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에서 2
7월 11일 일요일이다. 추자도에 배가 들어올 수 없으니, 독 안 에 든 쥐의 신세가 되었다. 아침에 주인 아주머니가 끊여주는 국수를 먹었다. 살다보니 우리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서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바람이 말할 수 없이 세찼다. 어제보다 더 심했다. 주인은 조개를 캐러 간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도시락 싸 들고 말렸다. 과부로 살기 싫다는 것이다. 주인 아저씨는 걱정을 매 놓으라고 하면서 차를 타고 나선다. 하루종일 천장만 쳐다볼 수가 없었던 나도, 주인을 따라 거지 밥 동냥하러 나가듯 덜렁덜렁 나섰다.
목적지인 묵리 해안에 도착했다. 주인은 괴물과 싸우기 위해 음침한 지하 동굴을 가는 영화 주인공처럼, 바구니를 들고 흰 이빨을 내보이며 저항하는 바다를 향해 한 발짝 두 발짝 옮기기 시작했다. 여관집 주인이 조개를 캐기 위해 바위를 돌아 보이지 않는 저 쪽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여기저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 바다에서 캐온 각종 조개를 넣고 끓인 조개탕을 보니, 술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야기 꽃이 서서히 피기 시작했다. 오늘 이야기는 그 집의 종업원이 주도했다. 이야기를 구수하게 끌고 나가는 그 집 종업원은, 보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켜쥐었다가 놓아주었다가 자유자재로 손바닥에 가지고 놀았다.
동아대학교를 나왔다고 한 그는, 학교 다닐 때 소위 운동권에 있었다고 했다. 결국은 잡혀서 "당신 감옥에 가겠소, 아니면 군대에 가겠소"해서 결국은 군대에 갔다고 했다.
군대에 가서 헌병 교육을 받고 헌병이 된 그는, 외박을 나왔다가 여자 문제로 3분 늦게 귀대했다고 했다. 부대에 들어와보니, 어떻게 해서 쫄다구가 외박 나가서 3분이나 늦게 왔냐고, 바로 자기 위에 있는 일등병, 이등병들이 병장들로부터 빳다를 맞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벌을 받고, 매를 맞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성질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씨팔, 내가 여기 아니면 못사나? 최악의 경우 죽으면 죽는다" 말 한마디 하고는 그 길로 탈영을 해 버렸다. 탈영을 한 후 며칠이 되니 이미 헌병들이 전방위적으로 자기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잡혀 들어갔다. 그 뒤 그는 일반 부대로 배치받고, 거기서 제대를 했다고 했다.
제대를 하니 전과가 있어서 아무 데도 취직이 안 되었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 안 해본 노가다가 없을 정도로 모든 노가다는 다해보았다고 했다.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큰 돌을 어깨가 부숴지도록 등에 메고, 하루 종일 8층을 오르고 내리는 일도 했다고 했다. 그러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머리 속은 백지장처럼 된다는 것이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등에 짐을 지고 완전 로봇의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 온갖 "시다바리"는 다 해봤다고 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모나게 살 것이 아니라, 보통의 삶을 사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후회도 많이 됩니다." 그의 이야기 중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말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참 세상에는 내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자도에는 외국인 노동자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추운 겨울에도 변변한 장갑 하나 없이 벌벌 떨면서 그물을 내리고 올리고, 또 그물을 수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는 팔자 좋은 사람도 많지만 개 팔자만도 못한 사람이 우리 주위에 수두룩하다.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의 삶을 좀더 좋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저만 잘 하면 세상은 다 잘 먹고 잘 살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되고,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되는 사람도 있다. 아무도 어쩔 수 없는 삶,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사람, 아무런 말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 바로 주위에 살고 있다. 평등을 찾는 우리가 잘못이다. 가장 불공평한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가장 불공평한 이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라. 이런 경우 할 말은 하나밖에 없다. "말하기는 쉬워도 행동하기는 어렵다."
<추자도에서의 마지막 하루>
(2010년 7월 2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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