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 이야기 9
<여행 코스>
<옥룡설산과 케이블카 위치 개념도>
<3 개의 케이블 카 중, 시간이 되지 않아 (A), (C) 두 개만 탈 수 있었다.>
10월 21일 아침이다. 오늘은 옥룡설산을 케이블카로 오르는 날이다. 내 생애 가장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다. 리지앙에서 버스를 타고 옥룡설산 매표소에 도착하니 아침 10시쯤 되었다. 그러나 가이드를 포함하여 오늘 여기 온 사람 모두가 처음 와보는 사람들이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도 몰랐다. 아침부터 사람들은 득시글 거리는데,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곳에서 케이블카 입장권을 사고 버스를 타서 목적지로 가서, 거기서 또 줄을 서서 한 없이 기다려야 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갈라졌는데, 나는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루어 가게 되었다. 최소한도 가장 높은 (A) 코스는 필수 코스이고, 나머지 코스는 시간이 되는대로 타기로 했다. 우선 (A) 코스 표를 사서 버스를 타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판을 찍는 나의 그림자가 안내판에 선명하다. 맨 왼쪽이 본인의 그림자>
우선 무엇보다도 장이모 감독이 연출했다는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한 공연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매표소에 도착하니 이미 모든 표가 어제 다 팔렸다고 했다. 상황을 알지 못해 예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A)코스표를 산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거기에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할지 몰랐다. 오후가 되면 좀 한가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일단 (C) 코스로 가기로 했다. (C) 코스로 가려면 한 참을 걸어가야 한다. 마침 (C)코스로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 장이모 감독의 "인상(impression)" 공연장 입구와 같은 곳에 있었다.
멀리 공연자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조금 보였다. 가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100미터의 고지대 야외 무대에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하는 이 공연은 500명의 소수 민족이 출연한다고 한다. 다음에 이것을 보러 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모르겠다.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입안의 침이 다 말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팀 중에 이 공연을 구경한 사람들이 세 명 있었다. 나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물었더니, 공연 관리자들에게 "야뫼로(부정한 수단으로)" 돈을 주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하기야 넓은 운동장에 몇 사람 더 들어간들 표시가 나지도 안는다. 경비에게 돈만 집어주면 몇 사람이야 왜 못들어가겠는가? 이런 것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그것이 세상 물정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보통석 입장료가 한국돈 약 35,000원 정도 되는 거금인데도 그렇게 사람들이 많다니, 세상에 돈 많은 사람 참 많기도 하다.
<소수민족 공연 "인상"(impression): 이것은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다. 입장권이 매진되어서 나는 구경하지 못했다. 우리 멤버 중에 구경한 사람이 찍은 장이모 감독의 "인상"의 한 장면이다. 공연자 중 맨 앞에 있는 사람들이 일본어로 무엇인지 써서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황토빛 무대, 그리고 화려한 민속 의상을 차려 입은 500명의 공연자가 펼치는 공연이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의 첫 목적지인 (C) 코스인 모우평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거의 40-50분 정도 가야한다. 길이 험하고 좋지 않아서 버스가 엉금엉금 기어가기 때문이다. 중간에 있는 쪽빛 시냇물이 푸르다 못해 초록색을 띤다. 고지대이서 그런지 키가 큰 나무는 살지 못하지만 몇 미터의 나무는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다.
<모우평에서 보면 멀리 티벳 사원이 보인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면 멀리 오른 쪽으로 티벳 절이 하나 보이고, 왼쪽으로는 옥룡설산이 펼쳐져 있다. 조금 있으면 직접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볼 옥룡설산의 (A) 코스가 있는 설산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너무 높아 아무 식물도 살 수 없는 옥룡설산. 바로 저 산 너머에 우리가 지난 번 걸었었더 호도협 트레킹 코스가 있다.
우리 다섯 사람은 저 멀리 있는 티벳 사원까지만 가 보기로 했다. 대지가 높은 이곳은 강력한 자외선으로 순식간에 피부가 햇빛에 말라 버리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다. 날씨가 좋다고는 하나, 바람 또한 거세다. 모자를 쓰기가 힘들다.
