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아침 해가 한강 너머로 떠 오른다>
김제 여행기
2010년 10월 9일, 아침에 눈을 뜨니 창 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한 줌의 불덩이가 검은 하늘을 밀치고 올라오더니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는 듯 강렬한 붉은 광선을 하늘로, 하늘로 내 쏟고 있었다. 순식간에 태양은 섬광을 내뿜으며 대지에 모습을 나타냈고, 이내 구름 주위를 붉은 황토빛으로 물들였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붉은 빛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는 눈부신 흰 빛이 차지했다. 푸른 하늘에 목화송이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다. 토실토실하게 살이 찐 흰 구름이 눈부시다. 그래 오늘 떠나는 거야!
<10월 9일 아침>
<여행지도>
내가 김제를 가보겠다고 결심한 것은 김제 벽골제에 지평선 축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단지 끝 없이 펼쳐진 만경 평야의 굽이치는 황금 들판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가을하면 단풍이 떠오르고 은행나무 노란 길이 먼저 떠 오른다. 하지만 나는 한 동안 내 머리 속에서 잊혀져 왔던 뭉글뭉글 물결치는 벼의 군무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서 김제 고속도로를 빠져 나온 것은 출발한지 네 시간이 지난 낮 12시였다. 문제는 이곳에서 지평선 축제가 열리고 있는 행사장까지가 문제였다. 길이 한 번 막히더니 뚫릴 줄을 몰랐다. 하염없이 서 있다가 찔끔 몇 미터 가고, 그러다가 가고 서고를 반복했다. 답답한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걸어가는 사람이 차에 탄 사람보다 더 빨랐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길가의 코스모스 꽃을 따서 손가락으로 튀겨 꽃잎을 하늘에 날리며 걸었다. 어떤 스님 복장을 한 사람은 아예 좋은 코스모스 꽃만을 골라 손아귀가 터지도록 움켜쥐고 걸었다. 코스모스 꽃은 심심한 사람들의 노리개에 불과한 팔자라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가련한 코스모스"라고 내 마음에 각인된 이 가을의 꽃은, 이제 자신의 몸이 떨어져 나가는 비통함을 느껴야할 운명의 꽃으로 변하고 있었다.
넓디 넓은 몇 개의 주차장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수백 미터 또는 1키로 이상 떨어진 주차장으로 우리 차는 안내 되었다. 어디를 가나 그렇지만, 해병 전우회 복장과 완장을 두른, 조금은 겁이 나는 젊은이들이 호르라기를 불고 눈을 부라리며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 했다. 우리 나라를 움켜쥔 큰 손 중의 하나가 해병 전우회라는 말을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 하나로 뭉쳐진 그들은, 이제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강력한 집단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내가 군대 있을 때 고참들이 한 말이 기억 난다. "절대로 공수부대는 건들지 말아라. 네가 죽을 수도 있다. 해병대와는 무조건 싸워라. 네가 죽을지 말지는 너에게 달려있다. 일반 육군 부대 병사는 건들지 말아라. 불쌍한 그들이 아니냐?" 하여튼 약 4 키로를 가는데 한 시간 걸려서 오후 1시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처음 찾아간 곳은 조정래 문학관. 행사장 바로 정면에 위치해 있다. 태백산맥과 아리랑에 관한 여러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소설을 쓰면서 사용할 표현들을 공책에 꼼꼼하게 적어 놓았다는 것이다.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또는 멋있는 표현을 발견하거나 떠오를 때마다 적어 두었던 표현들을 그는 소설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경복고등학교에 재직할 때 어떤 학생이 백일장에만 나가면 항상 장원을 했다. 나는 너무 궁금하여 어떻게 그런 상을 탈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평소에 멋있는 표현을 항상 수집하고 적어두었다가 그것을 적재적소에 잘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평범하고 당연한 이런 과정을 나는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노력을 한 적이 없고, 무언가 아쉬우면 책꽂이에 꽂혀진 책을 좀 찾아보고 적절한 것이 없으면 차선의 방법으로 내가 알고 있는 진부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좋은 습관은 늦게라도 배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평선 축제가 있기 이틀 전, 조정래 문학관 바로 옆에 현숙효열비가 세워졌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지극 정성을 다했다는 현숙은 부모님을 앞에 두고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동상으로 재 탄생했다. 