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China

사천성 12 "낙산 대불과 아미산"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2. 23:23

 

 

 

중국 사천성 여행기 12

 

 

-1박 2일간의 낙산 대불 그리고 아미산-

 

 

<7월 22-23일 일정>

 

 

기왕에 빼 들은 칼, 호박이라도 찔러보자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마음 먹은 대로 구채구와 황룡을 갔다 왔으니, 남쪽으로 내려가 낙산 대불과 아미산도 가보기로했다.

 

 

7월 22일 아침 일찍, 숙소 근처의 북부 버스 터미널로 갔다. 왜냐하면 지난 번에 시험 삼아 북부 버스 터미널에 가 보았을 때, 벽에 있는 큰 지도에 아미산이 그려져 있어서 분명 아미산까지 가는 버스가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서 매표원에게 물어보니, 신난먼(新南门:신남문) 버스 터미널로 가야 한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신난먼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버스는 시간표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버스에 가득 차면 출발하고, 빈자리가 있으면 사람이 다 찰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 그 날이 금요일, 여행객이 많아서 인지 약 10분 기다린 후,  버스는 8시 50분에 낙산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고속버스이어서 그런지 쾌적하였다. 장거리 버스에서 전에 보았던, 통로에 놓여있는 커다란 쓰레기 통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 안의 TV에서는 "기문둔갑"이라는 조금은 황당한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거기에 시선을 집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했다.

 

 

<낙산 대불 위치도>

 

 

낙산이라는 도시의 터미널에 도착하니 바로 앞에서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낙산대불이 있는 풍경구로 가는 시내버스로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우리도 사람들이 뛰어가는 방향으로 정신 없이 뛰어 갔다. 이미 버스는 만원이었는데, 사람을 짐짝처럼 계속 태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차장은 우리가 한국 사람인지 아닌지, 왜 그리 집요하게 묻는지 모르겠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던 중 어디서 한국 말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칭다오에서 공부하는 딸과 함께 여행 온 부부가 있었다. 딸과 아버지는 중국말을 잘 했고, 어머니는 불교 신자인지 스님인지 모르지만 스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시내 버스는 바로 낙산대불 매표소 앞에 정차했다. 낙산대불 입장료는 두 사람에 54400원(320위엔)이었다. 같이 간 한국 학생이 그곳에서 아미산 가는 방법 등 많은 정보를 주었다.

 

 

그나 저나 날이 얼마나 무더운지, 몇 발자국 옮기기가 무섭게 땀이 나기 시작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 내가,  좋은 계절 놔 두고 이렇게 무더운 여름에 이런 곳을 다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왕에 왔으니 어이 하랴. 다음에는 좋은 계절에 가겠다고 맹서하지만, 막상 다음에도 또 이렇게 되는 것을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가?  

 

 

<처음에 보이는 조각상. 옆에 올라가는 사람이 우리와 함께 간 한국인 아줌마>

 

 

처음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벽에 조각된 고색창연한 불상이었다. 비 맞고 바람 맞아 불상의 몸통에서 이끼가 끼고 풀이 자란다. 인자한 얼굴의 불상을 보니 이 작가는 당대의 일류 조각사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산처럼 크다는 대불(大佛)을 보러 왔건만 그보다는 이 조각의 우아함과 정교함 그리고 섬세함에 빠져 더 이상 발을 떼어 놓기가 싫었다.

 

 

<벽의 조각상>

 

 

그 옆으로 이어지는 수 많은 벽에 새겨진 조각이 있다. 하나하나의 조각이 생동감이 넘치고 사실적이어서 금방이라도 벽에서 춤을 추며 튀어나올 것 같다. 그저 기가 막히다라는 말 이외에 다른 할 말이 없다. 한 여인의 나체 조각과 그 머리 위에 있는 꽃, 그리고 이끼를 걷고 살며시 나온 엄지 발가락, 이 모든 것이 놀라움을 지나 두렵기까지 하다.   

 

 

어디 그 뿐이랴. 이번에는 태양의 빛이 아니라, 붉은 등불 아래에도 불상이 그 넓은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조명을 받고 있는 불상은 자연광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가슴에 다가왔고, 넋 놓고 바라보던 나는 차마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벌리고 한참이나 서 있었다.  

