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여행기 03
깐딴스(甘丹寺: 감단사)
티베트는 중국어로는 시짱(西藏: 서장)이다. 우리 나라 남한 면적의 약 12배인데, 이곳에서 제일 큰 도시가 라사다. 라사의 인구는 문헌마다 달라 알 수 없으나 약 40만정도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평택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이 지붕이라고 알려진 티베트의 평균 해발은 약 4500미터, 그 중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사는 라사는 해발 3600미터다. 백두산 보다도 800미터가 높다. 나는 티베트에 있으면서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을 갖곤 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가져간 인스턴트 커피가 기압이 낮아 뺑뺑하게 부풀어 올라와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산증의 증세는 다양해서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고, 머리가 아프고, 감기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기운이 없어서 누구한테 뒈지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 마디로 병든 닭같다.
지난번 사천성에 갔을 때, 고산증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던 나는, 이번에는 철저히 준비했다. 그래서 그런지 특별한 후유증 없이 티베트 여행을 끝낼 수 있었다. 주의 할 점은 다음과 같다.
새벽에 눈을 비비자마자 간단스라는 사찰을 향해 차에 몸을 실었다. 이 사찰은 라사에서 동쪽으로 약 40키로 떨어져 있다. 황모파가 세운 최초의 사찰이라고 한다. 라사 시내에서만 복닥거렸던 우리는 이제 티베트 야생의 모습을 보러 가는 것이다.
라사 시내 바로 옆에는 라사강이 있다. 물은 많지 않았으나 강폭은 대단히 넓었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새벽의 시커먼 강물에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반사되어 스산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버스는 한 시간 반 동안 라사강을 왼쪽으로 끼고 거슬러 올라갔다.
드디어 어느 순간, 차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굉음을 내면서 산길로 들어섰다. 지그재그 길을 몇 번을 꺾어 올라갔는지 알 수 없다. 해발 3500미터에서 4500미터로 올라가니 약 1000미터를 그렇게 올라가야 한다. 멀리 보이는 구름과 그 아래 산, 그리고 농촌 마을이 저 아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점점 박힌 구름이 온 산을 바둑 무늬로 만들어 놓았다.
한 참을 올라가니 산의 거의 정상에 수 많은 사찰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1417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지금이니까 자동차로 오르지만 그 당시에 그 많은 스님들이 먹고 입을 것을 지고 올랐을 것을 생각하니 인간의 능력이 새삼스럽게 놀라와 보였다. 하나의 사찰이 이렇게 넓은 계곡을 다 차지 하고 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흰색과 붉은 갈색으로 지어진 이 사찰 건물군(群)은 아름답기보다는 경외롭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선 사찰이 있는 산을 한바퀴 돌기로 했다. 맨 처음 강렬한 인상으로 나타난 것은 고개 정상에 매여진 수많은 깃발이다. 영국시인 워즈워드는 말했다.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뛴다." 왜 그런지 타르초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뛴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바람에 펄럭이는 원색의 타르초를 볼 때마다 나는 무한한 감동으로 휩싸이고 가슴이 시원했다가 다시 절여온다. 타르초를 통해 강렬한 태양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흥분에 눈물이 나기도 한다. 절대자에 대한 생각에서가 아니다. 과거에 대한 회한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 감사해서도 아니다. 알 수 없는 까닭으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추위에도 이곳을 지키고 있는 개가 신기할 따름이다.>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르황)이라는 말이 있다. 천자문의 맨 처음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라는 뜻이다. 나는 옛날부터 하늘은 파란데 왜 검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도 아무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지내왔었다. 물론 천자문을 지은 사람에게는 하늘이 검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티베트의 하늘은 "검푸른 속초 앞 바다, 바로 그 바다 색깔"이었다. 정녕, 아무리 보아도 검은 하늘이지, 파란 하늘은 아니었다.
나는 방금 찍은 사진의 카메라 정보를 보았다. F=22, 셔터스피드 1/300초가 나왔다.(카메라를 잘 모르는 사람은 날씨가 아주 맑아 아무렇게나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온다는 뜻이라고 알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F=22로 한 번도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다. 전문 사진사가 무슨 소용이며, 사진을 잘 찍기 위한 온갖 책자가 다 소용없는 상황이다. 그냥 아무 데나 대고 누르면 다 작품 사진이 나온다.
한편, 나는 지금이라도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용(中庸)에서 "많이 물어라. 물어야 현명해진다."라고 했다. 나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천자문에서 왜 하늘이 검다하고, 땅이 누렇다라고 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어 있다.
"하늘의 빛을 현색(玄色)으로 표현한 것은 하늘이 끝이 없고 아득하며 가물가물하여 보이지 않음이 캄캄하고 어두운 밤중과 같으므로 검다는 의미로 쓰였다. 땅의 빛을 누런 황색(黃色)으로 표현한 것은 땅의 흙색이 누런 색이기도 하지만, 땅이 자연만물을 화육결실(化育結實)하는
모체로서 오곡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는 가을철에 곡식이 누렇게 익어 있는 모습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주역에서는 하늘은 높고 멀다는 고원(高遠)함을, 땅은 넓고 두텁게 감싸주는 광후(廣厚)함을 나타내고 있다."