부모님에게 효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해마다 전국 곳곳에 기부한 내용이 비석 뒷면에 빼곡히 적혀 있다. 얼마 전 TV에서, 현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었다. "제가 한 것은 너무 보잘 것 없는데 이런 효열비까지 세워주시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런 영광을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인간에게 윤리가 있고 도덕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부모를 보살피는 것이 자기에게 불리할 때는 모른 체 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부모를 버리기까지 한다. 심지어 부모를 죽이는 사람도 있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자기 것인 양 생각하고, 부모가 재산을 주지 않으면 부모에게 해꼬지를 하는 젊은이를 우리는 종종 본다. 부모가 자신에게 줄 재산이 있으면 알랑방귀 뀌고 붙어 있고, 자기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면, "저 노인네가 왜 죽지 않고 살아서 나를 귀찮게 하나"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도 있다. 그들을 나무랄 것인지,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신을 원망할 것인지는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세상은 살 만한 값어치가 있는 따뜻한 둥지인 동시에, 버림받은 자가 비바람과 진눈개비 맞으며 찢어지는 비장과 터지는 심장을 안고 걸어가야 할 황량한 들판이기도 하다.
여늬 다른 축제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공연과 전시, 먹거리 그리고 물품 판매장이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배가 고파서 재래식 두부를 만들고 있는 곳에 가서 두부를 먹어 보았는데, 질감이 얼마나 투박한지 마치 들깨껍질과 메뚜기 다리를 섞어서 대충 갈아 먹는 것과 같았다.
베트남, 일본, 중국, 터키 등 약 10개 나라의 음식점이 있었으나 이미 두부를 먹은 터라, 눈으로만 먹어보는 도리밖에 없었다. 관광객 중에는 명찰을 단 외국인이 많이 있었는데, 초대를 받아서 온 사람 같았다. TV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하는 외국인도 있었고, 신기한 듯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행사장의 꽃은 각설이다. 각설이 중에서도 가장 웃기는 각설이는, 무자비한 욕을 해대는 여장(女裝) 각설이다. 앞자락에 몽둥이만한 가짜 남성 성기를 꿰차고는 "이런 씨부랄 것이 어제 밤 여자 앞에서는 쥐 새끼 같더니만, 오늘따라 연병지랄하고 있네이~"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기 허리를 들썩들썩 거리면 그 몽둥이는 미친 듯,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는 듯, 하늘을 향해 만세 부르고 땅을 향해 따발총 갈긴다. 그의 말대로, "온갖 개 방정" 다 떨고 있다.
황금 들판에 동네 처녀들이 강강수~월~레를 한다. 푸른 하늘에 수 놓은 뭉게구름을 배경으로 각종 애드벌룬이 바람에 춤을 추면 덩달아 누런 들판도 잔잔한 파도를 쳤다가 이내 성난 황금 바다가 되어 물결친다.
사진을 찍는 바로 내 앞에 나의 그림자가 조금은 외롭게 바닥에 깔려있다. 그대는 구누인가? 그대는 왜 이곳에 왔는가? 그대는 지금 행복한가?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묻지 마라. 나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마라. 나는 텅 빈 머리와 내장 없는 해골에 지나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오면 앙상한 뼈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은 바람뿐이다. 나는 좋은 줄도 모르고 싫은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된지 오래다.
백룡과 청룡 전설을 형상화한 대형 모형물을 지나면 갈대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 위로 수 많은 연이 바람에 나부낀다. 푸르름, 바람, 하늘, 구름, 호수, 갈대, 연, 아이들, 들녘, 오후, 그림자, 풍선,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나,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리움일 게다. 나는 지금 한 폭의 그림보다도 더 그림 같은 대자연의 장관을 보고 있다. 그림을 그리듯 머리 속에 희미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려보는 것이 그리움일 것이다. 가끔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어머니, 내 고향의 뒷동산, 옛 친구의 얼굴, 이미 어쩔 수 없이 추억이 되어 버린 그녀의 모습도, 푸른 하늘에 한 줌 그리움으로 흩 뿌려진 그리움이다.
