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China

신장 10 "허무" (Xinjiang 10)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1. 08:48

 

 

 

 

 

(허무와 카나스:허무와 카나스를 통틀어 허무카나스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허무에서 카나스로 가려면 약 2 시간이 더 걸린다. 신장 이야기 제 10부는 8월 8일 허무, 8월 9-10일 카나스 이야기다.)

 

 

제 10부

허무와 카나스? 허무한 카나스?

 

2010년 8월 9일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잠을 자다 깨다한 우리는 텐트를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한국의 가을 하늘처럼 맑았으나, 썰렁한 냉기를 동반한 강바람이 추위에 언 가슴을 후벼파고 사라졌다.  검은 강물은 평온하게 보였으나 가까이 보니 무섭게 소리치며 파도를 이루며 흘러갔다.  

 

 

다른 사람들은 지난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아마 그들도 잠을 잘 자기는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젊음이라는 것이 있고, 또 술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대로 잠을 잘 자고 있는지 모르겠다. 늙고 병들면 서럽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러다가 내가 늙었을지 모르지만 병은 들지 않았다고 내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다가 또 나는 늙지 않았다고 또 내가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아내의 손을 잡고 철조망을 뚫고 강가를 따라 놓여진 작은 길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50분이었다.

 

 

 

 

 

 

 

 

강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한가로운 길이 나 있었다. 우리는 강물과 함께 걸었다. 강물은 왜 자기를 따라오냐는 듯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가끔가다 하늘을 나는 이름 모를 새가 노래를 하고 있었지만, 물소리에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길은 모래와 흙으로 덮여있어서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람이 걸은 발자국보다는 말 발자국과 경운기 바퀴 자국이 더 선명한 길이었다. 길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에 의하여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떤 곳에서는 길 스스로 광장을 만들어 우리를 기어이 쉬다 가게 만들었다.

 

 

길가에 알 수 없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저 멀리 쭉쭉 뻗어있는 미루나무가 아침 햇살을 받아 길게 길게 그림자를 길가의 꽃에 뿌리고 있었다. 길가에 듬성듬성 놓여진 바위는 이끼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황토색 옷을 입고 있었다. 황토색 바위는 아침 햇살을 받아 신비스런 보석 같기도 하고, 시골의 녹슨 양철지붕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파란 하늘과 황토색 바위 그리고 초록의 풀 위에 사진을 찍는 내 그림자가 조금은 처량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야, 눈을 들어보니 강가는 해바라기 밭으로 황금색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해바라기 밭은 강가를 따라 눈이 보이는 데까지 이어져 있었고, 풍부한 아침 햇살은 여기에도 자신의 위용을 유감없이 떨치고 있었다. 강 저 너머에 아스라이 놓여진 어슴프레한 산이 고래등처럼 펼쳐져 있다. 한 줌의 바람이 해바라기 물결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강가의 나무를 흔들어 놓고, 내 마음을 휘잡고 사라졌다.

 

 

눈을 반쯤 감고 오솔길을 걸었다. 간밤의 고통은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 작열하는 아침 햇살이, 내 머리를, 내 이마를, 드디어 내 눈 위에 부서졌다. 온 천지가 붉게 물들었다. 나는 몰핀에 취한 마약중독자처럼 하늘을 날고 절벽을 기어 올랐다. 그때 어디서인지 정신 차리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이 소리가 없었더라면 나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었을 것이다.   

 

 

 

 

 

 

 

 

걸은지 한 시간 반 만에 다시 텐트장에 돌아왔다. 썰리의 생일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나뭇 가지에 꽃여진 흰 종이로 된 생일 축하카드 아래, 미역국과 흰 쌀밥이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생일축하합니다"라는 노래가 강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이국 땅 중국 부얼진 강가에 메아리쳤다.

 

 

 

 

10시에 허무로 출발했다. 허무로 간다 하니 "허무에 가면 정말 허무하나? 허무에 가면 이번에는 허무하지는 않겠지?" 모두들 한 마디 한다. 그때 내 머리 속에는 허망, 허리, 허사, 허황을 거쳐 허정무로 급기야 최미나라는 단어까지 숨막히게 돌아가고 있었다. 또한, 순간적으로, 전에 유행했던 허무 개그 몇 개가 생각이 났다.