 

 

 

 

 

 

 

대불(大佛)을 보기 위해 조그만 산을 오른다. 어린이와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90세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구경 대열에 서 있다. 등에 땀은 흐르지, 아기는 울지, 신발은 뾰죽 구두이지, 바람 한 점 없지, 살인적인 날씨를 무시하고 걸어 올라가는 한 아줌마에게서 차라리 처절한 삶의 일면을 보게 된다.

 

 

<해통스님 조각상>

 

 

정상에 오르면 우선 눈에 띠는 것은 해통스님의 조각상이다. 自目可剜佛财难得(자목가완불재난득: 자신의 눈은 오려낼 수 있어도, 부처님의 재산은 가져갈 수 없다)는 말이 눈에 띈다. "당시 고승이던 해통은 러산에 대불을 짓기 위해 전국으로 시주를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한 탐욕스런 관리가 해통이 시주받은 재물을 탐내게 된다. 자신의 눈은 줄 수 있어도 부처님의 재산은 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눈을 관리에게 주었다. 크게 놀란 관리는 참회하고 낙산 대불 공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안내 책자에 있는 말이다. 해통 대사의 부릅뜬 눈은 지금도 그 관리를 향해 말없는 웅변을 토해 내는 듯 하다.  

 

 

<낙산 대불>

 

 

드디어 그렇게도 보고자 했던 낙산 대불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범벅이 되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사람들을 뚫고 사진을 찍는 것조차 힘든 일이다. 713년에 시작하여 803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90년에 걸쳐서 만든 불상이다. 이 불상은 높이가 71미터, 머리 길이가 14.7미터, 어깨 넓이 24미터, 발등의 너비가 8.5미터로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불상이라고 한다. 부처님 발 등에 사람이 100명은 서 있을 수 있다고 하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큰 불상을 만드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큰 돌을 깎아서 만들든지, 아니면 큰 절벽에 가서 조각을 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런데 이 불상을 만든 사람들은 배를 타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다가, "여기에서 여기까지 돌을 깎아내어 불상을 만들자"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중국의 자금성을 가보아도 느끼는 바이지만, 중국인들이 한번 크게 만들자고 결심을 하면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큰 규모로 만드는 것 같다. 뭐 이것은 불상이라기 보다는 그냥 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어마어마 하게 큰 이 낙산 대불의 예술적 가치는 산 아래에서 본, 벽에 새겨진 조각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졌다. 세계 최대의 불상이라는 말에는 동감하지만, 관리를 하지 않아서 인지, 검은 얼룩을 뒤집어 쓰고 있는 부처님의 얼굴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부처님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 즉 인자하고 성스러운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얼굴은 무표정했고, 쭉 찢어진 눈은 심술이 나 있는 놀부의 인상을 닮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기야 산을 깎아서 이런 대불을 만들었으니, 그 고통과 노력이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하면 나도 입 다물고 조용히 있는 편이 낫겠지만, 입이라고 달려 있으니 한 마디 해봤을 뿐이다. 하지만 기왕에 만드는 것, 100년이 아니라 200년이 걸렸어도 조금은 더 정교하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부처님의 오른쪽 언덕에서 시작하여 아래 쪽으로 내려가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는 코스가 있다. 그러나 그 코스를 따라 걸으면서 구경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위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기다리는 대열에서 빠져 나왔다.  

 

 

 

 

 

불상 주위를 도는 대신,  산 위의 경치를 살폈다. 쭉쭉 뻗은 대나무 숲이 도처에 보인다. 무더위를 피해 여기저기 앉아 있는 관광객이 "날 죽여 주쇼"라고 말하는 듯 축 늘어져서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듯이 보였다.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들은 단체 관광을 온 사람들이었다. 관광 가이드는 관광객을 가만히 쉬게 놔 두지 않고, 무슨 말인가를 계속해서 그들을 괴롭히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자기의 임무가 끊임없이 말하여 관광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지만,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관광객들은 딴 짓을 하거나, 졸거나 ,잡담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가이드의 끊임없는 말에 눈살을 찌뿌리는 사람까지 있어서, 혼자 떠드는 가이드의 모습이 그저 측은하고 가엽기만 하다.

