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카오산 거리>
시솽반나, 라오스, 타일랜드 여행기
제 9부: 카오산, 카오산
"카오산, 카오산, 여기는 카오산" 무전기에 대고 다급히 외치는 통신병의 소리가 아니다. 낮과 밤, 아침과 저녁, 주중과 주말에 관계없이 관광객으로 들끓는 태국의 관광 전진 기지 카오산 거리다. 수많은 음식점과 여행사, 상점, 마사지집, 책방, 세탁소, 꽃집, 골동품상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게가 큰 길가에 그리고 구석구석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구석구석을 뚫고 들어가면 또다른 거리와 또 다른 구석이 나오고, 그러다가 결국은 자신이 미로에 갇혀 있는 것을 알고서는, 다시 온 길로 나갈 것을 걱정해야 하는 희안한 거리다. 이 일대를 외국인이 점령하여 이미 해방구를 만들어 놓은지 몇 년인지 모르겠다. 외국인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서양인이다. 동양인인 내가 걷는 것이 한없이 낯설고,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3월 26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이 이른 아침에 거리에서도, 실내에서도 서양인들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야말로 노상에서 "노상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렇다고 "외상술"은 아니겠지만, 쿵쿵 거리는 음악에 맞추어 흔드는 몸까지 "한술" 더 뜬다. 태국인들의 "상술"에 서양인들의 "낮술"에 나는 조금은 "심술"이 났다.
저녁이 되자 평소에도 사람이 많은 이 거리에, 주말을 맞이하여 외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을 구경하려는 방콕인들이, "방콕"만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카오산으로 쏟아져 나온다. 방콕이라기보다는 파리의 어떤 도시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서양인 그들만의 잔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자기들이 관광하러 온 사람이니 마음껏 즐겨보자는 의도가 눈가에 이글거렸고, 방콕인들은 여기는 우리 땅인데 우리가 질 수 없다는 오기 어린 표정이었다. 그야말로 카오산은 공중부양된 "불타는 전쟁터"다.
떠돌이 장사꾼이 하늘에 야광 장난감을 쏘아대는가 하면, 디스코장에서나 있을 법한 빙빙 돌아가는 불빛을 파는 전등 장사꾼이 뒤를 잇는다. 거리 곳곳에 진을 치고 있는 각종 국수집에서 단돈 천원에 저녁을 해결하려는 관광객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술집과 마사지집 그리고 여행사를 선전하는 호객꾼이 질러대는 괴성에 내 귀가 내 귀가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B-boy들이 손을 땅에 대고 돌기도 하고, 머리를 땅에 박고 빙글빙글 몸을 휘젓는다. 그 주위에 박수를 치며 호응하는 관중이 밀려드는 다른 관중에 밀린다. 앞으로 밀리고 밀려서 넘어져 코가 깨지지 않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리라. 불구경보다 더 한 것이 물구경, 물구경보다 더한 것이 사람 구경이다!
카오산 로우드는 태국 최대의 명소 왕궁에서 약 30분, 그리고 강가에서 약 20분 걸으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수완나폼 공항에서 택시를 타면 약 16,000원에 갈 수 있다. 버스는 스완나폼 공항 1층에서 AE2번을 타면 종점이 바로 카오산이다.
여기에서 오랫동안 묵어도 그 저렴함 때문에 떠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은 바로 이곳에서 태국 국내는 물론 캄보디아 라오스까지도 손쉽게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한 집 건너서 여행사가 있다고 보면 된다. 모든 게스트 하우스에서 여행업무를 맡는 데스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영어가 서툴다면 이 근처의 한국 여행사를 찾으면 된다. 특히 동대문, 디디엠, 폴 게스트하우스, 홍익인간에서는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기 때문에, 도착하는 첫날은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충분한 정보를 얻어 일정과 비용을 조정하면 멋들어진 여행이 될 것이다.
S형의 말에 의하면 야밤중에는 별 일이 다 일어난다고 한다. 토하고 비틀거리는 것은 다반사다. 어느날, S형이 밤 12시가 넘어서 밖에 한 번 나와봤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여자가 남자를 죽이겠다고 막대기를 가지고 뛰어 가는 것이 목격되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난장판일 것 같은 그 거리에 사방에서 경찰이 뛰어나오더라는 것이다. 파출소 앞을 지나가 보니, 한국의 술집 앞에 있는 파출소와 마찬가지로 경범죄로 끌려온 사람들이 무릎이 꿇린 채, 경찰로부터 혹독한 주의를 받는 것이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카오산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낮에는 강가에 가서 바람을 쏘이면서 배를 타고, 밤이면 바로 이 카오산에서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다. 길 위의 포장마차에서 1000원짜리 음식으로 아침,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맥주집으로, 선술집으로, 그리고 때로는 일식집에서 폼나게 먹으면서 곁에 있는 사람 아무에게나 이야기하고 싶다. 해가 뜨거나 달이 뜨거나, 시간과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이 거리에, 내가 언제 다시 발을 디디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2011년 4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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