 

 

1. 비가 LA를 가면? / LA갈비
2. 사오정이 다니는 고등학교? / 뭐라고
3. 어부들이 가장 싫어하는 가수는? / 배철수
4. 아이스크림이 교통사고를당했어, 그이유는?? / 차가와서

5
A: 경찰차는 폴리스카! 소방차는 파이어카! 그럼 병원차는?
B: 하스피럴 카!
A: 아니, 앰뷰런스!
 
6
A: 코카콜라를 입술 안 붙이고 말해봐.
B: 커 카 커 라
A: 아니, 코카콜라! 코카콜라는 원래 입 안 붙이고 해.

 

 

 

 

 

 

 

 

 

 

 

 

 

 

 

 

허무로 가는 길은 멀지는 않으나 속도를 낼 수 있는 길이 절대 아니었다.  급경사에다가 급 커브가 대부분이었다.  돼 먹지 못한 송아지가 귀신이나 알 수 있는 곳에서 홀연이 나타나 개판이 아닌 소판을 치고 있었다. 움푹 패인 물구덩이로 자동차의 타이어가 빠질 때마다 내 몸 안의 오장육부를 휘저어 놓았고, 바퀴가 뿌려대는 흙탕물에 송아지는 땅강아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주 오던 차가 지나가지 못해 한 차가 뒤로 물러서야 하는 운전수의 씁쓸한 표정을 여러 번 보아야 했다. 허무로 가는 길은 정녕 허무하게도 목숨을 잃는다면 잃을 허깨비 같은 길이지, 절대로 만만하게 보아 넘길 길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렇게 짐을 싣고 가면 다른 차는 어떻게 옆을 지날까?>

 

허무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였다. 허무는 펑퍼짐한 읍 정도의 면적에 서부 영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낮은 집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들판이었다. 눈을 들어 앞쪽을 보면 알 수 없는 큰 산 하나가 마을을 위압적으로 내려다 보고 있고, 바로 그 코 앞에 시퍼런 강물이 세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말타러 간다고 떠났다. 나머지 몇 사람은 산 밑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8월 오후의 작렬하는 태양이 흙 먼지를 꿰 뚫고 자신의 모습을 불사르고 있었다. 그 뒤 또 한 차례 말탄자들이 나타나자 이제 태양은 자신의 길을 방해하는 자에게 섬광과 단도와 불화살로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먼지 구덩이에서 말을 타고 가던 사람들이 기침과 재채기를 해대기 시작했다. 말탄자들의 시련이 끝날 무렵, 우리는 이미 언덕의 한 가운데 놓여져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허무라는 마을은 정녕 하나의 단아하고 청초한 새색시 같은 수줍음이다. 질서 정연하지도 그렇다고 무질서하지도 않은, 놓여질 곳에 놓여질 것이 놓여져 있는 그런 마을이다. 마침 하늘에는 솔개 한 마리가 바람을 타고 훠이훠이 맴돌고 있었다. 그가 먹이를 찾는지 이 마을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정찰을 하는지 내 알 길이 없지만, 내 젊었을 때 불렀던 이태원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솔개"는  이렇다.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소리없이 날아가는 하늘 속에 마음은 가득 차고,
푸르른 하늘 높이 구름 속에 살아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이 노래의 작자는 세상 사람들의 세태에 너무 부대끼어 이미 지쳐 버렸다. 아마 혼자 고고하게 떠 있는 솔개를 보고 독야청청하는 그 모습이 부러웠나 보다.  사실 이 순간 나도, 아득바득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손바닥 보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솔개가 부러웠다. 솔개는 분명 말 했을 것이다. "그래 너희들 지금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단다. 잘 생각해 보렴. 허나 그래도 여기까지 온 너희들은 행복한 줄 알아라. 세상에는 지금 네가 누리고 있는 행복 곁에도 갈 수 없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렴."

 

 

 

 

 

 

 

("이 군(郡)에 사는 60세 이상의 농민과 목장일을 하는 사람은, 7월 1일부터 매월 65원(약12,000원)의 양로금을 종신토록 받는다"고 써 있다.)

 

 

 

 

(우리가 묵은 집 마당에 있는 뿔)

 

 

우리는 다시 모여 배드민턴을 쳤다. 응원을 하고 심판의 불공평한 판정에 항의를 하고, 그럴수록 심판은 더욱 불공정해지고, 웃고 그리고 또 웃고 그러면서 해는 졌다. 감자볶음과 정어리를 넣은 김치찌개가 마당 한 가운데 흰 김을 내 품으며 놓여져 있었다. 또 맥주가 짝으로 들어와 간이 식탁 위에 놓여지고 부어라 마셔라하면서 허무의 밤은 허무한지 허무하지 않은지 판단할 사이도 없이 그렇게 흘러간다.

