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등산기
2007년 10월에 설악동-천불동-공룡능선-설악동을 다녀왔고, 2008년 10월에는 설악동-천불동-대청봉-봉정암-백담사를 다녀왔다. 그리고 2009년 10월에는 중국 운남성을 다녀 오느라 설악산에 가지 못했다. 한국에 있으면서 10월에 설악산에 가지 않는 것은 죄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처음 설악산 등산했을 때 였다. 그 이후로 내 다리가 나를 옮겨줄 힘만 있으면 10월의 설악산은 반드시 가보겠다고 맹세했었다.
그러나 왼쪽 무릎이 해마다 조금씩 나빠지고 있고, 전체적인 체력도 스스로 느낄 정도로 저하되고 있어서 내가 몇 번이나 더 설악산에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백담사에서 시작하여 오세암까지 갔다가 가야동 계곡으로 빠져, 다시 백담사로 오면서 단풍 사진이나 찍자고 생각했다.
인터넷 검색 후, 단풍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2010년 10월 22일(금요일) 오후 3시쯤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로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자가용을 타고 가야 한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했다. 왜냐하면 그저 설악산만 다녀온다면 당연히 버스로 가야겠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이 단지 설악산만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다니면서 좋은 단풍을 찍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제 근처의 작은 휴게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반경이었다. 지는 태양이 붉은 노을을 만들어 서쪽 하늘은 붉은 빛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붉은 기운은 순식간에 하늘에서 산으로, 그리고 다시 강으로 번져 갔다. 급기야 내 얼굴도 붉어지고 내 손 바닥도 붉어지더니, 마침내 내 마음도 붉어져, 온 천지가 성냥불에 휘발유 불붙듯 그렇게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설악산에 가지 않으면 어떠리, 이미 내 붉은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으니, 더 무엇을 바라리. 붉게 물든 강물과 모래를 바라보며 하룻밤을 보낼까? 그래도 설악산은 가야지, 나는 다시 차를 몰고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한계령 가는 길과 미시령으로 가는 갈림길에서부터 백담사 입구까지의 길은 그 동안의 터널 공사가 완성되어서 더 이상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좋은 길이었다. 그곳을 통과하는 모든 차들이 시속 90-100킬로로 달리고 있었다. 속초와 동서울을 운행하는 버스가 "서울에서 속초까지 2시간 30분"이라는 포스터를 달고 달리는데,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서울에서 홍천까지는 고속도로로 가고, 그 다음부터는 넓은 왕복 4차로 국도로 달리다가, 미시령 터널로 빠져 나가니, 이제 서울에서 속초에 가는 것은 완전히 누워 식은 죽 먹기가 되어 버렸다.
백담사 입구에서 모텔을 찾았으나, 아예 없는지 내가 찾지 못하는지, 아니면 밤이라 그런지, 아무리 돌아다녀도 모텔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 민박집에 들러 3만원에 자기로 했다. 강원도는 역시 강원도인지라 10월인데도 찬 밤 기운이 소매 끝을 타고 올라왔다. 옷이란 옷은 온통 껴입고, 저녁을 먹으러 여기저기 어슬렁거렸다. 한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보니, 최소 7000원에서 3-4만원까지의 음식이 있었다. 값이 가장 싼 7000원짜리 해장국을 시켜 먹었다. 동동주도 한 잔 할까 하다가 다음 날 있을 등산을 생각해서 꾹 참았다.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민박집으로 향했다. 이효석의 소금 뿌린 메밀밭처럼 희디흰 구름이 검은 색 하늘을 배경으로 이리 둥실 저리 둥실 떠 있었다. 둥근 달은 구름 면사포를 썼다 벗었다 하며 사정없이 앞길로 질주했다. 달이 저렇게도 빨리 가는구나! 박목월은 분명히 오늘 내가 본 저런 달을 보고 시를 썼을 것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새벽에 일어나니,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단풍은 구경도 못하고 안개 속만 헤매다가 오지 않겠는가, 걱정 근심이 앞섰다. 안개를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거늘 새로운 경험이면 되었지 무슨 걱정을 하냐고 스스로를 나무라고 배낭을 메고 민박집에서 나왔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땅 바닥에도 그리고 자동차 위에도 곱게 깔려 있었다. 낙엽을 보며, 밟으며, 안개 속을 걸었다. 여기가 이승인지 저승인지 구분되지 않았고, 꿈인지 생시인지도 구별되지 않았다. 장자가 꿈에서 나비를 보고 자기가 나비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듯, 나는 내가 허깨비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혹시 이것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 아닐까?