<티벳 사원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다.>
<티벳 사원: 나는 이 곳에서 사물이 아닌 "빛"을 찍기를 원했다. >
사진 찍기에는 이 보다 더 좋은 날씨가 없다. 사실 한국은 가을 철 또는 겨울 철 며칠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쨍한 날을 볼 수가 없다. 여기는 그저 아무 카메라나 누르면 최고 화질의 사진이 나오게 되어 있다. 청명하기 이를 데 없으며, 더 이상 푸를래야 푸를 수 없는 하늘이다. 눈이 부셔서 사진을 찍지 못할 지경이다. 주차장으로부터 멀어서 그런지 구경꾼도 많지 않다. 그저 적절한 사람들이 와서 적절히 있다 가는 곳이다.
<높이 뛰는 모습을 촬영해 달라고 하여.>
<모우평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바로 이곳이 모우평이다. 옥룡설산이 잘 보인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모우평에서 내려오니 벌써 1시 반. 버스를 타고 중간에 갈아타는 지점까지 오니 벌써 2시 반이다. 이러다가는 (A) 코스 조차도 가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도 각자가 가져온 빵조가리로 대충 때우고 (A)코스 버스를 타는 지점까지 왔다.
주차장 근처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들끓었고, 어떻게 (A) 코스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관리하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였더니,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고 우리를 먼저 태워주었다. 하마터면 구경 못할 것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가 외국 여행자라 하여 봐주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버스를 타고 가서, 케이블카를 탄 것이 3시 45분이다. 4시 이후에는 산악의 기후 상 손님을 태우지 않는다고 하니, 마감시간을 단지 15분 남겨 놓고 간신히 막차를 탄 셈이다.
<(A) 코스: 케이블 카를 타고 내리니 4506미터라는 돌 비석이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바로 앞에 4506미터라는 돌 비석이 서 있었다. 돌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으로 붐볐다. 차례를 기다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우선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눈을 들어 위쪽을 보니 끝없는 계단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저기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오른 쪽에 나타난 만년설>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이어져 있다. 왼쪽 높은 산이 정상이다.>
사실 나는 4000미터 이상을 올라갔을 때의 상황을 여러 번 들었기에 과연 내가 어떻게 될지 대단히 궁금했다. 4000미터에 오르면 일단 평지 산소량의 1/2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슴이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려고 해도 잘 걸어가지지가 않고, 몇 미터 가다가 몸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는 약간 띵했으며, 정신이 약간 혼미하여 누구한테 뒈지게 얻어 맞은 놈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걸어 올라가야 할 길은 정확하게는 모르나 약 1.5키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파른 길도 아닌데 왜 이리 올라가는데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목적지가 수평거리로는 약 1.5키로이고, 수직높이로는 약 175미터 올라가는 셈이다.
나는 4시에 케이블카 지점에서 나무 계단을 타고 등산을 시작했다. 한 여자가 땅 바닥을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한 참을 그러더니 아래로 내겨갔다. 나는 그곳에 떨어져 있는 그녀의 안경을 주어 갔다 주었다. 그녀는 붉은 얼굴에 숨을 헐떡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약간은 겁도 났으나 나는 계속 천천히 그리고 자주 쉬면서 올라갔다. 여기서도 바람이 불어 모자를 쓸 수 없었다. 작렬하는 태양이 내리 비치니, 마치 붉은 장작불 위에 빙빙 돌아가는 통닭 신세가 된 느낌이다. 작은 산소통을 입에 대고 오르는 사람도 가끔 보인다. 이 산소 통은 저 아래서 3000원 정도에 구입하는 조그만 가스 통이다. 나와 같이 간 어떤 여자는, 구입한 산소통을 써 보려다가 연결 장치인 프라스틱이 바람에 날아가는 바람에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허무한 꼴이 되고 말았다.
<손을 든 사람이 우리의 가이드. 가이드 두 명 중 좀 젊은 사람>
<위에서 아래를 보고 찍었다.>
<추워서 떠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 나름으로 이룬 성취에 흥분한 사람도 있다.>
<드디어 4680미터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은 올라갈 수 없다. 약 1.5 키로 정도 걸어서 올라왔다. 실제 수직 고도 상으로는 약 170 미터 올라온 셈이다. 약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4680미터 지점에 도달했다. 일본의 후지산이 3776미터이니, 이곳만 하더라도 후지산보다 약 1키로가 높은 셈이다. 만년설이 나무의 뿌리처럼 구멍이 뚫린채로 여기 저기 놓여 있다. 바로 손이 잡힐 듯한 바로 저기가 정상이다. 태양 빛은 머리 위에 떨어져 내 머리를 볶는 듯 하다. 여기에서 약 1키로만 가면 6000미터에 가까은 정상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기에서도 오래 있기가 힘들다. 몇 분 이상 버티는 사람이 없고, 사진 몇 방찍고 내려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갑자기 윗통을 벗은 사람>
갑자기 한 사람이 윗통을 벗더니 포효하기 시작했다.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질렀다. 그도 채 1분이 안 되어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낮이나 밤이나 부는 바람에 매달아 두었던, 종교 의식에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천이 여기저기 찢겨 흔적만 남아 있다. 듬성듬성 눈으로 덮힌 옥룡설산의 정상은 바로 그렇게 나를 맞이 했다가 또 그렇게 아래로 나를 내 몰았다.