 

 

이상하게도 도시와는 달리 시골은 해가 지면 별이 뜬다. 별이 뜨는 밤은 누구나 마음이 숙연해지고 차분해지고 또 시인이 된다. "별이 뜨는 밤에는 그대 생각에 잠 못이룹니다."라고 자못 낭만적으로 나오는 것이 보통이리라. 하지만 내 친구 중 한 사람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별이 뜨는 밤에는 여자 꼬시기 정말 좋데이."라고 말한다. 그는 말한다. "밤하늘의 별을 보세요. 보면 볼수록 처음 보이지 않던 별들이 보이 잖아요. 저 밤하늘의 별이 보면 볼수록 더 많이 보이듯, 그대를 보면 볼수록 그대의 아름다움은 별이 되어 제 가슴에 와 닿습니다."라고 말한다나 만다나. 그러면 십중팔구 여성은 넘어가게 되어 있다나 만다나. "그러나 늙어봐라. 이 방법 저 방법 우수마발의 방법이 소용없을지니, 한강의 어름을 네 오줌으로 녹이려고 대드는 무모함일게야.  정신차려 이사람아." 이것은 내가 그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나는 곧 후회한다.

 

 

 

 

8월 9일-10일 카나스 호수와 그 주변.

허무에서 카나스로 가는 데는 약 두 시간이 걸린다. 듬성듬성 나무와 풀이 보이는 지대를 굽이굽이 돌아 다다른 곳이 바로 "카나스 자연 보호구"라는 곳이다. 상부에 카나스 호수가 있고, 이 호수물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신선만, 우룡만, 월량만 같은 아름다운 풍경구를 이룬다.  

 

 

 

카나스호수는 몽골어로 “아름답고 신비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부얼진현과는 120킬로떨어진 알타이산 중부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중국의 거의 최북방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최고등급 자연보호구다. 동쪽으로 몽고 서쪽으로 카자흐스탄 북쪽으로 러시아와 맞닿아 있다. 호수는 해발 1374미터에 위치해 있으며, 남북길이는 25킬로, 동서 길이는 2.9킬로, 면적은 37.3평방 킬로미터로 면적이 우루무치에 있는 천산 천지보다 8배나 더 크고,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188.5미터라고 한다. 여름철 하루 내에 사계절 풍경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희귀한 동물과 식물의 보고라고 알려져 있다. 구내에 삼림과 초원이 있으며 호수에 흘러드는 강줄기가 여러 갈래이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관광유람지로 꼽히며 자연보호와 역사문화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안내 책자에 적혀있다.  

 

 

그래서 그런지 입장료도 비싸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 엄청나게 모여드는 곳이다. 입구에서 표를 사고 버스를 타서 약 40분 정도 강을 따라 들어간다. 그러면 나타나는 것이 신선만, 우룡만, 월량만이라는 기묘한 모양의 강이 나타난다.  강물은 호수물을 닮아 쪽빛을 띠는데, 쪽빛이란 과연 이런색을 말하는구나 하는 것을 체감적으로 느낀다.

 

 

 

 

 

 

일단 버스에서 내리면 다시 버스를 타고 전망대로 가는 버스가 있는 정류장으로 간다. 거기에서 다시 만원정도 내고 버스를 타서 전망대의 70%정도 되는 지점에서 하차한다.  거기에서부터 전망대까지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는데, 오른쪽으로는 쪽빛 호수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꽃밭과 평야, 그 너머 멀리 눈 덮인 산이 보인다.

 

 

 

 

 

 

길이 길을 연하여 있듯, 호수는 호수를 연하여 휘감겨져 저 멀리 산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그것이 에메랄드인지 수정인지 무엇인지 모른다. 단지 아주 오래 전 겨울 바람이 불던 날이 문득 생각났다. 영월의 동강을 구경갔을 때, 청옥색 물을 보고 "저것이 쪽빛이구나, 저것이 쪽빛이야"라고 스스로 되뇌었던 생각뿐이었다. 이제 참으로 오랜만에 멀고먼 이 중국 땅 끝에서, 쪽빛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들으면서, 느끼면서 이 산비탈을 걷는다. 저 멀리 천길 만길 낭떠러지 아래, 호수가 태고적부터 간직해온 비밀의 속살을 내보이며 나에게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돌려 왼쪽으로 향한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과 꽃 사이로 걷는다.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풀잎과 더불어 자주빛, 분홍빛 꽃이 거대한 물결을 이룬다. 8월 초임에도 풀은 이미 누런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름 모를 풀이라고 열매가 없으랴. 무거운 열매를 매달고 그들은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풀들의 합창에 동참하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와 배를 탔다. 막상 배 위에서 보는 바다는, 쪽빛이 아니었다. 승객은 모두 중국인들이었고, 단지 우리 둘만이 외국인이었다. 그들의 떠들어대는 소리에 정신은 혼미했지만,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배가 앞으로 전진함에 따라 호수의 빛깔은 그 색을 달리했고, 스치는 양쪽 산 모양은 그 모습을 바꿔가며 보여주었다. 이제 내가 탄 배는 호수 한 가운데에서 멈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갑판에 올라와 사진을 찍는다. 여기에 온 사람 중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사람인 듯, 사방을 배경으로 플래쉬가 끊임없이 터졌다. 이제 다시 배는 방향을 틀어 출발한 지점으로 돌아온다. 빗방울은 뿌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쌍고동 소리가 이 먼 중국 카나스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호숫가를 걸어볼 수 있는 나뭇길이 놓여져 있었다. 그 나뭇길을 따라가다 보면, 곧 호수물의 출구인 강의 시작점에 내 발길이 닿는다. 유유히 흘러가던 물이 무섭게 속도를 내고 흘러가기 시작한다. 물빛은 쪽빛에서 이제 다시 은은한 맑은 쪽빛으로 바뀐다. 눈을 들어 호숫가를 보면 호숫가는 초록의 이끼로 덮여있다. 날씨는 정신없이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한다. 이러니 하루에 4계절을 맛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강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새들이 바위에 앉아 물고기를 잡으려고 물속을 바라본다. 그 밑에는 래프팅을 할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귀를 찢는다.