김제 전설에 따르면 백룡과 청룡이 있었는데, 백룡은 좋은 성품이었으나, 청룡은 항상 재앙을 일으켰다고 한다. 결국 청룡을 달래기 위해 처녀를 청룡에게 바쳐 그의 마음을 돌려보겠다는 내용의 놀이가 소위 말하는 "벽골제 대동 쌍용놀이"이다.
한 가련한 운명의 여인이 가마에 실려와 청룡 앞 20여미터에 서게 된다. 무대에서는 구슬픈 노래가 김제골을 슬픔에 젖게 하고, 보는 이의 감정을 슬픔으로 인도한다. 이 가락에 맞추어 소복의 여인은 덩실덩실 춤을 춘다. 드디어 입을 딱 벌린 용 앞에 "날 잡아먹어라"라고 가슴을 떡 내밀자, 용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나는 저 갸냘픈 여인네가 가시처럼 뾰죽한 이빨 사이를 빠져 청룡의 목구멍으로 어떻게 들어갈지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용의 입으로 들어가다가 용의 이빨에 가련한 여인의 피부가 찢어져 피가 나지 않을까? 옷이 벗겨져 그녀의 맨 살이 드러나지 않을까? 용이 불을 내품어 여자가 아프리카 흑인으로 변하지 않을까?
여인의 희생정신에 탄복한 용은 입에서 연기와 불꽃을 내품으며 한참을 울부짖는다. 마침내 그는 여인을 잡아먹지 않고 — 예상대로인지, 예상 밖인지 지금도 확실치 않다 — 옆으로 슬금슬금 피해서 무대 반대 쪽으로 사라지고 만다. 기대와 실망이 뒤섞여 "아야"와 "에이"가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수 많은 관람객이 공연장으로 나와 짚신을 하늘에 던져 올린다. 짚신은 매달아 놓은 바구니를 터뜨리면서 대동 쌍용놀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지평선 축제장을 떠나 나의 목적지인 김제시 광활면으로 향했다. 심포항으로 가는 광활면 702번 국도는 지도에 나왔듯이 환상적인 코스모스 길이다. 길 양쪽으로 "지평선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포효하듯 수확을 며칠 앞둔 황금 들판이 펼쳐져 있고,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한 없이 펼쳐져 있다. 중간에 내려 사진을 찍고 가고, 또 사진을 찍고 다시 가도 길은 길에 연하여 뻗어 있었다. 누가 이름을 지었을까? 이곳을 광활면이라고! 정말 광활(廣闊)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동정호 칠백리라고 했던가?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는 여러 개의 강이 흘러들어 광활하기도 하고 경치 또한 빼어난 곳이다. 나는 김제의 광활면을 감히 "광활면 칠만리"라고 말하고 싶다.
심포항에 도착한 것은 거의 오후 6시가 다 되어서 였다. 관광버스 몇 대가 이미 와 있었고, 바닷가에 줄지어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나오는 조개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술 취한 몇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면서 걸었고, 집으로 향하는 차량들이 이들을 피하느라 우왕좌왕했다.
심포항(아래 지도의 왼쪽 위)에서 동쪽으로 차를 몰고 약 1키로 떨어진 심포리로 갔다. "전망 좋은 집(아래 지도 오른 쪽 끝)" 근처에 몇 개의 호텔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모텔을 잡아두고 심포항의 싱싱한 회에 소주 한 잔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모든 모텔이 다 예약이 되었고, 방 하나가 남았는데 20명이 단체로 쓸 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이곳에서 숙박할 꿈을 접고, 지는 해를 보기 위해 다시 심포항으로 왔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갈매기 한 마리가 철봉 위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이리 훨, 저리 훨 날아다니는 다른 갈매기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꿈쩍도 않고 꼭대기에서 버티고 있었다. 나처럼 오늘 밤 잘 곳이 없어서 수심에 쌓여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서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서 우는" 것은 아닐까?