<4680미터 지점에 걸어 놓은 깃발들이 바람에 갈기갈기 찢겨 있다.>
<아무래도 내려가는, 또는 올라가는 계단이 나에게는 대단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래서 계단을 많이 찍었다. >
<올라올 때 사람으로 붐볐던 4506미터 표지석에는 이제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 사실 개미는 아까 올라올 때도 없었다.>
아래로 내려오니 5시 반이었다. 뒤를 돌아 내가 내려온 설산을 쳐다보니 위에서도 아름답지만 이곳에서도 못지 않게 장쾌하고 아름답다.
<리지앙으로 오는 차 안에서 옥룡설산과 태양을 찍었다. 나의 카메라의 흔적이 오른 쪽에 희미하게 보인다.>
<리지앙 고성에 해가 진다.>
<지붕에 비친 리지앙의 마지막 석양빛>
밤 9시에 리지앙을 떠나 쿤밍으로 향하는 침대버스를 탔다. 세 명이 나란히 탈 수 있고, 한 줄에 8명 정도 탈 수 있는 듯하니 24-30명 정도 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들 피곤한지 별 말이 없다. 나는 맨 뒤에서 두 번째 가운데 탔는데, 내 뒤에는 중국인 젊은이들이 타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쏼라쏼라대고 있었는데, 그들도 남녀가 같이 쿤밍으로 가는 것 같다. 그들의 뻗은 발이 어떤 때는 내 머리 위에 있고 또 어떤 때는 내 입 위에 있기도 했다. 나도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다 그러려니 하면서 또는 팔자 소관이려니 하면서 그냥 갔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중간에 소변을 보러 차를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없이 그냥 간다. 그러다가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 소리를 치자, 차가 출발한지 3-4시간 되어서 길에 멈췄다. 그냥 아무데나 모두다 이 강산 낙화유수를 한다. 캄캄한 밤이라 아무도 뭐라는 사람도 없다. 본래 중국이라는 나라가 그런가 보다. 말이 없으면 그냥 죽어라 하고 차는 간다.
<리지앙에서 쿤밍으로 가는 야간 침대 버스: 세 명이 나란히 자게 되어 있다. 30명 정도가 자고 갈 수 있다. 물론 나는 다리를 접어 수도자(修道者)의 자세를 취해야 했다.>
<침대 버스에서 나의 바로 아래에 있는 사람을 찍어 보았다.>
내일 새벽이면 처음 우리가 도착했던 쿤밍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시간이 아주 더디게 가더니, 중간 지점을 넘자 시간이 쏜살 같이 흘러가는 것 같다. 마치 인생과도 같으리라. 젊었을 때 시간이 가지 않아 어른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나이를 먹으니 일년 이년이 마치 하루 이틀과도 같다. 원점으로 돌아오면서 지난 날들이 영화의 화면처럼 스쳐간다. 좋고 나쁘고, 기쁘고 슬프고, 지루하고 재미있고 그런 이분법의 시간이 아니다. 덩그러니 저 멀리 놓여 있는 과거가,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먹다 남은 사과 조각 같다. 몇 번 베어먹고 남겨진 사과는 공기와 산화작용을 일으켜 이제는 퇴색된 모습으로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이 그렇게 저기에 놓여 있다. 그래도 내일 아침이 되면 먹다 남은 사과를 다시 주워 입에 물고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옥룡설산의 황야를 내가 오늘 걸었듯이, 그렇게 ---.
*그 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래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없었지만 사진이 많다보니 그렇게 길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다음 번 제 10부를 끝으로 종결됩니다.
(2009년 11월 2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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