 

 

<가이드가 관광객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다.>

 

 

아래로 내려와 출구 가까이 오니 사방에서 아미산에 가지 않느냐고 여러 명의 유객꾼이 내 팔을 잡고 줄다리기를 한다. 이런 때는 그들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자기들도 자기들끼리 경쟁을 하는지라 크게 바가지 쓸 일도 별로 없다. 6명이 합승을 하여 일인당 2500원(15위엔)을 지불하고 아미산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타고 가는 자동차의 운전수의 아내로 보이는 아줌마가, 자기가 추천하는 숙소에 가자고 졸라댔다. 호남성에서 왔다는 중국 여행객과 함께 그녀가 추천하는 곳으로 갔다. 3만원 내라고 하는 여관 주인에게 같이 간 중국인 관광객이 앙을 앙을 대들며 싸우듯 깎아서 27000원까지 내려갔다. 그는 조금 더 깎으려다가 결국 여관 주인게 쫓겨났다. 좀더 컴컴한 방도 있었는데, 24000원이었다. 27000원 짜리는 넓고 훤하고 컴퓨터까지 갖추어져 있어서 인터넷도 할 수 있는 방이다. 금액은 겨우 3000원 정도 차이지만, 방의 질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우리는 좋은 방을 택했다.  

 

 

한참 후에 아까 방 값을 깎다가 박차고 나갔던 중국인이 다시 찾아 왔다. 다른 곳에 가 보아도 이런 조건의 집이 없다고 했다. 결국 그들도 우리와 같이 27000원 짜리 방으로 들어갔다.

 

 

<아미산 입구, 수갑천하라는 폭포>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인공폭포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다. “秀甲天下”라고 크게 써 있다. 본래 중국어에서 甲은 "최고"라는 뜻이다. 따라서 "하늘 아래 최고로 빼어나다"는 뜻이다. "도대체 얼마나 빼어나면 이런 말을 쓸까?"라고 생각하면서 아미산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키웠다.  

 

 

거기에서 조금 올라가면 보국사라는 절이 있다.  바오꿔쓰(报国寺:보국사)라고 써 있는 절이다. 청나라의 강희제 때 왕으로부터 편액을 받아 보국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사찰 건물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향을 태우며 절을 하는 신자들이 도처에 보인다.

 

  

좀 특이한 불상이 눈에 띄었다. 배를 들어내놓고, 얼굴에 해말간 웃음을 띄고 있는 불상이다. 성인이건 군자건 모든 인간은 그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희노애락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범주를 벗어 나려면 아예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부처님은 항상 근엄하시다라는 생각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불상이다.

 

 

<보국사의 불상>

 


 

 

우리가 묵는 호텔 바로 근처에 식당가가 있었다. 초저녁인데도 북적대는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여행을 다니면 무슨 팔자가 그리 좋으냐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1)오늘은 어디 가서 무슨 구경 또는 체험을 할까," "2)오늘은 어디 가서 어떤 음식을 먹어 볼까?"라는 두 가지만을 생각하는 때문일 것이다.  

 

 

20일이 넘는 여행 기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한국에 돌아갈 날이 하루 이틀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맛이야 어떻든 지금까지 먹어보지 않은 음식과, 마셔 보지 않은 술을 주문했다. 그 날 밤 늦게까지 이 식당 저 식당을 거지 잔치 집 돌아다니듯 배회했을 것이다. 사실은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잘 모른다.  

 

 

 

 

<무슨 이유인지 대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다시 호텔로 들어와 주인과 이야기를 하던 중, 아미산 여행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까지 여행해 본 중에서 가장 감이 잡히지 않는 여행이 바로 이 아미산 여행이다.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며 또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여행 책자도 불분명하였다. 적어도 이틀은 구경을 해야만이 아미산을 볼 수 있다는 말만 공통적으로 적혀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주인의 추천을 받아들여 일인당 하루 85,000원(500위엔)을 내고 중국인과 함께 하는 1일 패키지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경험은 1)감이 잡히지 않는 여행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중국인과 교제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도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여기 중국의 아미산에 와서 정말 멋있는 피날레를 장식한다는 생각을 하니 취한 머리 속이 선명하게 맑아졌다.  