나의 이런 생각도 잠시, 내 눈은 지는 해를 바라보는 한 쌍의 젊은이에 고정되었다. 떨어져 있는 그들의 몸은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인은 추위를 이기지 못하는 듯, 남자의 허리를 감싸더니 이제는 붉은 색에서 분홍빛으로 변해가는 태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기분이 좋은지, 겸연쩍은지, 세상 별 일 다 있다는 생각이 드는지,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저 나이에 저런 분위기에서 저런 포옹을 당한다면 아마 제 정신인 남자 드물 것이다. 여자는 분위기에 휩싸여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할지 모르지만, 남자는 수 만가지 생각으로 가슴 조이며 낭만과 현실과 미래를 뒤섞어 한 잔 술을 생각할 것이다.
분홍빛 노을을 배경으로 붉은 태양이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감출 때 한 마리 갈매기가 오늘의 마지막을 알리는 비상을 시작했다. 서에서 동으로, 바닷물 바로 위에서 하늘 높이 날더니, 어두워진 하늘로 사라졌다.
구수한 조개 굽는 냄새를 차마 떨치지 못하고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 보다가 차를 몰고 군산 쪽으로 향했다. 조금 가니 망해사가 나왔다. 좀더 일찍 왔더라면 바다를 바라보고 한 줄기 상념에 잠길 그런 사찰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색스폰 소리 처량하다. 망해사 노을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보통 산사의 음악회는 현악기를 주축으로 하는 조용한 음악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고정관념일까? 여기는 이와는 딴판으로 대중가요 일색이었다. 사회자는 방청객 한 명을 나오게 하여 노래를 권했고, 그 손님은 배호의 "파도"를 불렀다. 이에 성이 차지 않았는지 사회자는 아무나 나와서 춤을 추라고 했다. 그래도 응답이 없자, 막무가내로 닥치는 대로 끄집어 내어 춤을 추게 했다. 한편으로 이런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바람은 불지, 손님은 적지, 파도는 으르렁 거리지, 그도 이런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그리 했을 것이다. 하여튼 어울린다는 것은 인간의 고정관념일 뿐, 모든 것은 어울리기도 하고 동시에 어울리지 않기도 한다.
잠잘 곳을 찾아 군산으로 향했다. 내 평생에 어느 군이나 시에 가서 잠잘 곳을 찾지 못해 다른 군이나 도시로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중국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지만서도. 이미 어두워져 밖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만이 희미하게 보였다가 사라졌다.
나는 우선 잠잘 곳과 먹는 곳이 같이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군산항으로 가기로 했다. 대부분 항구에는 횟집과 모텔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찾고 찾아서 간 군산항에는 횟집은 있지만 모텔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길을 물어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로 왔다. 여기에는 번쩍거리는 모텔이 너무 많았다. 우선 눈에 띄는 집으로 들어갔다. "샵 모텔"이라고 써 있었다. 방을 잡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다시 군산항으로 향했다. 이미 9시가 되었으므로 빨리 행동을 취해야 했다. 택시 기사에게 좋은 횟집이 어디인지 물었다. 기사의 대답은 샵 모텔 종업원의 대답과는 달랐다. 누구의 말을 신임할까 하다가 택시 기사의 말을 듣고, 억조 횟집에 들어갔다. 방으로 안내되어 회를 시켰다. 홀에서는 한 무리의 회사 사람들이 와서 박수를 치고 술을 돌리고 시끌벅적했다.
