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블루모스크>
터키 여행기 6
"이스탄불 1"
2013년 10월 15일 오후 4:15분, 이스탄불 행 페가수스사 항공기가 이스탄불을 향해 이륙했다. 이륙했구나 싶은데 벌써 비행기 창문에는 바다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흑해를 통과하는 듯 했다. 잠시 후 하역작업을 할 때 쓰는 장비가 눈에 띄고 있으니 이미 이스탄불 근처에 온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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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탔다. 연휴 공휴일이어서 이스탄불 구시가지로 가는 길은 말할 수 없이 막혔다. 졸며 깨며 가는데, 밖에 "우스크다라"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어, 이것, 아주 오래 전에 불렀던 노래인데. 나는 그후 잠시 동안 나도 모르게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우스크다라는 보스포로스 해협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말한다. 아시아의 끝이며 또한 유럽의 끝이니, 이상하고 신기한 곳임은 틀림없으리라.
Usk Dara' 머나 먼 곳 찾아 와보니 의심없이 듣던 대로 이상한 나라 이것 저것, 보고 듣고, 정말 놀랬어 이래서야 남자꼴이 말이 아니지
우스크 다라' 모든 여자 녹여 줄려고 있는 멋을 다 내고서 으시대기에 어찌되나 뒤를 따라, 가 보았더니 말도 마오! 녹은 것이, 글쎄, 남자야
Usk Dara' 좋은 나라! 멋있는 나라 여자라고 깔보다간 큰 코 다치지 무릎 꿇고 두 손으로 빌기 싫거든 정신 바싹 차리고서, 어서 빌어요
*세상에 무슨 놈의 가사가 이런게 다 있나?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
Episode 하나
이스탄불 도착 3일 째 되던 날, 우스크다라가 어느 지역인지 몰라서, 호텔 종업원에게 질문을 했었다.
나: 웨어 이스 우스크다라?(Where is Uskdar?) 종업원: (한참 생각을 하더니) 아시안 지데 오프 이스탄불. 나: 웟 이스 지데?(What is 지데?) 종업원: 웨이트(Wait)
종업원이 한 참을 생각하더니, 사전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보여준 영어 문장은 Uskdar is the Asian side of Istanbul이었다. 즉, side를 '지데'로 읽은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뭐, 이건 터키판 "안상태"아니야? Made in Korea를 "마데 인 코리아"로 읽은 코메디언이 바로 안상태다. 역시 안 상태---역시 상태가 안 좋구먼.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한참 생각해보니 지데는 地帶와 발음이 비슷해서 어떻든 그가 한 말이 의미는 통하는 것이었다. "우스크다라는 이스탄불의 아시아쪽 지대다." 야 이놈이 영어, 한국어, 터키어에다가 한자까지 마스터하여 국제적으로 노는 놈이구나, 라는 생각에 도달하자, 나도 머쓱해서 할 말이 없게 되어 버렸다.
목적지인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려고 하는데, 호텔 주인은 우리가 예약한 방을 이미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려서, 방 2개가 부족했다. 젊은 주인은 지하를 사용하던지, 옆집 다른 호텔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아마 다른 손님이 먼저 찾아오니 우리 예약은 무시하고, 우선 그 사람에게 방을 주어 버린 것 같았다. 결국 해결은 안 되고 시간은 지나고, 이미 방 배당이 된 사람만 근처 식당으로 식사하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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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는 노천에 테이블을 갖다 놓고 손님을 받는 식당이었으며, 수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메뉴를 보니 해산물이 많은데 값도 비싸고 잘 알지도 못해서 간단히 몇 가지만 시켜 먹었다. 마침 터키와 네델란드 간의 월드컵 예선전이 있었는데, 터키가 지는 바람에 사람들의 기분이 울적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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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일찍 근처에 있는 항구로 나갔다. 버려진 물고기를 먹으려고 하늘에서 갈매기 떼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일부는 그 옆에 앉아서 사람이 멀어져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티벳의 독수리들이 사람고기를 먹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기회를 엿보는 것 같다. 잠시 후 버려진 더미에서 쓸 만한 물고기를 이삭줍던 사람이 멀어져가자 수많은 갈매기가 떼를 지어 달라들어 땅 바닥은 순식간에 갈매기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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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저 잘난 맛에 산다해도, 저런 자세로 잠이 올까?>
<정확하게 어디까지가 이스탄불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적으로 위에 표시된 부분을 이스탄불이라 부른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고 다른 호텔로 옮겼다. 역사적 유물이 모여있는 술탄아흐메드 근처로 간 것이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듯이, 전의 호텔 주인이 약속을 어겨서, 우리는 위치나 시설이 훨씬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갈 수 있으니, 참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2008년에 이스탄불에 왔을 때, 익숙했던 지리 역사 공부를 다시 해야만했다. 더군다나 그때는 패키지 여행이므로 그냥 따라만 다녔지만, 지금은 본인이 알아서 다녀야 하니 지리를 정확하게 모르고서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 동쪽 지역이 우스크다라이다. 우스크다라부터 아시아에 속한다. 보스포로서 해협 서쪽은 유럽이다. 그런데 유럽쪽에 골든혼(golden horn: 황금의 뿔)이라는 긴 소뿔 모양의 만(灣)이 있는데, 이 만의 동쪽을 신시가지, 저쪽을 구시가지라고 한다.
