지앙 고성의 일 부분>

 

 리장 시내를 걷다가 전망 좋은 곳에서 한 잔 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물색 했다. good view라고 써 있는 곳을 찾아가니 과연 밤 경치는 좋았으나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서 맥주 한 잔 시켜 놓고 한 참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다른 집을 기웃거렸다. 20살이 채 안되어 보이는 젊은이 두 명이 문에 앉아 있다. 영어를 해보니 또 말이 안 통해 그냥 들어갔다. 그들은 나를 이 층으로 안내했다. 너무 어두워 이 층에 있는 문턱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옆에 서양인 둬 명이 술을 먹다가 금방 사라졌다. 나는 또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려고 무진장 노력을 했다.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붉은 등불 때문인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술만 마셨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전망이 좋다는 한 카페에서 찍은 야경>

 

 

 이미 밤 11시가 넘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면서 걷는데, 젊은 여자 두 명이 앉아서 뜨개질 하는 것이 창너머로 보였다. 간판을 보니 식사와 바를 겸하는 집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집은 시끌벅적한 술집이거나 나이트 클럽, 그렇지 않으면 상점인데, 이런 곳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들어가보니 한쪽에는 바가 차려져 있어서 바텐더와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시게 되어 있고, 다른 쪽에는 편안하게 앉아서 술이나 음식을 먹게 되어 있었다. 벽에는 책이 즐비했는데, 대부분이 영어로 된 책이었다. 톰소여의 모험이나 보물섬 등의 책이 내가 알 수 있는 정도다.

 

 

손님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 이곳이 왜 그런지 푸근하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여인은 영어를 전혀 못했고, 나이가 좀 먹어 보이는 여자는 영어를 좀 했다.

 

 

나는 좀 술이 취해있는 상태이었기에 술이 또 술을 불렀다. 맥주를 시켰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술은 피주(맥주) 뿐이 없다. 언니로 보이는 그녀가 동생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중국말로 쏼라쏼라 말했다. 곧 내 앞에 맥주와 땅콩이 놓여졌다.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35살이며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뜨개질 하느라고 바빴다. 손님이 많지 않아 많은 돈을 벌지 못하지만, 그래도 먹고 살 돈은 번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지 묻자,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자기만 이곳에 나와 장사를 한다고 했다.

 

 

옛날 팝송 엘리스 프리슬리의 Love me tender가 흘러나왔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많이 들은 노래인 것 같다. 노래 가사 중  For my darling I love you, and I always will 이 나오자 그녀는 작은 소리로 따라 불렀다. 나는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했다. 옛날 애인이 있었지만 무슨 이유로 헤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처럼 아마도 오랜 동안 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노래를 따라 불렀고, 두 손은 여전히 뜨개질로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말이 없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사랑은 있고, 그 사랑에 상처받고, 또 그 쓰라린 상처를 가슴에 안고 한 평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그들의 사랑을 갈라 놓았는지 내 묻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이런 여인을 가련한 여인이라고 불러도 좋은지 모르겠다. 아마 사랑이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 보다는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고, 또 그런 사랑이 가슴에, 그리고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우리가 기억에 남기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만나 행복하게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라는 이야기 보다는, 슬픈 사랑에 정이 가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은 비단 나만이 갖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본래 헤어지는 것이 아닐까? 만날 수 없어 애틋하고, 헤어져서 아쉬운 것이 사랑이 아닐까? 한 번 사랑에 실패했다고 하여 혼자 영원히 살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왜그런지 우리는 그렇게 헤어져서 그래서 미련이 남는 그런 사랑에 매료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그리워하고 반추하며 한 많은 인생을 살아간다.  어떻든 인간은 미련과 아쉬움으로 한 평생 그리워하며 사는 존재인가보다.    

 

 

<물레방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푸른 등불에 외로움을 느낀다.>

 

밖으로 나오니 가로등이 물레 방아를 비추고 있었다. 말이 없는 물레방아는 그녀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출렁대며 돌고 있다. 물레방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빛을 받아 내 가슴을 적시며 물에 떨어진다. 떨어진 물방울은 옆에 있는 꽃을 보고 싱긋 웃는다. 그런 다음 잠시 멈추더니 내가 오늘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물에 떨어지 물방울이  머뭇머뭇 거리며 맴돌다가 이내 저쪽 다리 밑으로 사라져 간다. 그 물방울이나 그녀나 또는 나나 우리 모두가 다시는 오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길로 매일 우리는 떠나고 또 어느 곳에 도착한다. 그리고 잠시 머물다가 또 어딘가로 향한다. 슬픈 사랑이 아름답듯, 떠나는 물방울도 아름답다. 내일이면 영원히 리징앙을 떠나는 내 모습도 누가 보면 아름다울까? 영원한 방랑자인 나도 누군가가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의 뒷모습을 보아주면 좋겠다. 그녀와 물레방아와 떨어지는 물방울이 한 줌의 추억이 되어 내 가슴을 돌다 저 멀리, 멀리 사라진다.

 


(2009년 11월 1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