백담사행 버스는 7시부터 운행되었다. 해장국으로 아침을 때우고, 점심 식사로는 초코파이와 비스켓 그리고 사과 2개를 준비했다. 7시 백담사행 버스는 이미 떠났고, 두 번째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안개 속을 뚫고 버스는 좁은 길을 귀신처럼 알아서 달렸다. 왼쪽으로 나 있는 개울의 바위가 정말로 흰색이었다. 그래서 백담사란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흰 바위와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보면서 "와, 와"를 연발했다.
백담사에 도착하니 햇빛이 산 등성이를 비추고 있었다. 어느 샌가 안개는 대부분 걷혀 있었고, 어스름한 안개만이 희미하게 계곡을 덮고 있었다. 백담사 주변은 그야말로 절정을 이룬 단풍의 물결이었다. 산 위에서 시작한 단풍이 이미 개울 바닥까지 다달아 있었다. 단풍은 붉을대로 붉었고, 단풍이 아닌 참나무와 떡갈나무는 노란색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사람들이 쌓아 놓은 돌 비석 사이로 흐르고 있었다. 개울물에 손을 넣었다가 그 차가움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얼른 꺼냈다. 아마 위쪽은 이미 얼음이 얼었을 것이다.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의 약 5키로의 길은 개울을 따라가는 평범한 등산 코스다. 개울을 만났다가 숲을 만나기도 하고, 안개를 만났다가 한줄기 햇빛을 만나기도 한다. 아침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자신의 모습을 뽐내고 있는 단풍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사진사가 "좀 건졌어요?"라고 한다. 물 빠진 사람을 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진 좀 찍었냐는 뜻이다. "글쎄요. 저는 역광 사진을 찍기 좋아합니다. 여기서 한 참 찍다가 가야겠어요."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른쪽 개울을 건너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거기는 입산 금지 구역인데요."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는 "걸리면 다시 나오면 되지요. 좋은 사진을 건지려면 모험을 해야합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한 번 따라가볼까 생각하다가 나는 법을 어겨가면서 사진을 찍을 만한 용기인지 객기인지 그런 것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내 갈 길을 재촉했다.
백담사에서 약 2키로 지점은 그야말로 붉은 빛이 폭발하고 있었다. 역광 사진, 다시 말해서 단풍나무 아래에서 태양을 향해 찍는 사진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햇빛이 단풍을 통과한 후 붉은 색으로 변한다. 그 붉은 빛을 이제 내가 카메라의 눈으로 보고, 또 맨 눈으로 보다가, 마음으로 본다. 이런 좋은 빛을 혼자만 보자니 너무 염치 없는 짓이지만, 염치없는 것이 본래 인간인지라, 마음의 눈물 한 방울 흘리고, 다시 단풍을 보고 앞으로 나간다.
영시암에 도착한 것은 9시 20분이다. 염불 소리 처량하고 그날따라 까마귀 소리 여기저기 나뒹군다. 굴뚝에서 파릇한 장작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갖다 먹으면서 "이거 먹으면 돈 좀 내야하는 것 아니야, 괜히 먹는 것 아니야."라면서 쓸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영시암>
영시암에서 오세암까지는 내려오는 사람도 없고, 올라가는 사람도 없는 호젓한 길이다. 단지 길이 가파라서 올라온 길을 자주 바라보면서 가야하는 그런 길이다. 가끔가다 나타나는 다람쥐, 멀리서 들리는 물소리, 그리고 이미 져가고 있는 단풍 사이로 스산하게 빠져나가는 바람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오세암에 도착한 것은 10시 50분이다. 한 여스님이 목이 터져라고 외쳐대는 "관세음보살" 소리가 계곡을 훑고 지간 뒤 남는 것은,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뿐이다. 그 아래 대문짝만하게 써 있는 글 귀가 눈길을 끈다. 관세음 보살을 개인 소원불로 모시면, "삼재의 팔난을 받지 않으며, 물에 빠지더라도 죽지 않으며, 불에 던져져도 타지 않으며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상급학교 진학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며, 관세음 보살님의 원력으로 내가 원하는 모든 소원이 이루어 집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정말로 그렇습니까?"라고 물어볼까도 생각해 보았다. "야, 이 놈아 너는 비유법도 안 배웠냐?"라는 대답이 들려오는 듯 했다. 아니 그 보다는 괜히 말했다가, 혹시라도 나에게 "삼재 팔난"이 닥쳐올 것 같아서 입다물고 얌전하게 있었다.
