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여행기 04
-라사 시내의 세 관광지- "드레풍사원, 노부링카, 세라사"
<보통 지도로 본 "라사">
<인공위성으로 본 "라사">
*같은 장소를 1)보통 지도와, 2)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지도다. 이 지도만 보아도 오늘 이야기하는 세 곳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여행기를 쓸 때마다 가능하면 지도를 싣는다. 왜냐하면 지도를 보는 그 자체가 신기할 뿐만 아니라, 지도가 없는 여행기를 읽으면 내 자신이 너무 답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드레풍사원에서 무엇을 보고 노브랑카 사원에서 어쩌구 저쩌구하고 세라사원에서 무엇을 했다"라고 글로만 쓴다면 내 머리 속에는 백지장처럼 아무 것도 그려지는 것이 없다. 지도를 보면 그래도 "아, 여기에서 이것을 보고, 여기에서 이것을 보았나 보다"하고 짐작이 간다. 결국 내가 지도를 싣는 것은 독자도 나처럼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 보니 독자를 모독하는 말 같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무슨 잔소리가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에이. "Shut up!"
A. 드레풍 사원: 저빵스(哲蛙寺: 철와사: "현명한 개구리 절"이란 뜻이다.) 티벳에 가면 일단 한 곳이 몇 개의 지명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헷갈리는 것이 바로 지명이다. 본래 티벳말로 되어 있었던 것이 중국말로 바뀌면서 복잡하게 되었다. 이것은 또한 영어로 표현하면 다른 방식이 되고, 또 한국 사람이 한자로 읽으면 또 다르게 되니 어떤 경우는 한 장소가 4-5개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드레풍 사원도 티벳 말로는 "드레풍" 사원이고, 중국말로는 "저빵스", 또 한자대로 읽으면 "철와사"가 된다. 내가 티벳에 가기 전에 "시가체"에 간다는 말을 듣고, 중국 지도에서 아무리 "시가체"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중국말로는 "르카처(日喀则:일객측)"였던 것이다. 하여튼 거두절미하고 티벳의 지명은 복잡하다.
드레풍 사원은 라싸에서 서쪽으로 약 7키로 떨어져 있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라사의 서쪽 끝으로 갔다가 다시 위쪽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Lonely Planet라는 안내 책자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 때는 7,000명의 승려가 살기도 했다." 7천명의 승려가 한 곳에 산다! 정말 대단하다. 여기 저빵스뿐만 아니라 우리가 방문한 대부분의 사찰은 그 규모가 너무 커서 몇 십분의 일도 구경하지 못하고 나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나 하나 구경하려다가는 며칠이 걸릴지 몇 달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티벳은 정치, 사회, 문화 모든 것이 신앙생활과 뭉쳐져 있어서 종교를 따로 떼어내기는 힘들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여행 초기에는 매일 방문하는 것이 사찰이요, 눈에 띄는 것이 스님이요, 공중에 떠 있는 것이 퀴퀴한 양초 냄새였다. 그리고 사찰에 대한 조예가 없는 내가 보기에는, 그절이 다 그절로 보였다. 나중에는 제발 사찰 구경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몇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도 했다.
드레풍 사원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길 옆에서 말린 쑥 같은 것을 팔면서, 불에 태워 축원하라고 한다. 그들의 권유대로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있지만, 티베트인들은 이것을 태워 기원을 한다. 외국인 중에도 그러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친다.
<이 아이들은 따라다니면서 "옴마니 밴미옴"이라고 외쳐댔다.>
조금 걷다보면 거지 떼가 길가에 앉아 있다. 일부는 따라 다니면서 적선을 하라고 졸라댄다. 웬만한 사람은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애기에게 젖을 물리면서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나,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이 손을 내밀 때는 사실 무시하기가 힘들다. 돈을 좀 준 뒤에는 괜히 주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주지 않고 지나갔다가 "그까짓것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불쌍한 사람을 모른 척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은 돈을 주어도 후회, 주지 않아도 불만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는 거지에게 돈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는 다는 것이다. 즉 100원만 주고 싶으면 1000원짜리를 주고 900원을 거슬러 받으면 된다. 주는 사람도 거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일은 부처님께 시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들은 법당을 돌아다니면서 몇 십원이나 몇 백원을 내고, 돈이 떨어지면 1000원짜리를 내고 거기에 있는 잔돈을 가져간다. 참 편리한 관행이다.
한국에서 음식점에 가서 팁을 주고 싶은 적이 있었다. 3000원이나 5000원을 주고 싶었는데, 만원짜리뿐이 없었다. 안 주자니 그렇고, 또 거슬러 달라자니 그렇고, 잠깐이지만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적이 있다. 그 경우 만원을 주면 집에 와서 속상하고, 안주고 나오려니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우리 나라도 이런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정착되기 힘들 제도 같다.
산 위에 있는 바위 여기저기에 화려한 부처님 상을 그려 놓은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건축물은 많고 많아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쪽으로 따라가보는 방법이 가장 현명한 듯 했다.
어디에서 쿵쿵 소리와 더불어 노래 소리가 나서 그 쪽으로 가보았다. 사람들이 등에 돌을 지고 건물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일반 관람객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좀 높은 곳에 가서 그 건물을 관찰해 보았다. 그들은 건물을 증축하고 있었는데, 바닥에 무엇인가를 덮어 놓고,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뜨거운 태양아래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 손에는 막대기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힘차게 앞으로 갔다 뒤로 가기도 하고, 앞 사람의 뒤를 따라 건물 바닥을 돌기도 했다. 개별적으로 말없이 행동하는 것보다는 집단으로 노래를 불러가며 하는 일이 훨씬 능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그들이 허락만 해 준다면, 나도 그들과 함께 땅을 밟아주고 노래도 배우고 또 "일당"도 받고 싶었다.