구시가지 일부는 오스만 제국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블루 모스크, 소피아 성당, 톱카프 궁전등이 모여있는 구시가지를 술탄아흐멧(sultanahmet)지구라고 부른다.
이곳은 세계를 지배한 3대강국인 로마, 비잔틴, 오스만제국의 수도였었다. 이스탄불은, 동로마시대에는 콘스탄티노플이었고, 그후 비잔티움었으며, 그 후 오스만 제국이 빼앗아 이스탄불로 이름지었다.
처음 톱카프 궁전에 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넓은 정원에 사람들이 밀물처럼 들이닥치기 시작했고, 이미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전에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었다. 겨울에 구경을 했었는데, 뭔가가 엄청나게 많기는 많았지만 큰 감명을 받지는 못했었다. 우리 일행중 몇 사람은 구경한다고 매표 줄에 섰고, 나머지는 모두 바닷가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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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해협 바닷가에 나오니 멀리 거대한 배와 작은 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하늘에는 갈매기가 날고 있었고, 바닷가를 따라서 사람들이 운동을 하기도 하고 무엇을 사 먹기도 하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움막 비슷한 것을 지어 놓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고, 어떤 사람들은 텐트를 쳐 놓고 며칠 지내는 것 같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조개 잡는 장치를 가져다가 보따리에 가득 조개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바다를 바라보고 바람을 쏘이는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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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가다가 에미노루 역 근처에서 치킨 점심을 먹고 그 주위를 돌아다녔다. 휴일을 맞아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어떤 지점은 아예 통행이 불가할 정도로 미어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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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딱 걸렸어!>
안녕하세요, 하면서 먼저 말을 걸고 사진을 찍자는 어여쁜 아가씨들이 있었다. 옷이 너무 화려하고 몸맵시가 범상하지 않아서 우리가 사진찍기를 요구한 정말 미인인 아가씨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구경을 나온 팔레스타인 아가씨도 있었다. 모두다 즐거운 명절을 맞이하여 구경을 나온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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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매무새나 포즈나 인상이나 제스처나, 아무래도 터키 최고의 미인들인듯>
<팔레스타인 아가씨와 어머니>
<국기를 팔고 있다>
<사람이 걸려 걸어다니기 힘들다>
<한 곳에서 거머리를 팔고 있었다.>
<한 어린이가 한참이나 앵무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너무 오래 바라 본다고 엄마에게 혼나고 울면서 끌려갔다. >
<블루모스크에 있는 오벨리스크와 뱀기둥>
사진을 마음껏 찍던 우리 팀원들은, 이제 무슨 욕심으로 노랑 금발 머리와 사진을 찍지 않으면 호텔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생떼를 썼다. 지난 번 버스에서 만난 노랑 사자머리에 대한 복수심이랄까? 아니면 금발에 대해 평소에 무슨 열등감에 사로잡혀서일까?