 


 

<아미산 약도>

 

 

7월 23일 새벽 3시 반에 누가 문을 노크했다. 지금 내려가서 식사를 하고 4시에 아미산 관광을 떠난다는 것이다. 눈을 비비고 떠나려 하는데, 또 노크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어떤 여자가 와서 나는 자기의 손님이니 자기를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이미 한 남자로부터 목에 거는 명찰을 받았다고 하니 그녀는 그냥 가 버렸다. 뭐가 뭔지 아직도 깨지 않은 어제밤 술이 다시 취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그 시각에 호텔 식당에서 식사가 제공되었다. 빵 하나와 죽이었다. 계약서를 보니 아침 식사는 850원(5위엔)짜리였다. 다른 사람들도 식사하면서 졸고, 또 하품하면서, 멀건 죽을 입에 꾸역꾸역 쑤셔 넣고 있었다.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날 하루 종일 비가 왔다.>

 

 

밖으로 나온 시각이 새벽 4시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매표소로 가야했다. 그러나 가이드는 없고, 비바람은 불고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불안하기만 했다. 한참 뒤에 나타난 가이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 버스를 탈 수 없으니, 각자가 택시를 타고 매표소 앞으로 오라고 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는, 우리와 함께 가기로 되어 있는 5명의 중국 젊은이와 무조건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들 꽁무니만 따라 다녔다. 새벽부터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처음부터 뭔가 나사가 풀린 듯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날이 밝아올 무렵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운전 기사의 말이 나왔다. 30분간을 기다리니 다른 빈 차가 올라왔다. 모두들 새차로 바꿔 타자 버스는 다시  위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버스는 뢰동평이라는 곳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비는 그쳤지만 이미 주변은 안개가 자욱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가 와서 우리는 우산을 샀다. 어떤 사람들은 추위를 걱정해 두꺼운 파카를 빌렸다.

 

 

거기에서 다시 걸어서 한 시간 정도 올라가야만이 정상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앞 사람의 뒷발축만 보고 걸었다.  어떤 사람은 올라가지 못하고, 들것을 타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명이 달려들어 마치 지진 현장에서 사람을 구조해 데리고 나오는 것 같다.

 

 

 

  

어차피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겠지만, "금정"이라는 정상에 가려고 사람들은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 각지에서 온 중국인들이었다. 30분 이상을 기다려 드디어 케이블카를 탔다. 이 케이블카는 한 대에 101명을 태울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케이블카라고 계속 선전이 나온다. 중국에서는 세계 최대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 했다. 무엇이든 세계 최대가 되어야 체면이 서는 듯 했다.

 

 

<우리의 가이드>

 

 

정상에 올라가니 아침 9시 30분이었다. 가이드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명을 하면서 나는 알아듣지 못하니 저쪽에서 사진이나 찍으라고 했다. 설명이 끝난 가이드가 다가 오더니 팁을 달라고 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일인당 3400원(20위엔)이라고 말했다. 별로 구경한 것도 없어서, 주지 않으려고 했으나 얼마나 찡찡 대면서 따라다니는지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금정>

 

  

그때 갑자기 생각난 노래가 현미의 "밤안개"라는 노래다.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먼 이국땅에 와서 구경은 안 하고 이미 구닥다리가 된 현미의 노래가 생각날까? 나는 참 한심한 놈이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아~아~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현미는 안개 속에서 애타게 임을 찾았지만, 지금 나는 찾을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희미한 건물의 언저리만 보일 뿐, 그저 시각 장애인 체험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럴 바에는 돈을 얼마 지불했던지 간에 호텔에 들어가 잠이나 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정>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10시 반에 하산을 해야 했다. 누구 하나 불평없이 패잔병이 고국으로 돌아가듯 땅만 바라보고 걸어 내려왔다. 갑자기 달려든다는 원숭이에 대항하려고 구입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쓸모없는 대나무 지팡이를, 사람들은 아무 데나 기분 내키는대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귀 위해 버스를 타고 산 중턱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왔다. 이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에 우리 팀 15 자리만 남아 있었다. 두 팀으로 나누어 점심 식사를 했다. 음식의 종류는 많았지만, 대단한 음식은 아니었다. 계약서를 보니 일인당 3400원(20위엔) 짜리 음식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베이징에서 왔네, 나는 광조우에서 왔네" 하면서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 받았다. 한국에서 왔다는 내 말을 듣고, 그들은 질문 공세를 폈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그들 질문의 반 정도였다.