배도 고프고 시간도 늦었고 바다 바람도 불었다. 10년 굶은 이리처럼 술과 회를 먹어댔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해서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이 바닷가였다. 찬 바람이 한 차례 불더니 붉은 등불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등불 사이로 검은 바닷물이 무섭게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한 참을 거닐었으나 나를 붙잡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이 시간에 나를 붙잡는 사람은 강도 아니면 삐끼일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없었다. 나는 꿈에서라도 별을 보려고 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밤 하늘의 별을 상상하며 걸었다. 그러다가 무엇인가에 펑 부딪쳤다. 바로 전봇대였다. 그때 하늘에 별이 보였다.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다."라는 성경 구절은 정말 위대하다. 나는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 한 마디 첨가하고자 한다. "그대 별을 보고 싶은가? 전봇대에 부딪쳐라, 그러면 별이 보일 것이다. 술을 먹고 부딪쳐라, 더 큰 별이 보일 것이다. 달려가서 부딪쳐라, 저승사자의 불빛이 보일 것이다."
다음 날 일찍 새만금 방조제를 달려보기로 했다. 길이 뚫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어디를 가나 관광객이 들끓었다. 몇 군데 휴게소가 있었고 휴게소 근처에서는 낚시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여 먼 곳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고깃배는 점심 때가 되어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고군산 군도를 연결한 새만금 방조제를 자동차로 가다보면 처음 만나는 섬이 바로 야미도이다. 야미도는 이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멋모르고 자동차를 가지고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외길로 자동차를 뒤로 백해서 빠져 나와야만 되었다. "야미도" — 정말 야마도는 섬이다.
야미도에서 약 3키로 가면 나오는 섬이 신시도이다. 주차장은 신시도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므로 이곳에는 사람들은 살지 않는다. 산을 넘어 서쪽으로 가야 사람들이 사는 신시도리가 나온다. 평소 같으면 군산에서 배를 타고 선유도에서 내려 신시도로 가겠지만 지금은 직접 자동차로 신시도에 갈 수 있다. 앞으로 2-3년 뒤에 신시도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도로가 뚫린다고 하니 그때는 이 방조제 길을 이용하여 신시도,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를 모두 여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작은 섬은 자동차로 뒤덮일 것이 뻔하다. 한가로운 지금의 지상낙원은 쓰레기로 넘쳐나는 최악의 퇴적장이 될지 모른다. 물론 이런 틈바구니에서 돈벌어 부자가 되는 몇 사람도 생기겠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신시도에 있는 작은 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등산하러 왔었다. 등산 버스만 해도 수십 대였다. 주차장 관리를 하고 있는 원주민의 말에 의하면, 이 산의 높이는 200 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신시도에 있는 이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고군산 군도의 경치는 한 마디로 죽여 준다고 한다. 아마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석양에 비친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는 아마 서해안 최고의 비경임에 틀림없으리라. 생각만 해도 몸이 뒤틀린다.
오래 전에 군산에서 배를 타고 선유도에 갔을 때 그 멋있는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그때 멋모르고 속아서 녹용값으로 30만원 지급한 것도 생각이 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속아넘어간 것이나 속아넘어가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 돈이 모아져서 집을 산 것도 아니고, 그 돈 때문에 고통 받은 것도 아니다. 단지 남는 것은 그때 기분이 좋았었다는 것뿐이다. 만약 다른 경우도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속는 줄을 알면서도 속아넘어가서 돈을 쓰는 즐거움은 그럴 만한 값어치는 충분히 있음에 틀림없다. <선유도 여행기>
신시도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망원렌즈로 바라보면서 다시 김제로 향했다. 항상 그렇듯 여행은 즐거움과 아쉬움을 남긴다. 그리고 세월이 빨리감을 느낀다.
풀 한 포기, 작은 새의 울음 소리에도 가끔 눈물이 난다. 언제든지 다시 떠날 수 있는 것이 여행이지만 막상 떠나려면 또 어렵기도 한 것이 여행이다. 배호의 "파도" 노래 가사에 있듯, 파도는 영원한데, 우리는 항상 정처없이 어디로 떠난다. 사랑도, 우정도, 한숨도, 즐거움도, 그리고 우리네 인생도 물거품만 남기고 그렇게 사라져 간다.
<배호의 "파도"> 부딪쳐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2010년 10월 16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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