<공사장으로 돌을 지고 올라간다.>
몇 명의 꼬마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나보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졸랐다. 나는 저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위 사진)을 가리키며 그들과 같은 포즈를 취해보라고 말했다. 좀 쑥스러워 하더니, 그들은 어른들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꼬마들은 자신들이 찍힌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다시 찍으라고 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10장을 찍고서야 그들은 만족해 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들이 괜찮다고 생각한 사진이다.
<사찰 건물 사이가 마치 동네 골목과 같다.>
B. 노브링카 궁전(로우 뿌린카)罗布林卡 : 라포림카)
노부링카는 포타라궁에서 서쪽으로 약 3키로 떨어져 있다. 예전에 달라이 라마가 있었을 때, 그가 사용했던 여름 궁전이다. 포탈라 궁이 겨울 궁전인 것과 대비된다. 일년 중 추울 때 대부분을 포탈라 궁에서 보내고, 한참 더운 여름에만 바로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이제는 모든 것이 장사속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입장료도 비싸고 또 한 바퀴 도는데 코끼리 열차같은 것을 타게 되어 있어서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들어간다. 솔직히 말해서 한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별로 볼 것이 없는 곳이다. 모든 것에는 의미를 부여하고 보아야 값어치가 있듯이, 그냥 훑어보아서는 웬만한 사람 별장과 큰 차이가 없는 듯이 보였다. 우리가 옛날 왕이 앉았던 의자에 앉아서 잠시 그때의 기분에 젓듯이, 달라이라마의 손길이 스치고 발길이 닿았을 장소나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의미가 있었지 크게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C. 세라 사원: 써라쓰(色拉寺: 색랍사)
이 사원은 라사에서 북쪽으로 5키로 정도 떨어져 있는 사원으로 1419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총카파라는 사람의 제자인 샤캬예셰라는 사람이 설립했다고 전해지는데, 세라사라는 말은 "들장미"란 뜻이라고 한다. 이곳에 들장미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절이야 다른 절과 별 특이한 점이 없지만, 오후 3시 30분부터 전개되는 학생승려들의 공부가 바로 공개 장소에서 행해진다는 점이 독특하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젊은 스님들이, 자주색 도포를 입고 연극 연습을 하는 듯이 보인다. 이들의 이상한 동작은 공부라기 보다는 개그맨들이 서로를 웃기려고 기를 쓰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두 사람씩 쌍을 지어, 한 사람은 땅에 앉고 한 사람은 선다. 서 있는 사람이 한 발을 공중에 들었다가 앞으로 크게 내려 놓으면서 동시에 손바닥을 치고 큰 소리로 뭐라고 중얼중얼 댄다. 그러면 앉아 있는 사람이 뭐라고 중얼중얼 말 대꾸를 한다. 서 있는 사람이 앉아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면 앉아 있는 사람이 대답하는 것이라고 한다. 전에 배웠던 불교의 교리 등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 외울 것은 잘 암송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공부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나는 별 관심이 없다. 사춘기에 접어 들었거나 또는 막 넘어설 그들이 매일 카메라를 들이대는 수 많은 관중 속에서 어떻게 공부하고 반응하고 있는가에 나는 관심이 있다. 또한 승려라는 특이한 집단 생활을 하면서 절제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하는 그들의 내면 또는 심리 세계에, 나는 관심이 있었다.
<사진사들이 학습장(자갈 밭)에 들어가면 이를 말리는 경찰이 있다. 오른쪽 모자쓴 사람이 바로 그다.>
사진을 잘 보면, 이들은 수 많은 카메라 앞에서 이상한 제스쳐를 해가면서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유쾌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이 외향적인 사람이 있으면 내향적인 사람이 있고,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를 해야 잘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조용한 곳이라야만 생각이 정리되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이들이 누구더냐? 연극 배우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다. 한 마디 물었을 때, 답이 저렇게 줄줄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암기가 잘 되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다른 것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소위 말하는 "부적응 학생"이 있는지 나는 여러 번 훑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을 족집게처럼 집어낼 그럴 능력은 나에게 없는 듯 했다. 단지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숙여 땅을 쳐다보고, 주위의 관중을 힐끗힐끗 바라보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복잡한 심정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여자를 사귀고, 팝송을 부르고, 핸드폰으로 친구와 연락하고, 인터넷으로 세상의 모든 문물을 접한다는 것을 그들이 왜 모르랴. 그러면서 무슨 이유로 자기는 그들과는 너무나 다른 생활을 해야만 하는 자신을, 어떤 때는 위대하게도, 또 어떤 때는 비참하게도 아니, 인생을 잘못 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왜 들지 않겠는가? 저녁마다 "끓어오르는 춘정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 젊은이와 늙은이는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종족이 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늙으면 왜 저리 꼰대가 되냐고 노인에게 따져서는 안 된다. 노인은 본래 외계에서 온 이상한 족속이다. 또 노인은 생각한다. "내 젊었을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요즘 젊은 놈들은 다 괴상한 놈들이야." 이런 말은 공자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 인류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학습이 끝난 후, 선생님과 오늘 학습을 정리하고 있다.>
지금도 학교에 가면 "머리를 깎아라, 매니큐어 하지 말아라, 머리에 염색하지 말아라"라는 문제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모른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머리는 말할 것도 없고, 교복의 "호끄"(후크: 목부분의 고리를 연결하는 일)를 채우지 않았다고 기율반에 걸려 교문 뒤에서 얼마나 줴 터졌는지 모른다.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잘 생각하여 교육해야할 것이다.
(2011년 11월 24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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