호젓한 산 중턱을 걷는다. 저 멀리 강 너머로 겹겹이 산이 펼쳐져 있고, 그 뒤에는 아련히 설산이 자리잡고 있다. 이 절이 세워진지 600년,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을까? 이 길을 걸으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사람은 과거를 생각하며 많은 반성을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미래의 웅장한 꿈을 꾸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하나하나 비워 나갔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원대한 사업구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사업구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웬지 원대한 꿈과는 달리 그가 조금은 초라해 보일 것이다.
시커먼 강물이 드넓은 강바닥에 모였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지금 내가 이 길을 걸어가듯, 저 강도 바람소리 들어가며 저 먼 설산을 발원지로 하여 여기까지 수 만년 동안 흐름을 이어 왔을 것이다. 길어봐야 100년인 우리의 삶을 저 강은 뭐라 말할까? 작은 슬픔에 눈물 흘리고, 작은 기쁨에 또 눈물 흘리는 우리 인간을, 저 강은 말 없이 지켜보며 흘러갈 뿐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천장(天葬)터가 나온다. 코라 바로 아래 쪽에 위치해 있다. 천장은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독수리에게 그 살을 먹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조장(鳥葬)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이곳에서 가장 성스럽고 거룩한 장례 의식이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육체에서 빠져 나간다. 영혼이 없는 육체는 돌이나 나무 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이 생각이 옳다면, 사람의 시체에 절을 하고 땅에 묻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은 나무를 불쌍히 여겨 땅에 묻어 주거나, 길에 있는 돌멩이이게 "아이구 딱해서 어쩌나?" 하면서 절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각처럼 기왕에 썩을 살, 살아있는 새에게 배불리 먹이는 것이 최상의 방법일지 모른다. 우리처럼 시신을 고이 묻는다거나,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여 부관참시를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참으로 어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생각의 차이에서 온 것이라면, 생각이란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며, 참으로 무섭고도 무서운 것이다. 유교 집안에서 잘 자라던 아이가 어느 날 제사고 뭐고 다 때려치고 예수를 믿는 일, 좌익 우익으로 나누어 형제고 뭐고 자기 갈 길로 가는 일, 어제 FTA 국회 통과시킨 것을 한쪽은 "구국의 길"이라 말하고, 한 쪽은 "매국"이라고 말한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에게 수류탄을 터뜨려 응징한 것은 애국"이라고 수류탄을 터뜨린 의원은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생각의 차이에서 온다. 생각이란 정말 호랑이보다 무섭고 핵폭탄보다 강렬하다. 결국 (인식, 사상 등을 두루 포함하여) 생각은 알파요 오메가다. 우주의 모든 것이다.
시체가 바로 이 조장터에 운반되어 온다. 그러면 한 승려가 "티벳 사자의 서"라는 경을 읽어 준다. 이 책은 사망 후 49일 동안 죽은 사람이 어떻게 영적인 여행을 하는지에 대한 안내서다.
승려의 의식이 끝나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우선 작업을 하거나 독수리가 "고기"를 먹는 동안, 시체가 돌아다니지 않도록 목을 끈으로 묶어 매단다. 그런 다음 시신의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 새가 먹기 좋게 살을 발라내어 썰어준다.
그러면 피 비린 내가 천지를 진동하고 피 냄새를 맡은 독수리가 사방에서 날아와 눈독을 드린다.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배고픈 독수리는 살점을 먹으러 달려든다. 그러나 좀더 "진행"이 될 때까지 독수리가 달려들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한다.
정육점 주인이 죽은 돼지에게 연민을 갖지 않듯, 장례사는 이미 죽은 사람의 시체에 일말의 불쌍함이 없다. 그들은 인정사정 없이 시체에서 살점을 베고, 찢고, 떼어낸다.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나면, 독수리에게 살점과 내장을 먹도록 허락한다. 독수리는 그야말로 십년 굶은 이리처럼, 아니 글자 그대로 "수천년 굶은 독수리처럼," 달려들어, 피를 튀기며 경쟁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내장을 먹어치운다. 살점을 먹어 치운다. 이제 뼈에 붙어 있는 한 점의 살에 달라붙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이제 거의 살 점이 없어졌을 때, 장례사가 다시 도끼와 낫을 가지고 달려든다. 그들은 죽은 자의 뼈를 칼로 자르고 도끼로 빻는다. 그런 다음 곡식 가루를 섞어 독수리에게 최후의 "식사"를 던져 준다.
이렇게 되면 시신은 완전히 이 세상에서 없어지게 된다. 그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와서 "뼈도 못 추리고" 이 세상으로부터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無)에서 왔다가 완전한 무(無)가 된다.
<뼈 하나가 남아 있다. 모양으로 보아 죽은지 오래 된 것 같지 않은 뼈다.>
<스님들의 밥을 하는 큰 통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다. 죽은 모든 것들의 영혼에 명복을 빈다. 그리고 앞으로 언젠가는 죽을 우리들, 너무 아득바득 살지 말자. 결국 우리는 모두 이렇게 무(無)로 되는 것을.... *이 글의 천장(天葬)에 관한 부분은 가이드 띵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필자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약간 실감있게" 묘사한 것이다. 역겨운 사람에게는 미안하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2011년 11월 23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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