 

 

 

 

 

 

지아황(家訪)이라는 집이 있다. 사전에 보면 구경하는 집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 나라의 구경하는 집은 새 아파트로 입주할 때, 인테리어를 어떻게 하는지 구경하는 집이다. 나는 너무 궁금하여 들어가려고 하였더니 돈을 내라고 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만원을 내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집이냐고 물었더니 옛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이라고 했다.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도대체 중국이라는 나라는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인지 모르지만 관광지에 가면 돈이 돈이 아니다. 단 5분도 걸리지 않을 구경을 하는데 만원을 내라고 한다. 모르면 몰라도 중국 서민은 아마 평생 구경 한번 못하고 인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늘 하루 이 카나스만을 구경하고 배타고 먹는데 거의 7-8만원 가까이 들 것 같다.  

 

 

 

카나스 호수를 왕복하는 버스는 유명한 몇 군데에서 선다. 거기서 좀 구경을 하고 다음 버스를 타도록 되어 있다. 붉은 색 실타래를 걸어 놓은 곳이 있었다. 조그만 바위가 있었는데, 바위 위에는 사람들이 갖다 바친 동전과 지폐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바위 아래에는 신성한 샘물이라고 적힌 물이 흘러나온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항상 그런지는 모르지만 바가지로 떠 먹어본 그 물은 이가 시리도록 찼다. 두 모금 마시니 부얼진 강가의 한기가 느껴지는 듯 하여 몸서리가 났다. 얼른 바가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자리를 떴다.

 

 

 

 

 

입구에 내려왔을 때 약속된 시각보다 내가 좀 일찍 왔다. 나는 입구 근처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마침 한 남자가 계속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물었다. 그는 호남성에서 온 사람으로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었다. 그는 내가 중국말을 하는 것을 보고 중국말을 잘 한다고 했다. 나는 내가 중국말이 서툴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고, 그 사람의 입장으로보아 외국인이 중국말을 조금이라도 하면 아주 잘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도 다 잘 알고 있다.  하여튼 그는 그의 비디오를 바위에 올려 놓고 우리 둘을 찍었고, 나는 나의 카메라를 바위에 올려 놓고 우리 둘을 찍었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이어져 그가 누구와 함께 여행을 왔는지 묻게 되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왔으며, 놀라운 것은 그의 아내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내 중국어가 실력이 안 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그런 것까지 물어보아 그의 기분을 혹시라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어떻든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지만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을 온 사람이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마지막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것을 다시 한 번 보고 또 보고 그러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이 찢어지는 일일 것이다.

 

나는 이제 내려가야겠다고 말하고 그와 헤어졌다. 나와 악수하는 그의 손에 힘이 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자세히 그의 얼굴을 보니 조금은 우수의 흔적이 얼굴 도처에 남아 있는 듯 했다.  

 

조금 더 내려왔을 때 어디서 "어이"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다 보니, 그는 한 손을 흔들면서, 한 손으로는 자기를 바라보는 나를 비디오에 담고 있었다. 나도 손을 들어, "짜이찌엔, 시에시에"라는 말로 답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나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본 나로서는 마음내키는 대로 산다는 것이 결코 사람의 도리에 벗어나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남의 눈치만 살피며 가슴에 참을 인자를 새긴 사람들이 훗날 죽음을 앞두고 가슴치며 후회하는 광경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고 마음이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른 인생은 세상의 잣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자유로운 삶은, 존경을 받지는 못하지만 사랑받는다. 그리고 상쾌한 청량감을 준다. 인생은 앗 하는 사이에 지나간다. 나 또한 아직 마지막 순간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말이 지니는 진정한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떠나야 할 때가 되면 모두가 비슷한 말을 남긴다."
(오츠 슈이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 중에서)

 

 

 

 

(2010년 9월 1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