그때 마침 한쌍의 젊은이가 지나가는데, 여자가 금발이었다. 한국의 두 여성이 막무가내로 금발머리의 양팔을 꽉 끼고 잔디밭으로 들어섰다. 금발 머리의 남자친구는 별꼴 다본다는 표정으로 웃기만 한다. 그런데 이 금발의 포즈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다리를 꼬였다가 풀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허리에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기도 하고, 모델 뺨치는 수준이었다. 속 시원하게 원을 풀었으니, 오늘 밤 굶어도 배가 부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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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아침부터 비가 지척지척 내렸다. 호텔에 있자니 시간이 아깝고, 나가자니 비를 맞고 다니는 것이 청승맞고, 하는 수 없이 전철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오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어딘지 모르지만 종점에 왔다. 비는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거세졌다. 그래도 우리는 종점에서 내릴 도리밖에 없었다. 내려서 아무 데나 갔다가 어떤 모스크에 가서 화장실을 사용하고 다시 전철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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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가지에 있는 탁심광장을 가기 위해 적절한 곳에 내려 무작정 걷기로 했다. 걷다보니 길가에 있는 한 노인이 새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었다. 한 손에 새를 꼭 쥐고 다른 손에 있는 먹이를 하나씩 부리에 넣어 주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새의 윗부리가 없고 아래 부리만 남았다. 아래 부리만 남았으니, 새가 어떻게 먹이를 쪼아먹을 수 있겠는가? 새에게 물도 먹여주는지 옆에 큰 물병이 있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자비로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름 없는 새에게까지 이런 자선을 베푸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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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심 공원에 있는 나뭇잎은 단풍이 들기 시작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떤 것은 빗물에 젖어 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거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탁심 광장이 나오는데, 광장에는 1928년에 건립된 터키 공화국 수립 기념비가 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음식을 먹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비둘기 떼가 모이를 쪼고 있었다. 주위에는 수 많은 상점과 음식점이 있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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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서 방향을 틀어 골든 혼 쪽으로 향한다. 길에는 전차가 왕복하고 있지만, 사람을 운송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전차를 보여주기 위해 그냥 폼으로 운행하는 듯 했다. 눈을 들어보면 건물 상단 중심부에 나체 마네킹이 현란한 모습으로 몸매를 자랑하기도 한다.
조금 내려가면 막대기에 달린 고무 주걱을 이용해 아이스크림을 퍼주는 사람이 있다. 막무가내로 오라고 해 놓고 그냥 주는 것으로 보아, 나는 이것이 무료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아이스크림 콘을 주고, 다시 뺏어 조금 더 넣어 나에게 다시 주고, 또 뺏고 또 넣고, 대여섯 번을 이렇게 하다가 가득찬 아이스크림을 건네 준다. 그리고 나서 돈내놔, 한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들어 결국 강제로 아이스크림을 팔아먹는 사람이다. 얼떨결에 뺌맞고 돈뺏기는, 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여기 가는 사람은 정신 바짝 차리고 가야할 것이다. 값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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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갈라타코푸루스 다리에 왔다. 낚시질 하는 사람들이 다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낚시질보다는 바다 건너에 있는 도시와 우뚝 솟은 그림같은 모스크가 더욱 돋보이는 장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낚시 찌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잡은 고기는 피라미만한 고기였는데, 아마 오염이 심해 먹지는 못할 것으로 보였다. 남이 하니까, 아니면 하는 일이 없어서 낚시대를 물에 담그고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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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우리는 한국식당 "천기와"라는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마 사장은 한국 사람이고 종업원 중에는 네팔 사람과 현지인이 있는 듯 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외에도 일본인과 중국인이 있었다. 음식의 맛은 보통이었지만, 여기가 이국인 것을 감안하다면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밥을 안주 삼아, 술도 적절히 들어갔고, 혀도 어느 정도 꼬여지고 있었다.
거기에서 나와 호텔을 향해 걷는데, 하늘에 흰 연이 떠 돌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갈매기가 모스크에서 쏘는 빛을 받아 연처럼 보였다.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수 없이 떠 있는 갈매기가 마치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왜 갈매기가 잠을 자지 않고, 밤 하늘을 수놓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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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근처에서 몇 사람이 모여 또 몇잔을 걸쳤다. 그러나 조용한 분위기여서 그런지 제 술맛은 나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술을 마셨다. 가끔가다 2인조 밴드가 와서 음악을 연주하기도하고, 앞에 있는 술집에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술을 마시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나 술은 계속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고, 알게 모르게 술은 점점 취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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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인지 모르게 눈이 떠졌다. 호텔이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창문을 여니 "서울정"이라는 한국식당이 보였다. 밖에서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끔 우산을 받고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저 멀리 건물에 붙은 조그만 전등 불빛 아래 빗줄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비가 많이 오는지 전등 가장 자리는 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고, 전등불에 비친 물줄기가 마치 목욕탕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어디서 밤의 적막을 뚫고 회교도가 구성지게 무엇인가를 낭독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낭독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고 염불도 아닌, 곡조 없는 일종의 노래였다. 알라신에 대한 충성심 또는 감사의 표시이든지,아니면 자신을 신에게 바치는 피맺힌 외침 같았다. 빗 소리와 기도 소리, 그리고 가끔가다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사람의 가슴 속에 파고들어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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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작은 그림을 클릭하면 빗소리와 함께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13년 11월 2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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