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서울 강변역 근처에서 촬영>
방인근 소설에 대한 추억
어느 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미꾸라지를 잡아 어죽을 끓여먹고 어슬렁거리다가 몇 백 미터 떨어져 있는 쌍다리(원두막)로 가자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금산은 인삼 농사를 짓는데, 밤에도 계속 인삼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쌍다리에서 모기에 물려가며 인삼 도둑을 감시 한다. 그런데 그 쌍다리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방 한 곳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방인근 소설이었다.
지금은 야한 글이 인터넷에 흘러넘치고 그 묘사의 정도도 상상을 초월하지만, 그 당시의 방인근 소설에 나오는 그런 정도의 묘사만 가지고도 나는 신비로 가득 찬 딴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는 어느 여고생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여고생이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을 맞아 시골에 온다. 산길을 걸어오는데 마침 비가 내려서 온몸이 젖어 몸의 윤곽이 보인다. 마침 원두막에 있던 고교생이 이를 바라보다가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 여고생에게 뛰어가 다짜고짜로 일을 저지른다.
나는 그 소설을 몇 번 읽고, 집에 갔다가 저녁 먹고 와서 또 읽고, 집에 갔다가 한 밤중에 와서 또 읽었다. 그러다가 실제로 비가 올 날을 기다려 그곳에 가보고 혹시 어떤 여자가 비를 맞고 지나가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꿈 속에서도 생각이 났고, 그러다가 비몽사몽간에 또 다시 쌍다리에 가서 그 소설을 읽고, 밖의 인기척을 조심스럽게 기다리기도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그때의 몇 십분의 일도 안 되는 남성 호르몬이 내 핏속을 흐르고 있을게다. 남성 호르몬이 적게 분비된다는 것은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다. 생각도, 행동도, 심지어는 나의 볼잘것 없는 철학까지도 바꾸어 놓는다. 어떻게 알았는지 요즈음 비아그라나 씨알리스를 싸게 팔겠다는 이메일이 하루에도 몇 통씩 나에게 배달된다. 사라져가는 열정과 인위적 약물 사이에 놓인 줄 위에서 춤을 추는 곡예사의 모습이 나를 포함한 내 또래의 남성들이 오늘날 살아가는 방식이 아닌지 모르겠다.
방인근 소설을 다시 읽고 싶다. 40년이 지난 지금, 흘러간 40년을 뒤 돌아보며, 세월에 순응하면서 산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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