<오세암>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세암에서 가야동 계곡을 거쳐 다시 백담사로 가려는 나의 계획이 실행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희운각에서 시작되는 가야동 계곡의 등산로를 폐쇄하였던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1)오세암에서 하룻 밤 묶고 봉정암으로 갔다가 백담사로 내려갈까? 2)그냥 봉정암으로 갔다가 거기에서 자고 백담사로 갈까? 3)그냥 백담사로 내려갈까? 4)마등령을 거쳐서 설악동으로 내려갈까?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한 후, 마등령-설악동으로 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온 길로 또 돌아가기도 마음에 내키지 않고, 오세암이나 봉정암에서 잠을 자는 것도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좋은 추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세암에서 마등령까지도 가파른 길의 연속이었다. 멀리 보나 가까이 보나 별로 볼 것도 없이 그저 힘든 코스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햇볕은 따가왔고, 바람 한 점 없었다. 10월의 설악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가는 사람 또한 드물었다.
마등령에 도착한 것은 12시 10분경이다.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쪽은 안개 밭이었고, 서쪽은 맑은 하늘이었다. 태백산맥이 기후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등령에는 약 20명의 등산객이 있었는데, 대부분 삥 둘러 앉아 찌개를 끓여 소주 한 잔 걸치고 있었다.
마침 한 사람이 혼자 앉아 있어서 그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나는 초코파이를 먹었고, 60이 좀 넘어 보이는 그 사람은 도시락을 먹었다. 말을 들어보니 그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후, 속초에 온지 5년이 되었고, 매일 운동으로 소일한다고 한다. 오늘 아침 새벽에 속초에서 출발하여 희운각을 거쳐 마등령까지 왔으니, 아마 새벽 4시-5시에 등산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와 같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직하여 속초에 살고 있는 사람이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부분은 낚시나 골프 아니면 자기처럼 등산을 하면서 그렇게 산다고 한다. 그의 말을 경청하면서 바로 앞에 펼쳐진 장관을 보려하였으나 짙은 안개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아쉽지만 그냥 아래를 향해 출발할 도리밖에 없었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안개가 걷혔다, 몰려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 멀리 바닷가에서 안개가 만들어져 올라오는 것이 눈에 보였고, 이런 안개는 바람의 속도로 운반되어 순식간에 없어졌다가 순식간에 또 나타났다. 몰려왔다가 사라지는 안개를 바라보는 것은 그야말로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저 멀리 아니면 가까이에 있는 산 봉우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타나고, 중간중간 폭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금강굴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설악산>
금강굴 전망대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였다. 사람들이 금강굴에 가려고 헉헉 대며 올라오고 있었다. 사실, 설악동에서 비선대를 거쳐 금강굴에 오르는 길도 웬만한 사람은 올라오기 힘들어 한다. 비선대에서 금강굴을 바로보면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시간 반 정도 올라가야 금강굴에 다다른다. 그리고 적어도 금강굴에 올라야만이 비로소 설악산의 위용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 설악산에 가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금강굴 코스만은 올라가보길 적극 권하고 싶다.
<금강굴>
<비선대>
<설악동>
설악동에 내려오니 이미 해가 서산에 기울었다. 가을을 놓칠세라 어둑어둑한 길로 연신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일본인의 말소리도 귀에 들어왔다 사라진다.
나는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사람들이 꽉 차서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버스는 직통으로 가지 않고 여기저기 들렸다가 시외버스 정거장 근처로 왔다. 시내버스 기사는 자세하게 시외버스 터미널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는 잘 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는 모텔은 잘 보이지 않았고, 여관, 장 등 좀 옛날식 표현의 숙박 업소가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터미널에서 1-2분 걸릴 가까운 곳에 3만원을 주고 방을 정했다. 금요일임에도 대부분의 방이 빈방인 것으로 보였다. 나와 같은 등산객 2명과 자전거 여행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그날 내가 그 집에서 본 전부다.
근처에 동명항이 있었다. 샤워를 하고 동명항으로 걸어나갔다. 동명항 회센터 가기 직전 2층에 횟집이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종업원 아주머니가 왔다. 회를 먹겠다고 했더니 혼자는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면 3만원짜리 달라고 했다. 4만원은 줘야 한다고 아주머니가 말한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잠시 뒤에 스끼다시니 뭐니 해서 두 사람이 먹고도 남을 음식이 줄줄이 들어왔다. 소주와 회를 먹느라고 결국 매운탕은 시켜보지도 못하고 얼큰하게 기분 좋은 상태로 그 집을 나와야 했다.
여관으로 오는데, 앞에 맥주집이 보였다. 듬성듬성 앉아 있는 사람들에 끼여서 생맥주 500을 마셨다. 그리고 아무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아 좀 섭섭했다. 땅이 울퉁불퉁한 것으로 보아 술이 좀 취하기는 취한 것 같았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냥 잠을 자기는 좀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노래방에 갔다. 그러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나오고, 다른 노래방에 또 가고 또 나왔다. 마지막으로 수퍼에 가서 맥주에 팝콘을 사들고 들어와서 한 잔 먹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고꾸라져 잤다. 이것은 다음날 내 주위에 있는 여러 물체를 근거로 추론한 결론이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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