 

 

식사를 끝내고 나니 비는 장대비로 바뀌어 그야말로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부었다. 아스팔트 위로 흐르는 물이 순식간에 뚝이 터진 봇물처럼 아래로 흘러 내렸다. 가이드는 비가 이렇게 오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모두들 그냥 내려가자고 했다.

 

 

본래 계획은 오후에 계속 구경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계속 버스를 갈아 타기도 하고 또 케이블카도 두 번 더 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장대비 속에서 다른 뾰죽한 방법이 없었다.

 

 

버스를 타지 않은 것,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지 않은 것에 대한 비용을 누가 가져가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날 우리 관광객은 엄청난 손해를 보았고, 회사측 아니 내 생각에 가이드는 엄청난 이익을 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버스를 타거나 케이블카를 탈 때 가이드의 가방에서 돈이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 회사에서 돈을 받아 가이드가 표도 사고 식사도 제공하고 남는 돈은 자기가 다 가져가는 것 같았다.  

 

 

어떻든 반나절에 9만원을 썼으니, 내 평생 가장 비싼 반나절 여행을 한 셈이다. 다시는 내가 중국 사람들이 주선하는 패키지 여행은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구경할 수 없는 것을, 중국 가이드의 탓으로 돌렸다. 본래 사람이 그렇다. 마누라가 예쁘면 장모도 예쁘고, 마누라가 보기 싫으면 장모 또한 보기 싫은 법이다.

 

 

 

아미산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쨍 나기 시작했다. 귀신에 홀린 듯 했다.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언젠가 금강산을 구경 간 적이 있었다. 그날도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그냥 산 아래로 내려와야 했었다. 누가 금강산 갔다왔냐고 물으면 갔다왔다고 말한다.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다. 누가 아미산에 갔다왔느냐고 물으면 갔다왔다고 대답할 것이다. 어떠냐고 물으면 그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을 것이다.

 

 


 

성도의 심스코지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한 것은 어두움이 몰려온 이후다. 프론트에 물어보니 이미 방이 가득 차서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맡겨 두었던 배낭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에 모텔이 보였다. 모텔의 안내양은 한국인을 만나서 반갑다고 말하면서 한국말을 한 번 해보라고했다. 아무 말이나 해 보았더니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나도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녀도 웃었다. 사천 사람들의 말은 알아듣기 힘든데, 이 아가씨는 보통화를 얼마나 잘 하는지 나도 덩달아 중국어가 술술 입에서 나왔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일이다. 하루에 23800원(140위엔)에 이틀 예약을 했다.

 

 

이제 하루를 더 보내고 나면, 나는 싫든 좋든, 정들었던 사천성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갑자기 아쉬움과 홀가분함 그리고 섭섭함이 사정 없이 몰려왔다. 창밖을 본다. 자동차의 불빛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때 컴컴한 밤 중에 한 줄기 불빛과도 같은 한 마디 말이 들려온다. "우리 오늘은 기분 전환으로 백주나 한 번 마셔볼까?" 고생을 많이 하더니 아내의 머리가 이상해진 것인가?  "백주라? 좋지!" 좋은지 안 좋은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아내를 따라 가 보기로 했다. 아내의 그림자가 인도를 따라 검고 길게 저 멀리 사라지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여행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인지, 아니면 "술을 마시려고" 여행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여행이란 계획없이 살아보려고 돌아다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이 계획을 세우고, 너무 많이 돌아다니려고 하고,  너무 많이 보려고 해서, 진정한 여행의 참맛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미산에 갔다 왔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무슨 후회를 한다는 것이냐? 아해야, 걱정 놓아라. 오늘 밤은 백주 백 잔 마시리라.


 

(2011년 8월 2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